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8장 – 의회 앞에 선 루터

8 장 — 의회 앞에 선 루터

카알 5세의 즉위와 독일의 의회

새 황제 카알 5세가 독일 황제로 등극하게 되자, 로마의 사자들은 신속히 축하의 뜻을 표하고 그 황제에게 권력으로 개혁 사업을 반대해 달라고 권하였다. 한편으로, 카알이 왕관을 얻는 일에 크게 공헌을 한 작센의 선후 (選侯) 는 루터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전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말기를 카알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므로 황제는 매우 난처하고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법왕당들은 루터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칙령으로만 만족할 것이었다. 그러나 선후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주장하였다. “황제나 그 밖의 어떤 사람도 루터의 저서들이 반박을 당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루터 박사에게 통행권을 주어 학식 있고, 경건하고, 공정한 재판관 앞에 가서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D’Aubigne, b.6, ch.11).

이제 모든 당파의 주목은 카알이 황제로 즉위한 지 얼마 후에 보름스 (Worms) 에서 열린 독일의 의회로 쏠리게 되었다. 독일의 영주들이 젊은 황제와 처음으로 심의회에서 만나게 되었으므로 이 국회에는 토의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인 문제들과 안건들이 있었다. 국내의 각 지방에서 교회와 국가의 고관들이 모여들었다. 귀족 출신으로 세력 있고 세습적 권리를 자랑하는 영주들, 계급과 권력의 우월감에 도취된 성직자들, 기품 있는 기사 (騎士) 들과 무장을 한 그 부하들, 낯선 먼 나라들로부터 파견된 대사들, 그 모든 사람들이 보름스로 모였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중에서 가장 큰 흥미를 일으킨 것은 작센의 개혁자에 관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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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은 이미 선후에게 루터를 데리고 의회에 올 것을 지시하고, 그의 보호를 보증하고, 논의할 문제에 관하여 자격을 갖춘 사람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루터는 황제 앞에 나가기를 열망하였다. 그는 당시에 건강이 매우 나빴지만, 선후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만일 내가 건강한 상태로 보름스에 갈 수 없다면, 나는 앓는 그대로 운반되어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황제께서 나를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시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내게 대하여 폭력을 쓰기를 원한다면, 또한 그렇게 할 가능성은 매우 많을지라도, 나는 그 문제를 주님의 손에 맡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의 출두를 명한 것은 내게서 교훈을 받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젊은이들을 타오르는 풀무불 속에서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통치하십니다. 그분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을지라도, 나의 생명은 별반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복음이 악한 자들의 조롱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피를 흘립시다. 겁을 내면 그들이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내가 사는 것이 좋으냐, 죽는 것이 좋으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전하 (殿下) 께서는 내가 도망하는 일과 믿음을 취소하는 일 이외에는 나에게서 어떤 것이든지 기대해도 좋습니다. 나는 도망할 수 없으며, 믿음을 취소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D’Aubigne, b.7, ch.1).

법왕의 사절 알리안더가 루터를 공격함

루터가 의회에 출두한다는 소식이 보름스에 전해지자, 일반 사람들은 흥분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을 특별히 위임받은 법왕의 사절 알리안더 (Aleander) 는 놀라고 분노하였다. 그는 그 결과가 법왕 측에 불리할 것을 알았다. 법왕이 이미 정죄의 선고를 내린 사건을 심리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법왕의 권위를 모욕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는 이 사람의 웅변과 유력한 이론이 많은 영주들을 법왕의 사업으로부터 떠나가게 할 것을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신속한 방법으로, 루터가 보름스에 나타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카알에게 호소하였다. 때마침 루터의 파문을 선고하는 조서가 공포되었고, 법왕의 사절의 제안도 있었으므로 황제는 진심으로 그 일을 수락하였다. 황제는 선후에게 루터가 신앙의 취소를 원하지 않는다면 비텐베르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편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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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안더는 이 승리로써 만족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온 힘과 간계를 다하여 루터를 정죄하고자 애를 썼다. 그는 비상한 집념 아래 제후들과 주교들과 그 밖의 다른 의원들에게 그 문제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개혁자를 “선동, 반역, 불경건, 참람” 등의 죄로 고소하였다. 그러나 법왕의 사절이 나타낸 격정과 분노는 그가 어떤 정신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내었다. “그는 열성과 경건으로보다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지배되었다” (D’Aubigne, b.7, ch.1) 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다. 의회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루터의 사업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알리안더는 다시 배가된 열성으로 황제에게 법왕의 칙령을 실행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법률상으로 이 일을 제후들의 찬동 없이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마침내 그 사절의 집요한 요구에 못 이겨서 그의 소송 사건을 의회에 제출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날은 교황 사절에게 있어서는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회중도 대단하였지마는 소송 사건은 더욱더 대단하였다. 알리안더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주인인 로마를 위하여 변호할 것이었다.” 그는 거기에 모인 그리스도교국의 원로들 앞에서 베드로의 권위를 변호할 것이었다. “알리안더는 웅변의 재간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처럼 중대한 시기를 위하여 선 사람이었다. 로마가 비난을 받기 전에 가장 유능한 웅변가가 그렇듯 엄숙한 법정에 나타나서 고소를 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Wylie, b.6, ch.4).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의원들은 알리안더의 변론의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센의 선후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자기의 고문과 몇 사람을 참석시켜 법왕의 사절의 연설을 필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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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안더는 학문과 웅변의 힘을 모두 발휘하여 진리를 전복시키고자 진력하였다. 그는 루터를 교회와 국가, 산 자와 죽은 자, 성직자와 평신자, 그리스도의 교회와 개인의 원수라고 거듭거듭 고발하였다. “루터의 오류에는 십만 명의 이단을 화형시킬 만한 재료가 넉넉히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개혁주의의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모욕하고자 노력하였다. “루터당이란 무엇인가? 오만한 교사들, 타락한 신부들, 방탕한 승려들, 무지한 변호자들, 부패한 귀족들, 잘못 지도되어 비뚤어진 일반 백성들의 집단들이다. 그러나 가톨릭 당은 수와 능력과 권력 면에서 그들보다 얼마나 우세한가! 이 유명한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무지한 자를 계몽하고, 교만한 자를 경고하고, 요동하는 자를 안정시키고, 약한 자에게 힘을 줄 것이다” (D’Aubigne, b.7, ch.3).

