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94일

84장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절기 때면 밤에도 열어 두는 동쪽 문으로 들어간다. 집들은 어둠과 적막에 싸여 있으나 그들은 떠오르는 달빛에 의지하여 좁은 길을 걸어간다. 그들은 예수께서 운명하시기 바로 전날 저녁에 몇 시간을 보내시던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그들은 그 곳에서 저희 형제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저희 주님의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실히 알기 전에는 제자들이 자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안다. 그들은 방문이 단단히 잠긴 것을 안다. 그들이 들어가려고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다. 그저 조용할 뿐이다. 그들은 저희 이름을 댄다. 그러자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그들이 들어갈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한 분이 저희와 함께 들어가신다. 그리고는 어떤 정탐꾼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이 다시 잠긴다.

여행자들은 모든 제자들이 놀라운 흥분에 싸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방 안에 있는 자들은 감사와 찬송을 돌리면서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났다”고 말한다. 두 여행자는 급히 달려왔기 때문에 숨을 가쁘게 쉬면서 예수께서 어떻게 자신들에게 나타나셨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이 말을 마치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면서 믿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 때에 보라! 그들 앞에 다른 분이 서 계신다. 모든 사람의 눈은 그 낯선 사람에게 집중된다. 아무도 들어오겠다는 신호로 문을 두드린 일이 없었다. 아무런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자들은 놀라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서 당황한다. 그 때에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음성이 아닌, 바로 저희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분명하고 똑똑한 말씀이 그분의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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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었다.

그들은 잔인한 못에 상하신 그분의 손과 발을 보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음성이 아닌 바로 저희가 항상 듣던 그분의 음성임을 알게 되었다.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믿음과 기쁨이 불신을 대신하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으로 그들은 부활하신 구주를 인정하였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천사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선포하였다.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이제도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는 축복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항상 의심과 공포에 사로잡혀 번민하는 영혼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시며 우리와 함께 유하시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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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안에서 잠자는 모든 사람의 마지막 부활에 대한 예표였다. 부활하신 구주의 얼굴과 태도와 음성은 모두 다 그분의 제자들에게 익숙한 것들이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예수님 안에서 자는 자들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처럼 우리의 친구들을 알아볼 것이다. 그들은 이 인간 세상에서 모양이 일그러지고 병들고 볼품이 없었다 할지라도 완전한 건강과 균형을 갖고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영광스럽게 된 몸일지라도 그 속에 저희의 동일성이 완전히 보존될 것이다. 그 때에는 주께서 우리를 아신 것같이 우리가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고전 13:12). 예수님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을 받아 빛나는 얼굴로 우리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의 얼굴 모습을 알아볼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 그분은 죽기 전에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기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기억나게 하셨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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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저희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경이로운 진리를 세계에 선포해야만 하였다. 예수님의 생애에 일어났던 일들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사건들을 가리킨 예언들,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 구속의 경륜의 신비,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능력 등 저희가 목격한 이 모든 것을 온 세계에 알려야만 하였다. 그들은 회개와 구주의 능력을 통한 평화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만 하였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직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은 아직도 충만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까지도 성령의 더욱 풍성한 부으심이 나타나지 않았다. 성령을 받기까지는 제자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성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령은 이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주어졌다. 제자들이 교회와 관련된 그들의 직무를 완수할 수 있기 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가장 신성한 임무를 위탁하고 계셨으며 성령이 없이는 이 사업이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깊이 느끼기를 바라셨다.

