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적 24장 – 고린도

24장 고린도

그리스도교 시대의 제1세기 동안, 고린도는 헬라뿐 아니라 세계의 주요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헬라인과 유대인과 로마인들과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그 거리에 모여들어 사업과 쾌락에 몰두하였다. 로마 제국의 각 지방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대상업 중심지인 이곳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하여 기념물을 세워야 할 중요한 장소였다.

고린도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 중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었는데 그들은 후에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열렬한 일꾼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을 알고 나서 그들과 “함께 거하”였다.

여행자의 왕래가 많은 이곳에서 그의 활동 초기부터 바울은 그의 사업의 진전에 방해가 될 큰 장애물들을 사방에서 보았다. 그 도시는 거의 전부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비너스는 그들이 총애하는 여신이었고, 비너스 숭배는 풍기를 문란케 하는 많은 의식과 예식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고린도인들은 그들의 부도덕한 행위로 인하여 이방인들 중에서까지도 소문나 있었다. 그들은 한 순간의 쾌락과 환락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염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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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사도는 아덴에서 했던 활동과는 다른 방법을 따랐다. 아덴에서, 바울은 그의 전도 방식을 청중들의 성격에다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곧 논리에는 논리로, 과학에는 과학으로, 철학에는 철학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그렇게 해서 낭비된 시간을 생각하였을 때, 그리고 아덴에서 가르치기는 많이 하였으나 결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노력함에 있어서, 고린도에서는 다른 활동 계획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고린도인들 중에서는 정교한 논쟁이나 토론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 2:2, 4) 그들에게 전도하고자 하였다.

바울이 고린도의 헬라인들 앞에 그리스도로 제시하려고 했던 예수님은 사악함이 속담거리가 된 한 동리에서 자라나신 비천한 가문의 한 유대인이셨다.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거절을 당하시고 마침내 악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었다. 헬라인들은 인류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음을 믿었으나, 철학과 과학을 연구하는 것을 참된 향상과 영예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하였다. 바울은 그들로 이 미천한 유대인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 인간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게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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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를 사는 군중들의 마음에는 갈바리의 십자가가 거룩한 추억에 싸여 있다. 십자가의 장면은 거룩한 연상을 자아낸다. 그러나 바울 당시에는 십자가를 혐오와 공포의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분을 인류의 구주로 높이는 일은 자연히 조롱과 반대를 초래할 것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의 유대인과 헬라인이 모두 그의 기별을 어떻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23)임을 인정하였다. 유대인 청중 가운데는 그가 선포하려고 하는 기별로 분노하게 될 사람들이 많았다. 헬라인의 견해로는 그의 말이 터무니없는 어리석은 말로 들릴 것이었다. 십자가가 어떻게 인간의 향상이나 인류의 구원에 관계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려고 하다가 오히려 저능한 자로 여김을 받을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십자가가 최고의 흥미를 가진 주제였다.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사람을 따르던 자들을 박해하던 생애에서 돌아선 이래, 그는 십자가를 영화롭게 하기를 결코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때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하여 계시를 받았으며, 그의 생애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그의 모든 계획과 목적이 하늘과 조화되었다. 그 순간부터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죄인이 일단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나타난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보고 거룩한 감화에 복종할 때에는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며 그 후로는 그리스도가 가장 귀중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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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였을 때, 바울은 동료 인간들로 하여금 나사렛 예수를 변화시키고 구원하기에 능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바라보게 하려는 간절한 소망으로 고무되었다. 그 후로는 그의 생애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사랑과 능력을 묘사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였다. 그의 큰 동정심은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말하였다. 그가 그분의 성도들을 핍박함으로 그처럼 혹독하게 박해하였던 그 영광의 주님을 위한 사랑이 그의 행동을 유발하는 원칙, 곧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되었다. 의무에 대한 열심이 식을 때마다, 십자가와 거기에 나타난 놀라운 사랑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극기의 길로 전진하게 되기에 넉넉하였다.

