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장 — 근대의 종교 개혁자
윌리엄 밀러의 출현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하는 일을 지도하도록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윌리엄 밀러 (William Miller) 는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면서도 진심으로 진리를 알고자 갈망한 착실하고 정직한 농부였다. 그는 다른 종교 개혁자들처럼 어린 시절에 가난과 싸웠으며, 그로 인하여 스스로 힘쓰고 극기하는 큰 교훈을 배웠다. 그가 출생한 가문은 자립정신과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고, 열렬한 애국심과 인내력이 강한 것 등으로 특징이 지어진 집안이었는데, 그 같은 특성들은 또한 그의 성격에도 현저히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 한 부대장 (部隊長) 으로 있었는데, 그 격렬한 전쟁 동안의 투쟁과 고난 때문에 겪은 희생이 아마도 밀러의 어린 시절의 생활환경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는 건강한 육체를 가졌고, 어린 시절에 벌써 비범한 지력을 가졌다는 증거를 나타냈다. 그가 차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그 사실은 더욱 현저해졌다. 그는 비록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누리지 못하였으나 배우기 좋아하는 그의 마음과 주의깊이 사색하는 습관과 빈틈없는 비판력 등은 그로 하여금 건전한 판단력과 풍부한 이해력을 갖춘 인물이 되게 하였다. 그는 비난할 여지없는 도덕적 품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일반적으로 청렴하고 검소하고 관대한 인물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는 또한 부지런히 노력하고 애쓴 결과로 일찍부터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럴지라도 그는 연구하는 습관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정치와 군사 면에서도 상당한 수완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명예와 재산을 얻을 길이 넓게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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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번민 시대
그의 어머니는 참으로 경건한 부인이었으므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감화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청년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무신론자들과 많이 교제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대개 선량한 시민들로서 인간미가 있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원래 그리스도인의 분위기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들의 환경에 의하여 품성이 꼴 지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용을 얻은 것은 성경으로 말미암은 바가 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재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영향을 끼치리만큼 왜곡되었다. 밀러는 그런 사람들과 접촉하므로 그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 당시의 성경 해석은 그에게 그 참뜻을 깨닫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받아들인 새로운 신조는 성경을 도외시하도록 만들었을 뿐 성경을 대신할 만한 더 좋은 것을 아무것도 제공해 주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불만족한 상태로 그냥 지내왔다. 그는 이와 같은 상태로 약 20 년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그가 34세 때에 성령께서는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마음에 강력하게 깨우쳐 주셨다. 동시에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종래의 신념은 무덤을 초월한 행복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래는 어둡고 음울한 것뿐이었다. 후일에 그는 당시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절멸 (絶滅) 이란 실로 차갑고 냉랭한 사상이었다. 그 결과는 모든 것을 분명히 멸절시키는 것이었다. 하늘은 다만 놋쇠처럼 내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고, 땅은 마치 쇳덩이처럼 견고하게 나의 발밑에 있을 뿐이었다. 영원,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죽음, 그것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따져보면 볼수록, 나는 실증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나는 생각을 그만두려고 하였으나 마음이 정돈되지 아니하였다. 나는 참으로 가련하였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원망하고 불평하였으나, 누구에게 하는 불평과 원망인지 몰랐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어디서, 어떻게 옳은 것을 찾을는지 몰랐다. 나는 탄식하였지만 소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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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에서 광명으로
그는 이같은 상태에서 몇 달을 지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갑자기 한 구주의 품성이 내 마음에 생생한 감명을 주었다. 우리의 죄를 속하고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할 인자하고 동정이 많은 구주께서 계실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즉시 그분이 얼마나 다정한 분이실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 때에 나에게는 그러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나는 성경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구주께서 계시다는 것과 내세에 대하여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성경이 내게 필요한 바로 그런 구주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타락한 세계의 요구를 이처럼 완전하게 채워 주는 원칙들을 제시하는 책이 영감 (靈感) 받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라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성경은 내게 즐거움이 되었고,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한 친구를 발견하였다. 구주께서는 나에게 있어서 “만 사람에 뛰어난” (아 5:10) 분이 되셨고, 전에는 암흑과 모순투성이였던 성경이 이제는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었다. 나의 마음은 안정되고 만족해졌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생이라는 대양에서 반석이 되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제 성경은 내게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매우 큰 기쁨으로 그것을 탐구하였노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내가 전에 들은 것은 그 절반도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찌하여 이전에 성경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알지 못하였는지 의아하게 생각되었고, 내가 어찌하여 전에 그것을 거절하였는지 이상히 여기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마음에 모든 소원을 채워 주고 마음의 모든 병을 고쳐 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모든 다른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나의 온 마음을 쏟았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p.65~67).
