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적 6장 – 성전문에서

6장 성전문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깊이 느끼고, 겸비와 기도로 그들의 연약함을 그분의 능력에, 그들의 무지를 그분의 지혜에, 그들의 무가치함을 그분의 의로우심에, 그들의 가난함을 그분의 다함없는 부요함에 연결시켰다. 이와 같이 힘을 얻고 무장한 그들은 주님의 사업을 밀고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성령 강림 얼마 후 그리고 열렬한 기도의 기간을 보낸 직후 예배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고통과 질환을 가지고 살아온 나이 사십 세의 한 앉은뱅이를 보았다. 이 불행한 사람은 고침을 받고자 오랫동안 예수를 만나기를 소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거의 가망이 없었고, 또 위대하신 의원이 활동하시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마침내 그의 호소로 친구들이 그를 성전 문에 데려다 주었지만 그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의 소망의 중심이었던 그분이 잔인하게 처형당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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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실망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예수에게 고침을 받고자 열렬히 고대했는지를 아는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 일으켰고, 날마다 그들은 그를 성전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의 궁핍함을 채워줄 돈을 낼 수 있도록 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갈 때에 그는 동냥을 하였다. 제자들은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에게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하였다. 베드로가 아무것도 없다고 하자 앉은뱅이의 얼굴은 낙담의 빛으로 역력해졌다. 그러나 사도가 계속하여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할 때에 그의 얼굴은 희망으로 빛나게 되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였다. 그들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행하셨던 것과 유사한 이적들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사십년 동안 가망 없던 그 앉은뱅이가 이제 사지가 온전케 되어 고통을 면하고 예수를 믿으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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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백성들의 놀람을 보았을 때 베드로는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하고, 그 치료는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과 공로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확실히 증거하였다. 사도는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선언하였다.

사도들이 생명의 왕을 거절하고 죽인 유대인들의 큰 죄에 대하여 분명히 말하기는 하였으나, 청중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주의하였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는 성령께서 그들로 회개하고 개심하도록 호소하시고 계심을 선언하였고, 또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그분의 은혜를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의 소망이 없음을 확실하게 말하였다. 오직 그분을 믿음으로 그들은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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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였다. 청중 가운데 많은 사람은 이러한 증언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듣자 그들은 믿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떠올랐으며,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열에 섰다. 구주께서 뿌리신 씨는 싹이 나서 열매를 맺게 되었다.

제자들이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였다.

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직후 로마의 파수병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거짓 소문을 원근에 퍼뜨렸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이 저희가 살해한 분의 부활을 전파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 그들이 불쾌해 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몹시 흥분하였다. 그들은 저희가 가장 소중히 여긴 교리에 위협을 느꼈고, 따라서 그들의 명성도 위태로움을 느꼈다.

새로운 믿음으로 개심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였으므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다 같이 만일 이 새로운 교사들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자신들의 감화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보다 더욱 크게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성전 책임자가 여러 사두개인들의 도움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옥에 넣었는데 이는 그 날이 그들을 심문하기에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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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수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실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증거가 너무나 분명하여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저희가 예수를 죽인 그 무서운 행위를 회개하기를 거절하였다. 사도들이 성령의 영감으로 말하고 활동하고 있음에 대한 풍부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관원들은 진리의 기별을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때로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갖긴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기대했던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으므로, 그 확신을 짓눌러 버리고 마침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은혜를 베푸사 더 많은 증거를 주셨고, 이제 당신께 돌아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허락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을 보내사 그들이 생명의 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전하게 하셨고, 이 무서운 책망을 통하여 또 다른 회개의 초청을 주셨다. 그러나 자신들의 의로움에 만족한 유대 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책망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지도를 따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절하였다.

