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88일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예수께서는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외치는 제사장들의 말을 다 들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그분께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예언의 해설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구주를 모욕하는 말을 하는 가운데서 영감이 이때에 그들이 발하리라고 예언했던 바로 그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어두워 저희가 예언을 성취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할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라고 조롱하던 자들은 그들의 증언이 그 후 각 시대를 통하여 전해 내려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조롱으로 한 말이지만 그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에 없이 열성적으로 성경말씀을 연구하게 하였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듣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기도했다.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해할 때까지 성경절들을 비교하며 연구하기를 조금도 쉬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처럼 예수님이 잘 알려진 때는 전에 결코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면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리의 빛이 비치고 있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께 한 줄기 위안의 빛이 비추었다. 그것은 회개하는 강도의 기도였다.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는 처음에는 다 예수님을 모욕하였고 그 중 한 사람은 고통으로 인하여 더욱더 자포자기하고 반항적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는 그렇지 않았다. 이 사람은 무정한 죄수가 아니었다. 그는 비록 악한 동무들을 사귐으로 인하여 못된 길에서 방황했으나 십자가 옆에 서서 구주를 욕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죄가 가벼웠다. 그는 전에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죄를 깨달았으나 제사장들과 관원들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돌아서고 말았다. 그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하여 점점 더 깊은 죄에 빠져들어 가 마침내 체포되어 죄수로서 심문을 받게 되었고 드디어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도록 선고되었다. 재판정에서와 갈바리로 오는 길에서 그는 예수님과 동행하였다. 그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요 19:4)하였노라고 선언하는 빌라도의 말을 들었다. 그는 예수님의 거룩한 태도와 당신을 괴롭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용서를 베푸시는 모습을 주목하였다. 그는 많은 위대한 종교가들이 주 예수께 조소와 멸시의 말을 던지는 것을 십자가 위에서 바라본다. 그는 사람들이 조롱의 표시로 머리를 흔드는 것을 본다. 그는 행악자인 그의 동료가 그분을 비방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는 행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옹호하는 말을 듣는다. 그는 그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반복하면서 그분이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이분이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그에게 되살아난다. 그는 동료 죄수를 돌아보며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말한다. 죽어 가는 강도들에게는 이제 사람을 두려워할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에게는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이 계시고 그를 떨게 할 미래가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제 죄로 더렵혀진 그대로 그의 생애의 역사는 끝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그는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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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의문은 없어지고 의심도 비난도 없어진다. 자기 죄로 인하여 정죄를 받을 때에 이 강도는 아무런 소망도 없이 절망에 빠졌으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부드러운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는 예수께서 어떻게 병자를 고쳤고 또 어떻게 죄를 용서하셨는지에 대하여 들었던 것들을 모두 마음 속에 회상해 본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 울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구주의 머리 위에 붙은 명패(名牌)를 읽어보았다. 행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슬퍼하며 떨리는 입술로 읽고 다른 이들은 농담과 조롱으로 그 말을 읽고 되풀이하는 소리를 들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비추셔서 차츰차츰 확신의 고리가 연결된다. 상처를 입고 조롱당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발견한다. 희망 없이 죽어가던 영혼이 죽어 가시는 구주께 자신을 맡길 때에 그의 목소리에는 고민과 희망이 뒤섞인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옵소서”라고 그는 부르짖는다.