밀러는 지금까지 그가 경멸하게 여겨온 종교에 대한 신앙을 여러 사람 앞에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의 믿지 않는 친구들은 그가 이전에 자주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힘 있게 반대하여 온 바로 그 모든 논증들을 지체 없이 제시하였다. 그 때에 그는 그 사람들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일 것 같으면 반드시 그 자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그것이 인류의 교훈으로 주어졌다면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되,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점들이 조화를 이룰 수는 없는지 연구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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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선입견 (先入見) 을 버리고자 힘쓰는 한편, 성경의 주석들을 참고하지 않고, 관주와 성구 사전 (聖句辭典) 을 이용하여 성경의 구절과 구절을 비교함으로 연구하였다. 그는 그 연구를 극히 규칙적으로, 조직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성경 구절 한 절 한 절을 읽어가면서 그 의미가 분명히 이해되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별로 모순이나 의문이 없이 이해할 수 있고 거기 관련되는 다른 성경 구절을 비교하여 자기의 견해와 일치되는 때에는 다음 성경 구절로 넘어갔지만 만일 분명하지 못한 점을 발견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 문제에 관한 다른 모든 성경 구절을 대조 연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어렵게 보이던 것이 없어져 갔다.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만나면 다른 성경 구절에서 그 해석을 찾아 발견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깨우쳐 주심을 위하여 열렬히 기도하면서 연구할 때, 이전에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어둡게 보이던 것들이 분명해졌다. 그때에 그는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30) 고 한 시인의 말을 깨닫게 되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연구
그는 깊은 흥미를 가지고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연구하였다. 그는 그 말씀들도 다른 성경 구절들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였는데, 거기 나타난 여러 가지 예언적 상징 (象徵) 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성취된 예언들이 사실상 문자 그대로 성취된 사실과, 그 여러 가지 표상 (表象), 은유 (隱喩), 비유 (比喩), 직유 (直喩) 등은 모두 그 전후의 성경 구절들이 그것들을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과, 거기 나타난 용어들은 다른 성경 구절로 정의 (定義) 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해석할 때,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리하여 나는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된 진리의 한 큰 체계로써 누구든지, 비록 우매한 자라도 그것을 오해할 필요가 없도록 단순하고 명료하게 기록된 것에 대하여 만족하게 되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70). 그가 예언의 큰 사슬을 하나하나 풀어 가는 동안에 그의 노력에 따라 진리의 사슬이 하나씩 차례로 풀려져서 그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천사들은 그의 마음을 지도하여 성경 구절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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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여러 가지 예언들이 정확하게 성취된 방식들을 표준으로 하여 아직 장래에 속하는 모든 예언의 성취를 판단해 볼 때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에 대한 일반적 견해, 곧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있을 이 세상에서의 복천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생긴 교리가 아님을 그는 깨닫고 납득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의와 평화의 1천년이 있다고 가르치는 교리는 하나님의 날의 두려움을 멀리 배격해 버리게 된다. 이 교리는 듣는 자들에게 기쁨을 줄지는 몰라도, 그것은 알곡과 가라지를 세상 끝의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한다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교훈과는 반대된다 (마 13:30, 38~41 참조). 곧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해져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 (딤후 3:13, 1) 까지 이르고, 암흑의 왕국은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되고, 마침내 우리 주님의 입 기운으로 모두 사르어지고 그분의 오시는 영광으로 멸망당하리라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가르침과는 반대된다 (살후 2:8 참조).
온 세계가 다 회개하고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통치하신다는 교리는 초대 교회에 의하여 주장된 교리가 아니었다. 그 교리는 18세기 초엽에 이르러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다른 오류와 마찬가지로 그 결과가 매우 유해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주의 재림을 아주 먼 장래에 있을 일로 생각하게 해주고, 또한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 주는 징조들에 유의하지 않도록 방해하였다. 그것은 근거 없는 자신 (自信) 과 안전감을 가지게 해주었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주님을 만나는 데 필요되는 준비를 등한히 하게 하였다.
예언을 연구함으로 재림신앙을 가지게 됨
밀러는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성경이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 (살전 4:16, 17) 라. 또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0, 27). 그분께서는 하늘의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 것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마 25: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 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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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죽은 의인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의인들은 변화된다. 바울은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1~53) 고 말한다. 그는 또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말한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 17).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재림하시기 전에는 그분의 백성들이 그 나라를 받을 수 없다. 구주께서는 그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 25:31~34). 우리는 인자가 오실 때에 죽은 사람들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부활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위의 성경절들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그 큰 변화에 의하여 그들은 그 나라를 받을 준비가 이루어진다.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0) 고 말한다. 현 상태의 인류는 죽을 수밖에 없고, 썩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썩지 아니하고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현재의 상태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실 때,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불멸 (不滅) 을 주신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오직 그들만이 상속자들이 될 수 있는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도록 그들을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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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年代) 에 관한 예언
이상의 성경절들과 그 밖의 다른 성경절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던 사건들, 예컨대 세계적인 평화의 통치와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사건이라는 것을 밀러의 마음 가운데 확신시켰다. 그뿐 아니라 시대의 모든 징조들과 세상의 형편은 말세에 관한 예언적 기록들과 일치되었다. 그는 성경만을 연구함으로써 이 세상의 현재의 형편을 그대로 지속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나 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또 한 가지 나의 마음에 깊은 확신을 준 것은 성경의 연대기 (年代記) 였다. …나는 과거에 이미 성취된 예언적 사건들이 모두 그 예언된 시기에 성취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홍수가 내리기까지의 120년 (창 6:3), 홍수 직전의 7일간과 40일간의 강우 (창 7:4),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유리표박한 4백년간 (창 15:13),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의 3일간 (창 40:12~20), 바로의 7년간 (창 41:28~54), 광야의 40년간 (민 14:30), 3년 반 동안의 기근 (왕상 17:1), …70년 동안의 포로 기간 (렘 25:11), 느부갓네살 왕의 일곱 때 (단 4:13~16), 또한 유대인을 위하여 지정된 7주일과 62주일과 1주일, 곧 70주일 (단 9:24~27), 그와 같이 시간적으로 한정된 사건들이 한때는 모두 예언에 지나지 않았지마는 마침내 그 예언들이 성취되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p.74,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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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여러 가지 연대적 기간이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침내 그는 그 연대적 기간이 곧 하나님께서 그 종들에게 “미리 보이신 기간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세는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 (신 29:29) 다고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하여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7)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인류 역사에서 일어날 가장 큰 사건이 성경 가운데 분명히 밝혀져 있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발견할 수 있다.