개혁파와 왕당파 사이의 대논쟁

어떠한 시대에서나 진리의 옹호자들은 이와 같은 무기에 의하여 공격을 받아왔다. 그와 똑같은 논조 (論調) 가 오늘날에도 이미 확립된 오류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하고 솔직한 교훈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항하여 제기되고 있다. 인기 있는 종교를 원하는 사람들은 “새 교리를 전파하는 자들이 누구인가”라고 부르짖는다. 그들은 무식하고 가난한 소수의 무리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진리를 가졌노라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무지하고 미혹한 자들이다. 우리 교회는 수효와 영향력에 있어서 얼마나 우세한가! 우리에게는 위대하고 유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편의 세력은 과연 얼마나 큰가!”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러한 논조는 세상에 유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 개혁자의 당시와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종교개혁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루터의 시대에 마쳐지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 역사의 종말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루터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비추어 주신 빛을 다른 사람에게 반사함으로 큰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장차 이 세상에 비추어 주어야 할 빛을 모두 다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새 빛은 계속적으로 성경에서 나오고 있고, 새 진리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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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 사절의 연설은 의회에 비상한 자극을 주었다. 거기에는 성경의 명료하고 감명적인 진리를 가지고 법왕의 투사를 쳐부술 루터도 없었고, 개혁자를 옹호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었다. 거기에는 루터와 그가 가르친 교리를 정죄할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이단자를 근절해야 한다는 의향까지 대두되었다. 로마교는 자기편을 변호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가졌다. 그러므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말은 다하였다. 그러나 외관상으로 승리한 듯한 그것은 패배의 신호였다. 왜냐하면 진리와 오류가 공개적으로 실전 (實戰) 을 하면, 그 두 가지는 더욱 분명하게 대조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로마교는 다시 평안하게 지낼 시기를 얻을 수 없었다.

의원들 중의 대부분은 루터를 로마의 보복의 손에 넘겨주기를 주저하지 않을 의향이었으나, 그 중의 많은 사람들은 교회 내에 있는 부당한 행위를 알고, 성직 정치의 부패와 탐욕으로 말미암아 독일 국민이 입는 해독을 제거하기를 희망하였다. 법왕의 사절은 법왕권의 제도 (制度) 를 가장 유리하게 제시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의원 중에 한 사람을 감동시키자 법왕교의 횡포의 결과로 생긴 진상을 폭로하게 하셨다. 그 때에 결단성 있는 작센의 죠지 공작 (Duke George) 은 둘러앉은 귀인들 앞에 일어서서 법왕교의 기만과 가증한 죄와 그 두려운 결과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마치었다.

“이것들은 로마가 끼친 해독의 일부분이다. 수치나 평판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유일의 목적은 돈, 돈, 돈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르쳐야 할 전도자들은 다만 거짓을 말하였고, 그것이 또한 묵인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짓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이득은 더욱 컸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더러운 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그 샘의 근원이 더러워져 있기 때문이다. 방탕은 탐욕을 향하여 손을 뻗고 있다. …슬프다. 이것이야말로 승려가 가져온 악덕이며, 그로 인하여 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영원한 멸망으로 빠져가고 있다. 마땅히 일대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D’Au-bigne, b.7, c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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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에 나오라는 명령

비록 루터 자신이 거기에 있었더라도 로마교의 악폐에 대하여 이처럼 적극적이고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연사는 개혁자의 강력한 원수였으므로 그의 말은 한층 더 큰 효과를 내었다.

만일 이 때에 회중의 눈이 열리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 중에 서서 오류의 암흑을 물리쳐 버리고 광명한 빛을 보내어 사람들의 마음을 진리를 맞아들이도록 열어 주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개혁 사업의 반대자들까지도 지배하여, 바야흐로 성취되려는 대사업의 길을 예비한 것은 진리와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마틴 루터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아니하였으나 루터보다 더욱 위대하신 하나님의 소리가 그 회의장에 들렸던 것이다.

의회는 법왕교가 독일 국민에게 과한 막중한 억압 상황을 조사할 의원들을 즉시 임명하였다. 백 한 가지의 조목으로 된 명세서가 그 악폐를 즉시 교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류와 함께 황제에게 제출되었다. 그 탄원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그리스도교국의 영적 머리가 그처럼 추문 가운데 묻혀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에 얼마나 큰 손실이며 침해입니까! 우리 민족의 파멸과 치욕을 방지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폐하께서 전반적인 개혁을 명령해 주시고, 그 이행을 보증하여 주시기를 가장 겸손하고 간절하게 탄원하는 바입니다” (D’Aubigne, b.7, ch.4).

의회는 이제 루터에게 그들 앞에 출두하라고 요구하였다. 알리안더의 탄원과 반대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황제는 거기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루터는 의회에 출두하도록 소환되었다. 그리고 루터는 소환 명령을 받는 동시에 안전한 장소로 돌아가는 일을 보증해 주는 통행권도 받았다. 이 통행권은 그를 보름스로 데리고 올 사명을 받은 전령관을 통하여 비텐베르크에 전달되었다.

루터의 친구들은 매우 놀라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들은 루터가 편견과 적의 (敵意) 를 받고 있는 것을 알므로 비록 그가 통행권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시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그에게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말라고 간원하였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법왕당이 바라는 것은 내가 보름스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죄와 나의 죽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내게 주셔서 그 오류의 사자들을 이기게 하실 것이다. 나는 나의 일생을 통하여 그들을 멸시한다. 나는 죽음으로써 그들에게 승리할 것이다. 그들은 보름스에서 내게 신앙의 취소를 강요하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다. 나의 취소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는 전에 법왕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말하였지만 이제부터 나는 법왕은 우리 주님의 대적이요, 마귀의 사도라고 주장한다” (D’Aubigne, b.7, ch.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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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혼자서 그 위험한 여행을 하지는 않게 될 것이었다. 황제의 전령관 외에 진실한 세 친구가 그와 동행하기로 결심하였다. 멜란히톤도 일행에 참가하기를 열망하였다. 그의 마음은 루터의 마음과 결합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루터와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옥에 갇히거나 죽는 것까지도 감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간청은 허락되지 아니하였다. 루터가 죽으면 개혁 사업의 희망은 그의 젊은 동역자에게 달려 있었다. 루터도 멜란히톤과 작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나의 원수들이 나를 죽이므로 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그대는 계속해서 진리를 설명하고, 진리에 굳게 서야 한다. 나를 대신하여 일해 주게. …그대가 살아 있기만 하면, 나의 죽음은 별반 대수롭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D’Aubigne, b.7, ch.7). 루터가 떠나는 것을 보기 위하여 모였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감동된 무수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와 작별 인사를 하였다. 이리하여 개혁자와 그의 일행은 비텐베르크를 떠났다.

