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셨다. 그분께서 아름다운 세겜 골짜기에 이르신 것은 정오 때였다. 이 골짜기 어구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여행에 지친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양식을 사러 간 동안 쉬기 위하여 이곳에 앉으셨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앙숙이어서 가능한 한 피차 모든 거래를 피하였다. 필요한 경우에 사마리아인들과 상업 거래를 하는 것은 랍비들에 의해서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그들과의 모든 사교는 정죄를 받았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에게 빌리려고 하지 않았고 친절한 행위뿐만 아니라 떡 한 조각이나 물 한 잔이라도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양식을 샀지만 그것은 그들 나라의 관습에 일치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범위에서 더 나가지 않았다. 사마리아인에게 호의를 구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게 유익을 주려고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우물가에 앉아 계셨을 때에 그분은 허기와 갈증으로 피곤하셨다. 아침부터 먼 여행을 하셨고 이제는 정오의 태양이 그분에게 내리쬐었다. 그분의 갈증은 차고 신선한 물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마실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더 심하였다. 그분에게는 두레박이 없었고 우물은 깊었다. 그분은 인성의 운명을 쓰셨으므로 누군가가 물 길으러 오기를 기다리셨다.
한 사마리아 여인이 다가와서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한 듯 그의 물 항아리를 가득 채웠다. 그가 돌아서서 가려고 할 때에 예수께서 물 한 모금을 청하셨다. 동방 사람들은 이러한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동방에서는 물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불렀다. 목이 마른 나그네에게 물 한 모금 대접하는 것을 매우 신성한 의무로 생각하였으므로 사막의 아랍 사람들은 이 일을 이행하기 위하여 일부러 길가에 나가곤 하였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증오심은 그 여자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친절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이 여자의 마음 문을 여는 열쇠를 찾고 계셨으며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재치로써 호의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요구하셨다. 친절을 베푸는 일이 거절당할 수도 있을 것이나 신뢰는 신뢰를 일깨운다. 하늘의 왕이 이 버림받은 영혼에게 와서 그녀의 손으로 하는 봉사를 요구하셨다. 대양을 만드시고 깊은 바다를 통제하시며 땅의 물샘과 수로를 여신 그분이 야곱의 우물에서 당신의 피곤을 푸시고, 물 한 모금의 선물까지도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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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예수님이 유대인인 것을 알았다. 그 여자는 놀라서 그분의 요구에 응할 것은 잊어버리고 물을 달라는 이유를 알려고 하였다. 그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고 말하였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우리 발 아래 있는 우물에서 물 한 모금 같은 매우 작은 호의를 네게 요구하는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는구나. 네가 만일 나에게 요구하였다면 나는 너에게 영생의 물을 주어 마시게 하였을 것이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 말에 엄숙한 뜻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여자의 경박하고도 농담적인 태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예수께서 저희 앞에 있는 그 우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줄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가…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그 여자는 단지 여행에 지치고 먼지 묻은 목마른 한 여행자가 자기 앞에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마음속으로 존경받던 부조 야곱과 예수님을 비교하여 보았다. 그 여자는 다른 어떤 우물도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을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여자는 조상들의 소망이었던 메시야께서 친히 자기 곁에 계셨지만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과거의 조상들을 회고하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목마른 영혼들이 생명수 곁에 있으면서도 그 생명의 우물을 찾기 위해 멀리 바라보고 있는가!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롬 10:6~9)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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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자신에 관한 그 질문에 즉시로 대답하지 않았으나 엄숙한 열성을 가지고 말씀하셨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세상의 우물에서 그 갈증을 풀려고 하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을 마실 뿐이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영혼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는 무엇을 갈망한다. 오직 한 분만이 그 필요를 채우실 수 있다. 세상의 필요 곧 만국의 소망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만이 나누어 주실 수 있는 하늘의 은혜는 생수와 같아서 영혼을 순결하게 하고 소생시키며 활력을 준다.
