밀러는 새롭고 더욱 깊은 열성을 가지고 예언을 계속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중요한 그 연구에 몰두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다니엘서 8장에서 2300일의 기산점에 관한 아무런 단서 (端緖) 도 발견할 수 없었다.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그 이상 (異像) 을 알려 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는 다니엘에게 그 일부의 해석만을 알려주었다. 교회에 엄습할 무서운 박해가 다니엘의 계시에 나타났을 때 그는 육신의 기력을 잃어버렸다. 그가 그 이상 더 견딜 수 없게 되자 천사는 얼마 동안 그에게서 떠나갔다.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단 8:2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천사에게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단 8:16) 고 명령하셨다. 그 사명은 완수되어야 할 것이었다. 천사는 그 명령을 따라 얼마 후에 다시 다니엘에게 와서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단 9:22, 23) 고 말하였다. 다니엘서 8장에서 해석되지 않고 남아 있는 중요한 한 가지 점은 즉, 때에 관한 것, 곧 2300일의 기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사가 그 해설을 다시 할 때 그는 때에 관한 문제에 치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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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일에 관한 예언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 (단 9:24~27) 다.
이때에 천사는 다니엘이 8장에서 이해하지 못한 점, 곧 때에 관한 것,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설명하여 줄 목적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고 명한 후에 곧 이어서 한 첫말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기한을 정하였”다는 말은 “끊어 낸다”는 말이다. 천사는 칠십 주일 (칠십 이레) 곧 490년을 특별히 유대인을 위하여 끊어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서 끊어 낼 것인가? 2300일이 다니엘 8장에서 말한 유일의 기간이므로 70주일을 그 기간에서 끊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70주일은 2300일의 일부분인 동시에, 그 두 기간은 동시에 시작하여야 한다. 그런데 천사는 70주일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릴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 영이 내린 때를 알 수만 있으면, 2300일의 기산점 (起算點) 이 확정될 것이었다.
큰 예언적 기간의 기산점 (起算點)
에스라서 7장에 이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완성된 형태의 조서는 기원전 457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내렸다 (스 7:12~26 참조). 그러나 에스라서 6장 14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건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세 왕은 조서를 처음으로 만들고, 다시 확인하고, 완성시킴으로 2300년의 시작을 알려 주는 예언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게 되었다. 조서가 완성된 기원전 457년을 칙령이 내린 때로 삼을 때 70주일에 관한 예언의 세부적인 사건들이 모두 성취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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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즉, 69주일, 곧 483년이 지난다는 뜻이다. 이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효력을 발생한 때는 기원전 457년 가을이다. 그 때로부터 483년을 지나면 서기 (西紀) 27년이 된다. 그 때에 이 예언이 틀림없이 성취되었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 해 가을에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사도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 (행 10:38) 다고 증거하였다. 구주께서도 친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 (눅 4:18) 셨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신 후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4, 15) 고 하셨다.
구주께서 나타나실 것에 관한 예언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 (단 9:27) 리라. 이 1주일은 70주일의 마지막 1주일이다. 그것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배정된 최후의 7년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 곧 서기 27년에서 34년까지의 기간에 그리스도 자신이, 후에는 그분의 제자들이 특별히 유대인에게 복음의 초청을 하였다. 사도들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5, 6) 고 명령하셨다.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다. 침례를 받으신 지 3년 반이 지난 서기 31년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갈바리에서 드리신 그 위대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과거 4000년간 하나님의 어린양을 표상한 희생 제도는 끝났다. 모형 (模型) 은 실체와 만났고, 모든 희생 제도와 제물에 관한 의례 (儀禮) 와 의식은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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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위하여 배당된 70주일, 곧 490년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서기 34년에 끝났다. 그 때에 유대의 산헤드린이 취한 태도, 곧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함으로 복음을 거절한 것은 국가로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은 그 택함 받은 국민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제자들은 박해 때문에 부득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 (행8:4, 5) 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다. 또한 베드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이사랴에 사는 백부장,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고넬료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아들인 열렬한 바울은 그 기쁜 소식을 “멀리 이방인” (행 22:21) 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예언에 열거된 사건들은 놀라울 정도로 모두 성취되었다. 그리고 70주일은 의심할 여지없이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어 서기 34년에 끝났다. 이 사실을 근거로 2300일의 끝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300일에서 70주일, 곧 490일을 떼어내면 1810일이 남는다. 490일 후에 계속하여 1810일도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서기 34년에다 1810년을 가하면 1844년이 된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일은 서기 1844년에 마치게 된다. 그런데 이 긴 예언적 기간의 끝에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고 하나님의 천사는 증거하였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 성취될 것으로 믿고 있는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는 시기가 이제 확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밀러의 예언 연구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처음에 2300일이 1844년 봄에 끝날 것으로 믿었으나, 그 예언은 그 해 가을에 마칠 것을 가리키고 있다 (부록 27 참조). 이 점에 대한 오해는 그 해 봄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혼란과 실망을 초래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2300일이 1844년에 마치고,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고 한 그 큰 사건에 대한 주장을 약화시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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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원래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연구에 착수하였으므로 그가 지금 얻은 그 결론에 이르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연구의 결과를 자기 자신의 공로로 삼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경상 증거는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였으므로 그는 그것을 무시해 버릴 수 없었다.
