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적 34장 – 헌신한 목사

34장 헌신한 목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교훈을 통하여 하나님께 그 근원이 있는 무아의 봉사에 대한 완전한 모본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심으로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에게 봉사하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봉사의 이상(理想)을 당신의 아들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본으로써 섬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하여 인간의 선두에 서셔야 하였다. 그분의 전 생애는 봉사의 법아래 있었다. 그분은 만민을 섬기시고 만민에게 봉사하셨다.

예수께서는 거듭거듭 이 원칙을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자 노력하셨다. 야고보와 요한이 높고자 하는 그들의 소원을 간청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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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택하신 사자들을 통하여 지상에 있는 당신의 사업을 진전시키셨으며, 그들을 통하여 인간 자녀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의 필요에 봉사하신다. 교회의 머리되신 크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대표자로 일하도록 임명하신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사업을 감독하신다.

그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말과 교리를 가지고 일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자리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남녀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탄원해야 한다. 그들은 위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받을 때에만 저들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그들이 돌보도록 위임된 백성들의 영적 수호자들이다. 그들의 사업은 파수꾼들의 직무에 비유되었다. 옛날에는 파수꾼들이 흔히 성벽에 배치되었는데, 그들은 그 요지에서 경비해야 할 중요한 초소들을 감시하고 원수의 접근에 대하여 경고할 수 있었다.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이 그들의 성실성에 달려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들은 서로 연락해서 모두 깨어 있는지 아무도 탈이 없는지 확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기쁨의 부르짖음이거나 경고의 부르짖음이거나 간에 서로 전달하여 온 성에 메아리칠 때까지 그 부르짖음을 반복하였다.

주께서는 모든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면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겔 3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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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말은 하나님의 교회의 수호자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임명된 사람들의 엄숙한 책임을 선언한다. 그들은 파수꾼으로서 시온의 성벽 위에 서서 원수의 접근을 보고 경고의 말을 발하여야 한다. 영혼들은 시험에 빠질 위험 가운데 있으므로 하나님의 목사들이 그들의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 한 멸망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의 영적 감각이 위험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마비되어 경고하는데 실패함으로 백성들이 멸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의 피를 그들의 손에서 요구하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매우 가까이 생애하고 당신의 성령의 감화에 매우 민감하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남녀들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안전한 장소를 지적하도록 그들을 통하여 일하실 수 있게 하는 것은 시온의 성벽 위에 있는 파수꾼들의 특권이다. 파수꾼들은 범죄의 분명한 결과에 대하여 충실하게 경고해야 하며 교회의 이익을 성실하게 보호해야 한다. 어느 때라도 그들은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들의 일은 신체의 모든 기능의 사용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들의 음성은 나팔의 음조가 되어 높이 올라가야 하며 결코 동요하거나 불확실한 소리를 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일하는 것은 삯을 받으려고 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깨닫고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헌신의 피로 인 치심을 받았으므로 남녀들을 임박한 멸망에서 구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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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목사는 그의 사업의 신성성과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수고와 희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안일이나 편의를 궁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는 잃은 양을 찾음에 있어서 자신이 피로하고 춥고 배고프다는 것을 깨닫지 아니한다. 그의 한 가지 목적 곧 잃은 자를 구원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

임마누엘의 피묻은 깃발 아래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영웅적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를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군병은 단호하게 싸움터의 맨 선두에 선다. 원수가 공격을 가할 때, 그는 도움을 구하려고 요새로 향하며 그가 주께 말씀의 약속을 가져갈 때 당면한 의무를 행할 힘을 얻는다. 그는 위에서 오는 능력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가 얻은 승리는 그로 하여금 자고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전능하신 이에게 더욱더 굳게 의지하게 한다. 그는 그 능력을 의지하여 구원의 기별을 매우 힘 있게 전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친히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하나님과 끊임없이 깨어 교통하는 가운데 살아야 한다. 이는 여기에 능력과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목사의 노력에 그의 설교의 감화보다 더욱 큰 능력을 부여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이 능력에서 떠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열심으로 그는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자신을 굳게 하고 강하게 하며 그의 입술에 숯불을 닿게 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호소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신들이 영원한 실재를 붙잡는 일은 종종 너무도 미약하다. 만일 사람들이 그분과 동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세 반석의 틈에 숨기실 것이다. 이같이 감추어지면 모세가 하나님을 본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눠 주시는 능력과 빛으로 그들은 그들의 유한한 판단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성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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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술책은 의기저상한 사람들을 대적하는 데 가장 성공적으로 사용된다. 낙담이 목사를 넘어뜨리려고 위협할 때에 그는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 앞에 고할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을 가장 완전히 신뢰한 것은 하늘이 놋처럼 바울을 덮은 때였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보다도 바울은 고통의 뜻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험과 투쟁으로 둘러싸여 그의 발이 하늘로 향하게 되었을 때 그가 외친 다음의 승리의 부르짖음을 들어보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 18). 바울의 눈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영원한 것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가 초자연적 능력을 대적하여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며 이로써 그는 힘을 얻었다. 영혼의 힘과 활력을 얻고 마음과 성품에 미치는 세상의 힘을 깨뜨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말미암는다.

