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12장 – 시 험

12장 시 험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셨다. 마가의 말은 좀 더 의미심장하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라”고 그는 말한다.

예수께서 시험받기 위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을 때에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에게 이끌리셨다. 그분은 시험을 자취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사명과 사업을 숙고하기 위해 광야로 가셨다. 그분은 금식과 기도로 당신이 걸어가야 할 피 묻은 길을 위하여 자신을 무장할 것이었다. 그러나 사단은 구주께서 광야로 가신 것을 알았으며 그는 이것이 예수에게 접근할 가장 적당한 때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위한 중대한 문제들이 빛의 임금과 흑암의 나라의 지도자와의 투쟁에 걸려 있었다. 사단은 사람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한 후에 이 지구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자칭하였다. 그는 우리 인류의 시조에게 자신의 성질을 본받게 한 후에 이곳에 그의 나라를 세우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그들의 군주로 선택하였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람을 지배함으로 세상의 통치권을 쥐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주장을 반증(反證)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人子)로서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할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 사단이 인류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였다는 것과 세상이 자기 것이라는 사단의 주장이 허위였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는 모두 해방될 것이다.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통치권은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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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에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창 3:15)는 선언이 있은 후로 사단은 자신이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통치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마음에 사단의 지배에 대항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큰 관심을 가지고 아담과 그의 아들들이 드리는 제물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 의식 가운데서 땅과 하늘 사이의 교통의 표상을 보았다. 그는 이 교통을 방해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그릇되게 나타내고 구주를 예표하는 예식을 그릇 해석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시는 분으로 두려워하도록 이끌림을 받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냈어야 할 제물이 다만 그분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드려졌다. 사단은 사람에 대한 통치권을 굳게 붙잡기 위해 사람들의 악한 감정을 격발시켰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주어지자 사단은 구주의 강림에 대한 예언들을 연구하였다. 그는 각 시대를 통해 이 예언에 대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여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거절하도록 공작했다.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사단은 자신의 통치권을 반박하기 위하여 하늘의 사명을 가지고 한 분이 강림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새로 나신 왕의 권위를 증거하는 천사의 기별을 듣고 떨었다. 사단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자로서 하늘에서 가지셨던 지위를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은 그를 놀람과 염려로 가득 채웠다. 그는 이 큰 희생의 신비를 측량할 수 없었다. 그의 이기적인 정신으로는 기만당한 인류를 위한 이러한 사랑을 깨달을 수 없었다. 하늘의 영광과 평화 그리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쁨은 사람들에게는 희미하게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으나 덮는 그룹이었던 루시퍼는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잃어버렸으므로 다른 이들을 자기처럼 타락시킴으로써 복수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의 사물들을 과소평가하게 하고 마음을 세상의 사물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이 일을 성취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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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사령관이신 예수께서도 사람의 심령을 당신의 나라로 이끄시는 데 장애가 없지 않았다. 베들레헴에서 어린아이로 태어났을 때부터 그분은 마귀로부터 끊임없이 맹공격을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으므로 사단의 회의들에서는 예수를 정복하기로 결정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이 기만자의 세력에서 벗어난 자는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악의 동맹군들은 예수님을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 그분을 따라다녔으며 가능하면 그분을 정복하려고 하였다.

구주께서 침례를 받으셨을 때에 사단도 목격자들 중에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영광이 당신의 아들을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예수의 신성을 증거하는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인류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이 단절되었으며 하늘과 땅과의 교통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롬 8:3) 오셨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그분이 전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통하셨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와 교통하셨다. 사단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가 하늘과 땅 사이에 영원한 분리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과 사람과의 연결이 회복되었음이 드러났다.

