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10장 – 독일에서의 개혁 운동의 발전

10 장 — 독일에서의 개혁 운동의 발전

루터의 실종과 인심의 동요

루터의 이해할 수 없는 실종은 독일 전역을 경악시켰다. 어디를 가든지 그에 대한 의문이 화제에 올랐다. 기괴한 소문들이 퍼져 나갔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살해되었다고 믿었다. 표면에 나선 친구들뿐 아니라 지금까지 개혁 운동에 공공연하게 가담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크게 슬퍼하여 탄식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하여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맹세로써 스스로를 속박시켰다.

로마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어느 정도 악화되었는지를 알고 크게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루터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처음에는 기뻐하였지마는, 이제는 사람들의 분노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루터의 원수들은 루터가 그들 가운데서 아무리 대담한 행동을 하였을 때에라도 그가 종적을 감추게 된 지금처럼 곤란을 당하지 않았다. 격분한 나머지 용감한 개혁자를 죽여 버리려고까지 꾀하던 그들도 그 개혁자가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어 있는 지금에는 큰 공포를 느끼었다.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횃불을 켜 가지고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루터를 찾아내어, 그를 찾고 있는 나라에 돌려주는 일이다” (D’Aubigne, b.9, ch.1) 고 말하기까지 되었다. 황제의 칙령도 그 위력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법왕의 사절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황제의 칙령에보다는 루터의 운명에 더욱 강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였다.

그가 포로의 몸으로 있을지라도 안전하게 있다는 소식을 듣자, 사람들의 염려는 진정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열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그의 저서는 전보다 더욱 큰 열심으로 읽혀졌다. 그처럼 두려운 공격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여 온 그 영웅 편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수는 날로 증가되어 가고 있었다. 개혁 운동은 점차로 세력을 얻어 가고 있었다. 루터가 뿌린 씨는 각 곳에서 싹이 났다. 그가 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이 그가 없는 동안에 완성되었다. 다른 동역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가 없어진 지금에 새로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들은 새로운 신앙과 열심으로 이미 시작된 고귀한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그들의 온 힘을 다하여 추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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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단도 결코 가만히 서서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이제 온갖 개혁 사업에서 시험해 본 것을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참된 개혁 사업 대신으로 거짓 것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속이고 멸망시키고자 했다. 마치 그리스도교회의 제1세기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났던 것처럼 16세기에도 허다한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났다.

종교계에 일어난 동요로 깊은 감동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루터가 미약하게 시작한 개혁 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았노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루터가 이루어 놓은 바로 그 사업을 헐어 버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과 행위의 완전한 표준이 된다는 개혁 사업의 바로 기초가 되는 위대한 원칙을 부인하고, 그러한 과오 없는 지도 원칙 대신에 그들의 변하기 쉽고 확실성이 없는 감정과 생각을 따랐다. 그리고 이처럼 오류와 기만을 드러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해 버리는 행동에 의하여 사단이 마음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의 방해 운동

이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은 자기가 천사 가브리엘의 가르침을 받았노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와 연합한 한 학생은 공부하던 것도 내버리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노라고 주장하였다. 원래부터 광신적 경향을 가진 여러 사람들은 그들과 연합하였다. 이와 같은 광신자들의 행동은 큰 물의를 일으켰다. 루터의 설교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각 곳에서 개혁의 필요를 크게 자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직한 몇 사람들이 그 새로운 선지자들의 속임에 미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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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운동의 지도자들은 비텐베르크로 가서 멜란히톤과 그의 동지들에게 자기들의 주장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백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담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도요 선지자들이다. 그러므로 루터 박사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D’Aubigne, b.9, ch.7).

개혁자들은 놀라고 당황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처음으로 당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멜란히톤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사람들에게는 실로 비상한 신들이 역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슨 신들인가?…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할까 주의하는 한편 사단의 영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D’Au-bigne, b.9, ch.7).