예수께서는 단지 한 모금의 생수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지 아니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자는 계속적으로 그것을 더욱 갈망할 것이다. 그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않는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그를 매혹시키지 못한다. 그가 마음속에 늘 외치는 소리는 “당신을 나에게 더 주시옵소서”라는 말이다. 그리고 영혼에게 그 필요를 알려 주는 분께서 그 주림과 갈증을 채워 주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 모든 인간적인 지혜와 의뢰는 실패할 것이다. 물통의 물이 비고 연못은 마르게 될지라도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다함이 없는 샘물이 되신다. 우리가 아무리 마시고 또 마실지라도 늘 새롭게 공급된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거하시는 자는 그 속에 축복의 샘, 곧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가진 것이다. 그 사람은 이 근원에서 자신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생수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에 그 여자는 궁금증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의 흥미를 일으키고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 선물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셨다. 그 여자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야곱의 우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그 여자가 말하였다.
이제 예수께서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셨다. 예수께서 주기를 열망하신 선물을 이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기 전에 그 여자는 자신의 죄와 자신의 구주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시니 그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말함으로 그 여자는 그 방면에 대한 모든 질문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구주께서 계속하여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고 말씀하셨다.
듣고 있던 여자는 떨었다. 신비한 손이 그 여자가 살아온 역사의 페이지들을 넘기면서 그 여자가 영원히 숨겨 두기를 바라던 사실을 눈앞에 전개시키고 있었다. 그 여자의 생애의 비밀을 뚫어 보실 수 있는 그분은 누구였던가? 그 여자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것과 지금은 숨겨져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날 미래의 심판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 빛 속에서 양심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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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도무지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다지 반갑잖은 이 문제에 대한 모든 설명을 피하려고 했다. 그녀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면서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에 그녀는 죄에 대한 깨달음을 침묵시키기를 바라면서 종교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점들로 화제를 돌렸다. 만일 선지자라면 이 사람은 오래도록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이 문제에 대하여 속 시원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자기의 원하는 대로 화제를 이끌고 가는 것을 참을성 있게 허용하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속에 다시 진리를 전해 줄 기회를 살피셨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그 여자는 말했다. 그리심산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그 성전은 파괴되어 그 제단만 남아 있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예배의 장소에 대한 문제로 논쟁을 계속해 왔었다. 사마리아인들의 조상 중 얼마는 한때 이스라엘에 속하여 있었으나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게 정복당하도록 버려두셨다. 그들은 여러 세대 동안 우상 숭배자들과 혼합되었으며 우상 숭배자들의 종교는 점차 이스라엘의 종교를 부정하게 물들여 놓았다. 그들이 우상들은 그들에게 우주의 통치자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상기시켜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믿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들의 새긴 우상을 공경하도록 지도를 받았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에스라의 시대에 재건되었을 때에 사마리아인들은 그 건축에 유대인들과 합류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이 특권을 거절당했으며 그 후로 두 국민들 사이에 극렬한 증오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이에 필적하는 성전을 세웠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그들은 모세의 의식에 일치하게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재난들이 그들을 따르고 그들의 성전은 원수들에게 파괴되어 그들은 저주 아래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유전과 예배의 형식을 고수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유대인의 종교가 그들의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시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대인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지금 유대인들에 대한 이 사마리아인의 편견을 깨뜨리고자 하셨다.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이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부패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예수께서는 구원의 위대한 진리가 유대인들에게 맡겨졌으며 유대인들 가운데서 메시야가 나오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정부의 원칙들이 명백히 제시되어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한 지식을 주신 백성들, 곧 유대인으로 분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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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을 듣는 사마리아 여인의 생각이 형식과 의식 문제나 쟁론의 문제들을 초월하게 되기를 바라셨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말씀하셨을 때에 드러내셨던 것과 같은 진리가 여기에 선언되어 있다. 거룩한 산이나 성전을 찾음으로 사람들이 하늘과 교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외형적인 형식과 의식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종교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종교이다. 우리는 그분을 올바로 섬기기 위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새로운 능력을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즐거이 순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곧 참된 경배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열매이다. 모든 신실한 기도는 성령에 의해 작성되며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가납받을 수 있다. 어디서나 영혼이 하나님을 구하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그 영혼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경배자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여 당신의 아들과 딸로 삼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
