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28일

26장 가버나움에서

예수께서는 여기저기 다니는 여행의 막간에는 가버나움에서 사셨으므로 그 곳은 “예수의 고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도시는 갈릴리 바다의 해안에 있었다. 실제로 아름다운 게네사렛 평야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그 변두리에 있었다.

호수의 깊은 침강(沈降)은 해안을 두른 그 평야에 남부의 온화한 기후를 조성시켜 준다.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이곳에 종려나무와 감람나무가 무성하였으며 과원과 포도원과 푸른 들판과 화려하게 만발한 꽃들이 모두 벼랑에서 분출되는 생수를 공급받고 있었다. 호수의 기슭과 좀 떨어져 호수를 두른 언덕들에는 고을과 마을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호수는 고기 잡는 배들로 덮여 있었다. 어디에나 바쁘고 활동적인 생활의 움직임이 있었다.

가버나움 자체는 구주의 사업의 중심이 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그 도시는 다메섹에서 예루살렘과 이집트 및 지중해에 이르는 대로상에 있었으므로 왕래가 심한 여행의 통로였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 도시를 지나갔고 혹은 이 곳 저곳 여행하는 길에 쉼을 얻기 위하여 머무르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 곧 부자와 위인과, 가난한 자와 미천한 자를 함께 만날 수가 있으셨으며 그분의 교훈은 다른 나라들과 많은 가정에 전해질 것이었다. 그리하여 예언을 상고하는 일이 일어나고 관심은 구주에게로 향하여지며 그분의 사명이 세상 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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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분의 사명이 발전되기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었다. 온 하늘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 천사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구주께로 이끌면서 그분의 봉사를 위한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가버나움에서 그리스도께서 고쳐주신 왕의 신하의 아들은 그분의 능력에 대한 한 증거였다. 그리하여 그 신하와 그의 집안은 그들의 신앙을 기쁘게 증언하였다. 그 선생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 알려지자 온 동네가 들먹거렸다. 무리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모여들었다. 안식일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어서 되돌아갔을 정도로 사람들이 회당에 모였다.

구주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눅 4:32; 막 7:29).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가르침은 기계적으로 배운 교훈과 같이 냉랭하고 형식적이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없었다. 그들 자신의 사상과 유전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습관적인 의식의 굴레 속에서 율법을 설명하노라 했지만 그들 자신의 마음이나 듣는 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감은 전혀 없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분분했던 여러 가지 주제들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으셨다.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그분의 사업이었다. 그분의 말씀은 족장들과 선지자들의 교훈에 환한 빛을 비춰 주었으므로 성경의 말씀이 새로운 계시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그분의 청중들은 이전에 결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그토록 심오한 의미들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곤고함을 익히 아시는 분으로서 사람들을 그들의 처지에서 만나셨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가장 직접적이고도 단순한 방법으로 제시하심으로써 그것을 아름답게 하셨다. 그분의 언어는 깨끗하고 세련되었으며 흐르는 물처럼 맑았다. 랍비들의 단조로운 어조의 말을 들어왔던 자들에게 그분의 음성은 마치 음악과 같이 들렸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그분은 권세 있는 자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특징이 그분의 가르침을 모든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과 대조가 되게 하였다. 랍비들은 마치 성경 말씀이 한 가지 사물이나 혹은 그와는 정반대의 사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하고 주저하면서 말하였다. 듣는 자들은 날마다 더욱 큰 불확실성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을 의심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책으로 가르치셨다. 그분이 제시하시는 주제가 무엇이든지간에 그분의 말씀은 전혀 논박할 수가 없는 것처럼 권세 있게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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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분은 열정적이라기보다는 진지하셨다. 그분은 이루어야 할 명백한 목적을 가진 자처럼 말씀하셨다. 그분은 영원한 세계의 실재들을 나타내 보이고 계셨다. 모든 주제 가운데 하나님이 드러나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땅에 속한 사물에 열중하게 하는 홀림의 마술을 깨뜨리려고 하셨다. 그분은 이생의 사물들을 영원한 관심사들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제 위치에 놓으셨다. 그러나 그것들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늘과 땅은 함께 연결되어 있으며 하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은 사람들에게 매일 생애의 의무들을 더욱 잘 수행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은 하늘과 친밀한 자로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의식하셨으면서도 인간 가족의 매 식구와 하나 됨을 인식하는 가운데 말씀하셨다.