밀러는 말하였다. “나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교육하기에 유익하’ (딤후 3:16) 며, 그것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 (벧후 1:21) 이며,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 (롬 15:4) 임을 깊이 믿을 때, 나는 성경에 있는 연대적 기사들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분인 이상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신중히 상고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써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을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그 예언적 기간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등한히 할 권리가 내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75).
2300년의 기간과 예수님의 재림
재림의 시기를 가장 분명히 계시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예언은 다니엘서 8장 14절이었다.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밀러는 성경 말씀 자체가 해석해 주는 법칙에 의하여, 예언상 하루는 1년을 상징 (象徵) 하는 것임을 알았다 (민 14:34; 겔 4:6 참조). 그는 또한 2300일, 곧 실제적인 2300년이 유대인의 시대를 훨씬 지나는 것이므로 그것이 그 기간의 성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밀러는 그리스도교 시대에 있어서 이 세상이 성소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받아들임으로 다니엘서 8장 14절에 예언된 성소의 정결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지구가 불로 정결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2300일의 정확한 기산점만 발견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쉽게 확정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그 큰 종말의 때, 곧 “모든 교만, 권세, 사치, 허영, 사악, 억압 등이 끝나는 때, 저주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사망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급을 받고 세상을 멸망시키는 자들의 멸망당하는 때가 확실히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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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새롭고 더욱 깊은 열성을 가지고 예언을 계속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중요한 그 연구에 몰두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다니엘서 8장에서 2300일의 기산점에 관한 아무런 단서 (端緖) 도 발견할 수 없었다.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그 이상 (異像) 을 알려 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는 다니엘에게 그 일부의 해석만을 알려주었다. 교회에 엄습할 무서운 박해가 다니엘의 계시에 나타났을 때 그는 육신의 기력을 잃어버렸다. 그가 그 이상 더 견딜 수 없게 되자 천사는 얼마 동안 그에게서 떠나갔다.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 (단 8:2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천사에게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단 8:16) 고 명령하셨다. 그 사명은 완수되어야 할 것이었다. 천사는 그 명령을 따라 얼마 후에 다시 다니엘에게 와서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단 9:22, 23) 고 말하였다. 다니엘서 8장에서 해석되지 않고 남아 있는 중요한 한 가지 점은 즉, 때에 관한 것, 곧 2300일의 기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사가 그 해설을 다시 할 때 그는 때에 관한 문제에 치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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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일에 관한 예언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 (단 9:24~27) 다.
이때에 천사는 다니엘이 8장에서 이해하지 못한 점, 곧 때에 관한 것,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설명하여 줄 목적으로 보내심을 받았다.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고 명한 후에 곧 이어서 한 첫말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한 “기한을 정하였”다는 말은 “끊어 낸다”는 말이다. 천사는 칠십 주일 (칠십 이레) 곧 490년을 특별히 유대인을 위하여 끊어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서 끊어 낼 것인가? 2300일이 다니엘 8장에서 말한 유일의 기간이므로 70주일을 그 기간에서 끊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70주일은 2300일의 일부분인 동시에, 그 두 기간은 동시에 시작하여야 한다. 그런데 천사는 70주일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릴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 영이 내린 때를 알 수만 있으면, 2300일의 기산점 (起算點) 이 확정될 것이었다.
큰 예언적 기간의 기산점
에스라서 7장에 이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완성된 형태의 조서는 기원전 457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내렸다 (스 7:12~26 참조). 그러나 에스라서 6장 14절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건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세 왕은 조서를 처음으로 만들고, 다시 확인하고, 완성시킴으로 2300년의 시작을 알려 주는 예언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게 되었다. 조서가 완성된 기원전 457년을 칙령이 내린 때로 삼을 때 70주일에 관한 예언의 세부적인 사건들이 모두 성취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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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즉, 69주일, 곧 483년이 지난다는 뜻이다. 이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효력을 발생한 때는 기원전 457년 가을이다. 그 때로부터 483년을 지나면 서기 (西紀) 27년이 된다. 그 때에 이 예언이 틀림없이 성취되었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 해 가을에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사도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 (행 10:38) 다고 증거하였다. 구주께서도 친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 (눅 4:18) 셨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신 후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4, 15) 고 하셨다.