그 여자는 예수님과 이야기할 때에 그분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그 여자는 자기 백성들의 제사장들이나 유대인에게서 이러한 취지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결코 없었다. 자기 생활의 과거가 자기 앞에 펼쳐졌을 때에 그 여자는 자신의 큰 부족을 깨닫게 되었다. 그 여자는 수가의 샘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을 깨달았다. 자기가 이제까지 접촉하여 오던 어떤 것도 자기의 필요를 이와 같이 크게 깨닫게 해준 적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 여자의 생애의 비밀을 통찰하셨다는 것을 그녀에게 확신시키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예수가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친구라고 느꼈다. 예수님의 임재의 순결이 그녀의 죄를 정죄했으나 그분은 책망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는 당신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 여자는 그분의 신분에 대하여 어느 정도 깨닫기 시작했다. 혹시 이분이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메시야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 여자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그 여자는 예수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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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그 여인의 마음속에는 믿음이 솟아올랐다. 그 여자는 하늘의 교사의 입에서 나온 그 놀라운 선언을 받아들였다 .
이 여인의 마음은 깨달을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가장 고상한 계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성경 말씀에 흥미를 느꼈으며 성령께서 더욱 많은 빛을 받도록 그녀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구약 성경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는 약속을 연구하였다. 그녀는 이 예언을 이해하기를 갈망하였다. 빛은 이미 그 녀의 마음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목마른 영혼에게 주시는 영적 생명인 생명수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그녀에게 역사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이 여인에게 하신 명료한 말씀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하실 수 없는 말씀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훨씬 더 제한적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후에 제자들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명하셨던 것이 그 여자에게는 계시된 바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당신의 은혜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에 그 지식을 활용할 것을 아셨다.
제자들이 심부름 갔다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주께서 그 여인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예수께서는 원하던 시원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당신의 제자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기 위해 멈추지도 않으셨다. 그 여인이 간 후에 제자들은 예수께 잡수시도록 간청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잠잠히 깊은 명상에 골몰하고 계심을 보았다. 그분의 얼굴이 밝게 빛났으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교통하시는 것을 방해할까봐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기진하여 피곤하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필요를 그분에게 알려 주는 것은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저희의 애정 어린 염려를 인정하고,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누가 그분에게 먹을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고 궁금히 여길 때에 예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고 설명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하신 당신의 말씀이 그 여자의 양심을 깨우쳤을 때에 기뻐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생명수를 마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주림과 갈증은 채워졌다. 예수께서 하늘을 떠나 이루기 위해 오셨던 사명의 성취는 당신의 사업을 행할 능력을 구주에게 주었으며 그분으로 인간의 필요를 초월하게 하였다. 진리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섬기는 것이 그분에게는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 예수께는 그것이 안위와 원기 회복의 요소였다. 자비심은 그분의 영혼의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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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속주께서는 자신를 인정해주기를 갈망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 사신 자들의 동정과 사랑을 갈급해 하신다. 그분은 말할 수 없는 희망을 가지고 그들이 당신께로 와서 생명을 얻기를 갈망하신다. 어머니가 자기의 어린 자녀에게서 지성의 눈이 트인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그 인정의 미소를 고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적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고마워하는 사랑의 표현을 고대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때에 그 여인은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그 놀라운 계시의 말씀은 그녀를 거의 압도하였다. 그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다른 사람에게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동네로 돌아갔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이 왜 떠나갔는지를 아셨다. 그가 물동이를 버리고 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의 감화에 대하여 증명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영혼의 간절한 소망은 생수를 얻는 것이었다. 그녀는 우물에 나온 용무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구주의 목마르심을 채워 드리기 위하여 물을 떠 드리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자기가 받은 귀한 빛을 남에게 전하기 위하여 길을 재촉하였다.