새 교리의 열매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사람들은 성경을 등한히 여기거나 완전히 버리도록 지도되었다. 학교들은 혼란 가운데 빠졌다. 학생들은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공부를 팽개치고, 대학들을 버리고 나오게 되었다. 개혁 사업을 부흥시키고 지도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그 사업을 파멸로 인도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이었다. 법왕당들은 이제 신임을 다시 얻게 되었으므로, 매우 기뻐서,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싸우면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 (D’Aubigne, b.9, ch.7) 고 부르짖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서 일의 전후 사정을 듣고 크게 염려하였다. “나는 사단이 이와 같은 재난을 가져올 것을 미리부터 예기하고 있었다” (D’Au-bigne, b.9, ch.7) 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의 진상을 깨닫고, 그것이 진리의 사업을 위협할 위험을 보았다. 법왕과 황제의 반대도 그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보다 더 크지 않았다. 소위 개혁 사업의 동지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서 가장 악한 원수가 일어났다. 그에게 그처럼 큰 기쁨과 위로를 가져다주었던 바로 그 진리가 교회 안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혼란을 빚어내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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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사업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성령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었지만, 사사로운 마음으로 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얻은 위치를 의도적으로 취한 것이 아니었고, 그처럼 갑작스런 변화를 거의 예상한 적도 없었다. 그는 다만 무한하신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사업의 결과 때문에 간혹 떨었다. 그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가르친 교리는 그 자체가 복음이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그 교리가 단 한 사람이라도, 비록 아무리 비천한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손해를 주었다면 나는 그것을 취소하겠다.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나는 열 번이라도 죽겠다” (D’Aubigne, b.9, ch.7).

개혁 사업의 위기와 루터의 결심

그런데 개혁 사업의 중심지인 비텐베르크는 바야흐로 광신과 불법의 세력 아래 들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두려운 사태는 루터의 교훈의 결과가 아니었지만 독일 전국에서 그의 원수들은 그 책임을 그에게 돌리고 있었다. 마음의 고통을 안고 그는 “이 위대한 개혁 사업의 결과가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D’Aubigne, b.9, ch.7) 라고 이따금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리고 그가 기도로써 다시 하나님과 씨름했을 때 평안한 마음을 얻었다. “이 사업은 나의 사업이 아니고 당신의 사업입니다. 당신은 미신과 광신으로 이 사업이 더럽혀지도록 허락하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그는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당하여 투쟁에서 물러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비텐베르크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위험한 여행을 떠났다. 그는 황제로부터 파문을 선고 받고 있었다. 원수들은 마음대로 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고, 친구들은 그를 도와주거나 보호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정부는 그의 동지들에게 특별히 엄중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복음 사업이 위기에 빠진 것을 알고, 대담하게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진리를 위한 싸움에 출전하였다.

루터는 선후 (選侯) 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르트부르크를 떠나는 이유를 밝힌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하여, 내가 비텐베르크에 나가는 것은 군주 (君主) 와 선후들보다 더욱 높으신 이의 보호를 받고 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주십시오. 나는 전하의 지지를 간청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전하의 보호를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며 오히려 전하를 보호해 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만일 전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면 나는 비텐베르크로 나가지 않겠습니다. 이 사업은 검으로 진전될 사업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의 도움과 협력 없이 홀로 그 사업을 하셔야 합니다. 가장 큰 신앙을 가진 사람은 가장 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D’Aubigne, b.9, c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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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텐베르크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기록한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전하의 비위를 거스르고 온 세상의 분노를 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텐베르크의 주민은 나의 양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들도 나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그들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겠습니까? 그 외에, 나는 독일에서 어떤 무서운 소요가 일어나서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멸하실까 두려워합니다” (D’Aubigne, b.9, ch.7).

극히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그러면서도 단호하고 확고한 태도로 그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폭력으로 세워진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너뜨리고 파괴해야 한다. 나는 미신적이거나 불신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신앙의 근본 요소는 자유이다” (-D’Aubigne, b.9, ch.8).

비텐베르크에서의 활동

루터가 돌아와서 설교를 한다는 말이 비텐베르크에 즉시 퍼졌다. 그리하여 군중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는 강단에 올라가서 매우 지혜롭고 부드럽게 교훈하고, 권면하고, 훈계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미사를 폐지하고자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미사는 부당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대하십니다. 그것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나는 온 세계에서 복음이 가르친 성만찬 예식을 미사 대신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폭력으로 폐지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그 일을 행할 것이지 우리가 행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도공 (陶工) 이 진흙을 가지고 마음대로 무엇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가 지배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말할 권리를 가졌으나 행할 권리는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만 말로 전하는 것뿐이며, 그 밖의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만일 내가 폭력을 사용하였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찡그린 얼굴, 형식, 억지로 따라 하는 일, 인위적인 제도, 위선뿐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성실한 마음도, 믿음도,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그 세 가지가 결핍되면 모든 것이 결핍됩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쓸데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와 온 세상이 연합하여 발휘하는 힘보다 더욱 큰 힘을 당신의 말씀만으로도 발휘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으시는데, 사람의 마음이 그분에게 붙잡히게 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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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교하고, 토의하고, 저술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강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의 자발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보십시오. 나는 법왕과 면죄부와 법왕당을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나 폭력이나 폭동으로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설교하고, 저술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내가 전한 그 말씀이 법왕교를 전복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선후 (選侯) 나 황제일지라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 만일 내가 폭력에 호소하고자 했다면, 온 독일은 피로써 홍수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였겠습니까? 육체와 영혼을 모두 파멸과 폐허 속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만이 온 세상에 전해지도록 하였을 뿐입니다” (D’Aubigne, b.9, ch.8).

