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82일

75장 안나스 앞과 가야바의 궁전에서

폭도들은 예수님을 재촉하여 기드론 시내를 건너 밭들과 감람나무 숲을 지나 잠든 도성의 고요한 거리를 통과하였다.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그분을 쫓아온 분노한 폭도들의 부르짖음이 고요한 밤공기를 날카롭게 찢었다. 구주께서는 포박되어 엄중한 감시를 받았으며 고통스럽게 발을 옮겨 놓으셨다. 그러나 그분을 사로잡은 자들은 길을 재촉해서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의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안나스는 제사 의식을 집전하는 제사장 가문의 우두머리였으며 그의 나이를 존중하여 백성들은 그를 대제사장으로 대우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권고를 하나님의 음성인 것처럼 추구하고 실행하였다. 성직자의 권력에 의해 잡혀온 예수님을 그가 먼저 보아야 했다. 경험이 부족한 가야바가, 저희가 도모하고 있는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죄수를 심문하는 일에 안나스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였다. 여하튼 간에 그리스도를 정죄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그의 재치와 교활과 음흉이 이런 기회에 사용되어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산헤드린 앞에서 정식으로 심문을 받을 것이었지만 안나스 앞에서 예비적인 심문을 당하셨다. 로마의 통치 하에서 산헤드린은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죄수를 심문하고 재판할 수 있었으나 반드시 로마 당국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이 죄인으로 인정할 수 있는 혐의를 예수께 뒤집어씌울 필요가 있었고 유대인들의 눈에도 그분이 정죄받을 만한 죄상이 발견되어야만 하였다. 적지 않은 제사장과 관원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으로 죄를 깨닫게 되었으나 그들은 다만 파문이 무서워서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였다. 제사장들은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요 7:51)라고 질문한 니고데모의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 질문은 한동안 회의를 중단시켰으며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지금 회의에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소집되지 않았으나 공의의 편에 서서 담대히 말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심문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에 산헤드린 회원들을 연합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만 하였다. 제사장들은 두 가지 혐의를 주장하고자 했다. 만일 예수님이 참람된 자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분은 유대인들의 정죄를 받을 것이요 소요죄(騷擾罪)가 확인된다면 로마인들의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안나스는 먼저 둘째 혐의를 성립시켜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재료가 될 어떤 말이 죄수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예수님에게 그분의 제자들과 교리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안나스는 예수님이 새 왕국을 세울 목적으로 어떤 비밀 단체를 조직하려 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는 말을 유도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제사장들은, 평화를 교란시키는 자와 폭동을 일으키는 자로서 그분을 로마인들에게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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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펴놓은 책을 읽는 것처럼 그 제사장의 의도를 읽으셨다. 그분에게 질문하는 자의 가장 깊은 마음을 아시고 예수께서는 그분과 그분을 따르는 자들 사이에 어떤 비밀스런 연합 관계가 있거나 혹은 그분이 자신의 계획을 감추기 위하여 은밀한 장소에서 비밀히 그들을 모았다는 것을 부인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목적이나 교리에 대해 아무런 비밀도 없으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다”고 대답하셨다.