구주께서 나타나실 것에 관한 예언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 (단 9:27) 리라. 이 1주일은 70주일의 마지막 1주일이다. 그것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배정된 최후의 7년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 곧 서기 27년에서 34년까지의 기간에 그리스도 자신이, 후에는 그분의 제자들이 특별히 유대인에게 복음의 초청을 하였다. 사도들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5, 6) 고 명령하셨다.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다. 침례를 받으신 지 3년 반이 지난 서기 31년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갈바리에서 드리신 그 위대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과거 4000년간 하나님의 어린양을 표상한 희생 제도는 끝났다. 모형 (模型) 은 실체와 만났고, 모든 희생 제도와 제물에 관한 의례 (儀禮) 와 의식은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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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위하여 배당된 70주일, 곧 490년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서기 34년에 끝났다. 그 때에 유대의 산헤드린이 취한 태도, 곧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함으로 복음을 거절한 것은 국가로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은 그 택함 받은 국민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제자들은 박해 때문에 부득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 (행8:4, 5) 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다. 또한 베드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이사랴에 사는 백부장,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고넬료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아들인 열렬한 바울은 그 기쁜 소식을 “멀리 이방인” (행 22:21) 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예언에 열거된 사건들은 놀라울 정도로 모두 성취되었다. 그리고 70주일은 의심할 여지없이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어 서기 34년에 끝났다. 이 사실을 근거로 2300일의 끝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300일에서 70주일, 곧 490일을 떼어내면 1810일이 남는다. 490일 후에 계속하여 1810일도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서기 34년에다 1810년을 가하면 1844년이 된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일은 서기 1844년에 마치게 된다. 그런데 이 긴 예언적 기간의 끝에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고 하나님의 천사는 증거하였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 성취될 것으로 믿고 있는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는 시기가 이제 확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밀러의 예언 연구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은 처음에 2300일이 1844년 봄에 끝날 것으로 믿었으나, 그 예언은 그 해 가을에 마칠 것을 가리키고 있다 (부록 27 참조). 이 점에 대한 오해는 그 해 봄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혼란과 실망을 초래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2300일이 1844년에 마치고,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고 한 그 큰 사건에 대한 주장을 약화시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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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원래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연구에 착수하였으므로 그가 지금 얻은 그 결론에 이르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연구의 결과를 자기 자신의 공로로 삼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경상 증거는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였으므로 그는 그것을 무시해 버릴 수 없었다.
그는 2년 동안 성경 연구에 전념하였고, 1818년에 그는 불과 25년 이내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라는 엄숙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기쁜 앞날을 내다볼 때 나의 마음을 충만케 한 그 즐거움과 구속받은 사람들의 기쁨에 동참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의 열렬한 소망에 대해서 나는 말할 필요가 없다. 성경은 이제 나에게 하나의 새로운 책이 되었다. 성경은 정말로 논리적으로 건전한 책이었다. 지금까지 성경의 교훈을 이해할 수 없고, 신비적이고, 분명하지 못한 것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그 거룩한 페이지에 나타난 밝은 빛 앞에 그런 것들이 모두 나의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아! 진리는 얼마나 밝고 영광스럽게 나타났던가! 종래에 모순되고 조화되지 못한 것들이 이제 다 사라졌다. 비록 이해할 수는 있었으나 만족할 만큼 이해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서 많은 빛이 나와서 나의 지금까지의 어둡던 마음을 비추어 주었으므로 마침내 나는 성경 연구에서 얻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큰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p.76, 77).
“이처럼 중대한 사건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고, 그것이 아주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엄숙한 확신을 가지게 되자 나의 마음에 큰 힘으로 일어나는 의문은 이렇게 내 마음을 움직인 분명한 증거를 본 자신이 세상에 대한 의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81). 그는 자기가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반대를 받을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노라고 고백한 그들의 구주를 만날 소망을 바라보고 기뻐할 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염려는 곧 성취될 영광스러운 구원을 지나치게 기뻐한 나머지 그 진리가 제시될 때 성경 말씀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그 교리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리가 많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실수로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그것을 발표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는 자기가 얻은 결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증거들을 새삼 고려해 보고, 자기가 어렵게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았다. 그는 마침내 햇빛에 사라지는 안개처럼 모든 장애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5년을 지내는 동안 그는 자기의 주장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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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를 시작함
성경에 그처럼 분명히 밝혀져 있는 진리를 확신하게 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하겠다는 책임감이 새로운 힘으로 그에게 밀려왔다. 그 때의 일을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내가 나의 사사로운 일을 하고자 하면 언제나 ‘가서 세상에 그 위험을 경고해 주라’는 소리가 나의 귀에 들렸다. 그리고 다음의 성경 말씀이 항상 생각났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겔 33:8, 9). 만일 내가 악한 자들을 충분히 경고할 것 같으면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게 될 것이며, 만일 그들이 경고를 받지 못하면 그들의 피는 반드시 내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92).
