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39장 – 환난의 때

39 장 — 환난의 때

은혜의 시기가 지나가고 환난의 때가 옴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단 12:1).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마쳐지면 세상의 죄인들을 위한 자비의 탄원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사업을 다 이루었다. 그들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 (행 3:19) 르는 “늦은비” (호 6:3) 를 받았으므로 그들 앞에 있는 시련의 때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지상에서 돌아온 한 천사는 그의 일이 마쳐진 것을 보고한다. 마지막 시험이 이미 세상에 주어졌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것이 입증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 (계 7:2) 을 받았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중보 사업을 그치신다. 그분께서는 손을 들어 큰 음성으로 “되었다” (계 16:17) 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 22:11) 고 엄숙히 선언하시자 온 하늘의 천사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는다. 생사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다.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는 바야흐로 구원의 후사들에게 주어지고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통치하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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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이 땅의 거민들에게는 암흑이 덮인다. 이처럼 두려운 시기에 의인들은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악인들을 누르고 있던 억제는 제거되고 사단이 마침내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끝났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그분의 사랑을 멸시하고 그분의 율법을 유린하였다. 악인들은 그 은혜 시대에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렸고 계속적으로 거절당한 하나님의 영은 마침내 거두어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악한 자 마귀에게서 방어되지 못한다. 사단은 이 땅의 거민들을 최후의 큰 환난 가운데 빠뜨릴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간의 감정의 거센 바람을 막아 주지 않으면 각종 투쟁의 요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온 세계는 옛날 예루살렘을 휩쓸었던 것보다 더 무서운 폐허를 나타낼 것이다.

단 한 천사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고 그 땅을 통곡의 소리로 가득해지게 했다. 다윗이 백성들의 숫자를 조사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한 천사가 그 죄에 대한 벌로 무서운 멸망을 초래하였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거룩한 천사들에 의하여 나타났던 것과 똑같은 파괴력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악한 천사들에 의해서도 발휘될 것이다. 파괴력은 이제 준비되어 있다. 각 곳에 폐허 상태를 가져오기 위하여 하나님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심판을 초래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들은 천연계의 두려운 재난과, 지상을 비극으로 충만하게 하는 인간의 투쟁과 유혈 사태의 장본인으로 간주될 것이다. 마지막 경고에 따르는 능력은 악인들을 격노케 해왔다. 그들의 분노는 기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일어나고 사단은 증오와 박해의 정신을 극도로 격발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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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환난

하나님의 임재가 마침내 유대 민족에게서 떠나갔을 때,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사단의 지배 아래 가장 무섭고 흉악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생각했다. 성전에서의 봉사는 계속되었고, 희생 제물은 더럽혀진 그 제단 위에 드려졌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를 흘리고 그분의 종들과 사도들을 잡아 죽이고자 하는 백성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게 해달라는 기원이 매일 상달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소에서 취소할 수 없는 결정이 선고되고 세상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된 후에도 땅 위에 사는 주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여러 가지 종교 의식은 하나님의 영이 이미 떠나간 사람들에 의하여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악의 왕이 그의 무서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충동할 그 극악무도한 열성이 하나님께 대한 열성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안식일이 모든 그리스도교국을 통하여 투쟁의 초점이 되고 종교계와 정계의 권력자들이 계속하여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게 될 때 그 세속적 요구에 굴복하기를 끈덕지게 거절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온 세계의 저주의 표적이 될 것이다. 교회의 제도와 국가의 법에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이 그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모든 국가들이 혼란과 무법 상태에 빠지는 것보다 그들이 고난을 받는 것이 더욱 낫다고 역설할 것이다. 1800년 전에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똑같은 이론을 제기했다. 교활한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요 11:50) 라고 말하였다. 이 이론은 결정적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침내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성별하는 사람에 대하여 일종의 법령이 반포될 것이다. 그들은 가장 중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선고를 받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그들을 사형에 처하는 자유를 사람들에게 부여할 것이다. 유럽의 로마교도들과 미국의 타락한 개신교도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와 유사한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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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지자가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묘사한 고난과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렘 30:5~7).