루터는 1주일 동안 날마다 열성 있는 그 청중들을 향하여 설교를 계속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광신적인 흥분을 가라앉혔다. 복음의 위력이 미혹에 빠진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광신의 두목 토마스 뮌처

루터는 본래, 그처럼 큰 악을 빚어낸 광신도들과 대결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건전치 못한 판단력과 세련되지 못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므로 비록 그들이 하늘로부터 특별한 빛을 받았노라고 주장하지만, 지극히 작은 반박이나 더없이 친절한 경책과 권고에도 견디지 못하는 자들임을 그는 잘 알았다. 그들은 그들에게 최상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그들의 주장을 시인하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그들이 루터와 만나고자 요청하였으므로 그는 그들과 만나기로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루터가 그들의 거짓을 성공적으로 폭로시켰기 때문에 그 사기꾼들은 즉시 비텐베르크를 떠났다.

광신주의는 한동안 저지되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그것은 더욱 큰 세력으로 나타나서 무서운 결과를 빚어냈다. 그 운동의 지도자들에 관하여 루터는 말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죽은 글에 불과하므로 그들은 모두 ‘성령, 성령’이라고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영이 그들을 인도하는 곳으로 결코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나를 자칭 성도들만이 있는 그 교회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죄를 인정하고 두려워하면서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얻고자 신음하고 부르짖는 가난하고 연약하고, 병든 자들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 (D’Aubigne, b.10, ch.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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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들 중에서 가장 활동적인 토마스 뮌처 (Thomas Munzer) 는 상당히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바른 지도를 받았다면 그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참 종교의 근본 원칙들을 배우지 못하였다. “그는 세상을 개혁할 열망을 가졌으나, 일반적으로 모든 광신자들처럼, 개혁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D’Aubigne, b.9, ch.8). 그는 지위와 세력을 얻기를 열망한 나머지 심지어 루터에게까지라도 뒤떨어지기를 싫어하였다. 그는 개혁자들이 법왕권 대신에 성경의 권위를 세우는 것은 일종의 다른 형식의 법왕권을 수립하는 데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참 개혁을 일으키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임명받은 자라고 주장하였다. 뮌처는 “개혁의 정신을 가진 자는 비록 일생 동안에 성경을 결코 보지 아니할지라도 참된 신앙을 가지게 된다” (D’Aubigne, b.10, ch.10) 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광신적인 교사들은 그들 자신을 완전히 감정의 지배 아래 두고 모든 생각과 충동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정하였으므로 심히 극단적으로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태워버리면서 “의문 (儀文) 은 죽이지만 성령은 살린다”고 외치기까지 하였다. 뮌처의 가르침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의 욕망에 호소하는 힘이 있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사람의 사상과 의견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높은 위치에 놓게 함으로 그들의 자부심을 만족시켜 주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의 교리를 받아들였다. 오래지 아니하여 그는 공중 예배의 모든 질서를 비난하고, 제후 (諸侯) 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과 벨리알을 동시에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법왕권의 멍에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며 또한 국권의 속박에 견딜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뮌처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혁명적인 교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억제와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의 편견과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리하여 가장 무서운 소란과 투쟁이 뒤를 이었고, 독일의 땅들은 피로써 적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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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오류와의 대접전