밀러는 기회를 얻는 대로 개인적으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함과 동시에 어떤 전도자가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경고할 의무가 있다는 자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마음에는 “가서 이것을 세상에 고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들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는 9년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무거운 짐은 여전히 그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1831년에 처음으로 공중 앞에서 자기의 믿음의 이유를 증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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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옛날 엘리사가 그의 소를 몰고 밭가는 일을 버리고 헌신의 두루마기를 받음으로 선지자의 직분을 받도록 부르심을 입었던 것처럼 윌리엄 밀러도 그의 쟁기를 버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오묘한 이치를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업에 착수하였고, 청중들을 차츰차츰 그 예언적 기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끌고 갔다. 그는 사람들의 흥미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봄에 따라 모든 일에 능력과 용기를 얻었다.
밀러가 자신의 견해를 일반 사람들에게 발표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그의 형제들의 권고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당시에 나이 50세로서 공중 앞에서 강연이나 설교를 해본 경험이 없었으므로, 그 사업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큰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큰 축복을 받아 많은 영혼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의 최초의 강연은 큰 종교적 각성을 일으켜 주었으므로 열세 가정에서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회개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로 다른 곳에서 말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고, 거의 모든 곳에서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사업을 부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신자들은 더욱 깊이 헌신하고, 회의론자 (懷疑論者) 와 불신자들까지도 그리스도교와 성경의 진리를 시인하게 되었다. 그의 활동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은 “다른 설교자들에게서 감화를 받지 못하던 사람들도 밀러에 의하여 감동을 받았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138). 고 증언하였다. 그의 설교는 일반 대중들에게 종교적 큰 사건에 대하여 각성시켰고, 그 당시의 세속적인 것과 타락의 풍조를 방지해 주었다.
재림기별 선포에 대한 반응
거의 모든 도시에서 그의 설교의 결과로 수십 명이, 어떤 도시에서는 수백 명이 회개하였다. 많은 곳에서 개신교의 거의 모든 교파가 그 문들을 열어 놓게 되었고, 일반적으로 여러 교회의 목사들은 그를 초청하여 설교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초청을 받지 아니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활동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그에게 쇄도해 오는 요구의 절반도 응할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재림의 분명한 시기를 정하는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많은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긴박성을 깨달았으며, 그 큰 사건을 위하여 준비할 필요성을 확신하였다. 어떤 큰 도시들에서는 그의 사업이 놀라운 영향을 미쳤다. 주류 판매업자들이 그들의 사업을 버리고 그 주점 (酒店) 들을 집회소로 내놓았으며, 도박장은 폐쇄되고, 무신론자, 자연신교도 (自然神敎徒), 보편 구원론자, 심지어 가장 타락한 탕아들까지 생활을 개혁하였는데,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던 자들이었다. 각 교파에서는 기도회를 열되, 각 곳에서 거의 매 시간 열었고, 사업가들도 정오에는 기도하고 찬미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광적 (狂的) 흥분에서가 아니고, 매우 엄숙한 생각으로 그 일을 하였다. 그의 활동은 단지 감정적으로 흥분을 일으키기보다는 초기의 종교 개혁자들처럼 냉정한 이지 (理智) 로 판단케 하고 양심을 각성시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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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에 밀러는 그가 속하고 있던 침례교회로부터 설교를 할 수 있는 증명서를 받았다. 그 교파의 많은 목사들도 그의 사업을 인정하였으므로 그는 정식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의 사업은 주로 뉴잉글랜드와 중부 지방에 국한되어 있었지마는 그는 끊임없이 여행하고 설교하였다. 처음 수년 동안 그는 모든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였으며, 그 후에도 그가 초청 받은 지방까지 가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한 비용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이 그의 공중 전도는 금전상의 혜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으므로 필경 그의 재산에 무거운 부담이 되었으며, 그 사업을 하는 동안에 그의 재산은 차츰 줄어져 갔다. 그는 대가족의 가장이었는데, 그의 가족들이 모두 검소하고 근면하였으므로, 그의 농토는 그와 그의 가족이 쓰기에 족한 소출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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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떨어짐 (1833년 11월 13일)
밀러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증거를 공중 앞에 알려 주기 시작한 2년 후에 구주께서 재림의 징조로 약속해 주신 맨 마지막 징조가 나타났다. 예수님께서는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리라” (마 24:29) 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은 하나님의 날을 알려주는 광경을 이상 중에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 (계 6:13) 더라. 이 예언은 1833년 11월 13일의 유성 (流星) 의 큰 소나기로 분명히 성취되었다. 그것은 지금껏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놀라운 별의 떨어짐이었다. “이 때에 온 미국의 하늘은 몇 시간 동안 찬란한 광경을 나타냈다. 이는 미국이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하늘의 현상이었으며 그것을 목격한 일부의 사람들은 매우 감탄하였고, 또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심히 두려워 경악 (驚愕) 하였다.” “그 장엄하고 찬란했던 광경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오늘날까지의 어떠한 유성우 (流星雨) 도 그 때와 같이 사면팔방으로 쉴 새 없이 쏟아졌던 적은 없다. 다시 말하면 온 하늘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은 실리먼 교수가 저널이라는 잡지에 기록한 바와 같이, 북미 전역 (全域) 에서 볼 수 있었다. …두 시부터 새벽이 되기까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찬란한 빛이 번쩍이면서 온 하늘은 기이한 광경을 이루었다” (R.M.Devens, American Progress; or, The Great Events of the Greatest Century, ch.28, pars.1~5).