야곱이 심한 고통을 당한 밤, 곧 야곱이 에서의 손에서 구원을 받고자 기도로 씨름하던 그 밤 (창 32:24~30 참조) 은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을 경험을 나타내 준다. 에서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기만 수단을 썼기 때문에 야곱은 형의 무서운 협박에 놀라 목숨을 구하고자 도망하였다. 여러 해 동안의 유랑 생활을 마친 후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처자들과 가축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출발하였다. 국경에 이르자 그는 에서가 그에게 복수할 뜻으로 일단의 군사를 이끌고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무장도 방위력도 없는 야곱의 일행들은 바야흐로 폭력과 살육으로 속절없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불안과 공포의 무거운 짐에 자책의 짐이 또한 첨가되었다. 왜냐하면 그 위기는 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의 유일한 방어책은 기도하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형에게 잘못을 갚고 또한 위협당하고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환난의 시기가 가까워 옴에 따라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올바른 위치에 놓고 편견을 제거하고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험에서 피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야곱의 믿음과 인내력

가족들이 그의 고통을 목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그 장소에서 떠나보낸 후 야곱은 하나님께 탄원하기 위하여 홀로 남았다. 그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한다. 동시에 그는 매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과, 벧엘에서 이상 (異像) 을 보던 밤에, 또한 유랑하는 땅에서 그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의 생애에 위기가 다가왔다.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 있다.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갑자기 어떤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는 그의 원수가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 줄로 생각한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하여 그 공격자와 씨름을 한다. 날이 샐 무렵이 되자 그 낯선 사람은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한다. 한 번 건드리자 힘이 강한 야곱은 마치 마비된 것처럼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넘어져버리고 속절없는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그 적대자의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애원한다. 야곱은 방금 자기가 싸운 상대가 언약의 천사임을 이제 깨닫는다. 거의 모든 기력이 빠지고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는 그의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죄 때문에 오랫동안 곤란과 자책과 고통을 참아왔다. 이제 그는 그것이 용서받았다는 확증을 얻어야 한다. 그 거룩한 방문자는 바야흐로 떠나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야곱은 그에게 매달려서 축복해 달라고 탄원한다. 그 천사는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고 강권한다. 그러나 그 족장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외친다. 얼마나 놀라운 확신과 굳센 의지와 인내력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가! 그것이 만일 오만하고 참람된 요구였다면 야곱은 즉시 멸망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간구는 그가 자신의 약하고 무가치한 것을 고백하고 더욱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자임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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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 (호 12:4) 었다. 겸비와 회개와 항복을 통하여 죄와 실수가 많은 이 사람은 하늘의 권위자로 더불어 씨름하여 이겼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떨리는 손으로 굳게 붙잡았다. 그러므로 무한하신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의 간구를 물리칠 수 없으셨다. 그의 승리의 증거로서 또한 그의 본을 따르는 사람들을 권장하려 하는 표로서 그의 이름은 그의 죄를 회상케 하는 이름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 바뀌어졌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그가 사람에게도 이길 수 있다는 하나의 보증이었다. 그는 에서의 분노를 더 이상 두려움으로 맞이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여 주셨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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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천사들 앞에서 야곱을 비난하고 그가 그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받음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에서를 충동하여 야곱을 향하여 진군해 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 믿음의 족장이 기도로 밤을 새울 때 사단은 그에게 범죄한 것을 깨닫게 하여 그를 낙심케 하고 하나님을 붙든 손을 놓쳐버리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야곱은 거의 절망할 지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야곱은 진정으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받고자 탄원하였다. 그는 그의 목적을 돌이키지 않았다. 그는 천사를 굳게 붙들고 열렬하고 고민 어린 호소로 부르짖은 끝에 마침내 승리를 얻었다.

