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62일

58장 “나사로야 나오라”

가장 확고한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있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사랑이 깊었으며 또한 구주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가장 큰 이적은 나사로를 위하여 행해졌다. 구주께서는 당신의 도움을 구한 모든 사람을 축복하셨다. 그분은 모든 인간 가족을 사랑하시나 특별히 친근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의 마음은 베다니에 사는 한 가족과 두터운 정분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가족 중의 한 사람을 위하여 가장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나사로의 가정에서 휴식을 얻으셨다. 구주께서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제자들의 후한 대접에 의존하셨으며, 가끔 피로하고 인간의 우정이 갈급할 때에는 분노한 바리새인들의 의심과 질투에서 벗어나 이 평화스러운 가족에게로 도피하기를 즐기셨다. 이곳에서 그분은 진심어린 환영과 순결하고 거룩한 우정을 발견하셨다. 당신의 말씀이 이해되고 소중히 간직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분은 여기서는 단순하고도 완전히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우리 구주께서는 조용한 가정과 흥미를 가지고 듣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상냥한 마음, 예의와 애정을 사모하셨다. 하늘에서 주신 교훈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그분은 언제나 큰 축복을 나누어 주려고 하셨다. 군중들이 야외에서 그리스도를 따라다닐 때에 그분은 그들에게 자연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분께서는 군중들의 이해의 눈을 열어 저들로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세상을 붙드시는가 깨닫도록 노력하셨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옳게 평가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 똑같이 주시는, 고요히 내리는 이슬과 촉촉이 적시는 소낙비와 밝은 햇빛에 청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사람들이 더욱 충분히 깨닫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청중들은 잘 듣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공중 생애의 피곤한 투쟁에서 떠나 베다니에 있는 그 가정에서 휴식처를 찾으셨다. 이곳에서 그분은 들어서 식별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책을 공개하셨다. 잡다한 군중에게는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그분은 이런 개인적인 회합에서 말씀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친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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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놀라운 교훈을 주실 때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듣는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때에 음식 준비하는 일로 당황한 마르다가 그리스도께 나아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다니에 처음 방문하셨을 때의 일이다. 구주와 그분의 제자들이 여리고로부터 도보로 수고스러운 여행을 한 직후였다. 마르다는 그들을 대접하기 위한 준비를 염려한 나머지 손님에게 베풀어야 할 예의를 잊어버렸다. 예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는 온화하고 참을성 있는 말씀으로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보다도 자기에게 더 귀중한 말씀 곧 구주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귀중한 말씀을 그의 심령에 채우고 있었다.