사단은 자기가 정복하지 못하면 정복당할 것을 알았다. 이 투쟁의 결과는 너무나 중대해서 그와 동맹한 천사들에게 위임할 수 없었다. 그가 직접 그 싸움을 지휘해야 했다. 모든 배도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대항하여 집결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지옥의 무기의 표적이 되셨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이 투쟁이 그들 자신의 생애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에 거의 관심이 없다. 그러나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서 이 투쟁은 되풀이된다. 그 누구도 사단의 공격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악의 대열을 떠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대항하신 유혹들은 우리가 막아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 시험들은 그분의 품성이 우리의 성품보다 뛰어나신 것만큼 더 극심하게 임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심히 무거운 죄 짐을 지고 식욕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참람으로 이끄는 과시를 사랑하는 시험에 대항하셨다. 이 시험들은 아담과 하와를 정복하였고, 우리들을 쉽게 정복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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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불공평하고 순종할 수 없다는 증거로써 아담의 범죄를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으로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실 것이었다. 그러나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아담은 아무런 죄의 영향을 입지 않았다. 아담은 완전한 장년으로 몸과 마음에 충만한 활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에덴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고 날마다 하늘의 천사들과 교통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사단과 상대하기 위하여 광야에 가셨을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4천 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력과 도덕적 가치에 있어서 퇴보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퇴보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만 그분은 인류를 쇠퇴의 깊은 구렁에서 구출할 수 있으셨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시험에 정복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처지에 서지 못하셨을 것이며, 아담이 얻지 못한 승리를 얻을 수 없으셨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분께서 당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도 짊어질 것이 없다.

에덴의 거룩한 부부와 같이 그리스도에게도 식욕은 첫째가는 큰 시험의 무대였다. 멸망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 곳에서 우리의 구속 사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아담이 식욕의 방종에 의해 타락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식욕을 극기하심으로 승리하셔야 한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유혹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아담의 시대부터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자아 방종은 식욕과 정욕의 세력을 점점 증가시켜, 마침내 그것들이 거의 무제한으로 사람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사람은 타락되고 병들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들을 극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대신하여 가장 혹심한 시험을 견딤으로 이기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굶주림이나 죽음보다 더 강한 자제를 행사하셨다. 그런데 이 첫 승리 가운데는 흑암의 세력과 싸우는 우리의 모든 투쟁에 관계되는 다른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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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광야로 가셨을 때 그분은 아버지의 영광에 둘려 있었다. 그분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열중하여 인간의 연약함을 초월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그분은 시험과 싸우도록 남겨지셨다. 그 시험은 순간마다 그분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분의 인간적인 본성은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투쟁으로부터 움츠러들었다. 40 일간 그분은 금식하고 기도하셨다. 굶주림으로 인하여 연약하고 쇠약해지고 정신적 고민으로 피로하고 수척해지셔서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사 52:14)다. 사단에게는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지금 그리스도를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분의 기도의 응답인 양 하늘로부터 온 천사로 위장한 한 존재가 구주께 다가왔다. 그는 그리스도의 금식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의 손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셨던 것처럼 아버지께서는 피 묻은 길로 들어가시려는 그리스도의 자원하는 마음을 만족히 여기고 그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셨다는 것이 예수께 전달된 기별이었다. 구주께서는 굶주림으로 기진맥진한 중에 음식을 갈망하셨다. 바로 그 때 사단이 갑자기 그분에게 나타났다. 광야에 널려 있는 떡덩이 모양의 돌들을 가리키면서 유혹자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하였다.

그는 광명한 천사처럼 보였지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첫 말이 그의 성격을 폭로해 주었다. 이 말 가운데 불신에 대한 암시가 있었다. 만일 예수께서 사단이 제의하는 대로 행한다면 그것은 이 의심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유혹자는 태초에 인류에게 사용하여 그토록 성공을 거두었던 동일한 수단으로 그리스도를 정복하려고 계획한다.

