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장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더불어 한적한 곳에 물러가 계셨으나 평화롭고 조용한, 이 좀처럼 얻기 어려운 시간은 곧 깨지고 말았다. 제자들은 저희가 방해를 받지 않을 곳에 물러나 있다고 생각했으나 군중들은 하늘의 교사가 눈에 띄지 않자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 중의 몇 사람이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떠난 방향을 알려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만나기 위하여 육로로 가는 한편 다른 사람들은 배를 타고 물을 횡단하여 뒤좇았다. 유월절이 가까웠으므로 원근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의 무리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수는 점점 증가하여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가 오천 명이나 모이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해변에 도착하시기 전에 한 무리가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도착하여 제자들과 따로 잠간 동안 시간을 보내셨다.
산기슭에서 그분께서는 움직이는 무리를 보셨다. 그 때 그분의 마음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방해를 받아 휴식을 빼앗겼지만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오는 것을 주목하였을 때에 그분께서는 당신의 돌보심이 더욱 크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 한적한 곳을 떠날 때 그분께서는 저들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편리한 장소를 발견하셨다. 그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군중들에게 구원의 도를 가르치실 때에는 치유하는 생명수가 그분에게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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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입술에서 매우 유창하게 흘러나오는 자비로운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분명하여 저희 심령에 마치 길르앗의 유향과 같았다. 그분의 거룩한 손의 치유는 죽어가는 자에게 기쁨과 생명을, 질병으로 신음하는 자들에게는 평안과 건강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날은 지상 천국과 같이 생각되었으므로 그들은 먹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드디어 날이 저물었다.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성거렸다. 예수께서는 잡수거나 쉬지도 못하고 종일 수고하셨다. 그분은 피곤과 시장기 때문에 창백하셨고 제자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시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께 몰려오는 군중에게서 물러나실 수 없었다.
마침내 제자들은 그분께 나아가 자신들을 위해서도 무리들을 돌려보내기를 촉구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멀리서 와서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주위의 고을이나 동네에서 그들은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후에 빌립을 돌아다보며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질문하셨다. 그분께서는 이 제자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빌립은 인산인해를 이룬 무리를 바라보면서 이와 같이 많은 무리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식물을 준비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각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려 하여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도 넉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무리 중에 식물이 얼마나 있는지 물으셨다.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 식물을 당신께 가져오라고 분부하셨다. 그런 다음에 질서를 유지하고 또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모든 사람이 목도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오십 명씩 혹은 백 명씩 앉히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이 일이 끝난 후에 예수께서는 그 식물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평화와 행복을 얻는 길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그분께서는 그들의 영적 필요를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현세의 필요에 대해서도 깊은 동정을 표하셨다. 사람들은 피곤하고 힘이 없었다. 그 중에는 팔에 갓난아이를 안은 어머니와 그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동안 서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너무 큰 흥미를 가졌으므로 앉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으며 군중이 너무 많았으므로 피차에 짓밟힐 위험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쉴 기회를 주기 원하셨으므로 그들에게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 곳에는 풀이 많았으므로 모두가 평안히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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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필요를 공급하시는 것 외에는 결코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으며, 매 이적은,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는 생명나무로 사람들을 이끄는 그러한 성격의 이적이었다. 제자들의 손을 거쳐 간 이 단순한 식물에는 아주 귀중한 교훈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련하신 음식은 보잘것없는 식물이었다. 고기와 보리떡은 갈릴리 바다 주변에 사는 어민들이 일상 먹는 양식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앞에 진수성찬을 차리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단지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차린 식물은 그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원래의 양식이 악용되었다는 것을 이 공과로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왜곡된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차려진 진수성찬을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식습관과는 현저히 다르게 준비하신 쉼과 단순한 식물을 이 사람들이 즐겨 먹은 것만큼 즐겨 먹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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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오늘날 사람들이 단순한 습관을 가지고 시조 아담과 하와처럼 자연법칙에 일치하게 살았더라면 인간 가족의 필요를 위하여 풍성한 양식이 생겼을 것이다. 상상적인 결핍은 더욱 적을 것이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할 기회는 더욱 많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과 자연법칙에 반(反)하는 미각의 방종으로 말미암아 한편은 과잉이 되고 다른 한편은 결핍을 초래함으로 죄와 불행이 세상에 들어왔다.