“실로 그 장엄한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을 목격하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그 찬란한 모습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온 하늘의 모든 별이 머리 위의 어떤 한 점에 모여서 갑자기 지상을 향하여 번개 같은 속력으로 일제히 내려오는 것과 같았다. 그것도 다만 한 순간으로 그친 것이 아니고 마치 그 때를 위하여 창조된 것처럼 뒤를 이어 빠른 속력으로 무수히 쏟아져 내려왔다” (F.Reed, in the Christian Advocate and Journal, Dec.13, 1833). “차라리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그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함이 더욱 적절한 말이 될 것이다” (“The Old Countryman”, in Portland Evening Adver-tiser, Nov.26,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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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11월 14일자의 뉴욕 상업신보 (商業新報) 는 그 놀라운 현상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기사를 게재하였다. “나는 어떤 학자나 철학자도 어제 아침에 일어난 것과 같은 사건을 예고하거나 기록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별이 떨어진다는 말이 유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한 예언자는 이미 1800여 년 전에 그 일이 있을 것을 정확히 예언하였다. …다만 그런 의미에서만 그 예언은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 24:33) 고 말씀하신 재림의 마지막 징조는 성취되었다. 그 징조들이 있은 뒤에 요한은 하늘이 종이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땅이 흔들리고 산과 섬들이 제자리에서 옮겨지고 악인들이 두려워 떨면서 인자 앞에서 숨는 광경들을 보았다 (계 6:12~17 참조).
별들이 떨어지는 일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가오는 심판을 알려 주는 것, 곧 “크고 두려운 날의 무서운 모습, 확실한 전조 (前兆), 자비로운 징조” (“The Old Countryman”, in Portland Evening Advertiser, Nov.26, 1883) 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예언의 성취를 주목하게 되고,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경고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토만 제국의 세력이 몰락함
1840년에는 또 하나의 현저한 다른 예언이 성취되어 일반의 흥미를 일으켰다. 그 사건이 있기 2년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는 한 유력한 목사인 조시아 리치는 오토만 제국의 몰락을 예언한 요한계시록 9장의 해석을 책으로 펴냈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그 제국은 “서기 1840년 8월의 어느 때”에 몰락될 것이었다. 또한 그는 그 일이 성취되기 수일 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처음 기간 곧 150년이 투르크의 승인 하에 이루어진 데아고제스의 즉위 전에 분명히 성취되고, 391년과 15일이 처음 기간이 마치는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1840년 8월 11일이 된다. 그때에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오토만 제국의 국위 (國威) 가 몰락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 일이 분명히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Josiah Litch, in Signs of the Times, and Expositor of Prophecy, Aug 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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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규명한 바와 조금도 어김이 없이 바로 그 때에 투르크는 그 사절들을 통하여 유럽의 동맹 국가들의 보호를 받기로 승인함으로 기독교 열강들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그 사건은 예언한 그대로 정확히 성취되었다 (부록 28 참조). 이 일이 일반에게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밀러와 그 동역자들이 인용한 예언적 해석의 원리가 정확하다는 것을 믿게 된 동시에, 재림 운동에는 놀라운 박차가 가해졌다. 그리하여 학식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밀러의 주장을 믿고 그의 운동에 가담하여 그의 견해를 강연과 저술로 널리 전하였다. 그리하여 1840년에서 1844년에 이르기까지 그 운동은 신속히 확장되었다.
재림운동에 냉담했던 일반 그리스도교회
윌리엄 밀러는 사색 (思索) 과 연구로 닦은 강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하늘의 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신임 받을 만한 인물로서 누구나 그를 고결한 인격을 갖춘 덕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친절과 그리스도인 겸손을 가졌을 뿐 아니라 자제력이 풍부하였으므로, 그는 누구에게나 은근하고 원만하며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이론을 존중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감정이나 흥분에 좌우되지 않고 모든 이론과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하였다. 그의 건전한 추리력 (推理力) 과 해박한 성경 지식은 오류 (誤謬) 를 논파 (論破) 하고 거짓 것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윌리엄 밀러는 심한 반대를 당하면서 그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초기의 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제시한 진리는 일반 교직자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을 성경으로 뒷받침할 수 없었으므로, 조상들의 전통과 사람의 교훈에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재림의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들이 인정할 유일의 증거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성경, 오직 성경”이라는 말이 그들의 구호 (口號) 였다. 반대자들은 성경을 근거로 논쟁할 수 없었으므로 조소와 모멸적 태도를 취하였다. 그들은 오직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거룩한 생애를 살고자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권면하는 사람들에게 악의를 나타내는 일에 시간과 금전과 재능을 다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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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음을 재림의 문제에서 다른 데로 돌리고자 하는 노력이 열렬해졌다.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 끝에 관한 예언을 연구하는 것이 무슨 죄나 수치스러운 일이나 되는 듯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반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훼손시켰다. 그들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욕대로 방종하게 되었다. 그러자 악의 창시자들은 그 현상을 모두 재림 신도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하였다.