사단의 음모

에서를 충동하여 야곱을 향하여 군대를 진군시킨 것과 똑같이 사단은 환난의 때에 악한 자들을 선동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고자 할 것이다. 야곱을 비난했던 것과 똑같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는 일에 진력할 것이다. 그는 세상을 그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적은 무리는 그의 최상권을 거부하고 있다. 만일 그가 그들을 세상에서 제거해 버릴 수만 있으면 그의 승리는 완성될 것이다. 사단은 거룩한 천사들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며, 그들의 죄가 용서된 것도 짐작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문제가 하늘 성소에서 결정된 것은 모른다. 사단은 그들을 유혹하여 범죄케 한 죄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 죄를 하나님 앞에 가장 크게 과장하여 제시하고, 그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도록 제거된 것처럼 그들도 똑같이 제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들의 죄는 용서해 주시면서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단은 그들이 자기에게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주장하고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어 멸망시킬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한 것에 대하여 사단이 비난함으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들의 확신과 믿음과 견인불발의 정신은 격렬하게 시험을 받을 것이다. 과거를 회고할 때 그들의 희망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온 생애에서 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완전히 깨닫는다. 사단은 그들의 상태가 절망적이며 그들의 오점은 영원히 씻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 그들을 위협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그들의 믿음을 파괴시킴으로 그들이 그의 유혹에 굴복하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버리게 하고자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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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죽이고자 열광하는 원수들에게 에워싸일지라도 그들이 겪는 고민은 진리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직껏 모든 죄를 다 회개하지 못하지나 않았는가, 혹은 그들의 어떤 결점 때문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 (계 3:10) 라고 하신 구주의 약속을 성취시키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한다. 만일 그들이 용서를 받았다는 보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들은 고문이나 죽음 앞에서도 위축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무가치함이 입증되고 그들 자신의 품성의 결함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치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각처에서 반역의 음모에 관한 말을 듣고 또한 적극적인 반역 활동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그들의 마음에는 그 큰 반역을 그치게 하고 악인들의 사악한 행위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 곧 애타는 심정이 타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반역의 활동을 저지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한편 그들 자신에게는 악의 큰 물결을 저항하거나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깨닫고 몹시 큰 가책을 느끼게 된다. 만일 그들이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업에 그들의 능력을 남김없이 쏟아오고 계속적으로 힘 있게 전진했을 것 같으면 그 사단의 세력이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많은 죄를 이미 회개한 사실을 가리키면서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사 27:5) 고 하신 구주의 약속을 성취시켜달라고 애원한다. 그들은 그들의 기도가 즉시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비록 극심한 불안과 공포와 고통으로 괴로움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간구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마치 야곱이 천사를 붙잡고 놓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는 말이 그들의 심령에서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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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의 최후의 운명

만일 야곱이 속임수로 장자의 상속권을 빼앗은 죄를 사전에 회개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심으로 그의 생명을 자비롭게 보호해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민과 공포로 괴로워할 동안 만일 아직 자복하지 아니한 죄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그들은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절망이 그들의 믿음의 줄을 끊어 버리고,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 도움을 애원할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고 있는 동안 그들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숨겨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죄는 이미 심판정에서 도말되었다. 그들은 그 죄들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없다.

사단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에 나타나는 불성실을 간과해 버리실 것이라고 믿게끔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 대한 태도로써 당신은 절대로 죄악을 시인하거나 묵인하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죄를 핑계하거나 숨김으로 그것을 고백하지 않고 용서받지 않은 채 하늘의 기록에 남겨둔 모든 자는 사단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그들의 신앙 고백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하나님의 안목에는 그들의 행위가 더욱 가증하게 보이고 그들의 큰 원수의 승리는 더욱 확실해진다. 하나님의 날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하는 자들은 환난의 때에나 그 이후의 어떤 기간에 그 준비를 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자들의 경우는 희망이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최후의 쟁투를 맞이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절망 끝에 무서운 고민의 말로 그들의 죄를 자복할 것이다. 그 때에 악한 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보고 기뻐 날뛸 것이다. 그런 고백들은 마치 에서와 유다의 고백과 같은 성질의 것들이다. 그런 자복을 하는 자들은 죄 자체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고 죄의 결과 때문에 슬퍼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뉘우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형벌이 무서워서 그들의 죄를 인정한다. 그러나 옛날 바로와 같이 그들은 형벌이 제거되면 다시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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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된 하나님의 종에 대한 상