그 여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하였다. 그의 말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여인의 얼굴에는 새로운 표정이 있었으며 그녀의 전체의 용모에 변화가 생겼다. 그들에게 예수를 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예수께서는 여전히 우물가에 앉으셔서 당신 앞에 펼쳐져 있는 곡식밭을 바라보셨다. 밭의 부드러운 녹색이 황금빛 태양빛을 받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광경을 가리키면서 그것을 상징으로 하여 말씀하셨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면서 우물을 향하여 오는 무리들을 쳐다보고 계셨다. 곡식을 추수할 시기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했지만 여기에 추수꾼을 기다리는 열매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신성한 봉사를 지적하신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산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개인적인 봉사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뿌리거나 거두거나 간에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은 씨를 뿌리고 저 사람은 추수한다.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모두 삯을 받는다. 그들은 그들이 일한 보수를 받고 함께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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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구주께서는 이때에 오순절 날의 위대한 수확을 바라보고 계셨다. 제자들은 이것을 그들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여기지 말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고 있었다. 아담의 타락 이래로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의 씨를 당신의 택하신 종들에게 맡겨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보이지 아니하는 힘, 곧 전능하신 능력이 그 추수를 내기 위하여 묵묵히 그러나 효과적으로 역사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과 비와 햇빛이 진리의 씨에 힘을 주고 양분을 공급하기 위하여 주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바야흐로 당신 자신의 피로 그 씨에 물을 뿌리실 것이었다. 그분의 제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될 특권을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옛 성인들의 동역자였다.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수천 명이 하루에 회개하게 될 것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파종하신 결과, 곧 그분의 사업의 수확이었다.
우물곁에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좋은 씨가 뿌려져서 그 추수가 얼마나 신속히 거두어졌던가. 사마리아인들이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었다. 그들은 우물곁에 계신 그분의 주위에 모여들어 예수님에게 질문의 화살을 퍼부었으며 이제까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였던 많은 사물에 대하여 그분께서 하시는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말씀을 듣자 그들의 혼란은 깨끗이 가시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마치 암흑 속에서 돌연히 나타난 빛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다가 환한 대낮을 발견한 사람들과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짤막한 대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듣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에게도 이 놀라운 교사의 말을 들려주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들은 그분을 동네로 초청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머물러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이틀 동안 사마리아에 체류하셨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단순하심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이적을 무시하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표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표적을 구하지 않았으며 예수께서는 우물가의 여인에게 그의 생애의 비밀을 드러낸 것 외에는 그들 가운데서 아무런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새로운 기쁨으로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 줄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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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야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속주로서 오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성령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분을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라고 예언하셨다. 야곱을 통하여 백성들이 그리스도께로 모일 것이 선언되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는 예수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선언되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이러한 성경의 말씀 위에 기초를 두었다. 유대인들이 후기의 선지자들의 말을 그릇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을 초림 시에 있을 것으로 돌렸던 사실은 사마리아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성경 외에는 모두 버리도록 인도하였다. 그러나 구주께서 이러한 모든 거짓된 해석들을 일소하셨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후기의 예언들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예수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허시고 세상에 구원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유대인이었지만 사마리아인들과 자유롭게 섞였으며 유대 나라의 바리새인의 관습을 무시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멸시받는 백성들의 친절을 받아들이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지붕 밑에서 주무시고, 그들의 식탁에서 그들이 손수 준비하고 차려 놓은 음식을 잡수시고 거리에서 가르치셨으며 가장 친절하고 정중하게 그들을 대하셨다.
