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23일

22장 요한의 투옥과 죽음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한 첫 번째 사람이었으며 또한 고난에도 으뜸가는 사람이었다. 광야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많은 무리에서 떠나서 요한은 이제 토굴 감방의 벽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헤롯 안디바의 성채 안에 있는 죄수가 되었다. 요한은 대부분의 봉사의 생애를 안디바가 지배하던 요단 동부 지역에서 보냈다. 헤롯 자신도 침례 요한의 전도에 귀를 기울였다. 방탕하던 왕은 회개하라는 부름을 듣고 떨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요한은 헤롯이 그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책망하면서도 그를 신실하게 대하였다. 헤롯은 얼마 동안은 자기를 속박한 정욕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려고 미미하게나마 노력하였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그를 자기의 올가미에 더욱 단단히 묶어 놓고 헤롯을 부추겨 요한을 투옥시킴으로써 그에게 복수하였다.

요한의 생애는 적극적인 활동의 생활이었으므로 그의 옥중 생활의 음침함과 무위(無爲)함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변함없이 여러 주일이 지나자 낙담과 의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감옥에 접근하도록 허용되었으므로 예수님의 사업에 대한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백성들이 어떻게 그분의 주위에 모여들고 있는지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일 이 새로운 교사가 메시야라면 그분은 왜 요한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지 의심하였다. 어떻게 그분께서 당신의 충실한 선구자가 자유와 아마도 생명까지 빼앗기도록 허용할 수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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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문들은 효과가 없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의심이 요한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사단은 이 제자들의 말을 듣고 또한 그들이 여호와의 사자의 심령에 상처를 준 사실을 보고 기뻐하였다. 자기 자신들을 착한 사람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그들의 충성을 보이려 애쓰는 자들이 그의 가장 위험한 원수들로 입증되는 일이 얼마나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가! 그의 믿음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그들의 말로 그의 의기를 저상(沮喪)시키고 낙심시키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구주의 제자들처럼 침례 요한도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를 취하시리라고 예기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구주께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당황하여 근심하게 되었다. 그는 주 앞에 길이 예비되기 위해서는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지가 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선언해 왔었다. 그는 버렸어야 할 인간적인 자만과 권력의 높은 지위들을 기대하였다. 그는 메시야를 그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으로 지적하였다. 요한은 선지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에게 왔다. 그는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친히 드러내시기를 기대하였다.

침례 요한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죄악을 두려움 없이 책망하는 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그는 담대하게 헤롯왕을 대면하여 그의 죄를 솔직하게 책망하였다. 그가 자신의 생명을 초개처럼 여긴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업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요한은 자기가 갇힌 옥에서 유다 지파의 사자가 압제자의 교만심을 무너뜨리고 울부짖는 가난한 자들과 자기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 주위에 제자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고치며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히 여기시는 것처럼 보였다. 날마다 로마의 멍에가 이스라엘을 더욱 무겁게 누르고, 헤롯왕과 그의 사악한 간부(姦婦)가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며,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의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세리들의 식탁에서 잡숫고 계셨다.

광야의 선지자에게는 이런 모든 것이 측량할 수 없는 신비처럼 보였다. 때때로 여러 시간 동안 마귀의 속삭임이 그의 정신을 괴롭게 하였으며, 심한 공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오랫동안 고대해 오던 구주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기별은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요한은 자기가 전도한 결과에 쓰디쓴 실망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 기별이 요시야와 에스라 시대에 율법을 낭독함으로 끼쳤던 것과 같은 결과를 끼칠 것이며(대하 34장; 느 8, 9장)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는 심층(深層)적인 사업이 잇따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의 온 생애는 이 전도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희생되어 왔다. 그 일은 헛된 일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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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자기를 위한 사랑 때문에 예수에 대한 불신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보고 염려하였다. 그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던가? 그가 자신의 사명에 충성한 결과로 이제 와서 활동을 못하게 끊어지는 것인가? 만일 약속된 구원자가 나타났고, 요한이 자기의 부르심에 충실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면 이제 예수께서 압제자의 권세를 타도하고 당신의 기별자를 해방시키지 않으실 것인가?

그러나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들린 음성, 성령의 비둘기 같은 강림, 예수의 흠 없는 순결성, 그리고 요한이 구주 앞에 나갔을 때에 그에게 임하였던 성령의 능력, 성경의 예언들의 증언 등 이러한 모든 기억이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분이심을 증거하였다.

요한은 자신의 의심과 염려를 동료들과 함께 토론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께 질문의 기별을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이 일을 자기 제자 중 두 명에게 위탁하였다. 구주와의 회견이 그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주고 그들의 형제들에게 확신을 가져다주게 되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직접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였다.

제자들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라는 기별을 가지고 예수님에게로 나왔다.