그분의 자비의 기별들은 청중들에게 맞게끔 다양하였다. 그분은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사 50:4) 아셨다. 이는 그가 가장 매력적인 방법으로 진리의 보화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의 입술에 은혜가 부어진 때문이었다. 그분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대면하여 그들의 관심을 끄는 실례들을 제시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지셨다. 그분은 상상력을 통하여 사람의 심령을 감동시키셨다. 그분의 실례들은 일상생활의 사물들에서 취하여졌으며, 비록 단순하였지만 그 안에는 놀라우리만큼 깊은 의미가 들어 있었다. 공중의 새들, 들에 핀 백합화, 씨앗 그리고 목자와 양 등 이런 실물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진리를 예증하셨으며 청중들은 그 후 언제든지 천연계의 이런 사물들을 보게 될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예증들은 당신의 교훈을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결코 아첨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결코 그들의 공상이나 상상을 높이는 말을 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영악한 창안들을 칭찬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깊고 편견이 없는 사색가들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였으며 그 교훈이 그들의 지혜를 시험하였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가장 단순한 언어로 표현된 영적 진리에 경탄하였다.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 그분의 말씀에 매혹되었으며 무교육자들은 항상 유익을 얻었다. 그분은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별을 가지고 계셨으며, 심지어 이방인들을 위한 기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로 깨닫게 하셨다.

그분의 부드러운 동정은 지치고 상한 마음들 위에 치유하는 접촉이 되어 임하였다. 성난 원수들의 소요 속에서도 그분은 화평의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그분의 용모의 아름다움, 그분의 품성의 자애로움, 그 중에서도 표정과 음성 속에 표현된 사랑이 불신으로 마음이 무디어지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당신께로 이끌었다. 모든 외모와 말 가운데 비친 친절하고 동정 깊은 정신이 아니었다면 예수께서는 큰 회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께로 왔던 고통 받는 자들은 그분께서 충실하고 친절한 친구가 되셔서 당신의 관심을 그들의 관심에 연결시키셨음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진리를 더욱 알기를 갈망하였다. 하늘이 가까이 임하여 있었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의 위로가 그들과 계속적으로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의 임재하심 안에 머물기를 갈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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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는 자들의 변화하는 안색을 깊은 진실성을 가지고 주시하셨다. 흥미와 즐거움을 나타낸 얼굴들은 그분에게 큰 만족을 주었다. 진리의 화살이 심령을 꿰뚫고 이기심의 방벽을 허물며 회개를 일으켜서 마침내 감사의 마음이 되게 할 때 구주께서는 기뻐하셨다. 그분의 눈이 청중을 바라보다가 전에 보았던 얼굴들을 그 가운데서 알아내실 때에 그분의 용모는 기쁨으로 환하여졌다. 그분은 그들 가운데서 당신의 나라의 유망한 백성들을 보셨다. 명백하게 언급된 진리가 마음에 품은 어떤 우상과 접촉할 때에 그분은 안색이 냉정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변하는 것을 보셨는데 이는 곧 그 빛을 싫어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화평의 기별을 거절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심히 아프셨다.

