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
바울은 유월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를 심히 바랐는데, 이는 절기에 참석하기 위하여 세계 각처에서 올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가지고자 함이었다. 바울은 항상 믿지 않는 자국민들이 귀중한 복음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이 그들의 편견을 제거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또한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여 이방 교회들이 유다에 있는 가난한 형제들에게 보내는 선물들을 전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번 방문으로 그는 유대인과 회심한 이방인 사이에 공고한 연합이 이룩되기를 희망하였다.
고린도에서 사업을 마친 후 바울은 팔레스틴의 해안에 있는 어떤 항구로 직접 항해해 가고자 결심하였다. 모든 준비를 갖추어 배에 오르려고 하였을 때 그는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에도 이 신앙의 반대자들은 사도의 사업을 종식시키고자 하였으나 그들의 모든 노력은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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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도에 따른 성공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새로이 일으켰다. 각 지방으로부터 새로운 교리의 전파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거기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의문의 율법의 의식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며 이방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유대인과 함께 동등한 특권들을 받는다고 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그의 편지들에서 그처럼 힘 있게 주장한 동일한 논증을 제시하였다.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분별이 있을 수 없”(골 3:11)다는 그의 힘 있는 진술을 그의 원수들은 대담한 참람의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의 음성을 침묵시키기로 결심하였다.
음모에 대한 경고를 받고 바울은 마게도냐로 돌아서 가고자 결심하였다. 그는 유월절 예배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나 오순절에는 그 곳에 있게 되기를 바랐다.
바울과 누가를 동행한 이들은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다. 바울은 이방 교회들이 낸 거액의 돈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유대의 사업에 책임을 진 형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으므로 연금을 낸 여러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준비하였다.
바울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빌립보에 머물렀다. 누가만 그와 함께 남아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드로아로 건너가 그 곳에서 바울을 기다렸다. 빌립보 사람들은 사도가 회심시킨 자들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마음이 진실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는 8일간의 절기 동안에 그들과 평화스럽고 행복한 교제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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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로 빌립보를 떠난 바울과 누가는 5일 후에 동료들이 있는 드로아에 도착하여 7일 동안 그 곳에 있는 신자들과 함께 유하였다.
그가 체류한 마지막 날 저녁에 형제들이 “떡을 떼려” 함께 모였다.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을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은 보통 때보다 많은 무리를 모이게 하였다. 그들은 삼층 “윗다락”에 모였다. 사도는 그 곳에서 그의 사랑과 그들에 대한 염려로 열심을 내어 밤중까지 설교하였다.
열린 창가에 유두고라 이름하는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이 위험한 장소에서 졸다가 아래 마당으로 떨어졌다. 모든 사람들은 놀랐고 곧 혼란이 일어났다. 그 청년은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울고 슬퍼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놀란 무리들을 헤치고 들어가 그를 껴안고 하나님께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열렬히 기도하였다. 그의 탄원은 허락되었다. 슬퍼하고 애통하는 소리 위에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도의 음성이 들렸다. 신자들은 기뻐하면서 다시 윗다락에 모였다. 그들은 만찬을 들었고 그 후에 바울은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였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여행을 계속해야 할 배가 출항하려하므로 형제들은 급히 배에 올랐다. 그러나 사도 자신은 드로아와 앗소 사이의 가까운 육로를 택하였고 앗소에서 그의 동료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명상과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데 관련된 어려움과 위험들, 그와 그의 사업에 대한 그 곳 교회의 태도, 또한 다른 지방에서의 교회들의 상태와 복음 사업에 대한 관심 등 이런 것들이 그가 진지하고 근심스럽게 생각하는 주제였고 그는 하나님께 능력과 지도를 간구하기 위하여 이 특별한 기회를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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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은 앗소에서 남쪽으로 항해할 때 사도가 매우 오랫동안 일한 곳인 에베소 도시를 지나갔다. 바울은 그 곳 교회를 방문하고자 심히 갈망하였는데 이는 그가 그들에게 주어야 할 중대한 교훈과 권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한 그는 서둘러 여행을 계속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는 그가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함이었다. 그러나 에베소에서 삼십 마일 떨어진 밀레도에 도착하자 바울은 배가 떠나기 전에 교회와 연락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장로들에게 기별을 보내어 그가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그들을 볼 수 있도록 밀레도에 급히 오라고 요청하였다.