죽음을 각오하고 의회에 나가는 루터

여행 중에 그들은 백성들의 마음이 우울한 예감으로 눌려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도시들에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경의도 표하지 않았다. 그들이 밤을 새우기 위하여 한 곳에 머물렀을 때 친절한 한 신부는 순교당한 한 이태리 개혁자의 초상을 루터에게 내보이면서 자기의 염려를 피력하였다. 그 다음날 그들은 루터의 저서가 보름스에서 정죄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제의 사자들은 그 칙령을 포고하고, 백성들에게 그 금지된 서적들을 지방 장관들에게로 가져가도록 명령하였다. 동행하는 전령관은 루터가 의회에서 안전할 것인지 염려하는 한편, 그의 결심에도 동요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하여, 계속하여 앞으로 전진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나는 도시마다 방해를 할지라도 나는 계속하여 전진하겠다”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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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푸르트 (Erfurt) 에서는 루터가 존경을 받았다. 그를 존경하는 많은 군중에게 둘러싸인 채 자신이 전에 탁발승으로서 동냥하며 지나다녔던 그 길거리를 지나갔다. 그는 자기가 있던 승원 (僧院) 을 찾아보고, 오늘날은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빛이지만 그 빛이 일찍이 자기에게 처음으로 비치던 때에 당한 고민을 추억하였다. 거기서 그는 설교하여 달라는 간청을 받았다. 그에게는 설교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행하던 전령관이 허락하였으므로 이 승원에서 천한 일에 종사했었던 한낱 탁발승이 이제 설교단으로 나아갔다.

그는 모인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을 시작하였다. “철학자들, 박사들, 저술가들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쳐 주고자 노력하였지마는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에게 그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분,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으로 하여금 죽음을 멸하게 하시고, 죄를 근절시키시고, 지옥의 문을 닫아 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사업이며…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사업입니다. 이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공로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 손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곧 사람들이여 보라, 너희의 죄를 없이하고 너희를 속량한 사람은 나, 곧 나뿐이다. 이제 너희는 평안함을 누릴지어다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는 계속하여 참된 신앙은 거룩한 생애로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행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요합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하여 공급하십시오. 여러분들은 가난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부요한 사람들에게 가납될 만한 봉사를 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수고가 여러분 자신에게만 유익을 준다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공언하지만 거짓말이 되고 맙니다” (D’Aubigne, b.7, ch.7).

보름스에 도착함

사람들은 마치 도취된 것처럼 그 설교를 들었다. 생명의 떡은 주린 영혼들에게 나누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앞에 법왕이나 법왕의 사절이나 왕들보다도 더욱 높이 들리워졌다. 루터는 자기 자신의 위급한 상태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생각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주목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다. 그는 갈바리의 사람 뒤에 숨어서 예수님을 죄인의 구속자로 나타내기 위하여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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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자가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그는 도처에서 큰 관심으로 영접을 받았다. 열심 있는 많은 무리들은 그에게 몰려와서 그에게 대한 로마교의 목적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얀 후스에게 한 것과 같이 당신을 화형시켜 당신의 몸을 재로 만들려고 합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루터는 대답하였다. “그들이 보름스로부터 비텐베르크에 이르는 길에 불을 질러 그 불꽃이 하늘에 닿는다 할지라도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 가운데를 통과하여 그들 앞에 설 것입니다. 나는 그 맹수의 입안으로 들어가서 그 이를 부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렵니다” (D’Aubigne, b.7, ch.7).

루터가 보름스로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의 친구들은 그의 안전을 위하여 염려하고, 그의 원수들은 그들의 사업의 성공에 대하여 두려워하였다. 그가 성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열성껏 애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법왕당의 사주 아래 그는 한 친절한 기사 (騎士) 의 저택으로 가자는 간청을 받고, 그 곳에서는 모든 어려움이 우호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친구들은 그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들을 말해 줌으로 그의 공포심을 자극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노력은 실패하였다. 루터는 흔들리지 않고, “보름스 시내의 악마가 비록 지붕 위의 기왓장처럼 많을지라도 나는 반드시 들어가리라” (D’Aubigne, b.7, ch.7) 고 단언하였다.

그가 보름스에 도착하자 많은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자 성문에 모여 있었다. 황제 자신을 영접하기 위해서도 그처럼 많은 무리가 모이지 않았었다. 흥분은 심하였으며, 무리들 가운데는 루터에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경고하기 위하여 장례식에 부르는 만가 (輓歌) 를 비감한 목소리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차에서 내려서면서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다”고 말하였다.

법왕당은 루터가 위험을 무릅쓰고 보름스에 나타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었다. 그가 보름스에 도착하였으므로 그들은 놀랐다. 황제는 즉시 의원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협의하였다. 법왕당의 완고한 주교 중의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미 오랫동안 의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그 사람을 즉시 처치해 버리십시오. 이미 시기스문트 황제께서도 얀 후스를 화형에 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단자의 통행권에 구애될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D’Aubigne, b.7, ch.8) 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개혁자의 말을 듣도록 한다는 결정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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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도성은 이 놀라운 사람을 보기 위하여 열광하였고, 그의 숙소는 방문객으로 차고 넘쳤다. 루터는 최근에 앓아오던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으며, 두 주일이나 계속된 여행에 지쳐 있었고, 내일의 중대 사건을 위하여 준비도 해야 되었으므로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였다. 그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 때문에 그는 두어 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하였는데, 그 때에 귀족들과 기사 (騎士) 들과 신부들과 시민들이 열광적으로 또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교회의 악폐를 개혁할 것을 황제에게 담대히 진언한 귀족들도 많이 있었다. 루터는 그들에 대하여 “내가 전한 복음으로 그들은 다 자유를 얻었다” (Martyn, p.39) 고 말하였다. 친구들은 물론이요 원수들도 이 대담하고 굴할 줄 모르는 승려를 보기 위하여 왔다. 그는 그들을 차분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맞이하였고, 모든 말에 대하여 권위와 지혜를 가지고 대답하였다. 그의 태도는 확고하고 용감하였다. 그의 창백하고 파리한 얼굴에는 수고와 질병의 흔적이 있었으나 오히려 친절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엄숙하고 열렬한 그의 말은 그에게 권능을 주었으며, 그의 원수들은 그 권능을 저항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원수들은 다 같이 매우 놀랐다. 어떤 사람들은 거룩한 힘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확신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옛날 바리새 교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말한 것처럼 사귀가 들렸다고 하였다.