고린도의 회당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의 기록을 들어가며 그의 청중들을 약속된 메시야의 강림으로 향하도록 설교하는 사도를 바라보라. 당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만민을 위하여 단번에 속죄하시고 그 후에 하늘 성소에서 봉사를 하셔야 했던 인류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구주의 사업을 설명하는 바울의 말을 들어보라. 바울의 청중들은 그분의 강림을 갈망해 오던 메시야가 이미 오셨으며 그분의 돌아가심은 모든 희생 제물의 원형이었고,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분의 봉사는 그 그림자를 드리웠던 위대한 실물로서 유대의 제사장 직분의 봉사를 분명히 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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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였다. 그는 예언들과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대에 따르면, 메시야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에서 나올 것임을 구약 성경을 통하여 보여 준 다음, 조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편 기자 다윗왕을 거쳐 오게 될 예수의 가계를 자세히 말하였다. 그는 약속된 메시야의 성품과 사업, 그리고 그분께서 세상에서 받으실 대접에 관한 선지자들의 증언을 읽은 후 이 모든 예언이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봉사와 죽음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메시야의 오심을 그들의 민족적 존재의 극치와 영광으로 기대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주려고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저희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으며, 그의 통치가 죽음으로 끝날 다른 지도자를 선택하였었다. 그는 회개만이 유대 민족을 임박한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청중들에게 간절히 호소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그들이 완전히 이해하고 있음을, 그들의 제일의 자랑과 영광으로 여겼던 이 성경절들의 의미에 관하여 그들이 무지함을 나타내 보였다. 그는 그들의 세속적인 태도와 지위와 직함과 허식을 사랑하는 것과 그들의 과도한 이기심을 책망하였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기적적인 회심과 나사렛 예수 안에서 그처럼 완벽하게 성취된 구약 성경에 대한 그의 확신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엄숙하고도 열렬하게 말하였으므로 그의 청중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구주를 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분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에게 집중되고 그의 온 생애가 그의 주님께 매여 있음을 알았다. 그의 말은 매우 감동적이어서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최고의 증오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만이 그 말에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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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사도가 그처럼 분명하게 제시한 증거에 눈을 감았으며 그의 호소에 귀 기울이기를 거절하였다. 그들로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한 동일한 정신이 당신의 종에 대한 분노로 그들을 충만케 하였으므로 그가 계속 이방인들에게 복음 기별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그의 생명을 빼앗았을 것이다.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을 도우려 “마게도냐로서 내려”왔으므로 그들은 함께 이방인들을 위하여 수고하였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유대인에게와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를 타락한 인류의 구주라고 전도하였다. 십자가의 사자들은 복잡하고 부자연스러운 이론을 피하고 우주의 최고의 통치자이신 세계의 창조주의 속성을 강조하였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그들은 인류를 위하여 이루신 무한한 사랑을 바라보라고 이방인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들은 만일 이교의 흑암 가운데서 오랫동안 암중모색해 온 자들이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볼 수 있게만 된다면 구주에게로 이끌리리라는 것을 알았다. 구주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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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의 복음 교역자들은 그들이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이들의 영혼을 위협하고 있는 무서운 위험을 알았으며 예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의 진리를 제시한 것은 그들에게 책임이 주어졌음을 깨달은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별은 분명하고 명백하고 단호하였다. 곧 그것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이거나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였다. 그리고 복음은 그들의 말로뿐 아니라 매일의 생애를 통하여 나타났다. 천사들은 그들과 협력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킴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났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았다.

유대인들이 언제나 제자들에게 나타냈던 증오심은 이제 격렬하였다. 그리스보의 회개와 침례는 이 완고한 반대자들을 수긍케 하는 대신에 격노케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논박할 논증을 제시할 수 없었으며 그와 같은 증거의 부족에 대하여 기만과 악의적인 공격에 호소하였다. 그들은 복음과 예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 그들은 맹목적인 분노로 가장 가혹한 말과 가장 비열한 계략을 썼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적들을 행하신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으므로, 그분께서 사단의 능력을 통하여 이적들을 행하셨다고 유포하였으며 바울이 행한 놀라운 사업도 동일한 대리자를 통하여 수행되었다고 단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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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바울은 고린도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부패한 도시에서 그가 보고 들은 사악함은 그를 거의 낙담케 하였다. 그가 이방인 중에서 목격한 부패와 유대인에게서 받은 멸시와 모욕은 그에게 큰 정신적 고통을 일으켰다. 그는 거기서 만난 인물을 통해 교회를 세우려고 했던 지혜를 의심하였다.