침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요 1:29, 27)고 선포한 지가 과연 얼마나 되었는가. 그런데 이제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성정으로는 너무나 심한 괴로움이요 실망이었다. 충실한 선구자 요한도 그리스도의 사명을 식별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자기만을 위하는 무리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었겠는가?

구주께서는 그 제자들의 질문에 즉시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님의 침묵을 궁금히 여기며 서 있을 때에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이 치유함을 받기 위하여 그분께로 나왔다. 맹인들은 군중을 뚫고 길을 더듬으면서 왔으며 온갖 종류의 병을 앓는 자들이, 어떤 자는 스스로 길을 재촉하며, 혹은 저희 친구들에게 운반되어 예수님 앞으로 열심히 나아오고 있었다. 능력 있으신 치료자의 음성이 귀머거리의 귀를 뚫었다. 한마디의 말씀, 그분의 손의 한 번의 접촉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여 일광과 자연의 경치와 친구들의 얼굴과 구원자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질병을 꾸짖었으며 열병을 쫓아내셨다. 그분의 음성이 죽어가는 자들의 귀에 들렸을 때에 그들은 건강과 활력을 가지고 일어났다. 귀신 들려 마비된 자들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에 광증이 그들을 떠나고 그들은 그분께 경배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한편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부정하다는 이유로 랍비들이 멀리하던 가난한 농부들과 노동자들이 그분 주위에 가까이 모였으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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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요한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동안에 그날은 저물어 갔다. 드디어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목격한 것을 가서 전하라고 명하면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눅 7:23). 그분의 신성의 증거가 고통당하는 인류의 필요를 채워 주는 가운데 나타났다. 그분의 영광은 우리와 같은 낮은 처지에까지 내려오신 그분의 겸비에서 나타났다.

제자들은 그 기별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요한은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전파하여”(사 61:1, 2)라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상기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메시야임을 선언하였을 뿐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그분의 나라가 세워질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광야에서 엘리야에게 이르렀던 그 같은 진리가 요한에게도 공개되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로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다(왕상 19:11, 12). 예수께서도 당신의 사업을 이와 같이 무력의 행사와 보좌와 왕국들을 뒤집어엎는 일을 통해서가 아닌 자비와 자아 희생의 생애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심으로 하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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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요한 자신의 극기의 생애의 원칙은 메시야의 왕국의 원칙이었다. 요한은 이런 모든 것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원칙과 소망에 얼마나 어긋나는 것인가를 잘 알았다. 요한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신시킨 증거가 그들에게는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되지 않은 그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은 구주의 전도가 그들에게서 단지 증오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선구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남김없이 마셔야 했던 그 잔을 마시고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신 구주의 말씀은 요한에 대한 은근한 책망이었다. 요한은 이 말씀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사명의 본질에 대하여 더욱 명백히 깨달았으므로 그가 사랑하던 사업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켰다.

그 사자들이 떠나간 후에 예수께서 요한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헤롯의 감옥에 갇힌 그 충성스러운 증인에게 구주께서는 동정을 보이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요한을 버리셨다거나 그의 믿음이 시련의 시기에 쓰러졌다고 사람들이 결론짓도록 버려두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요단 강변에 자라서 산들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리는 키가 큰 갈대는 침례 요한의 전도를 비평하며 판단하는 자로서 서 있었던 랍비들을 상징하기에 알맞았다. 그들은 여론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들은 마음을 꿰뚫는 침례 요한의 기별을 받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려고 하지 않었으나 백성들이 무서워서 감히 공공연히 그의 사업을 반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결코 이러한 비겁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주위에 모여든 군중들은 요한의 사업을 목격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요한이 죄를 두려움 없이 책망하던 말을 들었다.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바리새인들, 제사장직을 맡은 사두개인들, 헤롯왕과 그의 조신, 방백과 병정들, 세리와 농부들,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요한은 똑같은 솔직성을 가지고 말하였다. 그는 결코 인간의 칭송이나 편견의 바람에 휩쓸리는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다. 감옥에서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던 때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의에 대한 열성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원칙에 대한 충성심에는 바위처럼 견고하였다.

예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요한은 그 당시의 죄와 방종을 견책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으며 그의 간소한 의복과 극기의 생애는 그의 사명의 성질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부유한 옷차림과 이생의 사치는 하나님의 종들의 몫이 아니라 그 권세와 부요함을 소유하는 이 세상의 통치자들, 곧 “왕궁”에 사는 자들의 몫이었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의복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입은 옷 사이의 대조에 주의를 돌리기를 원하셨다. 이런 성직에 있는 자들은 사치한 두루마기와 값진 장식품으로 차려 입었다. 그들은 허식을 사랑하였으며 백성들을 현혹하여 더욱 큰 관심을 모으기를 바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을 마음의 순결함을 얻기보다는 사람의 칭찬 얻기를 더욱 갈망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충성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왕국에 바쳐진 것임을 드러냈다.

시대의 소망 pp. 21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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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y Constantines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