의회를 제압한 그의 열변

이튿날 루터는 의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황실의 한 관리가 그를 의회로 인도하였는데, 그는 그 장소까지 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길은 로마의 권위를 용감하게 대항한 이 승려를 보기 위하여 열광하는 군중들로 차고 넘쳤다.

루터가 재판관 앞에 서려고 할 그 때에 많은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한 늙은 장군이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였다. “가련한 승려여! 가련한 승려여! 그대는 지금 나와 나 외의 어떤 장군들이 가장 격렬한 전쟁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더욱 고상한 투쟁을 직면하고 있다. 만일 그대가 하는 일이 바르고, 거기에 대하여 그대가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진하라. 그리고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 (D’Aubigne, b.7, c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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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루터는 회의장에 섰다. 황제는 보좌에 앉고, 국내의 가장 고귀한 인물들이 그 주위에 열석했다. 마틴 루터가 그의 신앙을 변호하기 위하여 의회에 출석하였던 그 때처럼 장엄한 의회는 일찍이 없었다. “그 광경 자체가 법왕교에 대한 루터의 분명한 승리를 보여 주었다. 이미 법왕은 그를 정죄하였지만 정죄당한 그 사람은 지금 재판정에 서 있다. 이 사실은 의회가 법왕권 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법왕은 그를 파문하여 모든 인간 사회에서 끊어 버렸지마는, 존경하는 말로 소환당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회의 영접을 받았다. 법왕은 그에게 영원히 침묵을 지키도록 선고하였지만, 그는 이제 멀리 떨어진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곳에서 모여든 열렬하고 무수한 청중 앞에 서서 말을 하려고 한다. 이미 놀랄 만한 개혁이 루터라는 도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때에 이미 로마는 그 보좌로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로마를 이러한 상태에 빠뜨린 것은 일개 승려의 음성이었다” (D’Aubigne, b.7, ch.8).

이처럼 유력하고 유명한 의회 앞에 서게 되자 비천한 계급의 출신인 개혁자는 두려워하고 당황하는 듯이 보였다. 몇 사람의 영주 (領主) 들은 그의 태도를 보고 가까이 와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 10:28) 고 속삭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니라” (마 10:18~20) 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은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을 통하여 시련 중에 있는 그분의 종을 격려하였다.

루터는 황제의 보좌 바로 앞에 서게 되었다. 침묵이 온 회의장을 엄습하였다. 황실의 관리가 일어서서 곁에 쌓아 놓은 루터의 저서들을 가리키면서 루터에게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라고 요구하였다. 그 모든 저서들을 자기의 것으로 시인하느냐는 질문과 그 저서들 속에서 나타낸 주장들을 취소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차례로 저서들의 이름이 불리워지자, 루터는 첫째 질문에 대하여 그 저서들이 다 자기의 것임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둘째 질문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은 믿음과 영혼의 구원에 관한 것이며 더욱이 하늘과 땅에서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보배인 하나님의 말씀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나는 깊이 생각한 뒤에 신중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진리가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고 환경에 따라 행동하므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 10:33) 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저촉될까 두려워하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저촉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도록 존경하는 전하께서 잠시 유예의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간원하나이다” (D’Aubigne, b.7, c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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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할 줄 모르는 그의 신앙

이렇게 요구함으로, 루터는 지혜롭게 처신하였다. 그의 행위는 거기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감정이나 일시적 충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였다. 그와 같은 침착성과 자제력은 대담하고 비타협적인 그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힘을 더하여 나중에는 그로 하여금 신중하고 과단성 있고, 지혜롭고, 권위 있게 대답할 수 있게 하였으며, 원수들도 놀라고 실망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오만하고 불순한 태도를 견책 받게 되었다.

이튿날 그는 최후의 답변을 하기 위하여 회의장에 나아가야 했다. 잠시 동안 그는 진리를 대항하여 연합된 세력을 생각해 볼 때, 마음속에서부터 용기가 꺾였다. 그의 신앙은 흔들렸고, 두려워 떨었으며, 그는 공포에 억눌리게 되었다. 여러 가지 위험이 그의 앞에 나타났고, 원수들이 승리하고, 암흑의 권위가 이길 것처럼 보였다. 검은 구름이 그를 둘러쌌고, 그를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듯하였다. 그 때에 그는 만유의 주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보증을 얻고자 갈망하였다. 그는 마음의 괴로움을 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부르짖음,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부르짖음을 토로하였다.