예수께서는 쾌락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킴으로써 백성들을 당신께 이끌고자 하지 않으셨다. 길고 감동적인 그날에 피곤하고 배고픈 많은 군중에게 베푸신 단순한 식사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보증일 뿐만 아니라 생활의 일반적인 필요를 가진 그들을 친절히 돌보아 주실 것에 대한 보증이 되었다.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의 사치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식사는 수수하고 심지어 빈약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생애는 빈곤에 둘러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저희의 필요가 공급될 것을 보증하고 있으며 그분께서는 세상의 재물보다 훨씬 좋은 것, 곧 당신의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어질 영속적인 평안을 약속하셨다.
오천 명을 먹이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천연계에서 휘장을 들어 올리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끊임없이 작용하는 능력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산물을 생산하는 데도 날마다 이적을 행하고 계신다. 무리들을 먹이실 때에 행하여진 것과 똑같은 일이 자연의 세력을 통하여 성취된다. 사람은 토지를 경작하여 씨를 뿌리나 그 씨로 싹이 트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다. 그 씨로 하여금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막 4:28)을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와 공기와 햇빛이다. 날마다 무수한 사람들로 땅의 추수 밭에 의지하여 먹고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사람들은 곡식을 돌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하라는 요구를 받았는데도 이 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늘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 그분의 능력의 역사가 자연의 활동이나 인간의 수단으로 돌려지고 만다. 하나님 대신에 사람이 영광을 받고, 그분의 은혜로운 선물은 이기적인 사용을 위하여 악용되어 복 대신 저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변경시키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우둔한 감각이 민감하게 되어 당신의 자비로운 은혜를 식별하고 당신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인하여 당신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선물을 통하여 당신을 깨달음으로 그 선물이 당신께서 의도하는 대로 우리에게 복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이적이 행해진 것은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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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들이 먹은 후에도 많은 식물이 남았다. 그러나 수하에 무한한 능력의 온갖 자원들을 소유하신 분께서는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는 떡을 바구니 속에 넣으라는 것 이상의 깊은 뜻이 있다. 그 교훈은 이중(二重)적이었다. 아무것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세의 이익을 하나라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유익할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라. 세상의 배고픈 자들의 필요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거두어들이도록 하라. 영적 사물에도 그와 같은 조심성이 필요하다. 부스러기가 든 바구니를 모았을 때 사람들은 집에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신 떡을 친구들과 같이 먹기를 원하였다. 바구니에 든 떡 부스러기는 열렬한 군중들에게 분배되어 주위의 모든 지방에 퍼져갔다. 이와 같이 잔치에 참여한 자들은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을 남에게 주어서 심령의 굶주림을 채워 주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이한 일에 대해 배운 것을 되풀이해야 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들의 영원한 구원에 관련된 말씀은 한 마디도 쓸데없이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될 것이었다.
떡의 이적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 공과를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는 수중에 양식이라고는 없었다. 명백히 그분께서는 사용할 돈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여자와 어린이들 외에 오천 명의 남자와 함께 광야에 계셨다. 그분께서 그 많은 무리들에게 당신을 따라 오라고 초청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초청이나 명령 없이 자청해서 온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매우 오랫동안 당신의 교훈에 귀를 기울인 후이므로 배고픔과 기진함을 느낀 것을 아셨는데, 이는 그분께서도 양식을 필요로 하는, 그들과 함께 한 인간이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에서 멀리 떠나 있었고 밤은 가까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식을 살 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을 위하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하셨던 분께서는 그들을 굶긴 채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실 것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예수님을 그 처지에 두셨고 그분께서는 그 곤핍을 구제할 방법을 하늘 아버지께 의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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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께 의뢰해야 한다. 우리는 무분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자초하지 않도록 생애의 모든 행동에 지혜와 판단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수단을 무시하고 그분이 주신 재능을 오용하면서 어려움 속으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분의 교훈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업이니, 우리가 남을 축복하고자 한다면 그분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 자아를 중심으로 삼을 수는 없다. 자아는 하등의 명예를 받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계획한다면 주께서는 우리가 실수하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분부를 좇은 후에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낙담하여 물러설 것이 아니라 위기를 당할 때마다 무한한 자원을 자유로 쓰실 수 있는 분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자주 곤경에 둘러싸일 것이다. 이때에 우리는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당하는 시련 때문에 곤란에 빠진 각 영혼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분부하셨다.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사 58:7~10)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필요는 지대한대 우리 수중에는 너무나 적은 재정밖에 없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자주 우리 마음은 무거워지고 믿음은 약해지는가.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작은 물고기를 쳐다보던 안드레처럼 우리는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하고 부르짖는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기 싫어하고 남을 위하여 쓰이기를 꺼리고 망설이는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그분의 명령은 일종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해변에서 무리를 먹이신 것과 똑같은 능력이 있다.