루터는 광신의 결과로 개혁 운동이 비난을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오래 전에 그가 에르푸르트에서 당한 마음의 번민보다 배나 더 심하게 받게 되었다. 법왕당의 제후들은 그 반란이 루터의 교리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하였고, 많은 사람들도 그들의 진술을 믿으려고 하였다. 비록 이와 같은 비난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지마는 개혁자의 마음에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진리의 사업이 가장 비열한 광신주의와 동일하게 보일 만큼 가치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다. 다른 편으로, 그 운동의 지도자들은 루터가 그들의 교리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노라고 하는 그들의 주장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국가의 권위에 대하여 반역하는 자라고 선언한 까닭으로 그를 미워하였다. 거기에 대한 보복으로 그들은 루터를 비열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는 마치 제후들과 백성들 모두로부터 증오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마교도들은 개혁 사업이 신속히 몰락될 것을 예기하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루터가 교정시키기 위하여 가장 열렬히 노력해 왔던 오류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덮어씌웠다. 광신적인 무리들은 자기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거짓된 선전을 함으로써 많은 백성들의 동정을 사는 데 성공하였다. 잘못된 상황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순교자처럼 여겨지는 예가 흔히 있는 것처럼 그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이 부합되었다. 그리하여 개혁 사업을 반대하는 일에 진력하고 있는 무리들이 마치 잔학과 억압의 희생자처럼 동정과 칭찬을 받았다. 이것은 사단의 일이었고, 하늘에서 처음에 나타났던 것과 동일한 모반의 정신에서 생겨난 일이었다.

사단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속이고자 애쓰고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의로, 의를 죄로 부르도록 이끌고 있다. 그의 일은 얼마나 성공을 거두어 왔던가!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은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담대히 서기 때문에 얼마나 자주 비난과 질책을 받는가!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응당 존경을 받고 지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고립되고, 의심과 불신을 받는 반면에, 사단의 대리자에 불과한 사람들은 칭찬과 영광을 얻고 순교자들처럼 추앙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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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성결, 곧 위장된 성화는 오늘날도 여전히 속이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은 루터 당시와 똑같은 정신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성경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따르도록 이끌고 있다. 이것은 진리와 순결이 비난을 받도록 하고자 사단이 고안해 낸 가장 성공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루터는 각 방면에서 밀려오는 공격으로부터 용감하게 복음을 옹호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전투에서나 강력한 무기로 판명되었다. 그는 그 말씀을 가지고 법왕의 참람된 권력과 학자들의 이론적인 철학을 대항하여 싸웠고, 한편으로 종교개혁과 연합하려고 접근하는 광신주의에 대항하여 반석처럼 굳게 섰다.

그 모든 반대자들은 성경을 버리고 사람의 지혜를 종교적 진리와 지식의 근원으로 높였다. 합리주의 (合理主義) 는 이성을 우상화하고, 그것을 종교의 기준으로 삼는다. 로마교는 최상권을 가진 법왕이 사도들로부터 끊임없이 계통을 따라 각 시대를 통하여 변함없이 내려온 영감을 가지고 있노라고 주장함으로, 여러 가지 방종과 부패가 사도의 직권이라는 신성한 이름 아래 숨어 있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준다. 뮌처와 그 동료들이 받았노라고 주장한 소위 영감은 그 근원이 망상적인 공상에 불과하였고, 그 영향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모든 권위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적인 진리의 위대한 보고 (寶庫) 요 모든 영감에 대한 시금석으로 받아들인다.

독일어 성경의 완성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서 돌아오자 신약 성경의 번역을 완성하여, 독일 국민으로 하여금 자국어로 된 복음서를 가질 수 있게 하였다. 이 번역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큰 기쁨으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전설과 사람의 계명을 택한 사람들로부터 심한 배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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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은 일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그들과 토론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무지가 폭로될까 두려워서 겁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인간적인 이론의 무기는 성령의 검을 대항하기에는 무력하였다. 로마는 성경의 보급을 방해하기 위하여 온 권력을 다 동원하였다. 그러나 칙령과 파문과 고문은 다 허지로 돌아갔다. 성경을 비난하고 금지하면 할수록 성경의 참뜻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심은 더욱 증가되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읽고 또 읽었으며, 마침내 성경의 대부분을 암송하고서야 만족하였다. 신약 성경이 크게 환영을 받는 것을 본 루터는 즉시 구약 성경의 번역에도 착수하여 번역되는 대로 그것을 몇 권으로 나누어 출판하였다.

