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63일

예수께서는 마르다의 믿음을 격려하면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대답은, 즉시 변화된다는 희망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마르다의 생각을 그의 오라비의 현재의 부활을 넘어서 의인의 부활로 이끄셨다. 이 일로 그분은 마르다가 나사로의 부활을 통하여 모든 죽은 의인의 부활에 대한 보증과 구주의 능력이 이를 이루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마르다의 신앙에 참된 방향을 제시해 주려고 더욱 노력하면서,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에게는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요일 5:12)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믿는 자에게 영생에 대한 보증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셨다. 이 곳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의 재림의 때를 내다보신다. 그때 죽은 의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하겠고 살아 남은 의인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데려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곧 행하시려는 이적은 죽은 모든 의인의 부활을 대표한 것이다. 당신의 말씀과 행하신 일로써 그분께서는 자신이 부활의 창시자임을 선언하셨다. 오래지 않아 몸소 십자가에서 죽으실 그분은 사망의 열쇠를 잡고 무덤의 정복자로 서서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당신의 권리와 능력을 주장할 분이셨다.

“네가 믿느냐”는 구주의 말씀에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깊은 뜻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분의 신성을 믿는 믿음과 당신께서 하시기를 기뻐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다는 자기의 신념을 고백하였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기회만 오면 예수님을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마르다는 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기별을 전달하였다. 곡하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그녀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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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별을 듣자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방에서 나왔다. 마리아가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 알고 조문객들은 그녀를 따라갔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기다리고 계신 곳에 오자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떨리는 입술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애곡자들의 울음소리는 그녀에게 심한 괴로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조용히 예수님과 따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곳에 있던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질투심과 증오심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슬픔을 다 표시하기를 삼갔다.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그분께서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으셨다. 그분은 슬픔을 표명하는 것처럼 행하던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분은 지금 짐짓 슬픔을 나타내고 있는 무리 중에 얼마는 머지않아 능력 있는 이적을 행하시는 분뿐만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자까지도 죽일 계획을 세울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꾸며낸 슬픔의 옷을 벗길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의분을 참으셨다. 모두가 사실인 말씀을 그분은 하실 수 있었지만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당신을 참으로 믿은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서 당신 발 앞에 엎드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어디 두었느냐”고 그분께서 물으실 때에 그들은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함께 무덤으로 나아갔다. 슬픈 장면이었다. 나사로는 크게 사랑을 받았다. 그의 친구였던 이들이 오라비를 여윈 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데, 그의 누이들은 그를 위하여 가슴이 찢어지듯이 울었다. 이 인간의 고통, 그리고 이 세상의 구주께서 곁에 서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괴로움을 당한 친구들이 죽은 자에 대하여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분은 인성을 쓰셨으며 따라서 인간의 슬픔에 감응되셨다. 그분의 부드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언제나 고통 받는 자에게 동정을 느꼈다. 그분은 우는 자와 같이 우시고 기뻐하는 자와 같이 기뻐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신 것은 다만 마리아와 마르다를 동정하는 인간적인 동정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분의 눈물에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인간적인 슬픔보다 더 높은 슬픔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를 위하여 울지 않으셨다. 그 까닭은 그를 무덤에서 곧 불러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지금 나사로를 위하여 슬피 울고 있는 자들 중의 여러 사람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당신을 죽일 계획을 곧 세우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셨다. 그러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눈물을 올바르게 해석하기란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었는가! 그분의 슬픔의 원인에 대하여 그분 앞에 드러난 장면의 외부적인 사정밖에는 알지 못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라고 소곤소곤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신의 씨를 떨어뜨릴 기회를 엿보면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고 비웃었다. 만일 나사로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그리스도에게 있었다면 왜 그분은 그 때에 나사로를 죽게 내버려두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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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적 안목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증오심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죽이기 위하여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아셨다. 그분은 지금 겉으로 매우 동정하는 듯이 보이는 자들이 얼마 안 있어 희망의 문과 하나님의 도성의 문을 스스로 닫으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 욕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상황이 발생하려고 하였는데, 그 결과로 예루살렘은 멸망하게 될 것이요 그 때에는 아무도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다가올 징벌이 그분 앞에 분명하게 그려졌다.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이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포위당하는 것을 보셨다. 그분은 지금 나사로를 위하여 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도성이 포위될 때에 죽게 될 것이며, 저희의 죽음에는 희망이 없을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 우신 것은 당신 앞에 전개되는 장면 때문만이 아니었다. 각 시대의 모든 슬픔의 무거운 짐이 그분 위에 놓여졌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범법의 무서운 결과를 보셨다. 그분께서는 아벨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세상 역사에는 선과 악의 투쟁이 간단없이 계속되어 왔음을 보셨다. 미래를 내다보실 때에 그분은 고통과 슬픔, 눈물과 죽음이 사람들의 운명임을 보셨다. 각 시대와 각 나라에 사는 인간 가족들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였다. 죄 많은 인간의 재난은 그분의 심령을 무겁게 짓눌렀고 그분이 그들의 모든 고통을 덜어 주려고 하셨을 때에 그분의 눈물샘이 터졌던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나사로는 바위 동굴 속에 안치되어 있었으며 그 출입구는 큰 돌로 막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마르다는 그분께서 시체를 단지 한 번 보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장사한 지 나흘이나 지나 시체가 벌써 썩기 시작했다는 말로써 거절하였다. 나사로를 부활시키기 전에 한 이 말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에게 기만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지난번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기이하게 나타난 데 대하여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막 5:39)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다만 잠깐 동안만 앓았으며 죽었다가 곧 살아났으므로,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녀가 다만 잔다고 하신 것처럼 그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고 선언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병을 고칠 수 없으며 그분의 이적에는 부정행위가 있었던 것처럼 나타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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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하실 때에 사단은 사람들을 움직여서 반대하게 한다. “돌을 옮겨 놓으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가능한 한 내가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여라. 그러나 마르다의 적극적이며 지기 싫어하는 성질은 그 주장을 고집하였다. 마르다는 썩고 있는 시체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빨리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마르다의 신앙은 그분의 약속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는 마르다를 책망하셨지만 그분의 말씀은 아주 부드러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왜 그대는 나의 권능을 의심하는가? 왜 나의 요구를 반대하여 이론을 붙이는가? 그대는 내 말을 이미 들었다. 만일 그대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자연의 불가능이 전능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다. 회의와 불신은 겸손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참된 겸손이며 참된 자기 포기이다.