성령은 영혼들 속에 있는 영적 생명의 숨이시다. 성령을 나누어 주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성령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성으로 물들여지게 된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를 지니며 그의 생애에 그리스도와 같은 삶이 나타나는 자만이 대표자로 서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아무에게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유를 주시지 않는다. 산상 설교에서 그분은 그렇게 하는 것을 금하셨다. 그 일은 하나님께 속한 대권(大權)이다. 그러나 그분은 조직된 교회에 교인 개개인을 돌볼 책임을 맡기셨다. 교회는 범죄한 자들을 경고하고 교훈해서 할 수 있는 한 회복시킬 의무가 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잘못을 성실하게 다루라. 위험에 빠진 영혼들을 경고하라. 그들 스스로가 속임을 당하도록 버려두지 말라. 죄를 그 바른 이름대로 부르라. 거짓말과 안식일을 범하는 일과 도둑질과 우상 숭배와 다른 모든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선언하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 만일 저희가 그냥 죄를 고집하면 그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언한 판결이 하늘에서도 그들에게 선고된다. 죄의 길을 선택함으로 저희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끊을 때, 교회는 그들의 행위를 시인하거나 주께 욕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교회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죄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의 행위는 하늘의 재가를 받게 된다. 교회의 권위를 멸시하는 자는 바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멸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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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묘사보다 더욱 영광스러운 장면이 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이 사상을 맨 먼저 갖도록 하라. 잘못한 자를 위하여 노력할 때 모든 사람은 그의 눈을 그리스도께 향하도록 하라. 목자들로 주의 목장의 양떼들을 친절하게 돌보도록 하라. 그들로 잘못하는 자들에게 구주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말해 주도록 하라. 그들로 죄인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믿도록 격려하게 하라. 그들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선포하게 하라. 회개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라”(미 7:19)는 보증이 있다.

교회는 죄인의 회개를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라. 회개한 사람을 불신의 어둠에서 인도해내서 믿음과 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라. 그의 떨리는 손이 예수님의 사랑의 손을 붙잡도록 하라. 이와 같은 용서는 하늘의 인정을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만 교회는 죄인을 용서할 권세를 가진다.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도 영혼들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할 권세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명하여 모든 민족 중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전파하도록 하셨으나 제자들 자신은 한 점의 죄도 사할 수 있는 권세를 받지 못했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이름”(행 4:12)이다.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 도마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의 보고를 듣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데 대한 충분한 증거를 받았으나 그의 마음에는 어둠과 불신이 가득하였다. 도마는 부활하신 구주의 경이로운 출현에 대한 제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 더욱더 깊은 절망에 빠져 들어갔다. 만일 예수께서 참으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면 문자 그대로 세상 나라에 대한 희망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주께서 자기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도마는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주일 내내 그의 형제들이 희망과 믿음을 가진 데 반해 그는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이는 불행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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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도마는 여러 번 반복해서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가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눈으로 본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증언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주님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질투와 불신이 그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도록 놔두었다.

다수의 제자들은 이제 익숙해진 다락방을 저희의 임시 거처로 삼았다. 저녁에 도마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그 곳에 모였다. 어느 날 저녁,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만나기로 결심하였다. 자기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좋은 소식이 참이었으면 하는 가냘픈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예언의 증거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다.

도마를 보시고 예수께서는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도마의 생각과 그가 한 말을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의심하는 제자는 자기 동료 중에 한 주일 동안 예수님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제자들은 도마의 불신을 주께 말씀드릴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분이 자기의 주님이심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증거를 바라지 않았다.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고백을 받으셨으나 그의 불신을 부드럽게 책망하셨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만일 도마가 형제들의 증거하는 말을 듣고 기꺼이 믿었더라면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께 더욱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지금 이 세상이 도마의 모본을 따른다면 한 사람도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이 만일 저희가 도마가 그의 동료들에게서 받았던 그 같은 증거를 받는다면 저희는 믿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변명한다. 그들은 저희가 그 증거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욱 많은 증거를 받은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도마와 같이 의심의 원인이 모두 제거되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불신에 굳어 버리게 된다.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불평과 원망을 하도록 하는 자들은 저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의심의 종자를 뿌리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완숙된 의심의 수확물을 거두게 될 것이다. 믿음과 확신이 가장 필요한 때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바라고 믿는 일에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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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를 다루신 일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셨다. 예수님의 모본은 우리가 믿음이 약하고 의심을 많이 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비난으로 도마를 억누르지도 않으시고, 그와 시비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의심하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도마는 자기의 믿음의 조건들을 요구하는 데 매우 분별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관대한 사랑과 이해심으로 모든 장벽들을 무너뜨리셨다. 불신은 언쟁으로는 거의 정복될 수 없다. 그것은 도리어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새로운 구실과 핑계를 찾는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로 나타내 주면 한때 원치 않던 많은 사람의 입술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한 도마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소망 pp. 80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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