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004일
4장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영광의 왕께서 자기를 낮추고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의 지상에서의 환경은 거칠고 험악하였다. 그분의 영광이 가려졌던 것은 외양의 위엄이 주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모든 외적 장식을 피하셨다. 재물, 세상의 명예, 인간적인 위대함은 결코 영혼을 사망에서 구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어떤 세속적 성질의 매혹물로 사람들을 당신의 편으로 이끌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직…
Read More시대의 소망 – 003일
3장 “때가 차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 5). 구주의 강림은 에덴에서 예언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처음으로 듣고 속히 성취되기를 고대하였다. 그들은 맏아들이 구주이기를 바라면서 그 아들을 기쁨으로 환영하였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취는 지체되었다. 이 약속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들은 그 약속의 성취를…
Read More시대의 소망 – 002일
2장 선택된 백성 유대인들은 1천 년 이상 구주의 오심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 사건에 그들의 가장 빛나는 소망을 두었다. 그들은 그분의 이름을 노래와 예언 가운데, 또는 성전 의식과 가정 기도 가운데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 그분을 알지 못하였다. 하늘의 총애를 받으시는 자가 저들에게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이 보였으며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그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사 53:2; 요 1:11).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율법과 또한 구주를 알려 주는 표상과 예언의 지식을 인류 가운데 보존하도록 그들을 부르셨다. 그분은 그들이 세상에서 구원의 샘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가 머물던 땅에서의 아브라함처럼, 애굽에서의 요셉처럼, 바벨론 궁전에서의 다니엘처럼 히브리 백성들도 열방 가운데서 그러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야 할 것이었다. 주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내가…네게 복을 주어…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 3)고 말씀하셨다. 이 교훈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되었다. 이스라엘이 비록 전쟁과 사로잡힘으로 인하여 황폐된 이후에도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미 5:7)라는 약속은 그들의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 관하여 주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고 선언하셨다. -2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속적 위대함에 그들의 소망을 고착시켰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던 때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이방 사람의 풍습을 좇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경고를 보내셨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이방의 압제로 징계를 받았으나 그것도 무익하였다. 개혁이 있을 때마다 보다 더 큰 배도가 그 뒤를 따랐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성실하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존귀와 높임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으셨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순종의 길로 행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셨을 것이다.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고 모세는 말하였다.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열국은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신 26:19, 28:10, 4:6)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충실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계속적인 역경과 굴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 그들은 바벨론에 종속되어 이방 나라들 가운데 흩어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새롭게 하였다. 그들이 버드나무 위에 그들의 수금을 걸어 놓고 황폐된 성전을 생각하며 슬퍼할 때에 진리의 빛이 그들을 통하여 비쳐나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열방에 퍼지게 되었다. 이방 사람의 희생 제도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를 왜곡한 것이었다. 이방 나라의 의식을 신실히 지키는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 제도의 참뜻을 배웠으며 믿음으로 구주에 대한 허락을 굳게 잡았다. 사로잡혀간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핍박을 당하였다. 안식일을 범하기를 거절하고 이방 나라의 절기 지키기를 거절함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우상 숭배자들이 진리를 멸절시키려고 분기했을 때에 주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왕들과 위정자들 앞에 서게 함으로 그들 자신과 또 그들의 백성들이 빛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가장 위대한 군주들이, 그들의 히브리 포로들이 숭배하는 하나님의 최상권을 선포하게 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바벨론 포수(捕囚)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긴 우상들을 숭배하는 일에서 효과적으로 치료되었다. 뒤이은 수백 년 동안 그들은 이방 대적들의 압제로 고통을 당했다. 마침내 그들은 그들의 번영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데 있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순종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 동기는 이기적이었다. 그들은 국가가 강대해지는 수단으로써 외면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그들은 세상의 빛이 되지 않고, 우상 숭배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세상을 멀리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지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자들과의 교제에 제한을 가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지시는 그릇 해석되어 왔다. 