야곱의 역사는 또한 속임을 당하고 시험을 받아 죄에 빠졌던 사람들이라도 진정한 회개로써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분께서는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해 준다. 사단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멸망시키고자 애쓰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위급한 때에 그들을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 주실 것이다. 사단의 공격은 격렬하고 단호하며 그의 속임수는 무섭다. 그러나 여호와의 눈은 당신의 백성을 주목하시며 그분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신다. 그들의 고난은 크고, 풀무의 불꽃은 바야흐로 그들을 태워 버릴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로 단련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시련의 기간에 당신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그들이 가장 순조롭고 번영하던 때에 주신 것과 똑같이 강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그들을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반사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에게 있는 세속적인 것들이 불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있는 고난과 고통의 시기는 우리에게 피로와 지연 (遲延) 과 주림에 견딜 수 있는 믿음, 곧 격렬하게 시련을 받을지라도 쇠약해지지 아니할 믿음이 필요하다. 그때를 위하여 준비할 수 있는 은혜의 시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다. 야곱은 끈기 있고 확고하였기 때문에 승리하였다. 그의 승리는 줄기찬 기도의 능력이 어떤 것임을 보여 주는 하나의 실증이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열렬하고 꾸준하게 나아가는 모든 사람은 그가 성공한 것처럼 성공할 것이다. 자아를 기꺼이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꾸준하고 열렬하게 기도하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하는 것이 무엇임을 깨닫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모든 힘이 다할 때까지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온 심령을 다 기울여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물결이 간구하는 자들 위에 밀려올 때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자들이 어찌 그리 적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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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믿음을 조금밖에 활용하지 않는 자들은 사단의 기만적 권세와 양심을 억압하는 법령에 굴복될 위험이 가장 크다. 비록 그들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지라도 그들은 환난의 때에 더욱 심한 난관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습관을 기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등한히 한 믿음의 교훈을 무서운 절망 가운데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주님의 약속을 실증함으로써 하나님과 친숙해져야 한다. 천사들은 열렬하고 진실한 모든 기도를 기록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누는 교통을 등한히 하기보다 차라리 이기적 만족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극심한 빈궁과 가장 큰 극기는 그분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부귀와 명예와 안일과 우정보다 더 낫다.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세상일에 몰두당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허용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우상이 되어 있는 재산과 가옥과 비옥한 토지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심으로써 우리에게 기도할 시간을 주실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수 없는 어떤 길에 발을 들여 놓기를 거절할 것 같으면 그들은 죄에 유혹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세상을 경고할 마지막 엄숙한 사명을 전달하는 사자들이 냉담하고 무관심하고 게으른 태도가 없이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것 같으면, 그들은 많은 곳에서 마치 야곱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창 32:30) 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으므로 왕자라는 하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임박한 큰 환난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가 곧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지 못한 경험 즉 사람들이 얻기를 너무도 게을리 하고 있는 한 가지 경험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로 당하는 환난이 가벼운 것이 상례이지만 우리 앞에 있는 위기는 그렇지 않다. 가장 자세하게 묘사하여도 그 시련의 크기를 여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 환난의 때에 각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겔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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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여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생각으로라도 유혹의 힘에 굴복당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가 발을 붙일 어떤 곳이 있는지 찾는다. 그러던 중 어떤 죄된 욕망을 품게 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 14:30) 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환난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와 분리되어야 한다. 우리의 귀하신 구주께서는 우리 자신을 당신께 연합시키도록 초청하시되 우리의 연약함을 당신의 능력에, 우리의 무지를 당신의 지혜에, 우리의 무가치함을 당신의 공로에 연합시키기를 간청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험들은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 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가르쳐 주는 학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앞에 더욱 안이하고 즐거워 보이는 길, 곧 우리가 택하기를 좋아할 그런 길이 아니라 생애의 진정한 목적이 되는 길을 제시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품성을 그 거룩하신 모본을 따라 이루는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리자들과 협력하는 일이 우리에게 부과되어 있다. 이 일을 게을리 하거나 지연시키는 자들은 누구나 그들의 영혼을 가장 무서운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계 12:12) 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의 음성으로 이와 같이 크게 부르짖는 장면은 얼마나 두려운가. 사단의 분노는 그의 시간이 단축되어 감에 따라 격렬해진다. 그리하여 그의 기만과 파괴 행위는 환난의 때에 그 절정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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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그리스도