“오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여!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세상은 입을 벌리고 이 종을 삼키려고 달려듭니다. 그러나 이 종이 당신을 믿는 믿음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만일 이 종이 신뢰할 것이 이 세상의 힘뿐이라면,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 종의 최후의 시간은 다가왔습니다. 이미 종은 정죄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 오오! 하나님이시여! 세상의 온갖 지혜를 대항하고 있는 이 종을 도와주시옵소서. 오직 당신만이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이십니다. 이것은 종의 사업이 아니요 당신의 사업입니다. 종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과 다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당신의 사업이며 의롭고 영원한 사업입니다. 오오! 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진실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여! 종은 이제 어떠한 사람이라도 신뢰하지 않겠나이다. 사람에게 속한 것은 모두 정함이 없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은 모두 무너지고 맙니다. …당신께서 이 사업을 위하여 나를 택하셨나이다. …나의 곁에 서 주옵소서.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망대이신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D’Aubigne, b.7, c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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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섭리는 루터에게 자신의 위험을 깨닫게 해주셨고, 그로 하여금 자기의 힘을 의뢰하지 않게 하시므로 무모하게 위험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가 공포에 눌리게 된 것은 즉시로 다가올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고난과 고문과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위기를 당면하여서 그것을 대항하는 데 자기의 힘이 너무도 미약한 것을 느꼈던 것이다.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진리의 사업이 패배당할까 두려워한 것이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승리를 위하여 그는 하나님과 씨름하였다. 밤중에 쓸쓸한 시냇가에서 투쟁할 때 이스라엘이 느꼈던 것과 같은 고민과 갈등이 그의 마음속에 충만하였다. 이스라엘처럼 그도 하나님을 이겼다.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그는 믿음으로 전능하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었다. 그의 마음은 그가 단독으로 의회에 출두하지 않는다는 보증으로 굳세어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깃들었으며, 그는 고관들과 제후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높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을 기뻐하게 되었다.

루터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면서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는 투쟁을 위하여 준비하였다. 그는 대답할 계획을 생각하고, 자기의 저서들에 있는 구절들을 검토하고, 성경에서 그의 주장을 입증하고 지지할 만한 적당한 구절들을 뽑았다. 그 후에 그는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성경 위에 왼손을 얹고,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 “비록 증거를 위하여 나의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충성을 다하고, 나의 신앙을 거리낌 없이 고백하겠노라” (D’Aubigne, b.7, ch.8) 고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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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앞에서 신앙을 고백함

그가 두 번째 의회에 섰을 때에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공포와 난처한 기색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러면서도 극히 용감하고 의기양양하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지상의 세도 있는 고관들 앞에 섰다. 그 때에 황실의 관리는 그에게 자기의 주장을 취소하고자 결정했는지 물어 보았다. 루터는 침착하고, 겸손하고, 아무런 격렬한 감정이 섞이지 아니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의 태도는 겸손하고 존경할 만하였다. 그러나 그는 의회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기쁨을 나타냈다.

“지극히 존엄하신 폐하여! 고귀하신 왕후 (王侯) 들과 인자하신 영주 (領主) 들이여! 오늘 본인이 여기 출정 (出廷) 하게 된 것은 어제 분부하신 명령에 따라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본인은 존엄하신 폐하와 여기 열석하신 전하 제위께서 본인이 의롭고 진실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업에 대하여 변호하는 말을 특별하신 사랑으로 들어주시기를 간원하나이다. 그리고 본인의 무지로 인하여 궁정의 관례나 예법을 범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탄원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승원에 묻히어 있었을 뿐이며 궁정에 나아가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D’Aubigne, b.7, ch.8).

이와 같이 말한 다음에 그는 질문에 관하여, 자기의 저서들은 모두가 동일한 부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첫째 부류는 신앙과 선행에 대하여 기록한 것으로, 이것은 그의 원수들까지도 해로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익한 것들로 취급하였다. 이런 저서들을 취소하는 것은 만인이 인정하는 진리를 부인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둘째 부류의 것은 법왕교의 부패와 나쁜 폐단을 폭로하는 저서들로 이루어졌다. 이런 저서들을 폐기 (廢棄) 하는 것은 로마의 포악을 한층 더 조장 (助長) 하여 더욱 심한 불경건을 맞이하기 위하여 문을 넓게 여는 것이 될 것이었다. 셋째 부류의 저서에서 그는 현존한 악폐 (惡幣) 를 옹호한 개인들을 공격하였다. 그런 부류의 저서에 관하여 그는 그 내용이 과격한 점이 있으며, 잘못된 점이 전연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음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종류의 저서들도 취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하면, 진리의 원수들은 한층 더 완강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더욱 잔인하게 취급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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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다만 한 사람의 인간이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나의 말이 만일 악하면 그 악한 사실을 증거해 달라고 내 자신을 변호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나는 지존하신 황제와 인자하신 왕후 (王侯) 들과 모든 고관 제위에게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로써 본인의 잘못을 지적하여 달라고 간원하는 바입니다. 그와 같이 하여 본인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 나의 모든 오류를 즉시 취소하겠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자진해서 저의 저서들을 불 가운데 던져 버리겠습니다.

본인이 지금 명백히 진술한 것은 본인 자신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험에 대하여 조심성 있게 헤아려 보고 생각한 연후에 진술한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본인은 오늘날 복음이 옛날과 마찬가지로 물의 (物議) 와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쁘게 여기는 바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특성으로 볼 때 필연적인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고도 두려운 권고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분쟁을 멈추려고 함으로 도리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핍박하게 되고, 우리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위험과 현세의 불행과 영원한 멸망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할까 경계해야겠습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은 실례를 들 수 있습니다. 바로와 바벨론의 임금들과 이스라엘의 임금들이 그들의 나라를 외관상으로 가장 지혜롭고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권면을 따라 노력하였을 때보다 더욱 그들 자신의 멸망을 효과적으로 초래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을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산들을 옮기실지라도 산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D’Aubigne, b.7, ch.8).

담대한 루터의 태도

루터는 독일어로 말하였다. 그는 다시 라틴어로 같은 말을 반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너무 애를 썼기 때문에 기진맥진하였지만, 그 요구대로 다시 첫 번과 같이 열렬하고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 일을 지도하였다. 여러 제후들의 마음은 오류와 미신으로 어두워져 있었으므로 첫 번째 진술에서는 루터의 논증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반복하므로 그들은 루터가 역설하는 요지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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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하게도 눈을 감아 빛을 보지 아니하고 진리를 깨닫지 않고자 작정한 자들은 루터의 힘 있는 말에 대하여 분격하였다. 그의 진술이 끝나자 의회의 대변인은 화를 내어 말하였다. “너는 주어진 질문에 대하여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분명하고 정확한 답변을 해야 한다. 너는 취소하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취소하지 않겠느냐?”