사단은 에덴의 하와에게 얼마나 교묘하게 접근했던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유혹자의 말은 여기까지는 진리였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그의 태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멸시가 숨겨져 있었다. 그 말 가운데는 은밀한 부정(否定), 즉 하나님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사단은 하와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으며, 그러한 아름다운 실과를 금하신 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애정과는 모순된다는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노력했다. 그와 같이 이제 유혹자는 그리스도에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고취시키려고 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말에는 그의 마음속의 쓰라린 감정이 사무쳐 있다. 그의 어조에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표현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당신의 아들을 이렇게 대우하실까? 하나님께서 과연 당신의 아들을 야수들이 있는 광야에 음식도, 친구도, 위로도 없이 버려두실까? 사단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 결코 이와 같은 형편에 처하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고 암시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 격심한 배고픔에서 그대 자신을 건짐으로 그대의 능력을 나타내라. 이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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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들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말씀이 아직도 사단의 귀에 쟁쟁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 증언을 불신하게 하려고 결심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사명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확신을 주는 말씀이었다. 그분은 사람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말씀이었다.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다. 만일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확신을 흔들리게 할 수 있다면 전체적인 대쟁투에서 승리는 자기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사단은 알았다. 그는 예수님을 정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낙담과 극도의 배고픔 속에서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시기를 바랐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구원의 계획은 깨어졌을 것이다.

사단과 하나님의 아들이 처음 맞서 싸웠을 당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만군의 사령관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발생한 반역의 지도자였던 사단은 쫓겨났다. 이제 그들의 형편이 역전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단은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최대한 이용했다. 사단은 이렇게 말한다. 천사들 가운데 가장 강한 천사가 하늘에서 추방되었다. 예수의 외관은 하나님에게서 버림받고, 사람에게서 외면 받은 타락한 천사가 바로 그라는 것을 보여준다. 신적인 존재라면 이적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확증할 수가 있을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창조력을 행사하는 이와 같은 일은 신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고 그 유혹자는 주장했다. 그것으로 투쟁은 종결될 것이다.

예수께서 조용히 대 기만자의 말을 들으실 때에 심적 투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자신의 신성을 사단에게 입증해 보이거나 자기 비하의 이유를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반역자의 요구에 응함으로 인류의 유익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조금도 없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원수의 제의에 응하셨더라면, 사단은 내가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만한 표적을 내게 보이라고 여전히 말하였을 것이었다. 증거는 사단의 마음속에 있는 반역적 세력을 깨뜨리는 데 무익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신적인 능력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견뎌야 할 시험을 견디심으로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의 모본을 남겨 주기 위하여 오셨다. 여기서나 이후의 지상 생애의 어떤 경우에서도 그분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놀라운 사업들은 모두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사단인 줄 아셨으나 그와 투쟁할 충동은 받지 않으셨다.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기억함으로 힘을 얻은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였다. 그분은 시험과 협상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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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성경 말씀으로 사단을 대항하셨다. 그분은 “기록하였으되”라고 말씀하셨다. 시험당할 때마다 그분의 싸움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사단은 그리스도에게 신성의 표적으로 이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모든 이적보다도 더 큰 표적, 곧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뢰는 사단이 논박할 수 없는 표적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시는 한 유혹자는 이길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맹렬한 시험의 공격을 받으신 때는 가장 허약하실 때였다. 그러므로 사단은 이기리라 생각하였다. 그는 이러한 술책으로 사람들을 이겨 왔다. 힘이 진하여 의지력이 약해지고 믿음이 하나님 안에서 쉬기를 그치게 되는 그 때에는 정의를 위하여 오랫동안 용감하게 섰던 자들도 정복당하고 말았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40년간 유리함으로 피곤해졌을 때에 그의 믿음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잠시 놓았다. 그는 약속의 땅 바로 경계선에서 실패했다. 아합왕 앞에 담대히 섰었으며, 또한 4백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선두로 한 온 이스라엘 백성과 맞섰던 엘리야도 그러했다. 갈멜산상에서의 그 두려운 날, 곧 거짓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선언하였던 그날 후에 엘리야는 우상 숭배자 이세벨의 협박에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쳤다. 이와 같이 사단은 인간의 연약성을 이용해 왔다. 그리고 그는 장래에도 같은 수법으로 활동할 것이다. 사람이 근심에 둘러싸여 있을 때와 어려운 사정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와 빈곤과 애통함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마다 사단은 시험하여 괴롭게 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품성의 약점을 공격한다. 그는 이러한 일들이 존재하도록 용납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확신을 흔들어 놓으려고 애쓴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신하며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시험을 받는다. 흔히 유혹자는 그리스도에게 접근하였던 것처럼 우리에게 접근하여 우리의 결점과 연약한 점을 열거한다. 그는 영혼을 낙담시켜 하나님을 붙든 손을 놓게 만들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되면 그는 확실히 사단의 밥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사단을 대적한다면 우리는 많은 패배를 면할 것이다. 원수와 담판을 함으로 우리는 그에게 기회를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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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유혹자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1천4백 년 전에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 3)고 하신 말씀을 반복하신 것이다. 광야에서 생활을 유지할 모든 수단이 떨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만나를 충분히 그리고 끊임없이 공급하여 주셨다. 이러한 공급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동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구주께서는 지금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쳤던 교훈을 실천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히브리 백성들에게 도움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동일한 말씀으로 말미암아 예수께도 도움이 주어질 것이었다. 그분은 도움을 베푸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순종하여 광야에 계셨으나 사단의 제안에 따라 음식을 얻지는 않으실 것이었다. 우주가 주목하는 가운데 그분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에서 떠나는 것보다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당하는 것이 더 가벼운 재앙이라는 것을 증거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자기의 세상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때가 자주 있다. 아마도 하나님의 어떤 명백한 명령을 순종하면 생계의 수단이 다 끊어질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단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양심적인 신념을 희생시킬 도리밖에 없다고 믿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세상에서라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에서 이탈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식량을 구하거나 우리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사단의 제의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물음은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해야 한다.