응답은 즉시 이르러 왔다. 예수께서는 사랑과 동정과 능력이 충만한 부드럽고 선율적인 음성으로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고민의 긴 시간 동안 예수님의 귀에는 욕설과 조롱의 말만 들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는 조롱과 저주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예수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의 제자들에게서 저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어떤 말을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셨다. 그분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는 비통한 말밖에는 듣지 못했다. 죽어 가는 강도에게서 믿음과 사랑의 말을 들으셨을 때에 구주께서는 얼마나 고맙게 여기셨을까!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부인하고 그분의 제자들까지도 그분의 신성을 의심하였으나 영원의 벼랑 가장자리에 선 불쌍한 강도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셨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서슴지 않고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실 때에는 제십일 시에 구원받은 회개한 강도 외에는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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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서 있던 자들은 그 강도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말을 들었다. 회개한 사람의 음성은 그들의 주목을 끌었다.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의 옷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며 그분의 속옷을 제비 뽑던 자들도 그 일을 멈추고 그의 말을 들었다. 그들의 성난 음성은 조용해졌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쳐다보며 죽어 가는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께서 약속의 말씀을 하실 때에 십자가를 덮고 있던 어두운 구름 속으로 밝고 활기찬 광선이 뚫고 들어왔다. 회개한 강도에게는 하나님께 가납된 완전한 평화가 이르러왔다. 굴욕을 당하시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셨다. 다른 모든 사람의 눈에 정복을 당하신 자처럼 보이던 그분은 정복자이셨다. 그분은 죄를 짊어지시는 분으로 인정되셨다. 사람들은 인성을 쓰신 그분의 육체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들은 가시관을 엮어 그분의 거룩한 관자놀이를 찌를 수 있다. 그들은 그분의 옷을 벗기고 그것을 나누기 위하여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용서하는 그분의 권세를 빼앗을 수 없다. 숨을 거두면서 그분은 자신의 신성과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신다. 그분의 귀는 들으실 수 없을 만큼 둔하지 않으며 그분의 팔은 구원하실 수 없을 만큼 짧지도 않으시다. 당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이 그분의 큰 권세이다.

내가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리스도께서는 그 강도가 그날 그분과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분 자신도 그 날 낙원에 가지 않으셨다. 그분은 무덤에서 쉬셨으며 부활의 아침에 그분은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요 20:17)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곧 표면상으로 볼 때 패배와 흑암의 날인 그 날에 주께서는 그 같은 약속을 주셨다.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오늘”이라고 하시던 그 날에 예수께서는 불쌍한 죄인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은 “좌우편에…예수께서는 가운데” 못 박히셨다. 그것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지시에 의하여 이렇게 했던 것이다. 두 강도 사이에 있던 그리스도의 위치는 그분이 셋 중에서 가장 큰 죄수라는 것을 표시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 53:12)는 성경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예수님이 강도들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들 가운데 세워짐으로 그분의 십자가는 죄악 중에 놓인 이 세상의 한 복판에 세워졌다. 그리고 참회한 강도에게 하신 용서의 말씀은 지구의 가장 먼 변경에까지 비치게 될 횃불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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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다 가장 격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만을 생각하고 참회하는 영혼을 믿도록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천사들은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분은 굴욕을 받으면서도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말씀하셨고, 제사장과 대언자로서 그분은 당신을 살해하는 자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아버지께 간청하셨다. 그분은 또 사랑하는 구주로서 참회하는 도둑을 용서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주위에 있는 군중들을 둘러보다가 그 중 한 사람에게 눈을 고정시키셨다. 십자가 밑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제자 요한의 부축을 받고 서 있었다. 그녀는 자기 아들과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끝이 가까웠음을 알고 요한은 그녀를 다시 십자가로 데리고 왔다. 숨을 거두려는 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기억하셨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얼굴과 요한을 바라보면서 예수께서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러고 나서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달았으며 그 위탁을 받아들였다. 그는 즉시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그 때부터 그녀를 친절히 봉양하였다.

오! 인정 많고 사랑 많으신 구주께서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민 중에서도 어머니를 몹시 염려하셨다. 그분은 어머니를 안락하게 모실 만한 돈이 없었다. 요한이 마음속에 그분을 모시고 있었으므로 그분은 자기 어머니를 귀중한 유산으로서 요한에게 맡기셨다.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곧 그녀가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부드러운 동정을 그녀를 위하여 준비하셨다. 따라서 하늘의 위탁으로 그녀를 받아들인 요한은 큰 축복을 받았다. 그녀는 그가 사랑하던 주님을 항상 생각나게 하였다.

효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본은 어두운 세대를 밝은 빛으로 비춘다. 거의 삼십 년 동안 예수께서는 매일의 일과를 수행하심으로 가사의 짐을 나누어 지셨다. 이제 그분은 마지막 고통 중에서도 슬퍼하는 홀어머니를 위하여 필요한 준비를 잊지 않으신다. 그와 같은 정신이 우리의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서도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저들의 부모를 존경하고 그들을 부양하는 것이 신앙의 일부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한 자들은 반드시 저들의 부모에게 사려 깊은 돌봄과 부드러운 동정을 주게 될 것이다.