시종 그리스도를 반대해 왔기 때문에 모든 반항 행위는 제사장들로 동일한 길을 가도록 하는 부가적인 자극이 되었다. 그들의 완고함은 더욱더 굳어졌다. 그것은 그들이 굴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굴복할 수 있었으나 그들은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았다. 저희가 구원에서 끊어진 것은 그들의 범죄로 죽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이유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끈질기게 빛을 거절하고 성령이 주시는 양심의 가책을 짓눌러 버렸다. 그들은 불순종의 자녀들을 지배하는 악한 감화를 받아 하나님의 일꾼들을 학대하였다. 하나님과 그분이 당신의 종들에게 선포하도록 주신 기별에 대한 계속적인 반항 행위로 그들의 반역적인 적개심은 격렬해졌다. 날마다 회개하기를 거절함으로 유대 지도자들은 계속적으로 반역을 하게 되었고 저희가 뿌린 것을 거두려고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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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에게 선고되는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히 그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회개하라는 초청이 주어질 때에 그들에게 주어진 빛을 무시하고, 과거의 죄를 반복하며 반항을 계속하고자 선택했기 때문이다. 만일 유대 지도자들이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굴복하였더라면 그들은 용서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마찬가지로 죄인은 계속적인 반항으로 자신을 성령께서 감화하실 수 없는 위치에 처하게 한다.

앉은뱅이를 고친 다음날, 안나스와 가야바는 성전의 다른 고관들과 함께 심문을 위해 모였고, 죄수들은 그들 앞에 나왔다. 바로 같은 방에서, 그리고 바로 그 몇몇 같은 사람 앞에서 베드로는 치욕스럽게 그의 주님을 부인했었다. 그가 심문을 받기 위해 나왔을 때 이 일이 분명하게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 이제 그는 자신의 비겁함을 속죄할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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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주님이 심문받으실 때 취했던 행동을 기억하는 참석자들은 이제 그를 투옥과 사형의 위협으로 겁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우쭐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에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충동적이고 자신 만만하던 베드로는 심문받기 위해 산헤드린 앞에 선 베드로와는 크게 달랐다. 범죄 이후 그는 개심하였다. 그는 더 이상 교만하거나 뽐내지 않았고, 그대신 겸손했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하였으며, 이 능력을 의지하여 한때 그가 부인했던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함으로 그의 반역의 흔적을 제거하려고 결심하였다.

지금까지 제사장들은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힘이나 부활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회피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무기력한 사람의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피고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그들은 물었다.

베드로는 거룩한 담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두려움 없이 선언하였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 용기에 찬 항변은 유대 지도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들은 제자들이 산헤드린 앞에 나오면 두려움과 혼란으로 맥이 다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이 증인들은 반대자들을 침묵시키는 설득력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였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선언할 때에 베드로의 음성에는 두려움의 흔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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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여기서 제사장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표상적인 말을 사용하였다. 선지자들은 그 버림받은 돌에 대하여 말하였고, 그리스도께서도 언젠가 친히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2~44).