마르다에게 필요되는 “한 가지”는, 침착하고 헌신적인 정신과 장래와 영생에 관한 지식을 깊이 갈망하는 마음과 영적으로 향상하는 데 필요한 은혜였다. 마르다는 잠시 후에 지나가버릴 일을 위해서 덜 염려하고, 영원히 존속하는 일을 위하여 더욱 염려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저들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만들어 줄 그러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도록 가르치고자 하셨다. 그리스도의 사업에는 주의성 깊고 정열적인 일꾼이 필요하다. 마르다와 같은 사람들이 활동적인 종교 사업에 저희 열심을 다할 넓은 분야가 있다. 그러나 그들을 먼저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 앞에 앉게 하라. 근면과 기민성과 정력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화되게 하라. 그러면 그 생애는 선을 위한 무적의 능력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쉬시곤 했던 평화스러운 가정에 슬픔이 찾아왔다. 나사로가 갑자기 병에 걸렸다. 그래서 그의 누이들은 구주께 사람을 보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란 말을 전하였다. 그들은 오라비가 무서운 병에 걸린 것을 알았으나 그리스도께서 각종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음을 보이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고민에 빠진 저희를 그분께서 동정하시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곧 오시라는 긴급한 요구를 하지 않고 다만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는 기별을 보냈다. 그들은 그분께서 저희 기별에 즉시 응답하여 베다니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에게로 오시리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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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근심스럽게 예수님에게서 오는 소식을 기다렸다. 저희 오라비가 아직 살아서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저들은 기도하며 예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자는 그분을 모시고 돌아오지 못했다. 다만 그는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는 기별을 가져왔다. 그들은 나사로가 살게 되리라는 희망에 굳게 매달렸다. 그들은 거의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부드럽게 희망과 격려의 말을 하려고 애썼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느꼈기 때문에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구주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는 않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기별을 들으셨을 때 제자들은 그분이 기별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였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기대한 슬픔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분께서는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틀 동안 그분은 계시던 그 곳에 머무르셨다. 이렇게 지체하시는 까닭을 제자들은 알 수 없었다. 그분께서 가셨더라면 고통당하는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 하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베다니에 사는 가족에 대한 그분의 강한 애정을 제자들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분께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는 슬픈 소식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마음에서 그 소식을 깨끗이 잊으신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이틀 동안 나사로에 대하여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선구자인 침례 요한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놀라운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예수께서 어찌하여 요한을 옥에서 신음하게 하고 마침내 참혹한 죽음을 당하도록 허락하셨는지 의심하였다.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도 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생명을 구원하지 않으셨을까? 바리새인들은 때때로 이 질문을 하곤 했는데 그들은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주장을 꺾는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이라고 제시하였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시련과 손실과 핍박에 관하여 경고하셨다. 시련이 닥칠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버리실 것인가? 제자들 중 어떤 이들은 저들이 그분의 사명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심각한 고민 가운데 있었다.

이틀을 기다린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유대로 가실 양이면 왜 이틀 동안이나 기다리셨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자신들을 위한 염려가 가장 먼저 저희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들은 그분께서 가시려고 하는 행로에서 위험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었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지도 아래 있다. 내가 그분의 뜻을 행하는 한 내 생명은 안전하다. 내 날의 열두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내 날의 마지막 남은 부분에 이르렀으나 이 나머지 부분이 있을 동안 내 생명은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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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계속해서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걷는 자는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영의 빛은 그의 의무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줄 것이며 그의 사업이 마칠 때까지 바른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지 않은 곳 즉 자기 자신이 선택한 길로 행하는 자는 실족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낮이 밤으로 변했으므로 어느 곳에 있든지 그는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얼마나 감동적인 말씀인가! 얼마나 동정심이 가득 찬 말씀인가! 제자들은 저희 주께서 예루살렘에 가심으로 입게 될 위험을 생각하여 베다니의 유가족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책망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 좀 더 빨리 그 기별에 응하지 않으신 까닭에 그들은 실망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에게 그윽한 사랑을 갖고 계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도록 유혹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서둘러 사자와 함께 돌아가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는 말씀은 그들의 마음에 올바른 생각을 일깨웠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고통당하는 친구들을 잊지 않고 계셨음을 확신하였다.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죽음을 잠으로 묘사하신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지며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까지 그분 안에서 잠잘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셨다. 도마는 유대로 가는 경우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죽음밖에 없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였다. 도마는 그리스도께 대한 유대인들의 증오심을 알고 있었다. 그분을 죽이는 것이 유대인들의 목적이었으나 그분에게 할당된 때가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목적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때까지 예수께서는 하늘 천사들의 보호를 받으셨으므로 랍비들이 그분을 어떻게 잡아서 죽일 것인가를 음모하던 바로 그 유대 지방에서도 그분께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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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기뻐하노니”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이상히 여겼다. 구주께서는 과연 고통받는 당신의 친구들의 가정을 고의로 피하셨을까?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죽어가는 나사로는 분명히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광경을 다 보셨고 나사로가 죽은 후 그 남은 누이들은 당신의 은혜로 격려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강한 원수인 죽음과 더불어 투쟁하는 오빠를 보고 마음이 찢어지듯이 슬퍼하는 그들을 목격하셨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말할 때에 그분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사랑하는 그들만을 생각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제자들의 교육도 생각하셔야 했다. 제자들은 아버지의 축복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도록 그분의 대리자로서 세상에 보내질 것이었다. 그들을 위하여 그분은 나사로를 죽도록 허락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나사로를 병에서 회복시키셨더라면 예수님의 신적인 신분을 가장 명확하게 증거하는 그 이적은 행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병실에 계셨더라면 사단이 그를 이길 힘이 없었을 것이므로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의 시여자 앞에서 죽음은 그 창을 나사로에게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멀리 떠나 계셨다. 원수가 그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분이 정복한 원수로부터 나사로를 다시 찾아오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나사로가 죽음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으며, 고통 받는 누이들은 저희 오빠가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오라비의 죽은 얼굴을 바라볼 때에 구주에 대한 믿음이 격렬하게 시험받을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겪는 투쟁으로 말미암아 저희 믿음이 더욱 큰 능력으로 빛나게 될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한 모든 슬픔의 고통을 경험하셨다. 그분께서 지체하신 것은 그들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그들과 나사로와 자신과 제자들을 위하여 승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다.