미구에 하늘에는 이적을 행하는 마귀의 능력을 알려 주는 증거로서 초자연적인 무서운 광경이 나타날 것이다. 마귀의 영은 땅의 왕들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속임수로 그들을 얽어매어 하늘 정부를 대적하는 그의 마지막 투쟁에 사단과 연합하도록 그들을 강요할 것이다. 그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통치자들과 백성들은 다 같이 속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라고 자칭할 것이며 구주께 속한 칭호와 예배를 요구할 것이다. 그들은 병을 고치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성경의 증거와 반대되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노라고 공언할 것이다.

큰 기만적 연극의 주역으로서 사단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로 가장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희망의 성취로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해 왔다. 이제 그 큰 기만자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신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사단은 세계 각처에서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계시록에 묘사한 바와 같이 실로 위엄 있고 광휘 찬란한 모습으로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나타낼 것이다. 그를 두르고 있는 영광은 사람이 일찍이 목격한 일이 없는 찬란한 광경이다 (계 1:13~15 참조).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부르짖는 승리의 함성이 공중에 울려 퍼진다. 사람들이 그 앞에 부복하여 그에게 경배한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는 손을 들어 마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당신의 제자들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축복할 것이다.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아름답다. 우아하고 동정어린 음조로 그는 일찍이 구주께서 말씀하신 은혜로운 하늘 진리 중 어떤 것들을 알려준다. 그는 사람들의 병을 고친다. 그런 다음에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특성으로 가장하여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모든 사람에게 그가 축복한 그날을 거룩히 지키도록 명령한다. 그는 제칠일을 거룩히 지키기로 고집하는 자들은 빛과 진리를 가지고 그들에게 보낸 그의 사자들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강력하고 거의 압도적인 기만이다. 마치 마술쟁이 시몬에게 속은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무리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행 8:10) 고 말함으로써 그 마술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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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기만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 거짓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성경과 일치되지 않는다. 그의 축복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곧 성경이 하나님의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가 쏟아지리라고 한 바로 그 부류의 사람들에게 선언된다.

그리고 더욱이 사단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경을 모조하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다. 구주께서는 이 점에 속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경고하시고 재림의 광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히 예언하셨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24~27). 이러한 재림은 위조할 수 없다. 온 우주가 그 사건을 알고 온 세계가 그 일을 목격할 것이다.