“돌을 옮겨 놓으라.” 그리스도께서는 돌을 명하여 옮겨지게 할 수 있었으며 돌은 그분의 음성에 순종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곁에 있는 천사들에게 명하여 이 일을 하실 수 있었다. 그분의 명령을 듣고 보이지 않는 손이 돌을 옮겨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돌은 인간의 손으로 옮겨져야만 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이 신성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셨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신성의 능력이 소환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주어진 능력과 역량을 사용할 때에 그에게 힘을 주고 그와 협력하신다.

명령은 순종된다. 돌이 옮겨진다. 모든 일은 다 공개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모두들 어떤 속임수도 행해지지 않음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바위로 된 무덤 가운데 나사로의 시체가 놓여 있는데 죽어서 차디차고 움직이지 않는다. 애곡자들의 울음소리가 그친다. 놀라움과 기대에 찬 무리들은 무덤 주위에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주목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조용히 무덤 앞에 서신다. 신성하고 엄숙함이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 더 가까이 걸어가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참람되다고 그분을 비난한 바 있었으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으로 그분에게 돌을 던졌다. 그들은 사단의 권세로 이적을 행한다고 그분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당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완전한 확신 가운데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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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아버지와 협력하셨다. 언제나 그분은 홀로 일하지 않으셨으며 믿음과 기도로써 이적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려고 매우 주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셨다. 그분께서는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관계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가 주어질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장이 기만이 아니었음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다. 맑고 드높은 그분의 음성이 죽은 자의 귀를 울렸다.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에 신성은 인성을 통하여 번쩍거렸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난 얼굴에서 백성들은 그분의 능력의 보증을 볼 수 있었다. 모든 눈은 동굴의 입구로 쏠렸고 모든 귀는 가장 작은 소리라도 들으려고 기울여졌다. 열렬하고도 근심스러운 호기심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분의 주장을 실증하든지 혹은 희망을 영원히 소멸시킬 증거, 즉 그분의 신성에 대한 시험의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요한 무덤 속에서 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죽었던 자가 무덤 문 곁에 선다. 그의 동작은 그에게 입혀진 수의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놀라서 보고 있는 자들에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다시 인간 일꾼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본다. 인간은 인간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나사로는 자유롭게 되어, 병으로 쇠약해진 사람처럼 연약하고 비틀거리는 다리로 서는 것이 아니라 혈기 왕성하고 건강한 사람의 활력으로 무리들 앞에 선다. 그의 눈은 총명과 구주에 대한 사랑으로 빛난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서 경배한다.

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처음엔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장면이 벌어진다. 누이들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저희 오라비의 생명을 도로 찾게 되자 기쁨의 눈물에 목멘 음성으로 구주께 감사를 표시한다. 오라비와 누이들과 친구들이 재회를 기뻐하고 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 장소에서 떠나가신다. 그들이 생명을 주신 분을 찾을 때에 그분은 이미 거기 계시지 않는다.

시대의 소망 pp. 53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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