“너희를 위하여”,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낙담의 순간은 바로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때이다. 그들은 저희 길의 어두운 부분을 감사함으로 돌아볼 것이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벧후 2:9) 어떻게 건지실 줄을 아신다. 모든 시험과 시련을 통하여 그들을 더욱 굳건한 믿음과 더욱 풍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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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에게 가는 것을 지체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했다. 그분께서 지체하심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킴으로 말미암아 완고하고 불신하는 백성들에게 당신이 과연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또 다른 증거를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이스라엘 집의 방황하는 가련한 양들의 모든 희망을 좌절시키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마음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분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당신은 만물의 회복자시요 생명과 불멸을 가져올 수 있는 분이라는 또 하나의 확증을 주시기로 계획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결코 잘못 해석할 수 없는 증거가 될 것이었다. 그분이 베다니에 가기를 지체하신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사로를 살리는 이 최고의 이적은 그분의 사업과 신성에 대한 주장에 하나님의 인을 찍는 일이었다.

베다니로 여행하는 도중에 예수께서는 여느 때처럼 병들고 곤궁한 자들에게 봉사하셨다. 마을에 도착하자 그분은 사자를 보내 도착했다는 기별을 누이들에게 전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곧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길가의 조용한 곳에 머물러 계셨다. 친구나 친척이 죽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행하는 큰 허례허식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고용된 애곡자들의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런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그 누이들을 만나고 싶지 않으셨다. 통곡하는 친구들 가운데는 친척들과 예루살렘에서 중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원수들도 있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의도를 아셨으므로 즉시 자신을 알리지 않으셨다.

매우 조용하게 기별이 마르다에게 전해졌으므로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였다. 슬픔에 잠겨 있던 마리아도 그 말을 듣지 못하였다. 마르다는 곧 일어나 주님을 영접하러 나갔으나 마리아는 마르다가 나사로를 장사한 그 곳에 간 줄로 생각하면서 소리내어 울지 않고 슬픔에 싸여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고자 서둘렀으나 그의 마음은 엇갈리는 감정들 때문에 흔들렸다. 그분의 얼굴 표정에서, 항상 나타내시던 똑같은 친절과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예수께 대한 마르다의 신뢰심은 깨지지 않았으나 예수께서 사랑하셨고 자기 역시 극진히 사랑했던 오빠를 생각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일찍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가슴에 깊은 비통함이 있었으나 이제라도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시리라는 희망으로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애곡자들 때문에 떠들썩한 가운데 누이들은 여러 번 이 말을 되풀이하였다.

인간적이고 신적인 동정심으로 예수께서는 슬픔에 가득 차고 근심으로 여윈 마르다의 얼굴을 바라보셨다. 마르다는 지난 일을 되풀이하여 이야기하지 않고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란 비애에 가득 찬 말로 모든 것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사랑의 얼굴을 바라보며 덧붙여 말하기를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하였다.

시대의 소망 pp. 52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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