개혁자는 대답하였다. “지존하신 폐하와 고귀하신 왕후 (王侯) 제위께서 본인에게 간단하고, 명료하고, 확실한 답변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제 본인은 대답하겠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신앙을 법왕이나 의회에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둘은 누차 잘못을 범하였으며 피차간에 모순되었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증언과 가장 분명한 논리로써 본인을 설복시킬 수 없는 한, 또한 본인이 인용한 성경 구절에 대하여 본인을 설복시킬 수 없는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인의 양심을 승복 (承服) 시킬 수 없는 한 본인은 취소할 수도 없고 취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양심을 거슬러 말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는 그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D’Aubigne, b.7, ch.8).

이와 같이 그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었다. 하늘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의 위대하고 결백한 인격, 그의 마음의 화평과 기쁨은 그가 오류의 세력을 대항하여 증언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탁월성을 입증하였을 때 모든 사람에게 보였다.

잠시 동안 온 회중은 경탄한 나머지 조용해졌다. 첫 번째 대답에서 루터는 공손하고, 거의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여 아주 낮은 음성으로 말하였다. 로마교도들은 그것을 그의 용기가 꺾이고 있는 증거라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루터가 유예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의 신앙을 취소할 전조라고 보았다. 카알 자신도 그 승려의 지친 모습, 그의 허술한 의복, 그의 꾸밈없는 진술들을 보고, 반쯤 멸시하는 태도로 “이 승려가 나를 이단자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힘 있고 분명한 이론은 물론이요 그가 나타낸 용기와 견인불발의 태도는 장내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황제도 감격하여 “이 승려는 참으로 대단한 담력과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말한다”고 하였다. 독일의 제후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대표하여 주는 그의 태도에 대하여 일종의 자랑과 기쁨을 느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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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측의 위협

로마교도들은 패배하여 형세가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성경에 의하지 않고 로마의 상투 수단인 위협으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의회의 대변인은 “만일 네가 취소하지 않는다면 황제와 모든 연방은 이처럼 완고한 이단자를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 의논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루터의 훌륭한 변호를 큰 기쁨으로 듣고 있던 루터의 친구들은 그 선언을 듣고 두려워 떨게 되었다. 그러나 루터는 아주 침착하게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나는 결코 취소할 수 없다” (D’Aubigne, b.7, ch.8) 고 말하였다.

그는 의원들이 협의하는 동안, 퇴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떤 큰 위기가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되었다. 루터가 최후까지 굴복하지 않고 굳게 선 것은 여러 시대를 통하여 교회의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취소할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결정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의회에 출두하게 되었다. 그의 주장을 부인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질문이 주어졌다. 그는 “본인은 이미 대답하였으므로 그 이상 다른 대답을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아무리 권유하고 위협할지라도 로마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법왕측의 지도자들은 국왕과 귀족들까지도 두려워 떨게 했던 그들의 권력이 일개 비천한 승려에게 이처럼 무시당한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들은 고문으로 그의 생명을 빼앗음으로 그에게 대한 그들의 분노를 알려주고자 갈망하였다. 루터는 이러한 위험을 깨닫고 위엄 있고 침착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로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의 말에는 교만과 격렬한 감정과 허위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주위에 높은 인물들이 있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다만 그가 법왕이나 주교나 왕이나 황제보다도 더욱 초월하신 분 앞에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터의 증거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엄숙하고 힘 있게 말씀하셨으므로 친구들과 원수들이 다 같이 경탄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의회에 나타나서 나라의 중신 (重臣) 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다. 여러 명의 영주들이 루터의 주장을 공정하다고 기탄없이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래지 아니하여 그 확신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기가 받은 감명을 당장에 표시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성경을 연구한 후에, 장차 개혁 운동의 유력한 후원자들이 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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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서 대립된 두 파

선후 프리드리히는 루터가 회의장에 나타나는 것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그의 진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기쁨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루터의 용기와 침착성과 확고부동한 태도를 바라보고, 그를 옹호할 결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는 논쟁할 때 두 편을 대조하여 보고, 법왕과 왕들과 주교들의 지혜도 진리의 능력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때에 법왕교는 그 후 각 시대를 통하여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칠 만큼 분명한 패배를 당하였다.

법왕의 사절은 루터의 진술로 말미암아 나타난 영향을 깨닫고, 전에 없이 두려워하였고, 로마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그 개혁자를 멸망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자기의 독특한 웅변과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한 미천한 승려 때문에 세력 있는 법왕청의 우의와 지지를 희생하는 일은 우매하고도 위험한 일이라고 젊은 황제에게 역설하였다.

그의 말은 효과를 거두었다. 루터의 답변이 있은 다음날, 카알은 선조 (先祖) 들의 정책에 따라 가톨릭을 지지하고 옹호할 결심을 알리는 자신의 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루터가 자기의 오류에 대한 취소를 거절하였으므로, 그와 그가 가르친 이단설에 대하여 가장 강력한 조치가 취하여질 것이었다.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릇 인도된 일개 승려가 그리스도교국의 신앙을 대항하여 일어섰다. 그런 불경건한 행위를 억제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영토와 나의 재정과 나의 친구와 나의 육체와 나의 피와 나의 영혼과 나의 생명을 희생할 것이다. 나는 먼저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의 루터를 추방하여 나라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지 않도록 포고한 후, 그와 그의 지지자들을 완고한 이단으로 규정하여 파문함으로 그들의 사업을 중단시킬 뿐 아니라 온갖 방법을 다하여 그들을 없애버리고자 한다. 나는 모든 의원들이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해 줄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D’Aubigne, b.7, ch.9). 그렇지마는 황제는 루터의 통행권은 반드시 존중히 여겨져야 할 것이며, 그에 대한 처분이 시행되기 전에 그가 안전하게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되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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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의원들 가운데서는 전연 반대되는 두 가지 주장이 대두되었다. 사절과 법왕측의 대표자들은 루터의 통행권이 무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마치 백 년 전의 “얀 후스처럼 그의 몸을 태운 재를 라인강에 뿌려야 한다” (D’Aubigne, b.7, ch.9) 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런데 독일의 제후 (諸侯) 들은 비록 법왕당이요 루터를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지마는, 이와 같은 조치가 나라의 명예를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라 하여 그처럼 공중의 신의를 무시하는 일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후스가 죽은 후에 계속하여 일어난 재난들을 지적하고, 이와 같은 두려운 재난이 독일 나라와 그들의 연소한 황제에게 반복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카알 자신도 그 졸렬 (拙劣) 한 제의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비록 온 세계에서 신의와 명예가 그 그림자조차 없어졌다 할지라도, 이 두 가지는 왕후 (王侯) 와 영주들의 심중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할 것이다” (D’Aubigne, b.7, ch.9). 루터의 강경한 원수들인 법왕 측에서는 시기스문트가 후스에게 행한 것처럼 루터를 처치하도록 교회의 처사에 일임해주기를 황제에게 여전히 강청하였다. 그러나 카알 5세는 후스가 공중 앞에서 자기를 결박한 사슬을 가리키면서 황제에게 신임할 수 없는 그의 처사를 생각나게 했던 광경을 상상하고, “나는 시기스문트처럼 얼굴이 붉어지기를 원치 않는다” (Lenfant, vol.1, p.422) 고 언명하였다.