그의 부름에 응하여 그들은 왔고 그는 힘차고 감동적인 권고와 고별의 말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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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항상 하나님의 율법을 높였다. 그는 율법에는 사람들을 불순종의 형벌에서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행악자들은 저희 죄를 회개하고, 그분의 율법을 범함으로 그분의 공의로우신 분노를 일으킨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해야 하며 또한 죄사함을 받는 유일한 방법인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행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들의 희생제물로서 돌아가셨고 그들의 대언자로 아버지 앞에 서시려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들은 회개와 믿음으로 죄의 선고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 후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할 수 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였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은 이 증언을 하려고 계획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말하는 동안 영감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이것이 에베소 형제들과의 최후의 모임이 되지 아니할까 하는 그의 염려를 확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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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반대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우정이나 갈채를 얻으려는 바람도 바울로 하여금 그들의 교훈과 경고와 시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억제하게 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그 교훈을 실행하는 데 담대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최고의 기쁨을 주는 진리만을 백성들에게 제시하고 그들에게 양심의 고통을 일으키는 다른 진리들은 억제해 두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는 품성의 계발을 깊은 염려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만일 그의 양무리 중 어느 하나가 죄악을 품고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는 충실한 목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경우에 적합한 교훈을 주어야 한다. 만일 목사가 그들이 자의로 행하는 것을 경고하지 아니한다면 그는 그들의 영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높으신 이의 사명을 성취시키는 목사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모든 점에 대하여 그의 백성들을 충실히 교훈하고 그들에게 저희가 하나님의 날에 완전히 설 수 있기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진리를 충실히 가르친 자만이 그의 사업이 마칠 때 바울처럼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는 그의 형제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이 항상 마음속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였다면 그들은 그들의 사업의 중대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그들의 양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 자신들의 모본이 그들의 교훈을 설명하고 굳게 해야 한다.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교사들로서 그들은 진리가 악평을 받게 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표자로서 당신의 이름의 명예를 유지하여야 한다. 그들은 헌신과 순결한 생애와 경건한 말로 그들의 높으신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들임을 증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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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를 엄습하게 될 위험들이 사도에게 알려졌다. 사도는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장래를 내다보면서 교회가 안팎의 원수들에게 당해야 할 공격을 보고 교회를 위하여 몹시 걱정하였다. 그는 진정한 열심을 가지고 깨어 그들의 거룩한 임무를 지키라고 형제들에게 명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 중에서 행한 자신의 불요불굴의 수고를 예를 들어서 지시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말을 계속하였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 어떤 에베소 형제들은 부자였으나 바울은 결코 그들에게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기별 가운데는 자신의 필요를 호소하는 부분이 없었다. 그는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그의 힘에 겨운 수고와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광범위한 여행 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필요를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 사역자들을 부양하고 매우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어떤 것들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근면과 가장 철저한 절약을 통하여 이 일을 성취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에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모본을 지적할 수 있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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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여행자들은 밀레도에서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소아시아 서남 해안에 있는 “바다라로 가서” 거기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갔다. 배가 짐을 푸는 두로에서 그는 몇몇 제자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칠일 동안 유하였다. 성령을 통하여 이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바울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고통과 투옥에 대한 공포도 사도로 하여금 그의 목적한 바를 돌이키게 하지 못하였다.
두로에서 보낸 그 주일의 끝에 모든 형제들이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바울을 전송하러 배에까지 왔고, 그가 배에 오르기 전에 그들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서로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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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쪽으로 여행을 계속한 여행자들은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일곱 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였다. 거기서 바울은 평화스럽고 행복한 몇 날을 보내었는데 이것이 그가 오랫동안 누리기를 바란 완전한 자유의 마지막이었다.
누가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체류하는 동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고 하였다고 말한다.
누가는 계속해서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필요하다면 감옥과 죽음에 이르기까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형제들은 그의 의도를 꺾지도 못하면서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다는 것을 알고 떼쓰기를 멈추고 다만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고 말할 뿐이었다.
얼마 후 가이사랴에서 체류하던 짧은 기간도 끝나고, 바울과 그의 일행은 몇몇 형제를 대동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하였는데 그들의 마음은 다가올 불행에 대한 예감으로 깊이 그늘져 있었다.
사도가 그토록 슬픈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간 적이 이전에는 결코 없었다. 그는 친구는 적게, 원수는 많이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여 죽인 성읍에 접근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성읍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흉조가 머물러 있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 대한 자신의 편견이 얼마나 신랄하였던가를 회상한 바울은 기만을 당한 그의 동포들에 대하여 가장 깊은 동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도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거의 가질 수 없었다. 전에 자기의 마음속에 불타올랐던 것과 똑같은 맹목적인 분노가 그를 대적하는 온 국민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힘으로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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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는 그 자신의 믿음의 형제의 동정과 지지까지도 의지할 수 없었다. 그의 발자국을 그처럼 가까이에서 추적하던 회심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그와 그의 사업에 관하여 말과 편지로써 예루살렘에 가장 나쁜 소문을 유포시키기에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도들과 장로들 중에서까지도 어떤 이들은 이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여 그것들을 반박하고자 시도하지도 아니하였으며 그와 연합하고자 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낙담 중에서도 사도는 자포자기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말씀하셨던 그 음성이 또한 그의 동포들의 마음에도 말씀하실 것이며 그의 동료 제자들이 사랑하고 섬긴 주님께서 머지않아 복음 사업에 있어서 그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과 연합시키실 것임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