오직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만이 온 세계를 사로잡는 그 강력한 미혹에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성경의 증언에 의하여 그들은 그 기만자의 변장을 알아내게 될 것이다. 그 시련의 때는 모든 사람에게 이를 것이다. 시험의 체질로 말미암아 참 그리스도인이 나타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감정적 증거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는가? 그들은 이와 같은 위기를 당하여 성경, 오직 성경만을 붙들고 놓지 않을 것인가?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그날에 설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방해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길을 가로막고 세상 재물에 얽히도록 일을 주선하고 그들이 무겁고 어려운 짐을 지게 함으로 이 세상 걱정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눌리게 하여 마치 도적과 같이 시련의 날이 그들에게 이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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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와 은혜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위정자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서 정부의 보호를 제거해 버리고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준다는 법령을 반포하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도시와 촌락을 떠나 가장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피하여 함께 무리를 지어 거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은 산악들로 이루어진 요새에서 피난처를 찾을 것이다. 그들은 피에몽 골짜기에 숨어 있던 그리스도인들처럼 땅의 높은 곳을 성소로 삼고 “견고한 바위” (사 33:16) 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민족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 높은 자와 낮은 자, 부한 자와 가난한 자, 백색 인종과 유색 인종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극히 부당하고 잔인한 속박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백성들은 괴로운 날을 보내고, 쇠사슬에 매이고 감옥에 갇히고, 사형 선고를 받고, 그 중 더러는 어둡고 불결한 옥에 갇히어 기아로 거의 죽을 지경을 당할 것이다. 아무도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그들을 돕고자 즐거이 손을 뻗는 자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련의 때의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잊어버리실까? 그분께서는 홍수 전 세상을 심판하실 때 충성된 노아를 잊어버리셨던가? 그분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평원의 도시들을 태워 버리실 때 롯을 잊어버리셨던가? 그분께서는 애굽에서 우상 숭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요셉을 잊으셨던가? 그분께서는 이세벨이 바알 선지자들의 운명과 같이 만들겠다고 엘리야를 위협하는 맹세를 했을 때 그를 잊어버리셨던가? 그분께서는 풀무불에 던져진 훌륭한 세 청년을 잊으시거나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을 잊으셨던가?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 (사 49:14~16) 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슥 2:8) 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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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원수들이 그들을 옥에 가둔다 할지라도 감옥의 벽이 그들의 영혼과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차단시킬 수는 없다. 그들의 모든 연약함을 보시고 모든 시험을 잘 아시는 그분께서는 세속적인 모든 권세를 초월하신 분이시다. 천사들은 적막한 옥에 갇혀 있는 그들을 찾아가서 하늘의 빛과 평화를 줄 것이다. 그 감옥은 마치 궁궐처럼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믿음이 많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마치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기도하고 찬미했을 때처럼 그 음산한 담벼락이 하늘빛으로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벌이 당신의 백성들을 압박하고 죽이고자 하는 자들에게 내릴 것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사람들이 범죄하는 데 대담해지게 한다. 그러나 오래 지체된다고 해서 분명하고 두려운 그 형벌이 결코 감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드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임이라” (사 28:21). 우리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형벌하는 일을 하시는 것은 비상한 일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겔 33:11).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 (출 34:6) 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 (출 34:7) 으신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은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출 34:6, 7; 나 1:3). 의 가운데서 행하시는 무서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짓밟힌 율법의 권위를 옹호하실 것이다.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내릴 심한 형벌의 정도는 주님께서 공의를 집행하시기까지 오래 참으신 것으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그분께서 헤아려 보시는 죄의 분량이 차기까지 형벌하지 않고 버려두시는 그 백성들은 마지막으로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중보 사업을 성소에서 마치실 때,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는 자들에게 이미 경고한,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가 내릴 것이다 (계 14:9, 10 참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려 하셨을 때 애굽에 내린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구원 직전에 이 세상에 내릴 더욱 무섭고 큰 규모의 형벌과 성질상 유사한 것이었다. 계시록의 기자는 그 무서운 재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이러한 두려운 재앙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옹호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계 16:2~6).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사형을 언도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그 사람들의 피를 흘린 것과 똑같은 죄를 범한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의 유대인들이 아벨시대 이후로 모든 성도들의 피를 흘린 죄를 범하였다고 주장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과 똑같은 정신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고자 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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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여 일어나는 재앙으로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계 16:8, 9). 이 무서운 시기에 있을 지상의 형편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 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욜 1:10~12, 17~20; 암 8:3)