이것은 그들이 이방 나라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분리의 장벽을 세우는 데 이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그들의 천국으로 바라보았고,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에게도 인자하심을 베풀지나 않으실까 시기하였다. -29-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는 종교적인 교훈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기울여졌다. 국내 각처에 회당들을 세우고 거기서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학교들도 세우고 예술과 과학과 아울러 의의 원칙을 가르치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관들은 부패하게 되었다. 포로생활 중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교(異敎)의 사상과 풍습을 받아들였는데 이것들이 그들의 종교 예식에 도입되었다. 그들은 많은 점에서 우상 숭배자들의 풍습을 따랐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떠나자 제사 제도에 대한 교훈을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었다. 이 제도의 각 부분에 그분을 가리키는 표상이 있었다. 이 제도에는 생명력과 영적 미(美)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의식에서 영적 생명을 상실하였으며, 죽은 형식에 집착하였다. 그들은 제물이 가리키는 그분을 의지하는 대신에 희생 제물과 의문(儀文) 그 자체를 신뢰했다. 제사장과 랍비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여러 규정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 규정들이 엄격하여질수록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더욱 적게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결함을 의식의 다과(多寡)로 측정하였으나, 마음은 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까다롭고 짐이 되는 규례들과 함께 율법을 지키기는 불가능하였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자로서 랍비의 규례들을 지키려고 힘써 본 자들은 무거운 부담에 눌려 애를 썼다. 그들은 번민하는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리하여 사단은 백성들을 낙담하게 하고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관념을 저하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멸시를 받게 하려고 힘썼다. 사단은 그가 하늘에서 반역하였을 때에 제시했던 주장 곧 하나님의 요구 사항들은 부당하며 지킬 수 없다는 주장을 입증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스라엘까지도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선언하였다. 메시야의 강림을 갈망하기는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사명에 대하여 참된 개념을 갖지 못하였다. 그들은 죄로부터의 구속이 아니라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압제자의 권세를 깨뜨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상 만국을 지배하는 나라로 높이는 정복자로서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이 구주를 거절할 길이 마련되었다. -30- 그리스도 탄생 당시의 유대 나라는 그들을 지배하는 외국의 통치자들 밑에서 시달림을 받는 한편 내분으로 고통을 겪었다. 유대인들은 독립된 정부 형태를 유지하도록 허용은 받고 있었으나 그들이 로마의 기반(羈絆) 아래 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었으며, 그들의 권력의 제한에 대해 단념하고 만족할 수도 없었다. 로마인들은 대제사장을 임명하고 해임시킬 권리를 주장하였으며, 이 직분은 흔히 부정(不正)과 뇌물 또는 심지어 살인 등의 수단에 의해 획득되었다. 이리하여 제사장 직분은 점점 더 부패되어 갔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여전히 큰 권세를 가졌고 그들은 그것을 이기적이고 재리적(財利的)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백성들은 그들의 무자비한 요구에 시달렸으며 로마 제국으로부터 또한 과중한 세금이 부과되었다. 이런 사태는 불만을 널리 확산시켰다. 민중의 폭동이 자주 일어났다. 탐욕, 폭력, 불신, 영적 냉담이 유대 나라의 심장부를 좀먹고 있었다. 로마인들에 대한 증오심, 그들의 국가적, 종교적 자존심은 유대인에게 그들의 예배 형식에 더욱 엄격히 집착하게 하였다. 제사장들은 종교 의식에 철저한 관심을 나타냄으로써 거룩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고자 힘썼다. 흑암과 압박 속에 있는 백성들과 권세를 잡으려고 갈급하는 관원들은 그들의 원수를 정복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킬 자가 오시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예언들을 연구하였으나 영적 통찰력이 없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의 굴욕을 가리키는 성경 구절들을 간과하였으며, 그분의 재림의 영광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을 잘못 적용하였다. 교만이 그들의 통찰력을 흐리게 하였다. 그들은 예언을 그들의 이기적 욕망에 일치되게 해석하였다. 시대의 소망 pp. 27-30
Read More시대의 소망 – 001일
1장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났다. 영원한 시대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일체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하심의 모습이며 “그의 영광의 광채”이셨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죄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드러내시려고,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시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그분에 대하여 예언되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나타내려 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도록 한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한 것은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계시가 주어진 것은 이 세상의 인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 작은 세계는 우주의 교과서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목적 즉 구속하시는 사랑의 신비는 “천사들도 또한 살피기를 원하는” 주제로서 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그들의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구속(救贖)받은 자들과 타락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들의 과학과 노래를 찾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 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 갈바리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볼 때 자아를 부정하는 사랑의 법칙이 이 세상과 하늘의 생명의 법칙임이 드러날 것이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에 그 근원이 있으며, 누구라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한 분 안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 사업 가운데 나타나셨다. 