배고픈 군중의 현실적 필요를 공급하신 그리스도의 행동에는 당신의 모든 교역자들을 위한 깊은 영적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아 제자들에게, 제자들은 무리들에게, 무리들은 상호간에 나누어 주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모든 자들은 그에게서 하늘의 양식인 생명의 떡을 받아 그것을 남에게 전하여 줄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가운데 작은 떡 조각을 취하셨다. 그 떡은 그분의 한 식구인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기에도 작은 것이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먹으라고 청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면서 그들에게 분배하기 시작하셨다. 양식은 그분의 손에서 증가하였고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께 내민 제자들의 손들은 결코 비지 않았다. 이 작은 상점은 모든 사람을 먹이기에 충분하였다. 사람들의 요구가 공급된 후에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어 들였으며,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다 함께 하늘이 공급한 그 귀중한 양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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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백성들 사이에 있는 교통의 통로였다. 이 사실은 오늘날 그분의 제자들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중심이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다. 제자들은 그분에게서 그들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 아무리 지혜가 많고 아무리 경건한 마음을 가진 자라도 받을 때에만 줄 수 있다. 그들 홀로는 영혼의 필요를 조금도 공급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만을 공급할 수 있다. 우리는 남에게 나누어 줄 때만 받을 수 있다. 계속 남에게 나눠줄 때 우리는 계속해서 받는다. 더 많이 나눠줄수록 우리는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믿고 의지하고 받고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척이 느리고 또 그 진보를 증명하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이므로 그분께서 재정을 공급하고, 조력자들 곧 참되고 열심 있는 제자들을 보내실 것이다. 그들의 손 역시 굶주린 군중을 먹일 양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활동하는 자들, 다른 배고픈 영혼들을 먹일 양식을 얻기 위하여 차례대로 저희 손을 내미는 자들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중에도 사람의 재간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너무 지나치게 의뢰할 위험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크신 일꾼을 잊어버린다. 그리스도의 일꾼이 자신의 개인적인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그분을 의뢰하는 대신에 자기의 책임을 기관에 미룰 위험에 빠진다. 하나님의 사업을 할 때에 인간의 지혜나 수(數)를 믿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사업의 성공은 수나 재간이라기보다는 목적의 순수성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참된 단순성과 내맡기는 믿음에 달려 있다. 개인적인 책임을 이행해야 하며, 개인적인 의무를 감당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대보다 더 풍성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사람에게 그대의 책임을 미루는 대신에 그대의 능력대로 일하라.
그대의 마음속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와 닿을 때 그대의 대답이 불신의 반응이 되지 않게 하라. 제자들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구주의 분부를 들었을 때에 온갖 난관들이 그들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들은 “우리가 양식을 사러 마을에 나갈 것인가?” 하고 질문했다.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생명의 떡에 굶주리고 있을 때 주님의 자녀들은 “우리가 멀리 있는 어떤 사람을 초청하여 와서 이들을 먹이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고 하신 후 거기에서 그들을 먹이셨다. 그와 같이 그대가 곤궁한 영혼들에게 둘려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가 거기 계신 줄을 알라. 그분과 더불어 교통하라. 그대의 보리떡을 예수께 가져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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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재정이 사업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음으로 전진하면 풍성한 원천이 우리 앞에 공개될 것이다. 그 사업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면 그 일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분께서 친히 재정을 준비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정직하고 단순하게 의뢰하는 자에게 보답해 주실 것이다. 하늘에 계신 주님의 사업에 현명하고 경제적으로 사용된 적은 물질은 나눠 주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하여 증가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중에 있던 소량의 양식은 굶주린 군중이 배부르기까지 감소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우리가 받기 위하여 믿음의 손을 내밀고 모든 능력의 근원되시는 분께 나아갈 때에 우리는 가장 절망적인 환경 아래서도 사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남에게 생명의 떡을 주게 될 것이다.
주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눅 6:38; 고후 9:6~11).
시대의 소망 pp. 364-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