목사는 그가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백성들과 자유롭게 섞여서 친숙하게 됨으로 그의 가르침을 그들의 필요에 적응시킬 방법을 알아야 한다. 목사는 신자들을 그들의 가정으로 방문하여 열렬하고도 겸손하게 그들과 담화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청지기들이 그들의 가정에 들어가 그들에게 보다 높은 길을 가르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접촉하지 못할 가정들이 있다. 그러나 이 일을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조화되어 고동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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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는 명령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목사들은 저희가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촉하여 그들의 가정에 진리를 가르치라. 그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과 협력할 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영적 능력으로 옷 입히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사업에서 그들을 지도하시고 청중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질 말을 주셔서 말하게 하실 것이다. 바울처럼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행 20:27, 20, 21)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모든 목사들의 특권이다.

구주께서는 집집을 방문하셔서 병자를 고치시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시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더시고, 근심하는 사람에게 평안을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당신의 팔로 안으시고 피로한 어머니들에게 희망과 안위의 말씀을 하셨다. 그분께서는 끊임없는 친절과 온유로 여러 가지 모양의 인간의 재난과 고통에 대처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위하여서가 아니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셨다. 그분은 만민의 종이셨다. 당신께서 접촉하려고 오신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과 힘을 공급하는 일이 당신의 양식이요 물이었다. 남녀들이 랍비들이 가르치는 유전이나 신조와는 매우 다른 진리를 그분에게서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에는 희망이 샘솟았다. 그분의 가르침에는 확신케 하는 능력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는 열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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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목사들은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방법을 배워 그분의 말씀의 창고에서 그들이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줄 것을 가져와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끊임없이 받고 계셨던 교훈을 나누어 주실 때 그분 안에 거하셨던 동일한 성령께서 이 세상에서 구주의 사업을 수행하는 이들의 지식의 근원과 능력의 비결이 되어야 한다.

목회 사업에 수고한 어떤 이들은 주의 사업에 그들의 관심을 온전히 기울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성공을 얻지 못하였다. 목사들은 영혼들을 구주께 인도하는 위대한 사업으로부터 마음을 빼앗는 일에 흥미를 갖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어부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랐다. 목사들이 큰 개인 기업체에서 중임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여 받으실 만한 사업을 행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관심의 분열은 그들의 영적 지각을 흐리게 한다. 세속적 사물이 정신과 마음을 점령하고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는 둘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맞도록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대신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사업을 그들의 환경에 따라 꼴 짓고자 노력한다.

목사의 정력은 모두 그의 고상한 소명에 필요 된다. 그의 최대의 능력들은 하나님께 속한다. 목사는 큰 사업으로부터 그를 떠나게 할 투기사업이나 어떠한 사업에도 종사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이와 같이 사도는 주님을 섬기는 데 대한 목사의 무조건적인 헌신의 필요를 강조하였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목사는 그의 거룩한 부르심에 자신을 충분히 바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업에 종사하기를 거절한다. 목사는 세상의 명예나 부를 위하여 노력하지 아니한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에게 영생의 보화를 주시고자 자신을 버리신 구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의 최고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재물을 저축하려는 것이 아니요, 무관심하고 불충실한 사람들의 주목을 영원한 실체에로 이끄는 것이다. 목사는 큰 세속적 이익을 약속하는 기업에 종사하라는 요청을 받을지 모르나 그런 유혹에 대하여 그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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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이 이와 같은 유혹을 그리스도께 제시한 것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세계는 결코 구속받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다른 가면을 쓰고 오늘날 하나님의 목사들에게 동일한 유혹을 제시한다. 이는 그 유혹에 미혹되는 자들은 그들의 임무에 성실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사들이 부를 구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으”라.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교훈은 물론 모본으로써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딤전 6:10, 11, 17~1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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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경험들과 목사의 사업의 신성성에 관한 그의 교훈은 복음 전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도움과 영감의 근원이다. 바울의 마음은 죄인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으며 그는 영혼 구원 사업에 그의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그보다 더 헌신적이요 끈기 있는 일꾼이 생존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는 받은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데 사용하여야 할 매우 귀중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구주에 관하여 설교하고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기회를 잃지 아니하였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들을 세웠다. 그는 발언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때는 어디서든지 악을 시정하고 남녀들의 발을 의의 길로 돌이키고자 노력하였다.