회당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세우려고 오셨던 나라와 사단에게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기 위한 당신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은 공포에 질린 비명으로 말미암아 중단되었다. 어떤 광인이 사람들 가운데서 뛰쳐나오면서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외쳤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 혼란과 경악 속에 빠졌다. 사람들의 주의가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섰으며, 그분의 말씀은 유의되지 않았다. 이것이 사단이 그의 희생자를 회당으로 인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귀를 책망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이 처참한 고난자의 마음은 사단에 의해 어두워졌으나 구주의 임재 앞에서 한 줄기의 빛이 암흑을 꿰뚫었다.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러나 귀신이 그리스도의 능력에 저항하였다. 그 사람이 예수께 도움을 호소하려고 할 때 악한 영이 그의 입에 말을 넣어 주었다. 그는 공포의 괴로움 가운데서 소리를 질렀다. 귀신 들린 사람은 자기를 자유케 하실 수 있는 분 앞에 있다는 것을 얼마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위대하신 손을 붙잡을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가려고 힘쓸 때에 또 하나의 다른 의지가 그를 붙들어서 다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단의 능력과 자유를 구하는 그의 욕망 사이의 투쟁은 처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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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시험에서 사단을 정복하신 그분께서 당신의 원수와 다시 대면하게 되셨다. 마귀는 그의 희생자를 계속 지배하기 위해 온갖 능력을 다 발휘하였다. 여기에서 패퇴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승리를 안겨 주는 것이 될 것이었다. 고통을 당한 그 사람은 그의 인격을 파멸시켜 온 그 원수와의 투쟁에서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구주께서 위엄을 가지고 말씀하시므로 그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셨다. 귀신 들렸던 그 사람은 놀라워하는 사람들 앞에 평정(平靜)으로 돌아간 자유를 가지고 행복스럽게 서 있었다. 심지어 마귀까지 구주의 하늘의 능력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 광증으로 번쩍거리던 눈이 이제는 지성적인 광채로 밝아지고 감사의 눈물로 넘쳐흘렀다. 백성들은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말을 다시 하게 되자 그들은 피차간에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막 1:27)라고 말하였다.

이 사람을 그의 친구들에게는 두려운 모습이 되게 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괴로움이 되게 한 그 재앙의 은밀한 원인은 그 자신의 생활 속에 있었다. 그는 죄의 향락에 빠져서 인생을 대환락으로 삼으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그의 가족에게 치욕을 안겨 주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천진한 어리석은 행위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번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그의 발은 급속히 타락의 길에 떨어졌다. 부절제와 천박한 행동이 그의 성품의 고상한 속성들을 왜곡시키고 사단이 그를 완전히 지배했다.

후회는 너무나 늦게 찾아왔다. 그가 자신의 잃어버린 인격을 되찾기 위하여 재물과 향락을 희생시키려고 하였을 때에 그는 이미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무력하게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원수의 땅에 두었으므로 사단이 그의 모든 능력들을 점령하여 버렸다. 시험하는 자는 그 사람을 많은 매력적인 것들로 유혹하였다. 그러나 일단 그 불행한 사람이 자신의 세력 아래 들어 왔을 때에 마귀는 그를 참혹하리만큼 잔인하게 취급했고 성난 가운데 끔찍스러운 재액을 안겨 주었다. 악에 굴복하는 자는 모두 이와 같이 될 것이다. 그들의 초기의 생애에 맛본 매혹적인 향락은 절망적인 흑암이나 영혼을 망치는 광증으로 끝을 맺게 된다.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시험하고 가버나움의 광인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악령이 불신하는 유대인들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에는 그가 경건의 모습을 가장하고 나타나 구주를 거절하는 그들의 동기에 대하여 그들을 기만하려고 하였다. 그들의 형편은 귀신 들린 자의 그것보다 더 희망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사단의 세력 아래 단단히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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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사이에서 하신 개인적인 봉사의 기간은 흑암의 왕국의 세력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였다. 오랫동안 사단은 그의 악한 천사들과 함께 사람들의 육신과 심령을 지배하여 그들에게 죄와 고통을 가져오려고 힘써 왔으며, 그런 후에 그는 이 모든 불행의 책임을 하나님께 씌웠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그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자유하게 하셨다. 하늘에서 오는 새 생명과 사랑과 그리고 권세가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고 있었고 악의 임금은 분기하여 그의 나라의 지상권(地上權)을 획득하기 위하여 항쟁하려고 하였다. 사단은 자신의 세력들을 소집하여 모든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항하였다.

