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들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도착하였는데 이는 사도를 크게 기쁘게 하였다. 그들은 복음 사신들이 데살로니가를 처음 방문한 동안 진리를 받아들인 이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바울에게로 가져왔다. 바울의 마음은 시련과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께 충실하였던 이 신자들에 대하여 친절한 동정심을 나타내었다. 그는 몸소 그들을 방문하기를 갈망하였으나 그 당시 이 일이 불가능하였으므로 그들에게 편지하였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에서 사도는 그들의 믿음이 증가하였다는 소식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표시하였다. 그는 편지하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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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
데살로니가에 있는 많은 신자들은 “우상을 버리고…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다.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도를 받”았고 그들의 마음은 “성령의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사도는 주를 충실히 따름에 있어서 그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이 칭찬의 말은 부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편지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연고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진실한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장래 노하심”에 대한 공포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그들의 구주에 대한 열심으로 불타올랐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들의 생애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주의 말씀에는 능력이 함께 하였다. 진리를 제시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고 새로운 신자들이 증가해 갔다.
이 첫째 편지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 중에서 행한 그의 활동 방법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기만이나 간사스런 꾀를 통하여 개종자들을 얻고자 노력하지 아니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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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계속해서 말하였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에게 보내는 그의 처음 편지에서 죽은 자의 진정한 상태에 관하여 그들에게 교훈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죽은 사람은 잠자는 자 곧 의식이 없는 상태에 있는 자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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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있는 충실한 자들을 변화시켜 당신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리라는 생각을 열심히 붙잡았다. 그들은 그들이 죽지 않도록 그리하여 저희 주께서 오실 때에 받으리라고 고대하던 축복을 잃지 아니하려고 저희 친구들의 생명을 주의 깊이 보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이 차례차례 그들을 떠나갔으므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괴로움으로 그 죽은 자들의 얼굴을 마지막 바라보았으며 감히 내세에 그들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였다.
바울의 편지를 열어 읽었을 때, 죽은 자의 진정한 상태를 나타낸 말은 교회에게 큰 기쁨과 위안을 가져왔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살아있는 자들이 예수 안에서 잠자는 자들보다 먼저 주를 만나러 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이 자는 자들에게 울리겠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부활할 것이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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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증이 데살로니가의 어린 교회에게 가져다 준 소망과 기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저희 복음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보낸 편지를 믿고 소중히 여겼고 그들의 마음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어졌다. 그가 전에 이런 일들을 그들에게 말하였었으나 그 때 그들의 마음은 새롭고 이상스러운 것처럼 보인 교리들을 붙잡고자 노력하였으므로, 어떤 중요한 문제들이 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감명을 주지 못하였던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갈급하였으므로 바울의 편지는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과 활력을 주었으며 당신의 죽으심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혀 주신 그분께 대한 확고한 신앙과 깊은 사랑을 심어 주었다.
이제 그들은 믿음의 친구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였다. 죽은 자의 무덤을 둘러싸고 있던 흑암은 사라졌다. 한 새로운 광채가 그리스도인 신앙을 영광스럽게 하였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서 새로운 영광을 보았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바울은 기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절을 자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올 것이라고 해석하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는 성도들을 그들의 무덤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데려가시리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뿐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귀한 위안이며 영광스러운 희망인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일하는 동안 시대의 징조에 관한 문제를 아주 충분히 다루어, 인자가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나시기 전에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는 이 문제에 관하여 상세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전 가르침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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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에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오심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로 주신 증거들에 대하여 눈을 감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애써 모든 불안을 잊으려고 노력하나 바로 그 때 종말의 징조들은 신속하게 성취되고 있으며, 세상은 인자가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날 그 때를 재촉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강림 전에 있을 징조들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은 죄라고 가르친다. 그는 이와 같은 태만의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밤의 아들이요 흑암의 자녀라고 부른다. 그는 경성하며 깨어 있는 자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 격려하였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오늘날 교회에 특별히 중요한 것은 이 점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이다. 대종말이 매우 가까운 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다음 말은 현저한 능력을 가지고 임하여야 한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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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복음 사업의 진전을 위하여 그의 능력껏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자 노력하는, 일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구주께 대한 사랑이 증가될 때에는 또한 동료들에 대한 사랑도 증가한다. 그들은 저희 주님이 당하신 것처럼 혹독한 시련을 당하나 고통으로 인하여 기분이 상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깨트리지 아니한다. 그들은 잘 견디기만 한다면 그 시련이 그들을 세련되고 순결하게 할 것이며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히 교제하게 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은 또한 그분의 위로에 동참하는 자가 되고 마침내 그분의 영광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될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계속하여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희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당부하였다.