도처에서 총명하고 민감한 많은 청중들로 집회 장소들은 비좁았지마는 조소와 비난의 재료로 사용되는 외에는 밀러의 이름이 종교 잡지에 게재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경박하고 불경건한 무리들은 그들이 가진 종교 지도자라는 지위를 빙자하여 무례한 별명과 비열하고 모독적인 야유 (揶揄) 를 써서 밀러와 그의 사업을 여지없이 모욕하였다. 안락한 가정을 떠나 자비 (自費) 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쉴 새 없이 다니면서 수고를 무릅쓰고 심판이 절박하였다는 엄숙한 경고를 하고 있는 백발이 다 된 그 사람을 도리어 광신자, 거짓말쟁이, 대 사기한 (大詐欺漢) 이라고 비난하였다.
그에게 씌운 조소, 무고, 욕설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심지어 세상의 신문까지 분개하여 항의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엄숙하고 두려운 결과”에 대한 문제를 경솔하고 불경건한 말로 응대하는 것은 “다만 그 기별을 전하는 자와 주장하는 자의 감정을 거스르는 일이 될 뿐 아니라 심판의 날을 조소하고 하나님 자신을 조롱하며 그 심판정 (審判廷) 의 두려움을 경멸히 여기는 것이라” (Bliss, p.183) 고 말하였다.
밀러의 분투
온갖 악을 충동하는 사단은 재림기별의 효과를 말살해 버릴 뿐 아니라 그 기별을 전하는 사람 자신을 죽이고자 하였다. 밀러는 성경의 진리를 청중들의 마음에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들의 죄를 견책하고, 그들의 자만을 지탄 (指彈) 하고, 분명하고 바른말을 하였으므로 반대자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의 기별에 대하여 교인들이 나타낸 반대가 하류 계급의 사람들을 담대하게 해주었으므로 그들은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원수들은 밀러가 집회 장소에서 나올 때 그를 죽이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 군중들 속에 있었고, 그 천사들 중 하나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주님의 종의 손을 붙잡아 그 분노한 폭도들 가운데서 안전하게 이끌어냈다. 그의 사업이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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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림운동에 대한 관심은 계속하여 증가되었다. 수십 명으로부터 수백으로, 그리고 수천 명으로 회중들은 증가되었다. 여러 교회로부터 찬동자들의 수가 크게 증가되었으나 얼마 후에는 그 개심자들에 대한 반대의 정신이 나타났으며, 마침내는 밀러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자를 징계 처분하는 일이 각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밀러는 마침내 각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만일 자기가 제시하는 교리에 잘못이 있으면 그 오류를 성경을 근거로 지적해 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들 자신들이 인정하는바 표준, 곧 우리의 신앙과 관습의 유일한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이 믿으라고 명령하지 않은 어떤 것을 우리가 믿고 있는가? 강단과 출판물을 통하여 우리가 그처럼 지독한 비난을 받아야 하고, 그대들의 교회에서 우리 재림신자들이 제명 처분을 받아야 할 무슨 행동을 우리가 하였단 말인가?” “만일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어디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우리의 오류를 지적해 달라. 우리는 이미 많은 조소를 받아 왔다. 조소로써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 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의견을 고쳐 줄 수 있다. 우리의 결론은 성경으로 확증하여 신중히 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검토한 결과 이루어진 것이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p.250, 252).
기별 전도자와 그에 대한 냉소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세상에 보내신 경고는 이와 같은 조소와 불신으로 취급되었다. 홍수 전에 세상의 죄악 때문에 세상을 홍수로 멸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당신의 목적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이 멸망되지 않도록 120년간 회개의 경고가 그들의 고막을 울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경고를 허황된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죄악으로 대담하여져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를 조롱하고, 그의 애원을 멸시하고, 그를 심히 참람 (僭濫) 된 자라고 비난하였다. 어떻게 그 한 사람이 온 세계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을 감히 대항하고자 하는가? 노아의 기별이 참으로 진실하다면 어찌하여 온 세계가 그것을 인정하고 믿지 아니하였는가? 수천명의 지혜에 대항하는 한 사람의 주장이여! 그들은 그 경고에 유의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방주 안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지도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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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하는 자들은 천연계의 현상, 곧 변함없이 순환하는 계절, 일찍이 한번도 비를 내려본 일이 없는 푸른 하늘, 밤에 내린 부드러운 이슬로 청청하게 푸른 들을 가리키면서 “그는 비유를 말한 것이 아닐까”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의의 전도자를 광신자로 선고하고, 전보다 더욱 향락을 추구하며, 더욱 심한 죄악의 길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이 그 예고된 사건이 닥치지 못하도록 방지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오래 참으시고,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셨다. 그러나 그 정한 때가 되자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의 자비를 거절한 자들 위에 내렸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재림의 때에도 동일한 불신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구주께서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9) 고 하셨다.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생활하고, 그들과 어울려서 금지된 향락에 빠지고, 세상의 사치가 교회의 사치로 바뀌어지고, 결혼 예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의 세속적 번영을 꿈꾸고 있는 때에 마치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임같이 그들의 밝은 전망과 거짓된 희망들이 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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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홍수가 있을 것을 세상에 경고하기 위하여 당신의 종을 보내셨던 것처럼 그분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사자들을 통하여 최후의 심판이 가까웠음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마치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그 의의 전도자가 전하는 경고를 냉소했던 것처럼 밀러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까지도 경고의 기별을 냉소하였다.