사도들의 대담한 말을 들을 때에, 제사장들은 그들이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변화산에서 변화하신 직후 제자들에 관하여 기록하기를, 그 마지막 경이로운 광경을 묘사하며 “제자들이…오직 예수”(마 17:8)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오직 예수” 이 말 속에 초대 교회의 역사를 특징짓는 생명과 능력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다.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들은 그분의 필요를 느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찾았고, 발견했으며 따랐다. 그들은 성전에서, 산기슭에서, 들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마치 선생과 함께 있는 학생들처럼, 날마다 그분에게서 영원한 진리의 교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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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의 승천 후에도 사랑과 빛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이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였다. 그것은 인격적인 임재였다. 그들과 함께 거니시고, 담화하시고, 기도하시고, 그들의 마음에 희망과 안위를 말씀하시던 구주 예수께서는 평안의 기별을 전하시는 중에 하늘로 들리워 가셨다. 천사들의 수레가 그분을 영접하였을 때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는 말씀을 그들에게 하셨다. 그분은 인성을 쓰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들은 그분이 여전히 그들의 친구와 구주로서 하나님 보좌 앞에 계실 것과, 그분의 동정심은 변치 않을 것, 그리고 고통당하는 인류와 영원히 하나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그분이 당신의 피의 공로를 하나님 앞에 나타내시고, 당신의 상하신 손과 발을 당신의 구속하신 사람들을 위하여 지불하신 대가의 기념으로 보이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생각은 그들로 하여금 그분을 위하여 당하는 비난을 굳세게 참을 수 있게 하였다. 그분과의 연합은 그가 몸소 그들과 함께 계시던 때보다 지금 더욱 강하였다.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과 능력이 그들을 통하여 비쳐나와 바라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가 그분을 변호하기 위하여 한 말에 당신의 인을 치셨다. 그 제자 곁에는 힘 있는 증인으로서 놀라운 기적으로 고침 받은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무력한 앉은뱅이였지만 이제 온전한 건강을 회복하게 된 이 사람의 출현으로 베드로의 말에는 그 증언의 무게가 더해졌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의 진술을 논박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제자들의 가르침을 중단시키고자 굳게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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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최고의 이적인 나사로의 부활로 제사장들은 예수의 세계와 그분의 놀라운 사업을 제거하려는 결심을 굳게 하였고, 그로 인해 백성들에 대한 그들의 감화는 신속히 소멸되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지금 그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기적이나, 그분이 가르치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유력한 증거가 있었다. 벌써 앉은뱅이를 고친 것과 사도들의 전도는 예루살렘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들의 난처함을 감추고자 사도들을 내보내고 저희끼리 서로 의논하였다. 그들은 모두 그가 고침 받은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임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그 이적을 거짓으로 돌리고자 소원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적이 백주에 많은 무리들 앞에서 행하여졌고, 이미 무수한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그들은 제자들의 사업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많은 예수의 제자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한 죄를 지게 되어 그들 자신에게 수치가 따르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제자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일하기를 계속한다면 가장 엄한 형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는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을 다시 산헤드린 앞에 소환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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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은 그들이 그 거룩한 소명에 확고부동하게 충실한 것을 처벌하고 싶었으나 백성을 두려워하였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그러므로 위협과 금지 명령을 반복하고는 사도들을 석방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이 갇혀 있는 동안 유대인들의 악의를 알고 있는 다른 제자들은 그리스도께 나타내었던 그 잔인성을 반복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형제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사도들이 석방되자마자 그들은 다른 남은 제자들을 찾아 심문의 결과를 알려 주었다. 신자들의 기쁨은 매우 컸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제자들은 봉사 사업을 위해 더 큰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당하셨던 것과 같은 단호한 반대를 만날 것을 안 까닭이었다. 그들이 믿음으로 연합 기도를 하늘로 올리고 있는 동안 응답이 이르렀다. 그들이 모였던 장소가 흔들렸고, 그들은 새롭게 성령으로 채움을 받았다. 그들은 용기가 충만하여 다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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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으로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명령에 답하여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선언하던 때에 제자들이 가졌던 그 담대한 원칙은 종교개혁 시대에 복음을 고수하던 자들이 고수하려고 투쟁하던 그 원칙과 동일하다. 1529년 독일의 제후들이 스파이얼스 의회에 모였을 때에 종교 자유를 제한하고, 모든 개혁 교리들을 더 이상 보급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황제의 칙령이 제출되었다. 마치 세상의 희망이 꺾이는 것처럼 보였다. 제후들이 이 칙령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직도 흑암 중에 있는 군중들에게서 복음의 빛이 거두어져야만 할 것인가? 세상을 위한 중대한 문제들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개혁 신앙을 받아들인 자들은 함께 모여 만장일치로 “이 칙령을 거절하자. 양심문제에 있어서 다수는 힘이 없다”고 결정하였다(D’Aubigne : 종교 개혁사 제13권, 제5장).

오늘날도 우리는 이 원칙을 확고하게 고수해야 한다. 복음 교회의 창시자들과 그 이후 여러 세기 동안 하나님의 증인들에 의하여 높이 들렸던 진리와 종교 자유의 깃발은 이 마지막 투쟁에 있어서 우리들의 손에 위탁되었다. 이 큰 선물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지식으로 축복하신 사람들에게 놓여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 세운 정부를 하나님이 임명하신 규범으로 인정하고, 그 정당한 범위 안에서 거기에 순종하는 것을 거룩한 의무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그 요구가 하나님의 요구와 상치될 때에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의 법보다 높다는 것을 승인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이란 말을 “교회가 이렇게 말하기를” 혹은 “국가가 이렇게 말하기를”이라는 것 때문에 파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면류관이 지상 군주의 왕관보다 더 높임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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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권력자들을 무시하라고 하지 않는다. 말로나 글로 우리가 법과 질서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기록을 남기지 않도록 사려 깊고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불필요하게 우리의 길을 막는 그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진리를 옹호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진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우리가 이 사업을 하는 것을 금지할 때에는 우리도 사도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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