구주께서는 자신의 일하는 방법을 당신을 비난하는 자들의 일하는 방법과 대조시키셨다. 여러 달 동안 그들은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고 그분을 비밀 법정에 세워 그 곳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얻을 수 없었던 위증(僞證)을 얻어내려고 노력하면서 그분을 쫓아다녔다. 이제 그들은 그같은 저희의 목적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폭도들에 의한 한밤중의 체포와 아직 정죄도 받지 않고 기소도 되기 전에 그분을 조롱하고 욕설을 퍼붓는 것은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었지 예수님의 방식은 아니었다. 그들의 행동은 율법에 위배되었다. 저희의 법은, 모든 사람은 죄가 밝혀질 때까지는 무죄한 자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사장들은 저희 자신의 법으로 정죄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질문하는 자를 돌아보시면서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고 말씀하셨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분의 행동을 감시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을 보고할 첩자들을 보내지 않았던가? 이 첩자들이 백성들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여 그분이 하시던 말씀과 행동을 모두 다 제사장들에게 보고하지 않았던가?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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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스는 이같은 결정적인 대답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가 덮어두기를 원하는 그의 행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그는 그리스도께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의 관리들 중에 한 사람이 안나스가 잠잠한 것을 보고 분노하여 예수님의 얼굴을 치면서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침착하게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고 대답하셨다. 그분은 보복에 불타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침착한 대답은 무죄하고 인내성 있고 온화한 마음, 도발을 받아도 성내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능욕과 모독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셨다. 그분은 당신이 창조하고 또 위하여 무한한 희생을 치르시려고 하는 자들의 손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완전한 거룩함과 죄에 대한 당신의 증오심에 비례하여 고통을 당하셨다. 악마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시련은 그분에게 끊임없는 희생이었다.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이 그분에게는 몸서리나는 일이었다. 그분은 신성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순간에 당신을 잔인하게 괴롭히는 자들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이것이 시련을 더욱 견디기 힘들게 하였다.

유대인들은 외적으로 무엇인가를 과시해 보일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압도하는 의지의 섬광으로 사람들의 생각의 사조를 변화시켜서 당신의 최상권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그런 메시야를 기대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그분 자신의 심적 고양을 확보하고 그들의 야망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멸시를 받으실 때에 그분에게는 신성을 나타내고 싶은 강한 유혹이 이르러 왔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마디 말과 한 번의 시선으로 그분을 핍박하는 자들로 당신이 왕들과 관원들과 제사장들과 성전보다 더 높은 주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당신이 인류와 하나가 되기로 선택하신 그 입장을 유지하는 일이 몹시 어려웠다.

하늘의 천사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을 대적하는 모든 행동을 주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원하기를 열망하였다. 하나님의 명령 하에 천사들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일찍이 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의 군사 185,000명을 죽였다. 그리스도께서 심문을 받으시는 수치스러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의 원수들을 소멸시킴으로 그들의 분노를 나타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을 하도록 명령을 받지 않았다. 원수들의 죽음을 선고하실 수 있는 분이 그들로부터 잔인한 취급을 당하셨다.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사랑과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부터 죄를 지는 분이 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이 그분으로 당신이 구원하러 오신 자들로부터 당하는 야비한 대접을 불평 없이 참도록 해 주었다. 당신에게 던져지는 인간들의 모든 조롱과 모욕을 인성으로 견디시는 것이 그분의 사명의 일부였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그분이 사람들의 손과 마음에서 빚어지는 온갖 것들을 견디어 내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순종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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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고소하는 자들이 책잡을 만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포박을 당하셨는데 이는 그분이 정죄를 받으셨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처벌에 대한 구실이 있어야 했다. 법률이 요구하는 심문의 형식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당국자들은 이 일을 급히 서두르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만일 그분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석방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였다. 또 심문과 처형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유월절 축제로 인하여 한 주일이 늦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계획이 좌절될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정죄하는 데 그들은 주로 폭도들의 소동에 의존하였고 이들 대부분이 예루살렘의 폭도들이었다.