이제 영광의 주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서 운명하고 계셨다. 그분의 귀중한 생명을 거두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들뜨지 않으셨다. 모든 것은 숨이 막힐 듯이 침울했다. 그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분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자아내게 한 것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자 중에 제 일인자이셨으나 그분의 고통은 죄의 유해성을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 인간이 죄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죄의 흉악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오려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아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인간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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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속자요 보증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우리 모두의 죄가 놓여졌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곧 그분의 무서운 불쾌하심이 당신의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타락한 세상에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했다. 죄인들의 괴수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지신 죄의 엄청난 무게로 인하여 그분은 화해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최대의 고민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구주로부터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이러한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사단은 맹렬한 유혹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쥐어짜듯이 괴롭혔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그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이신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

천사들은 놀람으로 구주의 절망적인 고민을 목격하였다. 하늘 군대들은 그 무서운 광경에서 그들의 얼굴을 가렸다. 무생물계도 모욕을 당하고 숨을 거두시는 창조주에게 동정을 표했다. 태양은 이 무서운 광경을 보기를 거절했다.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던 한낮의 태양이 그 때에 갑자기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장례식 휘장 같은 칠흑 같은 어둠이 십자가를 뒤덮었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 시까지 계속”하였다. 일식이나 다른 자연 현상이 없었는데도 달이 없고 별도 없는 한밤중의 짙은 어둠과 같았다. 그것은 후세 사람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적인 증거였다.

그 짙은 어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가려졌다. 그분은 어둠으로 장막을 만드시고 그분의 영광을 인간의 눈으로부터 감추셨다.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은 십자가 곁에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함께 계셨으나 그분의 임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번쩍였다면 모든 관중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서운 시간에 아버지의 임재하심에서 오는 위로를 받지 못하셨다. 그분은 홀로 포도즙틀을 밟으셨으며 백성 가운데 그분과 함께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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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짙은 어둠으로 당신의 아들이 당하는 최후의 인간적인 고민을 가리셨다.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를 본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신성을 확신했다. 한 번 인간에게 보였던 그 얼굴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 가인의 얼굴이 살인자로서 그의 죄를 나타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얼굴은 무죄와 침착과 자비심, 곧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분의 고소자들은 하늘의 인(印)에 주의하지 않았다. 조롱하던 군중들이 고뇌의 긴 시간 내내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으나 이제 그분은 자비스럽게도 하나님의 외투로 가려지셨다.

죽음의 정적이 갈바리 언덕에 내린 듯하였다. 십자가 주위에 모였던 무리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저주와 욕설은 도중에 멈춰졌다.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땅에 엎드렸다. 때때로 밝은 번개가 구름 속에서 번쩍여 십자가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를 환히 비추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서기관들과 사형 집행자들과 폭도들은 모두 다 저들이 보복을 받을 때가 이른 줄로 생각하였다. 잠시 후에 어떤 사람들은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것이라고 속삭였다. 어떤 이들은 가슴을 치고 무서워 울부짖으면서 더듬더듬 도성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제구시에는 어둠이 백성들에게서는 걷혔으나 아직도 구주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고민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어떤 사람의 눈도 십자가를 둘러있는 그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없었으며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의 영혼을 싸고 있는 짙은 어둠을 뚫어 볼 수 없었다. 성난 번갯불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그분을 맹렬히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다. 구주의 주위에 짙은 어둠이 머물러 있을 때에 많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천벌이 그에게 내리고 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이 그를 공격하고 있다. 그분을 믿는 많은 사람이 그분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을 들었다. 희망은 그들을 떠나갔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다면 그분을 믿는 자들은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억눌렸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부터 어둠이 걷혔을 때에 그분은 다시 육체적 고통을 느끼고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다. 한 로마 군인이 타는 입술을 바라보고 동정심이 일어나 우슬초(牛膝草) 막대기에 해융(海絨)을 매어 그것을 신 포도주 그릇에 찍어 예수께 드렸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분의 고통을 보고 조롱하였다. 어둠이 땅을 덮었을 때에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으나 그 공포심이 사라지자 그들에게는 아직도 예수께서 도망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살아났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그들은 오해하였다. 심한 멸시와 조소로 그들은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말했다. 그분을 고통에서 놓이게 할 마지막 기회를 그들은 거절하였다.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고 그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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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분의 살은 채찍에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기 위하여 펴시던 그분의 손은 기둥에 못 박히셨다.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그분의 발도 나무 기둥에 못 박혔고, 그분의 고귀한 머리는 가시관에 찔렸다. 그분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그분이 참으신 모든 것 곧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그분의 몸을 괴롭힌 고통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인류의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그대를 위하여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낙원의 문을 여신다.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거품이 이는 파도 위를 걸으셨으며 귀신들로 떨게 하시고 질병이 물러가게 하셨으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그분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십자가 위에 바치셨다. 이렇게 하신 것은 다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거룩한 공의의 진노를 견디시고 그대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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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은 말없이 그 무서운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양이 비치고 있었으나 십자가는 여전히 어둠에 싸여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니 빽빽한 구름이 도성과 유대 평야를 덮고 있었다. 의의 태양이시요 세상의 빛이신 그분은, 한때 은총을 받았던 예루살렘 도성으로부터 그분의 광선을 거두고 계셨다.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한 번갯불이 운명지어진 도성에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둠이 십자가에서 걷혔다. 그 때 예수께서는 삼라만상을 울리는 듯한 나팔 소리 같은 맑은 음조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부르짖으셨다. 한줄기 빛이 십자가를 둘렀으며, 구주의 얼굴은 해와 같은 영광으로 빛났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머리를 가슴 위로 떨구고 운명하셨다.