사단과의 마지막 대쟁투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은 모든 세상의 생계 방도가 끊어지게 됨을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의 권세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그들은 매매하는 일을 금지 당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그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이 내리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1~17절을 보라. 그러나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약속이 주어져 있다.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기지 아니하리라”(사 33:16).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땅이 기근으로 황폐될 때에도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공급될 것이다.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시 37:19)리라. 하박국은 이 곤고의 시대를 바라보고 교회가 가져야 할 믿음을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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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당하신 첫 큰 시험에서 배울 모든 교훈 중에서 식욕과 정욕을 지배하는 일과 관련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각 시대를 통하여 육체적 본성에 호소하는 시험이 인류를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사단은 부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매우 귀중한 선물로 주신 정신적·도덕적 능력을 파괴하려고 활동한다. 이렇게 하여 사람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관능적인 방종을 통하여 사단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닮은 모든 흔적들을 지워 버리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제어하지 않은 방종과 그 결과로 생기는 질병과 퇴폐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극심한 죄악과 함께 다시 존재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형편은 홍수 전의 시대나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아질 것이라고 언명하셨다.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상상이 항상 악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두려운 시기의 바로 변두리에 살고 있으므로 구주의 금식의 교훈이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견디신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의해서만 제어하지 않은 방종의 사악함을 평가할 수 있다. 그분의 모본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유일한 소망은 식욕과 정욕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타락된 우리의 본성의 욕구를 물리칠 수 없다. 사단은 이 통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시험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가 각 사람에게 와서 인간의 선천적인 약점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거짓말로 올무에 빠뜨리려 할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땅을 먼저 통과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길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다. 사단과의 투쟁에서 우리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뱀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무서워하고 낙담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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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자는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구주를 바라보라. 십자가 위에서 고뇌하면서 “내가 목마르다”고 부르짖으시는 구주를 보라. 그분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모든 것을 견디셨다. 그분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다.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라. 당신 자신의 모본을 가리키면서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구뇨…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7~10).

예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요 14:30)다고 말씀하셨다. 그분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사단의 궤변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분은 죄를 짓기로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생각으로라도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과 연합되었다. 그분은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투쟁할 태세가 되어 있으셨다. 그분은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는 한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손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굳게 붙잡게 함으로 우리로 완전한 품성을 얻게 하려고 하신다.

그런데 이 일을 성취하는 방법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분은 어떤 수단을 통하여 사단과의 투쟁에서 승리하셨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였다. 그분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시험에 대항하실 수 있었다. “기록되었으되” 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벧후 1:4)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약속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시험의 맹공격을 받을 때, 상황이나 자신의 약점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바라보라. 그 말씀의 모든 능력은 그대의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시 119:11,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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