그 재앙들은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지상의 거민들은 완전히 전멸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지금껏 알려진 것들 중 가장 무서운 재앙이 될 것이다. 은혜의 시기가 마치기 전에 사람들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에는 자비가 섞여 있었다. 그리스도의 중보의 피가 죄인이 범한 죄의 분량대로 재앙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에는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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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멸시해 온 하나님의 자비의 보호를 받고자 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 (암 8:11, 12) 라.

마지막 환난의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박해와 고통을 당하고 궁핍과 고난을 견딜지라도 그들은 죽도록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자아를 희생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한 사람도 지나쳐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며, 기근의 때에도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 악한 자들이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갈 동안 천사들은 의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줄 것이다. 의롭게 행하는 자들에게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 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사 33:15, 16, 41: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7)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합 3:17, 18)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것이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5~7).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 (시 91:3~10) 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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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의 안목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보다 앞서 간 순교자들처럼 곧 그들의 피로써 그들의 증거를 인 쳐야 할 것같이 보일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가고 그들이 원수들의 수중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인지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무서운 고뇌의 시기이다. 그들은 밤낮으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다. 악한 자들은 기뻐 날뛰며 조롱한다. “이제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서 건져내지 않으시느냐?” 그러나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조롱하며 외치던 말,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 27:42) 고 하던 말을 기억한다. 야곱과 같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씨름을 계속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민이 나타난다. 모든 사람의 얼굴은 창백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열렬한 간구를 그치지 않는다.

천사들의 보호

사람들이 만일 하늘의 사물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은 능력 있는 천사의 무리가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켜온 사람들을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천사들은 부드러운 동정심으로 그들의 고통을 바라보고 그들의 기도를 들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 내라는 사령관의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쓴 잔을 마시고 피의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그처럼 큰 고통의 요소가 되는 구원의 지연은 그들의 탄원에 대한 가장 좋은 응답이다. 그들이 주님께서 일을 하시도록 진심으로 기다리고자 애를 쓰고 있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신앙 경험에서 그처럼 활용해 보지 못하였던 믿음과 소망과 인내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택한 자들을 위하여 환난의 때는 단축될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눅 18:7, 8). 마지막은 사람들이 예기하는 것보다 속히 올 것이다. 곡식은 거두어져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가기 위하여 묶여지고 가라지는 멸망의 불에 던져지기 위하여 단으로 묶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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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임무에 충실한 하늘의 파수병들은 계속하여 깨어 있다. 비록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죽이고자 하는 시간을 정해 놓았을지라도 그들의 원수들은 경우에 따라 그 법령의 실행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그 결정된 날짜보다 미리 그들의 생명을 빼앗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충성된 각 사람을 둘러 진치고 있는 강한 수호자들의 경계망을 깨뜨릴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도시와 촌락들에서 피해 가다가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을 해하고자 높이 들려진 검 (劍) 은 마치 지푸라기처럼 무력하게 꺾여 힘없이 떨어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사 (戰士) 의 모양을 한 천사들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다.

각 시대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천사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도우시고 구원하셨다. 천사들은 사람들의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들은 번개와 같이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났는가 하면, 먼 길을 여행하는 행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천사들은 인간의 모양으로 경건한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피곤한 것처럼 정오에 상수리나무 아래서 쉬기도 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집에 영접되어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그들은 길 저문 행인들의 안내자도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직접 제단의 불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감옥의 문을 열고 주님의 종들을 놓아 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갑옷을 입고 구주의 무덤에서 돌을 굴려 내기 위하여 내려온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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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모양을 한 천사들은 때때로 의인들의 집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돔 성에 가서 그 주민들의 행위를 기록하여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한계를 넘고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고자 했던 것처럼 악인들의 집회에도 방문한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기를 즐겨하신다. 그분께서는 또한 당신을 진심으로 섬기는 소수의 사람 때문에 재난을 억제하시고 많은 사람들의 평안을 연장시켜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들은 그들 자신의 생명이 그들이 조롱하고 핍박하는 충성된 소수의 사람들의 은혜로 지속된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시련기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