바울이 그 도시를 떠나 더욱 유망한 일터로 가려고 계획하고 자신의 의무를 깨닫고자 열렬히 간구할 때, 주께서 계시 중에 나타나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이것이 고린도에 체류하라는 명령이요 뿌려진 씨를 주께서 자라나게 하실 것이라는 보증임을 알았다. 힘과 용기를 얻은 그는 열심과 인내로써 거기서 계속하여 일하였다.

사도의 노력은 공중 설교에만 국한되지 아니하였으니, 그 방법으로는 접촉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수고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으며 가정에서 친밀히 교제하는 기회를 이용하였다. 그는 병자와 슬퍼하는 자들을 방문하였고 고통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압박당하는 이들을 일으켰다. 그가 말하고 행한 모든 일에 있어서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다. 이와 같이 그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떠(고전 2:3)는 중에 일하였다. 그는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보다도 인간에 대한 감명을 자아내게 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였다.

바울은 후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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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6~13).

바울은 그의 능력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고, 그 은혜로운 감화로 마음을 충만하게 하여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시는 성령의 임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사도의 가르침에는 그리스도께서 중심인물이 되셨다. 그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선포하였다. 자신은 감추어지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높임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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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웅변적인 설교자였다. 회심하기 전에 그는 종종 그의 청중들을 열정적인 웅변으로 감명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모든 것을 떨쳐버렸다. 감각을 기쁘게 하고 상상력을 만족시켜 줄지는 모르나 매일의 생활에 감명을 줄 수 없는 시적(詩的) 묘사와 공상적 표현에 몰두하는 대신에, 바울은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여 중요한 진리를 마음에 확신시켜 주고자 노력하였다. 진리에 대한 공상적인 표현은 희열을 일으킬지 모르나 너무도 자주,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타낸 진리는 생애의 투쟁을 위하여 신자를 강하게 하고 굳세게 하는데 필요되는 양식을 공급하지 못한다. 투쟁하는 영혼들의 직접적인 필요, 곧 당면한 시련들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원칙들에 나타난 건전하고 실제적인 교훈과 접촉해야 한다.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노력에 결과가 없지는 아니하였다. 많은 사람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겼으며 큰 교회가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등록되었다. 어떤 이들은 가장 타락한 이방인들 중에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은혜와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에 대한 기념비가 되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전함에 있어서 얻은 증가된 성공은 믿지 않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더욱 단호한 반대를 일으키게 하였다. 그들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그 당시 아가야의 총독이었던 갈리오의 “재판자리로 데리고” 왔다. 그들은 이전의 경우처럼 관헌들이 그들의 편을 들리라고 기대하여 크고 분노한 음성으로 사도에 대한 그들의 불평을 토로하기를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였다.

유대 종교는 로마 권력의 보호 하에 있었으므로 바울의 고소자들은 만일 그들이 그들의 종교의 법을 범한다는 비난을 그에게 씌울 수만 있다면 바울은 심문과 선고를 받기 위하여 자신들에게 넘겨지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와 같이 그를 죽이려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질투하고 음모를 꾸미는 유대인들에게 속는 사람이 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의 고집과 독선에 진절머리가 난 그는 고소를 무시하려고 하였다.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하려고 준비할 때 갈리오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리고는 분노한 고소자들을 향하여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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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모두 갈리오의 결정을 열심히 고대하였으나 그가 민중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하여 소송을 즉시 기각시킨 일은 계획이 좌절되어 화가 날지라도 유대인들이 물러가야 한다는 표시였다. 총독의 단호한 행동은 유대인들의 교사(敎唆)를 받았던 시끄러운 군중의 눈을 열었다. 바울이 유럽에서 수고하던 동안 처음으로 폭도들은 그의 편이 되어 바로 총독의 눈앞에서 그의 제지를 받지 아니하고 사도를 가장 현저하게 비난한 사람들을 난폭하게 공격하였다.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 이리하여 그리스도교는 현저한 승리를 얻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였다. 만일 이 때 사도가 고린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더라면, 예수의 신앙으로 개종한 이들이 위험한 위치에 놓였을 것이며, 유대인들은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교를 말살하기까지 그들이 얻게 된 유리한 입장을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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