의와 죄 사이의 마지막 대쟁투에 있어서도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생명과 빛과 능력이 하늘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내려오는 반면에 한 새로운 생명이 밑으로부터 솟아 올라와서 사단의 대리자들에게 활기를 준다. 모든 세상의 요소들이 점점 더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랜 세기 동안의 쟁투에서 얻은 교활함을 가지고 악의 임금은 변장한 채 활동한다. 그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므로 많은 사람들이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딤전 4:1)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교사들은 사단의 역사를 대항하는 데 무력하였다. 그들은 악령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의 수단을 등한히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악한 자를 이기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자라고 고백하였으나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유전을 지지하고 사람이 만든 그들의 계율(戒律)들을 시행하기 위해서만 연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주시지도 않은 취지를 그것이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의 신비적인 해석은 하나님께서 명백히 하신 것들을 불분명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무의미한 세부적인 문제에 대하여 논란하고 실질적으로는 가장 요긴한 진리들을 부인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불신의 씨앗이 널리 뿌려졌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능력을 잃고 악령이 그들의 뜻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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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 앞에 성경을 펴놓고 그 가르침을 존중한다고 공언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그 말씀을 잘게 해부하여 그 간명한 진술보다 자신의 의견을 높이는 일에 바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수중에서 그 갱생시키는 능력을 상실한다. 이것이 바로 불신이 횡행하고 죄악이 난무하는 이유이다.

사단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킨 다음, 사람들이 다른 근원에서 빛과 능력을 찾도록 지도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교묘하게 환심을 사는 것이다. 성경의 명료한 가르침과 하나님의 성령의 자각시키는 능력에서 돌아서는 자들은 마귀의 지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비평과 공론(空論)은 강신술과 접신학-고대 이교주의의 현대화된 형태들-에 대한 길을 열어서 심지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교회에서까지 그 발판을 얻게 했다.

거짓 영의 매개에 지나지 않는 세력들이 복음 전파와 나란히 활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호기심에서 이들과 장난을 하다가 인간의 능력 이상의 것이 역사하는 증거를 보게 됨으로 계속해서 꾀임을 받아 결국 자신의 의지보다 더 힘센 의지의 지배를 받기에 이른다. 그는 그 신비로운 능력에서 도피할 수가 없다.

영혼의 방벽은 무너진다. 그에게는 죄에 대한 방벽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제지를 일단 거절하게 되면 그 누구도 자신이 얼마나 깊은 타락의 구렁에 빠질는지 알지 못한다. 은밀한 죄와 무서운 정욕이 가버나움의 광인과 같이 그를 무력한 포로로 사로잡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형편은 희망이 없지는 않다.

우리가 사악한 자를 이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방법, 곧 말씀의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의가 없이는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원한다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을…알리라”(요 8:32, 7:17)는 그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된다. 이런 약속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오류의 함정과 죄의 지배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각 사람은 어떤 권세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할 것인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아무리 깊이 타락하고 죄악적인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귀신 들린 자는 기도 대신에 사단의 말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의 말없는 호소는 들렸다. 필요를 느끼는 영혼이 외치는 소리는 그것이 비록 말로 표현되지 못했을지라도 무시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로 동의하는 자들은 사단의 능력이나 그들 자신의 연약한 성정대로 행하도록 내버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는 구주의 초대를 받고 있다. 흑암의 영들이 한때 자신들의 지배 아래 있었던 그 영혼과 싸울 것이나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세한 힘을 가지고 그 영혼을 위하여 대항할 것이다. 주께서는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사 49:24, 25)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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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에 있던 회중들이 놀라움으로 여전히 넋을 잃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잠시 쉬기 위하여 베드로의 집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 예수께서 질병을 꾸짖으시자 환자가 일어나서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에게 수종들었다.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소식은 가버나움 전역에 급속히 퍼졌다. 백성들은 랍비들을 두려워하여 안식일에는 감히 치료를 받기 위하여 나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가정에서, 가게에서, 시장에서, 동네 주민들이 예수께서 쉬고 계시는 보잘것없는 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환자들은 들것에 실려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혹은 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허약하여 비틀거리면서 구주가 계신 곳으로 들어왔다.