크게 환영받은 루터의 저서

루터의 저서는 도시와 시골에서 모두 큰 환영을 받았다. “루터와 그의 친구들이 저작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널리 보급하였다. 승원 제도의 불합리함을 깨달은 승려들은 이전과 같이 하는 일 없이 게으르게 지내던 생활을 바꾸어서 활동적인 생활을 하고자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해석하기에 너무나 무지하였기 때문에 각 지방의 촌락들을 찾아다니면서 루터와 그의 동료들이 저술한 서적들을 판매하는 일을 하였다. 순식간에 독일은 이와 같이 용감한 권서원들의 모습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D’Aubigne, b.9, ch.11).

이러한 저서들을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강한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다. 시골 학교의 교사들은 밤에 난롯가에 모여 앉은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성경을 읽어 주었다. 그리고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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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30) 고 한 성경 말씀이 입증되었다. 성경 연구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과 심령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법왕교의 규칙은 그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쇠멍에를 메어서 무지와 타락으로 빠뜨렸다. 그리고 미신적인 의식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의식에 있어서 마음과 정신은 거의 감동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명백한 진리를 해석하는 루터의 설교와 일반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있는 성경 그 자체는 그들의 잠자는 기능을 일깨워 주었고, 영성 (靈性) 을 정화시키고 향상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지능에도 새로운 활기와 생기를 주었다.

성경 지식의 보급과 법왕주의의 붕괴

각 계급의 사람들은 성경을 손에 들고 종교개혁의 교리를 옹호하게 되었다. 성경 연구를 신부와 승려들에게만 의탁하였던 법왕당은 이러한 새로운 가르침을 반박해 달라고 그들에게 요구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권능과 성경에 대하여 전연 무지한 신부와 탁발승들은 그들이 무지한 이단이라고 공격하던 그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패배를 당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 가톨릭의 저술가는 “불행히도 루터는 성경 이외의 어떤 계시도 믿지 말라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일러두었다” (D’Aubigne, b.9, ch.11) 고 기록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별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변호하는 진리의 말씀, 학식이 많고 능변적인 신학자들과 그들이 토론하는 말을 듣기 위하여 모여들곤 하였다. 이 위대한 사람들이 성경의 단순한 교리에 의하여 논박을 받을 때에 그들의 무지가 탄로 났다. 노동자들과 군인들과 부인들과 어린아이들이 신부들과 박식한 박사들보다 성경의 교훈을 더욱 잘 알았다.

복음의 제자들과 법왕교의 미신을 지지하는 자들과의 현격한 차이는 학자 계급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어학 연구와 문학의 소양을 등한히 하는 교권 (敎權) 의 늙은 전사 (戰士) 들을 대항하여 일어선 사람들 가운데는 고결한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기에 힘쓰고, 고전에 속한 명작들을 잘 알고 있었다. 예민한 두뇌와 고상한 심령과 용감한 투지력을 가진 그 청년들은 아무도 당해 낼 수 없을 만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이 개혁 사업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은 어느 회합에서나 로마교의 학자들을 만나게 되면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용이하게 공격하여 진리에 무식한 그들을 낭패케 하고, 뭇사람들의 경멸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D’Aubigne, b.9, ch.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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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당의 성직자들은 교인들의 수가 갑자기 줄어짐을 보았으므로 관헌의 힘에 호소하였고,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들의 교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고자 힘썼다. 그러나 새로운 교리에 그들의 심령의 결핍을 채워 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다년간 미신적인 의례 (儀禮) 나 전설 같은 무가치한 껍질만으로 그들을 먹여 주던 사람들을 버리고 떠나갔다.

진리의 교사들에 대하여 박해의 불길이 일어나자, 그들은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마 10:23) 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빛은 각 곳으로 전파되었다. 유랑자들은 어디에서나 그들을 영접해 주는 사람들을 발견하여 그들의 집에서 유하였다. 그들은 때때로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만일 교회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사가 (私家) 에서, 혹은 옥외에서 전하였다. 어디에서나 듣는 자만 있으면 그 곳이 그들에게는 거룩한 성전이었다. 이처럼 확신을 가지고 열심으로 전하였으므로 진리는 저항할 수 없는 권능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교회와 국가가 그 이단을 박멸하려고 한결같이 노력했지만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투옥, 고문, 화형, 검 등으로 처단하였지마는, 모두가 쓸데없는 일이었다. 무수한 신자들은 자기들의 피로써 그들의 신앙을 인 쳤다. 그럴지라도 그 사업은 계속해서 발전하였다. 박해는 진리를 보급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사단이 진리와 합류시키고자 노력한 광신은 사단의 사업과 하나님의 사업과를 더욱더 분명하게 구별 지어 주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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