바울은 그가 세운 교회들을 잊지 아니하였다. 선교적 여행을 한 후 그와 바나바는 그들의 발걸음을 다시 돌려 저희가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고 그 중에서 저희가 복음 전도에 연합하도록 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였다.

이와 같은 특징을 이루고 있는 바울의 사업에는 오늘날의 목사들을 위한 중대한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사도는 복음 전도의 직무를 맡도록 청년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그의 사업의 일부분으로 삼았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선교 여행을 떠났으므로 그들은 후에 그들로 책임이 무거운 직분을 맡을 수 있게 한 경험을 얻었다. 그들과 헤어졌을 때도 바울은 여전히 그들의 사업과 접촉을 유지하였다.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그의 편지들은 그들의 성공을 얼마나 갈망하였는지에 대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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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경험 있는 교역자들은 스스로 모든 짐을 지고자 노력하는 대신에 젊은 일꾼들을 양성하여 그들의 어깨에 짐을 지울 때 고상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목사로서 그에게 지워진 책임을 잊지 않았으며 만일 자신의 불충실로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될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문책하시리라는 것도 결코 잊지 않았다.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선언하였다. “내가 교회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5~29).

이 말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들 앞에 달성해야 할 높은 표준을 제시하지만, 이 표준은 자신들을 크신 교사의 지배 하에 두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이들은 누구나 달성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수반되는 능력에는 한정이 없다. 자신의 부족을 크게 느끼고 주 안에 자신을 감추는 목사는 청중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될 어떤 것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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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기록은, 복음의 목사는 그가 가르치는 진리에 대하여 본이 되어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자신의 사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3, 4~10).

바울은 디도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6~8).

추수를 고대하면서 세상의 황무지에 진리의 씨를 심으러 나아가는 당신의 목사들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더욱 소중한 사람들은 없다. 당신의 종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을 때의 그 열망을 측정하실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나누어 주신다. 영혼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죄에서 떠나 의로 인도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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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기꺼이 그들의 농장과 직업과, 필요하다면 그들의 가족까지라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응답을 받을 것이다. 과거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잃어버린 사람들의 요구에 감동을 받아 우상 숭배자들과 야만인들 중에 자비의 기별을 선포하기 위하여 안락한 가정과 친구들과의 교제와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중도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을 잃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그 사업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업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였고 슬픔 중에 뿌린 씨는 많은 수확을 가져왔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널리 퍼졌고 십자가의 깃발은 이방 나라들에 세워졌다.

죄인 한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목사는 그의 재능을 전부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영혼은 그의 앞에 있는 가능성과, 그에게 허락된 영적 이익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활력을 얻게 될 경우 소유하게 될 능력과 복음 가운데 제시된 소망을 통하여 얻게 될 불멸성 때문에 크게 귀중하다. 그리스도께서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아흔아홉을 떠나셨다면, 우리가 그보다 적은 일을 하고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신 것처럼 희생하기를 게을리 하는 것은 거룩한 임무에 대한 배반과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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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목사의 마음은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 시간과 힘이 투자되고 수고로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자신의 영혼에 그와 같은 기쁨과 평화와 즐거움을 가져온 진리를 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그에게 임하신다. 그는 영혼들을 그가 반드시 찾아야 할 사람들처럼 바라본다. 그는 갈바리의 십자가에 그의 눈을 고정시켜, 높이 달리신 구주를 바라보고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며 그분께서 끝까지 그의 방패와 힘과 능력으로 그와 함께 하시리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이 섞인 초청과 호소로써 영혼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그를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계 17:14)로 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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