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광신적인 생각과 교리를 가지고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크게 괴로움을 당하였다. 어떤 이들은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들었다. 교회는 정당하게 조직되었으며 목사들과 집사들로서 일할 직원들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완고하고 성급한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에서 권위 있는 직분을 맡은 이들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개인의 판단의 권리뿐 아니라 그들의 견해를 공공연히 교회에게 강요하는 권리를 주장하였다. 이것을 보고 바울은 교회에서 권위 있는 직분을 맡도록 택함을 받은 이들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존경과 복종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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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생애하기를 염원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실제적인 경건을 나타내도록 간청하였다. 바울은 편지하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사도는 그의 수고로 개종한 이들의 영적 행복에 대하여 크게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그들을 위한 바울의 소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들의 지식이 증가하는 것이었다. 그의 봉사 사업에서 바울은 종종 예수님을 사랑하는 적은 무리의 남녀들과 만나 그들과 함께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며 그들에게 당신과 산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진리의 빛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에 관해 종종 그들과 상의하였다. 또한 자신이 위하여 수고한 이들과 헤어져 있을 때에 바울은 종종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며 그들이 활동적인 선교인이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참된 회개의 가장 유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귀중한 진리를 동일하게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도 거짓 없는 깊은 사랑을 소유한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신자들이 그러하였다. 사도는 이렇게 편지하였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고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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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도는 데살로니가 사람에게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는 말로 예언의 선물을 멸시하지 않도록 주의시켰고 그는 참과 거짓을 구별함에 있어서 주의 깊이 구별하도록 명하였다. 그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그들에게 간청하였고 하나님께서 “영과 혼과 몸”에 있어서 그들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로 그의 편지를 끝마쳤다. 그는 첨언하기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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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그리스도의 재강림에 관하여 그의 첫째 편지에서 데살로니가 사람에게 보낸 교훈은 그의 이전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몇몇 데살로니가 형제들의 오해를 받았다. 그들은 바울 자신이 살아서 구주의 재림을 목격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믿음은 그들의 열심과 흥분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 그들의 책임과 의무를 등한히 했던 이들은 이제 더욱 완고하게 그들의 그릇된 견해를 고집하게 되었다.
바울은 두 째 편지에서 그의 가르침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시정하고 그들 앞에 자신의 진실된 입장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다시 그들의 성실성을 확신하며 그들의 강한 믿음과 서로를 위하여 그리고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나타낸 그들의 풍성한 사랑에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그는 다른 교회들에게 그들을 박해와 환난을 용감히 견디는 끈기 있고 인내심 있는 신앙의 모본으로 소개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재강림의 때로 향하게 하였는데 그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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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예언 가운데 미리 이야기한 종교계의 중대한 일이 일어나야 하였다. 사도는 그 일을 이렇게 선포했다.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바울의 말은 곡해되지 않아야 하였다. 그가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경고한 것으로 가르쳐서는 안 되었다. 그와 같은 주장은 신앙에 혼란을 일으킬 것인데, 이는 종종 실망은 불신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형제들에게 그러한 기별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도록 주의를 시켰으며, 계속하여 선지자 다니엘이 매우 분명하게 묘사한 교황권이 아직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지 아니한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 권세가 그 가공할 만한 참람된 사업을 수행하기까지는 교회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일이 헛될 것이었다. 바울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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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시련이 참 교회를 괴롭힐 것이었다. 사도가 편지를 쓰던 그 때에도 이미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였다. 장차 일어날 일들이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었다.
“진리의 사랑”을 받기를 거절한 사람들에 관한 사도의 진술은 특히 엄숙하다. 바울은 일부러 진리의 기별을 거절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선언하기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사 그들에게 보내시는 경고를 거절하고도 무사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고들에 계속 등을 돌리는 자들에게서 당신의 성령을 거두시며 그들로 그들이 사랑하는 기만에 빠지게 하신다.
이와 같이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암흑과 박해의 긴 세대를 통하여 계속될 저 악한 세력의 사악한 일을 대강 진술하였다.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조속한 구원의 소망을 가졌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용기 있게 저희 앞에 놓인 사업을 짊어지도록 권유를 받았다. 사도는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거나 한가로이 기다리는데 자신들을 내맡기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였다. 조속한 구원에 대한 열렬한 기대를 가짐으로 인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일상생활의 반복과 반대는 어려움이 가중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믿음에 굳게 서라고 그들에게 권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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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나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일을 주셨다. 그들은 진리를 충실히 고수함으로 저희가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였다. 사도는 그들에게 선행에 있어서 싫증을 내지 말라고 명령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지치지 않는 열심을 가지고 수고하는 한편 현실적인 일에도 근면했던 자신의 모본을 가리켰다. 그는 태만하고 목적 없이 흥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고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는 또한 교회에게 하나님의 종들이 준 교훈을 무시하기를 고집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끊으라고 명하였다. 그는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고 부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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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 편지 역시 생애의 수고와 시련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의 평화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위로와 지지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로 결론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