크게 기뻐할 좋은 소식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리와 설교가 일반 교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재림이 의인에게는 희망과 기쁨이 되지마는 악인에게는 불행과 멸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진리는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충실한 백성들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마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에게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이 된 것처럼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백성에게도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이 된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친히 그 제자들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고 약속하셨다. 동정심이 많으신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고독하고 슬픈 심정을 생각하여 천사들에게 명하여 그들을 위로하게 하시고, 당신께서 승천하신 것과 같은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보증을 하게 하셨다. 제자들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 그들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주목하고 있을 때,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11) 는 음성을 들었다 그 천사의 말을 듣자 제자들의 희망은 새로워졌다.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눅 24:52, 53). 그들은 예수님께서 저희를 떠나가셨고, 저희들만으로 세상의 고난과 시험을 대항하여 싸우게 되었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천사의 보증을 들었기 때문에 기뻐하였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기별은 옛적에 천사들이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전한 소식과 같이 오늘날에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구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생의 소망의 중심이 되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되, 초림의 때와 같이 조롱과 멸시와 거절을 당하는 모습으로가 아니라 영광과 권능을 가지고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고자 오신다는 소식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선포할 때 그 소식을 환영하지 아니할 수 없다. 구주께서 오시지 않기를 원하는 자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리고 교회가 하늘로부터 온 기별에 대하여 분노와 증오심을 품는 것보다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더욱더 멀리 떠난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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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들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겸비하여야 할 것을 자각하였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은 오랫동안 세상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표명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을 느꼈다. “영원한 것이 그들에게는 전에 없이 진실한 것이 되었다. 하늘은 가까워졌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각하였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146).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영적 생명이 약동함을 체험하였다. 그들은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들의 동포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속히 이행하여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들에게는 마치 땅이 없어지고 영원한 세계가 그들의 눈앞에 전개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영원한 복락과 불행이 가름되는 구원 문제가 모든 것, 곧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해서 죄인들에게뿐만 아니라 그들의 형제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의 날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열렬히 호소할 힘을 얻었다. 그들의 일상 생애를 통하여 나타낸 무언의 증거는 형식적이요 헌신하지 아니한 신자들에게 끊임없는 견책이 되었다. 그와 같은 일이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세상의 쾌락과 돈을 모으기 위한 그들의 열성과 세속적 공명심을 흔들어 놓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재림을 믿는 신앙과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적의 (敵意) 와 반감을 더욱 격발시켰다.
예언서 연구의 필요성
예언적 기간에 관하여는 도저히 반박할 여지가 없음을 알게 된 반대자들은 예언이 인봉된 것이라고 가르침으로써 그 문제를 연구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개신교는 로마교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법왕 교회가 사람들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고 있는 한편 (부록 29 참조) 개신교는 성경의 중요한 부분, 곧 우리의 시대를 위한 특별히 중요한 부분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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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과 일반 신도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시대에 성취될 사건에 관하여 선지자 다니엘의 말을 지적하시면서 이를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 24:15)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고 하는 주장은 계시록이라는 그 책의 제호와 반대되는 주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지시하신 것이라…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1~3).
선지자는 “읽는…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그 말씀을 읽지 않는 자도 있을 것을 의미함이며 그런 사람들은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듣는 자들과”라고 말씀하였는데, 예언에 관하여 일체 듣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에 있는 경고와 교훈에 주의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들은 여기 허락된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예언의 문제들을 멸시하고, 엄숙하게 주어진 그 표상들을 냉소하고, 그들의 생애를 개혁하지 아니하고 인자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도저히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영감의 증언에 비추어볼 때, 사람이 어찌 감히 요한계시록을 한낱 신비한 것이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계시된 신비요, 공개된 글이다. 요한계시록의 연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니엘서의 여러 가지 예언으로 이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은 다 같이 세상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교훈을 나타내준다.
미래의 사건을 보여 주는 예언
요한에게는 장차 교회가 경험할 심오하고 흥미로운 여러 가지 장면들이 전개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위치, 위험, 투쟁, 최후의 구원 등을 보았다. 그는 또한 하늘 창고에 들어가기 위하여 묶이든지, 멸망의 불에 태워지기 위하여 묶이든지 간에 세상의 추수를 위한 마지막 기별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들, 특히 마지막 교회에 있어서 그릇된 길에서 진리의 길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겪을 투쟁과 위험에 관한 교훈들이 그에게 보여졌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장차 세상에 일어날 일들에 관하여 무지한 가운데 묻혀 있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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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경의 중요한 부분에 관한 무지가 그처럼 편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일을 일반적으로 그처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야말로 암흑의 왕이 자기의 거짓이 사람들에게 폭로되지 않도록 가리우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요한계시록의 연구를 반대하기 위한 투쟁과 싸움이 있을 것을 미리 보시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