예루살렘의 성전에는 낮은 담이 있어서 이것이 바깥뜰과 성전 건물의 다른 모든 부분을 구별하여 놓았다. 이 벽 위에는 여러 다른 언어로 유대인 외에는 이 경내의 통과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만일 이방인이 감히 구내에 들어간다면 그는 성전을 모독하였다고 하여 그 형벌로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그러나 성전과 그 봉사의 창시자이신 예수께서 인간적인 동정의 끈으로 이방인들을 당신께로 이끌어 당신의 하늘의 은혜로 유대인들이 거절한 구원을 그들에게 주셨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에 머무르신 것은 아직도 유대인의 완강한 고집의 감화를 받고 있던 당신의 제자들에게 복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조국에 충성하려면 사마리아인들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모본을 따르기를 거절할 수가 없었으므로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머무르는 동안 그분께 충성하여 자신들의 편견을 억제하였지만 마음속은 불만이었다. 그들은 경멸과 증오심을 갖는 대신 긍휼과 동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에 느렸다. 그러나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 교훈들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되살아났다.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은 후에 그들은 이 멸시받는 외인들에 대한 구주의 표정과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존중과 친절의 태도를 회고하였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러 갔을 때 베드로는 이와 같은 정신으로 자신의 사업을 하였다. 요한이 에베소와 서머나에 부르심을 받아 갔을 때에 그는 세겜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고, 그들이 직면해야 할 역경들을 내다보시고 친히 모본을 보이심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셨던 하늘의 교사에 대한 감사한 생각으로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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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수를 제공하셨을 때와 똑같은 사업을 여전히 수행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혹시 버림받은 자들을 멸시하고 기피할 수 있을 것이나 출생이나 민족의 환경도, 생활의 조건도 그분의 사랑을 인류의 자녀들에게서 돌이킬 수 없다. 예수께서는 아무리 죄 될지라도 각 영혼에게 네가 만일 나에게 구하기만 하였으면 내가 네게 생명수를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의 초청을 선택된 소수에게, 곧 우리의 생각에 그들이 그 초청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영예가 되리라고 여겨지는 자들에게만 국한시켜 제시해서는 안 된다. 이 기별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진리를 받으려고 마음 문을 연 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가르치려고 대기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마음을 읽으시는 그분께 가납되는 예배를 계시하신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들에게는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신 것과 같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에서 쉬기 위하여 앉으셨을 때에 그분은 당신의 전도가 거의 열매를 내지 못했던 유다 지방에서 돌아오시던 길이었다. 예수께서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에게 거절을 당하셨으며 심지어 당신의 제자라고 고백하던 사람들까지라도 당신의 거룩한 신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기진하고 피곤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한 여자, 그나마도 이방인이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인이요 공공연한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여인에게 말할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구주께서는 회중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으셨다. 그분은 흔히 당신 주위에 모인 몇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나 행인들은 한사람씩 멈추어 서서 듣는 중에 무리들은 이 하늘에서 보냄을 받은 교사를 통하여 제시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놀람과 경외심을 가지고 듣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적은 청중에게도 큰 무리에게 하는 것과 같은 열성을 가지고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별을 듣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감화가 얼마나 멀리 미치게 될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구주께서 사마리아 여자 때문에 시간을 소비하시는 것은 그의 제자들이 보기에도 사소한 문제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인과 변론하기를 왕들이나 고관들이나 제사장들과 변론하는 것보다 더욱 열심히 더욱 웅변적으로 하셨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하신 교훈은 지구상의 구석구석까지 이르러 반복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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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자는 구주를 발견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을 그분 앞으로 이끌고 나왔다. 그 여자는 자신이 그분의 제자들보다 더욱 능률적인 선교사임을 증명하였다. 제자들은 사마리아가 훌륭한 선교지라는 것을 나타내는 아무런 표시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은 장래에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바로 주변에 거두어야 할 영혼의 수확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멸시하던 그 여인을 통하여 온 동네가 구주의 말씀을 들으러 나왔다. 그 여자는 그 빛을 즉시 자기 부락민들에게 전하였다.
이 여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실천적 믿음의 활동을 대표한다.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선교사로서 태어난다. 생수를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물이 된다. 받는 자는 주는 자가 된다. 영혼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사막의 샘물과 같아서, 모든 것을 소생시키고 멸망하여 가는 자들로 하여금 생명수 마시기를 열망하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