그는 2년 동안 성경 연구에 전념하였고, 1818년에 그는 불과 25년 이내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라는 엄숙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기쁜 앞날을 내다볼 때 나의 마음을 충만케 한 그 즐거움과 구속받은 사람들의 기쁨에 동참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의 열렬한 소망에 대해서 나는 말할 필요가 없다. 성경은 이제 나에게 하나의 새로운 책이 되었다. 성경은 정말로 논리적으로 건전한 책이었다. 지금까지 성경의 교훈을 이해할 수 없고, 신비적이고, 분명하지 못한 것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그 거룩한 페이지에 나타난 밝은 빛 앞에 그런 것들이 모두 나의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아! 진리는 얼마나 밝고 영광스럽게 나타났던가! 종래에 모순되고 조화되지 못한 것들이 이제 다 사라졌다. 비록 이해할 수는 있었으나 만족할 만큼 이해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서 많은 빛이 나와서 나의 지금까지의 어둡던 마음을 비추어 주었으므로 마침내 나는 성경 연구에서 얻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큰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p.76, 77).
“이처럼 중대한 사건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고, 그것이 아주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엄숙한 확신을 가지게 되자 나의 마음에 큰 힘으로 일어나는 의문은 이렇게 내 마음을 움직인 분명한 증거를 본 자신이 세상에 대한 의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81). 그는 자기가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반대를 받을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노라고 고백한 그들의 구주를 만날 소망을 바라보고 기뻐할 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염려는 곧 성취될 영광스러운 구원을 지나치게 기뻐한 나머지 그 진리가 제시될 때 성경 말씀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그 교리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리가 많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실수로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그것을 발표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는 자기가 얻은 결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증거들을 새삼 고려해 보고, 자기가 어렵게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았다. 그는 마침내 햇빛에 사라지는 안개처럼 모든 장애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5년을 지내는 동안 그는 자기의 주장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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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를 시작함
성경에 그처럼 분명히 밝혀져 있는 진리를 확신하게 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하겠다는 책임감이 새로운 힘으로 그에게 밀려왔다. 그 때의 일을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내가 나의 사사로운 일을 하고자 하면 언제나 ‘가서 세상에 그 위험을 경고해 주라’는 소리가 나의 귀에 들렸다. 그리고 다음의 성경 말씀이 항상 생각났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겔 33:8, 9). 만일 내가 악한 자들을 충분히 경고할 것 같으면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게 될 것이며, 만일 그들이 경고를 받지 못하면 그들의 피는 반드시 내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92).
밀러는 기회를 얻는 대로 개인적으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함과 동시에 어떤 전도자가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경고할 의무가 있다는 자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마음에는 “가서 이것을 세상에 고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들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는 9년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무거운 짐은 여전히 그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1831년에 처음으로 공중 앞에서 자기의 믿음의 이유를 증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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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옛날 엘리사가 그의 소를 몰고 밭가는 일을 버리고 헌신의 두루마기를 받음으로 선지자의 직분을 받도록 부르심을 입었던 것처럼 윌리엄 밀러도 그의 쟁기를 버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오묘한 이치를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업에 착수하였고, 청중들을 차츰차츰 그 예언적 기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끌고 갔다. 그는 사람들의 흥미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봄에 따라 모든 일에 능력과 용기를 얻었다.
밀러가 자신의 견해를 일반 사람들에게 발표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그의 형제들의 권고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당시에 나이 50세로서 공중 앞에서 강연이나 설교를 해본 경험이 없었으므로, 그 사업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큰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큰 축복을 받아 많은 영혼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의 최초의 강연은 큰 종교적 각성을 일으켜 주었으므로 열세 가정에서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회개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로 다른 곳에서 말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고, 거의 모든 곳에서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사업을 부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신자들은 더욱 깊이 헌신하고, 회의론자 (懷疑論者) 와 불신자들까지도 그리스도교와 성경의 진리를 시인하게 되었다. 그의 활동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은 “다른 설교자들에게서 감화를 받지 못하던 사람들도 밀러에 의하여 감동을 받았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138). 고 증언하였다. 그의 설교는 일반 대중들에게 종교적 큰 사건에 대하여 각성시켰고, 그 당시의 세속적인 것과 타락의 풍조를 방지해 주었다.