비록 이 세상의 위정자들이 깨닫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회의에 천사들이 대변자로 참가하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의 눈으로 그들을 목격하고, 사람의 귀로 그들의 호소를 듣고, 사람의 입술로 그들의 제의를 반대하고, 그들의 권고를 조롱하고, 사람의 손으로 그들을 모욕하고 멸시해 왔다. 의회와 법정에 있어서 이 하늘의 사자들은 인류 역사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 주고, 그들 자신이 압박을 받는 자들을 위하여 가장 유능하고 능변적인 옹호자 이상으로 호소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지연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될 그러한 목적들을 깨뜨리고 악을 제지시켜 왔다. 위협하고 고통스런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 (시 34:7) 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렬한 소원으로 그들의 왕께서 오시는 징조를 기다린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하고 묻자,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사 21:11, 12) 고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빛은 산봉우리 위에 뜬 구름에서 비치고 있다. 그분의 영광은 미구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의의 태양은 빛을 비추려 한다. 아침과 밤이 다 같이 가까워졌다. 의인들에게는 영원한 낮이 펼쳐지고 악인들에게는 영원한 밤이 덮이려 한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씨름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그들의 사정을 호소할 때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들 사이를 가리고 있는 휘장은 거의 걷힐 것처럼 보인다. 모든 하늘은 영원한 날이 밝아오는 서광으로 빛나고, “너의 충절을 굳게 지켜라. 도움이 찾아온다”는 말이 마치 천사들의 노래의 음조처럼 귀에 들려온다. 전능하신 승리자 그리스도께서는 불멸의 영광의 면류관을 당신의 피곤한 군사들에게 내어 주시며, 반쫌 열린 문에서는 음성이 들려온다. “보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 나는 너희의 모든 슬픔을 잘 알고 너희의 비애를 담당해 왔다. 너희는 아직 싸워 보지 못한 원수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너희를 위하여 이 싸움을 싸웠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으로 넉넉히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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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 때에 도와주실 것이다. 하늘로 가는 길은 그분의 발자국으로 트여졌다. 우리의 발을 상하게 하는 모든 가시는 이미 그분의 발을 상하게 했다. 우리가 지도록 요구받은 모든 십자가는 우리보다 먼저 그분께서 지셨다. 주님께서는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자 투쟁을 허락하신다. 환난의 때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무서운 시련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모든 참된 신자에게 있어서 위를 쳐다보고 믿음으로 자기를 둘러 있는 허락의 무지개를 보아야 할 때다.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원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 양식이 핍절하지도 아니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 (사 51:11~16) 으리라.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 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 가려는 그들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사 5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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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의 승리

각 시대를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지상의 권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고자 할 때 그들이 당해야 하는 위기를 주목해 보셨다. 그들은 마치 사로잡혀 정배당한 자들처럼 주림과 학대로 죽음의 공포에 떨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홍해를 갈라놓으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강한 능력을 나타내셔서 그들을 사로잡힘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 (말 3:17) 라. 만일 이 때에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들이 피를 흘릴지라도 그 피는 하나님의 추수를 위하여 종자로 뿌려진 순교자들의 피와 같지 아니할 것이다. 이 때 그들의 충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는 증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완고한 사람들의 마음은 자비의 물결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도록 그것을 물리쳐 버렸기 때문이다. 만일 의인들이 그들의 원수에게 희생 제물이 되도록 버려진다면 그것은 암흑의 왕의 승리가 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 (시 27:5) 신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사 26:20, 21) 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재림을 꾸준하게 기다려온 사람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구원은 영광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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