한 주일 지체하게 되면 흥분이 가라앉을 것이며 어떤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량한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어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옹호하여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분이 행한 힘 있는 기적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어서 산헤드린에 대한 민중들의 적개심이 자극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행위는 비난을 받게 되고 예수님은 석방되어 군중들로부터 새로운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들의 의도가 밝혀지기 전에 예수님을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고소할 조건이 발견되어야만 하였다. 그들은 이제껏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가야바에게 데리고 가도록 명령했다. 가야바는 사두개파에 속해 있었고 그들 중의 얼마는 지금 예수님의 가장 지독한 원수였다. 가야바는 덕망이 없었으며 안나스처럼 가혹하고 무정하며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때는 아직 어둠이 깔린 이른 아침이었는데 무장한 무리가 죄수를 데리고 횃불과 등불을 밝히고 대제사장의 궁전을 향하여 나아갔다. 산헤드린 회원들이 모이고 있는 동안 그 곳에서 안나스와 가야바가 다시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으나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법정에서 의회가 소집되자 가야바는 의장석에 앉았다. 양편에는 재판관들과 심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자들이 앉아 있었다. 의장석 아래 심문대에는 로마 군병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예수께서는 심문대 맨 아래 단에 서 계셨다. 모든 군중들의 시선이 예수님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모두 다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그들 중 오직 예수님 한 사람만이 침착하고 평온하셨다. 그분을 두르고 있는 바로 그 분위기는 거룩한 감화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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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바는 예수님을 그의 적수로 간주해 왔었다. 구주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백성들의 열성과 그분의 가르치심을 즉시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태도가 대제사장의 맹렬한 질투심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야바는 그 죄수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고상하고 존귀한 예모에 감탄하였다. 그는 이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경멸하며 그 생각을 물리쳐 버렸다. 곧 예수께서 당신의 힘있는 이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기를 요구하는 그의 교만하고 비웃는 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의 말이 구주의 귀에는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백성들은 안나스와 가야바의 상기되고 악의에 찬 태도와 예수님의 침착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비교해 보았다. 냉담한 군중들의 마음속에서도 여기 있는 이 경건한 사람이 범죄자로 정죄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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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바는 그같은 감화력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심문을 재촉하였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큰 곤경에 빠졌다. 그들은 그분을 정죄하려고 했으나 어떻게 해야 이 일을 성취시킬 수 있을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의회 회원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분열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심각한 증오와 논쟁이 있었으며 어떤 논쟁점은 싸움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몇 마디의 말씀으로 그들 사이에 있는 편견을 자극시켜 그들의 분노를 자신으로부터 다른 데로 돌이키게 하실 수 있으셨다. 가야바는 이것을 알고 논쟁을 일으키는 일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위선자들과 살인자들이라고 비난하신 것을 증언할 수 있는 많은 증인들이 있었으나 그것을 내세우는 것은 이롭지 못했다. 사두개인들도 바리새인들과 맹렬한 논쟁을 벌일 때 그들에 대해 그같은 말을 사용했었다. 따라서 이런 증언은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는 로마인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유전들을 멸시하고 그들의 의식들 중 대부분을 불손하게 말씀하신 증거가 많았으나 유전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가 대단히 나빴으므로 이 증언 역시 로마인들에게 무가치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감히 그분을 안식일을 범하는 자라고 비난할 수 없었는데 이는 저희가 예수님의 사업의 성격을 나타내게 될 어떤 조사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의 병 고치는 이적들을 밝히게 되면 제사장들이 원하는 바로 그 목적이 좌절될 것이었다.