재림기별 선포에 대한 반응
거의 모든 도시에서 그의 설교의 결과로 수십 명이, 어떤 도시에서는 수백 명이 회개하였다. 많은 곳에서 개신교의 거의 모든 교파가 그 문들을 열어 놓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여러 교회의 목사들은 그를 초청하여 설교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초청을 받지 아니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활동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그에게 쇄도해 오는 요구의 절반도 응할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재림의 분명한 시기를 정하는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많은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긴박성을 깨달았으며, 그 큰 사건을 위하여 준비할 필요성을 확신하였다. 어떤 큰 도시들에서는 그의 사업이 놀라운 영향을 미쳤다. 주류 판매업자들이 그들의 사업을 버리고 그 주점 (酒店) 들을 집회소로 내놓았으며, 도박장은 폐쇄되고, 무신론자, 자연신교도 (自然神敎徒), 보편 구원론자, 심지어 가장 타락한 탕아들까지 생활을 개혁하였는데,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던 자들이었다. 각 교파에서는 기도회를 열되, 각 곳에서 거의 매 시간 열었고, 사업가들도 정오에는 기도하고 찬미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광적 (狂的) 흥분에서가 아니고, 매우 엄숙한 생각으로 그 일을 하였다. 그의 활동은 단지 감정적으로 흥분을 일으키기보다는 초기의 종교 개혁자들처럼 냉정한 이지 (理智) 로 판단케 하고 양심을 각성시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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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에 밀러는 그가 속하고 있던 침례교회로부터 설교를 할 수 있는 증명서를 받았다. 그 교파의 많은 목사들도 그의 사업을 인정하였으므로 그는 정식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의 사업은 주로 뉴잉글랜드와 중부 지방에 국한되어 있었지마는 그는 끊임없이 여행하고 설교하였다. 처음 수년 동안 그는 모든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였으며, 그 후에도 그가 초청 받은 지방까지 가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한 비용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이 그의 공중 전도는 금전상의 혜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으므로 필경 그의 재산에 무거운 부담이 되었으며, 그 사업을 하는 동안에 그의 재산은 차츰 줄어져 갔다. 그는 대가족의 가장이었는데, 그의 가족들이 모두 검소하고 근면하였으므로, 그의 농토는 그와 그의 가족이 쓰기에 족한 소출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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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떨어짐 (1833년 11월 13일)
밀러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증거를 공중 앞에 알려 주기 시작한 2년 후에 구주께서 재림의 징조로 약속해 주신 맨 마지막 징조가 나타났다. 예수님께서는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리라” (마 24:29) 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은 하나님의 날을 알려주는 광경을 이상 중에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 (계 6:13) 더라. 이 예언은 1833년 11월 13일의 유성 (流星) 의 큰 소나기로 분명히 성취되었다. 그것은 지금껏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놀라운 별의 떨어짐이었다. “이 때에 온 미국의 하늘은 몇 시간 동안 찬란한 광경을 나타냈다. 이는 미국이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하늘의 현상이었으며 그것을 목격한 일부의 사람들은 매우 감탄하였고, 또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심히 두려워 경악 (驚愕) 하였다.” “그 장엄하고 찬란했던 광경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오늘날까지의 어떠한 유성우 (流星雨) 도 그 때와 같이 사면팔방으로 쉴 새 없이 쏟아졌던 적은 없다. 다시 말하면 온 하늘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은 실리먼 교수가 저널이라는 잡지에 기록한 바와 같이, 북미 전역 (全域) 에서 볼 수 있었다. …두 시부터 새벽이 되기까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찬란한 빛이 번쩍이면서 온 하늘은 기이한 광경을 이루었다” (R.M.Devens, American Progress; or, The Great Events of the Greatest Century, ch.28, pars.1~5).
“실로 그 장엄한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을 목격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그 찬란한 모습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온 하늘의 모든 별이 머리 위의 어떤 한 점에 모여서 갑자기 지상을 향하여 번개 같은 속력으로 일제히 내려오는 것과 같았다. 그것도 다만 한 순간으로 그친 것이 아니고 마치 그 때를 위하여 창조된 것처럼 뒤를 이어 빠른 속력으로 무수히 쏟아져 내려왔다” (F.Reed, in the Christian Advocate and Journal, Dec.13, 1833). “차라리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그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함이 더욱 적절한 말이 될 것이다” (“The Old Countryman”, in Portland Evening Adver-tiser, Nov.26, 1883).
각 시대의 대쟁투 pp. 325-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