그러나 카알은 루터가 제시해 준 진리를 고의적으로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는 “나는 선조들의 모본을 따르기로 굳게 결심하노라” (D’Aubigne, b.7, ch.9) 고 기록하였다. 그는 종래에 행하여 오던 관습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진리와 정의의 길을 따르는 데 있어서까지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그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비록 법왕교가 잔인하고 부패하였더라도 그것을 응원할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선조들이 받아들인 것보다 한 걸음 더 앞서서 빛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들이 행하지 않은 어떤 의무를 행하지도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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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부인한 카알 5세

오늘날도 그와 같이 선조들의 관습과 전통을 굳게 지키는 자들이 많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더욱 광명한 빛을 비춰주실 때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그렇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선조들의 처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그들의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우리 스스로 탐구해 보지 않고 오로지 그 선조들의 모본에 의하여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수가 없다. 우리들의 의무와 책임은 선조들의 것보다 한층 더 중하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빛에 대하여도 책임이 있지만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더욱 밝은 빛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요 15:22) 고 말씀하셨다. 그 같은 거룩한 능력은 루터를 통하여 독일의 황제와 제후들에게도 전하여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비추게 되자 성령께서는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탄원하셨다. 마치 빌라도가 천여 년 전에 자기의 자존심을 유지하고 인망을 얻기 위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구주의 말씀을 저버린 것처럼, 벨릭스가 두려워 떨면서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행 24:25) 고 진리의 사자에게 말한 것처럼, 교만한 아그립바가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8) 고 고백하면서 하늘이 보낸 기별을 배척한 것처럼, 카알 5세도 세속적 자존심과 정책상 필요에 따라 진리의 빛을 거부하기로 작정하였다.

루터에 대한 사람들의 후원

루터를 해치기 위한 계획이 세워져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자 온 시중에는 큰 흥분이 일어났다. 개혁자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로마교가 그의 부패한 형편을 폭로시키는 일에 용감한 모든 사람들에게 행한 잔인무도한 일들을 알고 있으므로 그를 희생시킬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작정하였다. 수백 명의 귀족들이 그를 보호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로마의 권력에 굴복할 의사를 표시한 황제의 포고를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사가 (私家) 의 대문들과 공적인 장소들에는 루터를 정죄하거나 그를 옹호하는 광고들이 붙게 되었다. 그중에는 솔로몬의 의미심장한 말,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 (전 10:16) 는 문구가 쓰여 있기도 하였다. 독일 전국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루터에 대한 호감은, 만일 그에게 어떤 불공평한 처사가 이루어진다면 독일 제국의 평화는 물론이요, 그 보좌의 안전까지도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황제와 의회는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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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의 프리드리히 선후는 냉정한 태도로 개혁자에게 대한 자기의 진정한 감정을 조심성 있게 감추고 있었으나, 그는 동시에 끈기 있는 경계로 그를 지키고 그의 모든 행동과 그의 원수들의 모든 일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루터에 대한 그의 동정심을 감추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루터는 제후들과, 백작 (伯爵), 남작 (男爵) 들과, 성직자와 평신자들 중의 많은 존귀한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스팔라틴 (Spalatin) 은 “박사의 작은 방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Martyn, vol.1, p.404) 고 기록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마치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것처럼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자기의 양심을 거스르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달게 받고자 하는 그 고결한 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로 하여금 로마와 타협하는 일에 동의하게 하려는 매우 열렬한 운동이 일어났다. 귀족들과 선후들은 그가 이 이상 더 자기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고 교리와 의회를 대항한다면 결국은 이 나라에서 추방될 것이며,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호소에 대하여 루터는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격을 받지 않고 전파될 수 없다. …그럴진대 어떻게 그와 같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에 내가 어찌 주님께로부터, 또한 유일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날 수 있겠는가? 아니다. 나는 차라리 내 육체, 내 피, 내 생명을 버릴 것이다” (D’Aubigne, b.7, ch.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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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황제의 의견에 복종하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렇게 하면 그는 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황제와 제후들과, 아니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들이 나의 저서들을 시험하고 검토해 보는 데 대하여 나는 충심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순종하는 일이다. 성경 말씀으로 매여지고 얽혀져 있는 나의 양심을 깨뜨리고자 하지 말라” (D’Aubigne, b.7, ch.10).

또 다른 권고를 받고 그는 말하였다. “나는 나의 통행권을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 나는 나의 몸과 나의 생명을 황제의 손에 맡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맡길 수 없다. 결단코 맡길 수 없다” (D’Aubigne, b.7, ch.10). 그는 의회의 결정에 쾌히 순종하기로 뜻을 나타냈으나 의회가 성경에 의거하여 결정한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그는 계속하여 “비록 법왕이 백만의 의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에 관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법왕이 가진 것과 동일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Martyn, vol.1, p.410) 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친구와 원수들은 이 이상 화해를 위하여 노력할지라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양심의 승리

만일 개혁자가 단 한 가지 점에서라도 타협하였더라면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하는 방편이 되었고 새롭고 더욱 좋은 하나의 기원 (紀元) 을 이루어 놓았다. 신앙 문제에 관하여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바를 꺼림이 없이 그대로 실천한 이 한 사람의 감화는 그 시대의 교회와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후일의 모든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확고하고 충성된 태도는 마지막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와 동일한 경험을 갖게 될 모든 사람에게 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은 사람의 의견이나 사단의 위력을 훨씬 초월한다.