거짓 증인들은 매수되어 예수님이 반란을 선동하고 다른 정부를 세우고자 했다고 고소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이 모호하고 모순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문 중에 그들은 자신들의 진술이 거짓됨을 드러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봉사 초기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비유적인 예언의 말로 그분은 당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셨다.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 21). 이 말씀을 유대인들은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 중에 이것을 제외하고는 제사장들이 그분을 대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 말을 악용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였다. 로마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장식하는 일에 오랫동안 종사해 왔으며 그 일을 큰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러므로 이것에 대한 어떤 멸시도 분명히 그들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이 문제로 로마인들과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연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다 성전을 크게 존경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두 사람의 증인이 나타났고 그들의 증언은 다른 사람들이 증언한 것처럼 그렇게 모순되지 않았다. 그들 중 예수님을 비난하도록 뇌물을 받은 한 사람이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고 선언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잘못 전달되었다. 만일 그들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보고했더라면 그들은 산헤드린 회의에서조차 그분에 대한 선고를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 단순한 한 사람에 불과하셨다면 그분의 선언은 다만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이요 과장된 정신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며 참람된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록 거짓 증언에 의하여 잘못 전해졌을지라도 그분의 말에는 로마인들이 볼 때 사형에 처할 만한 죄목이 아무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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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모순된 증언들을 참을성 있게 들으셨다. 그분은 자기 방어를 위하여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마침내 예수님을 고발하던 자들 사이에 분규가 일어나게 되고, 당혹하고 발광하게 되었다. 재판은 진전되지 못하고 그들의 음모는 좌절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야바는 절망적이었다. 한 가지 최후 수단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정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대제사장은 재판석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격앙되어 일그러졌고 그의 음성과 태도는 분명히 자기 앞에 서 있는 죄수를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는 잠잠하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마침내 가야바는 그의 오른손을 하늘로 향하여 들고 엄숙한 선서의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예수님에게 말했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이런 요청에 그리스도께서는 잠잠히 계실 수 없었다. 잠잠할 때와 말할 때가 따로 있었다. 그분은 직접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대답하는 것은 당신의 죽음을 확실하게 하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러나 그 요청은 민족의 공인된 최고의 권위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대한 올바른 존경심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더욱이 아버지께 대한 당신 자신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품성과 사명을 분명하게 선언하셔야 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분은 자신의 모본으로써 그 교훈을 반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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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대답하실 때에 모든 사람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모든 사람의 눈이 그분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수께서 덧붙여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실 때에 하늘의 빛이 그분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동안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분의 인성의 자태를 통하여 빛났다. 대제사장도 구주의 꿰뚫어 보는 시선 앞에 두려워서 떨었다. 그 시선은 대제사장의 숨겨진 생각을 읽고 그의 마음을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일생 동안 핍박받으시던 하나님의 아들의 그 엄중한 시선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 가운데서 그때에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일어날 것을 보여 주셨다. 생명과 영광의 주로서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이다. 그분은 온 세상의 재판관이 되실 것이며 그분의 판결에는 상소(上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에 모든 은밀한 일들이 하나님의 얼굴의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이며 각 사람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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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말씀은 대제사장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으며 그 때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을 받으리라는 생각은 가야바에게 공포심을 주었다. 그는 장래에 자신의 행위대로 선고를 받으리라는 사실에 대하여 믿기를 원치 않았다. 최후의 심판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그의 마음에 밀려들어왔다. 잠시 동안 그는 무덤들이 죽은 자들을 내어 주는 무서운 광경과 그가 영원히 감추어지기를 바랐던 비밀들을 보았다. 잠시 동안 그는 마치 영원한 재판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꼈고 만물을 보시는 재판관의 눈이 그의 심령을 읽으시며 죽은 자와 함께 감추어졌다고 생각한 비밀들이 밝히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 광경이 제사장의 환상에서 사라졌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두개인인 그의 급소를 찔렀다. 가야바는 부활과 심판과 내세에 관한 교리를 부인하였다. 이제 그는 사단과 같은 분노로 발광하였다. 자기 앞에 있는 이 죄수가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학설을 논박하려고 하는가? 그는 자신이 짐짓 가장하고 있는 공포를 백성들이 보도록 그의 예복을 찢으면서 단도직입적으로 죄수가 참람된 말을 했으므로 정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정죄하였다.

분노가 뒤섞인 확신이 가야바로 하여금 그처럼 행동하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자기 자신에 대해 격분했다. 그는 진리에 대한 깊은 자각으로 자기의 마음을 찢고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고백하는 대신에, 그것을 결정적으로 거절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제사장 예복을 찢었다. 이 행위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가야바는 이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재판관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리스도를 정죄케 한 이 행위로 대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정죄했다.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그는 제사장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대제사장은 자기 의복을 찢어서는 안 되었다. 레위인의 율법에 의하면 이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금지된 행위였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경우에도 제사장은 그의 예복을 찢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유대인들 중에는 친구가 죽을 때에 옷을 찢는 풍속이 있었으나 이 풍속을 제사장들은 지키지 말아야 했다. 이것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에게 분명히 명령하셨다(레 10:6).

시대의 소망 pp. 698-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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