표면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그리스도께서는 무서운 흑암 중에서 인간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을 남김없이 마셨다. 이 무서운 시간 동안 그분은 이제까지 당신에게 주셨던 아버지의 가납하심의 증거에 의지하였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성을 잘 알고 계셨으며 그분의 공의와 자비와 크신 사랑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분은 항상 기쁨으로 즐겨 순종하였던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하셨다. 그분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아버지의 은총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자가 되셨다.

이 세상은 전에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결코 없었다. 군중들은 넋을 잃고 서서 숨을 죽인 채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은 다시 땅을 덮었고 맹렬한 천둥소리와 같은 둔탁한 울림이 들려왔다.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흔들렸다. 극도의 혼란과 경악이 계속되었다. 근처 산에서는 바위들이 산산이 갈라져서 평야로 굴러 떨어졌다. 무덤들이 갈라져 열리고 시체들이 무덤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삼라만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군사들과 사형 집행자들과 백성들은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땅에 엎드려 있었다.

“다 이루었다”는 큰 부르짖음이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왔을 때에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 때는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었다.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양을 잡기 위하여 끌고 왔다. 의미 깊고 아름다운 예복을 입은 제사장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던 때와 같이 칼을 높이 들고 서 있었다. 큰 흥미를 가지고 백성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 친히 가까이 오시자 땅은 떨며 흔들렸다. 성전 안의 휘장이 소리를 내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한때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했던 곳이 군중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열려 제쳐졌다. 그 곳에 세키나가 거했었다. 하나님께서 그 곳 시은소(施恩所) 위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이 부분과 성전의 다른 부분을 갈라놓는 이 휘장을 쳐들 수 없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씩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 곳에 들어갔다. 그러나 보라! 이 휘장이 두 조각으로 찢어진 것이다. 지상 성소의 일부인 지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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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공포와 혼란뿐이었다. 제사장은 희생 제물을 죽이려 했으나 칼은 그의 무기력한 손에서 떨어지고 양은 도망쳐 버렸다. 모형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원형과 마주쳤다. 큰 희생이 이루어졌다. 지성소로 가는 길은 열렸다. 새롭고 산 길이 만민을 위하여 준비되었다. 더 이상 죄 많고 슬픔에 찬 인간들은 대제사장이 나오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구주께서 모든 하늘의 하늘에서 제사장과 대언자로서 직무를 행하실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배하는 자들에게 힘 있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죄를 위한 모든 희생과 제사는 끝났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7)는 당신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 그분은 이제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히 9:12) 들어가신다.

시대의 소망 pp. 749-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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