얼마 후 루터는 황제의 권위에 의하여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러한 통고가 있은 후 즉시 정죄의 선고가 내릴 것을 미리 알았다. 그의 앞길에 캄캄한 구름이 덮여 있었으나, 그는 보름스를 출발할 때 찬미와 기쁨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는 “악마 자신이 법왕의 성채 (城砦) 를 보호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한 돌파구 (突破口) 를 만들어 주셨으므로, 사단은 주께서 자기보다 더욱 위력이 있음을 마침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D’Aubigne, b.7, ch.11) 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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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보름스를 떠난 후에, 자기의 확고한 태도가 반역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 종은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생사와 영욕 (榮辱) 을 물론하고 온갖 일에 가장 열심으로 폐하를 순종하는 사람인 것은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증거하실 것입니다. 현세의 모든 일에 있어서는 종의 충성에 아무런 동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얻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구원에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굴종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적 문제에 있어서 굴종하는 것은 사실상 예배 행위이므로, 그것은 온전히 창조주에게만 돌려야 할 것입니다” (D’Aubigne, b.7, ch.11).

보름스에서 돌아갈 때 루터에게 나타낸 일반 사람들의 존경은 그가 올 때보다 훨씬 더 지대하였다. 고귀한 성직자들이 파문당한 그 승려를 환영하고, 높은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황제의 견책을 받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는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의 간청에 못 이겨 설교단에 올라갔다. 그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어 두겠다고 맹세한 적이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Martyn, vol.1, p.420) 라고 말하였다.

그가 보름스를 떠나간 지 얼마 있지 아니하여 법왕교도들은 황제를 설득시켜 루터를 반대하는 포고를 내리도록 하였다. 그 포고는 루터를 가리켜, “사단이 승려의 복장을 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D’Aubigne, b.7, ch.11) 고까지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의 통행권의 기한이 만료되는 즉시로 그의 사업을 종식시킬 조처를 취하도록 명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도 그를 보호하거나, 음식물을 주거나, 공사 (公私) 를 불문하고 말로나 행동으로 그를 응원하거나 도와주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그를 발견하는 대로 체포하여 관헌의 손에 넘겨주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옥에 가두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은 없애 버리도록 되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이 포고를 위반하는 자는 모두 위에 기록한 바와 동일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고시 (告示) 되었다. 작센의 선후와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여러 제후들은 그가 출발한 후에 곧 보름스를 떠났으므로, 황제의 이 고시는 의회의 찬동을 얻었다. 법왕교도들은 개가를 불렀다. 그들은 개혁 사업의 운명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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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사업과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위급한 시기에 당신의 종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셨다. 루터의 운동에 대하여 일각도 방심하지 않고, 그를 구원하려고 결심한 진실하고 고결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로마는 루터를 죽이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그를 사자의 밥이 되지 않게 하려면 숨길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작센의 프리드리히 후에게 개혁자를 보호할 계획을 세우도록 지혜를 주셨다. 성실한 친구들의 협력 아래, 선후 (選侯) 의 계획은 실행되었다. 그리하여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루터는 원수들과 친구들로부터 숨겨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체포되어, 동행자들과 분리되었고, 급히 산림을 통과하여 인가에서 떨어져 있는 산성 바르트부르크 (Wartburg) 로 끌려갔다. 그의 체포와 은닉 (隱匿) 은 너무도 비밀리에 실행되었으므로, 프리드리히 후까지도 오랫동안 그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선후 (選侯) 자신까지도 알지 못하도록 된 것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선후가 루터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한 그 일을 누설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선후는 개혁자가 반드시 안전히 숨겨 있을 줄만 알고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가고 드디어 겨울이 왔다. 그러나 루터는 여전히 사로잡힌 몸으로 남아 있었다. 알리안더와 그 일당은 복음의 빛이 벌써 거의 소멸되었다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대로 개혁자는 진리의 창고에서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등불은 더욱더 밝히 비추어질 것이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의 조용하고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동안 싸움의 소요와 열화 (熱火) 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조용하고 평안한 처지에서 오랫동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활동적 생애와 격렬한 투쟁 (鬪爭) 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활동하지 않고 지내기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처럼 고독한 세월을 지내는 동안에 교회의 형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는 “아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끝 날에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 앞에 성벽이 되어 줄 것인가!” (D’Aubigne, b.9, ch.2) 라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투쟁의 장소에서 몸을 피하여 있는 자신을 반성해 보고, 비겁한 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하는 일 없이 게으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를 책망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한 사람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일을 날마다 하고 있었다. 그의 붓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동안 그의 원수들은 루터를 침묵케 하였다고 기뻐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고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소책자가 그로 말미암아 저술되어 독일 전국에 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일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함으로 자기 나라의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봉사를 하였다. 그는 거의 1년 동안 바위투성이인 그의 “밧모섬”에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그 시대의 오류와 죄악을 견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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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공생애의 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신 것은 루터로 하여금 원수들의 분노를 피하게 하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에게 그처럼 중대한 사업을 맡기시기 위하여 조용한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한 것만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거두어야 할 더욱 귀중한 결과가 있었다. 한적하고 격리된 산장 (山莊) 에 있으므로 루터는 세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칭찬에서 끊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성공에 흔히 따르는 자부심과 교만으로부터 구제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고난과 겸비를 통하여, 그가 갑자기 높임을 받으므로 현기증이 날 만큼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진리가 전해짐으로 자유를 경험하게 될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오류와 미신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사용하신 그 인물들을 찬탄하는 경향을 가지기 쉽다. 사단은 사람들의 사상과 애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켜, 사람을 바라보게 함으로 도구에 불과한 사람들을 높이 우러러보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온갖 사건의 배후에서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무시해 버리도록 한다. 이런 경우에 흔히 칭찬과 존경을 받는 그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지도를 받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탐구하지 않고, 지도자들을 바라보게 되며,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양심을 지배하고자 애쓰게 된다. 개혁 사업의 지지자들이 이와 같은 정신에 사로잡히게 되면, 개혁 사업은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험에서 개혁 사업을 보호하고자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은 그 사업이 사람의 사업이 아니고 당신의 사업임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 하신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루터를 진리의 해석자로 주목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의 눈을 진리의 영원한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하여 그를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도록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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