하늘을 펴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매다시고 들의 꽃들을 아름답게 만드신 것은 그의 손이었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시 65:6, 95:5)다. 이 땅을 아름다움으로 채우시고 공중을 노래로 채우신 분은 그분이셨다. 그분은 땅과 공중과 하늘에 있는 모든 만물에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기별을 기록하셨다. 그런데 죄가 하나님의 완전한 작품을 망쳐 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 필적은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탁월하심의 영광을 선포한다.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 외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새나 땅위에 기어 다니는 동물로서 어떤 다른 생물에게 봉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수림의 나뭇잎이나 하찮은 풀 잎사귀도 다 봉사하고 있다. 온갖 수목과 관목과 풀 잎사귀들은 사람이나 동물들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생명의 요소를 발산하며, 사람과 동물도 또한 수목과 관목과 풀 잎사귀의 생명에 도움을 준다. 꽃들은 향기를 발산하고 그 아름다움을 펴서 세상에 복을 끼친다. 태양은 무수한 세계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빛을 보낸다. 모든 샘물의 근원이 되는 바다는 각처에서 흘러오는 물을 받고 있지만 그것은 주기 위하여 받는 것이다. 바다의 표면에서 증발되어 올라가는 수증기가 비가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땅을 적시어 열매를 내고 싹을 틔우기 위함이다. -21- 영광의 천사들은 주는 일, 즉 타락하고 불경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끊임없는 보호를 베푸는 일에서 그들의 기쁨을 찾는다. 하늘의 천사들은 사람의 마음에 호소한다. 그들은 이 어두운 세상에 하늘 궁정의 빛을 가져온다. 그들은 부드럽고 인내심 있는 봉사로 인간의 영혼을 감화시켜서 잃은 자를 그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 밀접한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로 이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작은 표상들을 떠나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본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영광임을 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살고,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노라”(요 8:28; 6:57; 7:18; 8:50). 이 말씀들 가운데 우주의 생명의 법칙이 되는 대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하나님에게서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주기 위하여 받으셨다. 이것은 하늘 궁정에서도 그러하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그분의 봉사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생명이 만물에게로 흘러나간다. 또한 아들을 통하여 그것은 찬양과 기쁨의 봉사로 사랑의 조수처럼 만물의 대 근원이신 분께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혜(慈惠)의 순환이 완전히 이루어지며 크신 시여자(施與者)의 품성, 곧 생명의 법칙을 드러낸다. 이 법칙은 하늘 자체에서 깨어졌다. 죄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덮는 그룹인 루시퍼는 하늘에서 첫째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천사들을 제어하여 그들을 창조주로부터 떠나게 하고 그들의 존경을 자신이 받으려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아를 높이려는 욕망을 그분 탓으로 돌림으로 하나님을 그릇 나타내었다. 그는 자신의 악한 특성을 애정이 깊은 창조주께 씌우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천사들을 속이고 또 사람들을 속였다. 그는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불신하게 하였다. 하나님은 공의와 지대한 위엄의 하나님이신 까닭에 사단은 그들로 하나님을 가혹하고 용서하지 않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을 이끌어 자기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비애(悲哀)의 밤이 세상을 내려 덮었다. -22-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어두워졌다. 음울한 그늘이 밝아지고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단의 기만적 세력이 깨어져야 했다. 이것을 힘으로는 할 수 없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된다. 그분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진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분의 품성은 사단의 품성과 대조되어 드러나야 한다. 온 우주에서 오직 한 분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아시는 그분만이 그것을 드러내실 수 있었다. 세상의 어두운 밤에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말 4:2)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구속의 경륜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세워진 사후 고안(事後考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알게 하신 그 비밀”(롬 16:25)의 계시였다. 그것은 영세 전부터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어 온 원칙을 공개한 것이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이 반역할 것과, 그 반역자의 기만적인 권세로 인하여 인류가 타락할 것을 아셨다. 하나님께서 죄가 존재하도록 정해 놓지는 않으셨으나 죄가 존재할 것을 내다보고 그 두려운 비상사태를 위하여 대비책을 세워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기로 언약하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요 3:16)었다. 루시퍼는 “내가…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3, 14)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빌 2:6, 7)셨다. 이것은 자발적 희생이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곁에 머물러 계실 수도 있으셨다. 그분은 또한 하늘의 영광과 천사들의 경배를 보유할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 주고 멸망해 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왕위(王位)를 아버지께 돌려드리고 우주의 보좌에서 내려오기로 선택하셨다. -23- 약 2천 년 전에 오묘한 뜻을 가진 한 음성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울려 퍼졌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Read More- « Previous
- 1
- …
- 117
- 118
-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