여러 시간 동안 그들은 오고갔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이 치료자가 내일도 여전히 그들 가운데 계실지에 대해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버나움은 이전에 이와 같은 날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늘은 승리의 소리와 구원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구주께서는 당신이 일깨워 주신 기쁨 가운데서 즐거워하셨다. 예수께서 당신에게 온 자들의 고통을 목격하실 때에 그분의 마음에 동정심이 일어났으며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기뻐하셨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환자를 치료하시기까지는 일을 쉬지 않으셨다. 군중이 물러간 것은 밤이 꽤 깊은 때였다. 정적(靜寂)이 시몬의 집에 내려앉았다. 긴 흥분의 날이 지나가고 예수께서는 잠자리에 드셨다. 그러나 동네가 아직도 잠들어 있을 때에 구주께서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나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분은 가끔 제자들을 해산시켜서 그들의 가정으로 돌아가 쉬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을 그분의 활동에서 떠나도록 하려 할 때에는 이를 조용히 물리치셨다. 그분은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며, 앓는 자들을 고치며, 눈먼 자들을 보게 하며, 무리들을 먹이면서 종일 수고하다가 땅거미가 질 때나 혹은 이른 아침에 아버지와 교통하기 위하여 산의 성소를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분은 온 밤을 기도와 명상으로 보내다가 사람들 가운데서 일을 하기 위하여 먼동이 틀 때에 돌아오시는 일이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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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예수께 와서 가버나움 사람들이 벌써 그분을 찾고 있다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제까지 받으신 대접을 보고 심히 실망하였다.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하였으며 심지어 그분의 고향사람들까지도 그분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가버나움에서는 열광적인 기쁨으로 환영을 받았으므로 제자들의 희망은 다시 불타올랐다. 자유를 사랑하는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서 새 왕국의 지지자들이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그리스도께서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 당시 가버나움을 휩쓸던 홍분 가운데서 그분의 사명의 목적이 상실될 우려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단지 이적을 행하는 자나 육체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자로서 사람의 이목을 당신에게 이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그들의 구주로서의 당신에게로 이끌려고 하셨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세상적인 국가를 세우려고 왕으로서 오셨다는 것을 믿으려고 열망하는 동안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세상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돌리기를 원하셨다. 세속적인 성공만으로는 그분의 사업에 방해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부주의한 군중의 경탄은 그분의 정신에 거슬렸다. 그분의 생애에는 자기주장이 섞여 있지 않았다. 세상이 지위나, 부나, 재능에 표시하는 존경은 인자와는 관계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충성과 존경을 얻으려고 사용하는 방법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탄생하기 여러 세기 전에 그분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되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사 42:2~4)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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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철저한 의식 존중주의와 그들의 예배 및 자선 행위의 과시를 통하여 영예를 얻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신앙을 토론의 주제로 삼음으로 종교에 대한 자신들의 열성을 입증하였다. 반대파들간의 논쟁은 언성이 높고 시간이 길었으며 거리에서 유식한 율법 박사들의 성난 논쟁의 소리를 듣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런 모든 것과는 뚜렷이 대조되었다. 그분의 생애에서는 소란한 논쟁이나, 가식적인 예배나, 칭찬을 얻으려는 행위 등을 결코 목격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으며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품성 가운데 드러나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 계시로 향하게 하고 그들의 경의가 이 계시에 표해지기를 바라셨다.

의의 태양은 찬란하게 세상에 나타나서 그분의 영광으로 감각들을 현혹시키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호 6:3)라고 기록되었다. 일광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땅을 비추면서 어둠의 그림자를 흩어 버리고 세상을 활기 있게 만든다. 그와 같이 의의 태양은 “치료하는 광선을”(말 4:2) 가지고 떠오른다.

시대의 소망 pp. 25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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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y Constantines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