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적 8장 – 산헤드린 앞에서

8장 산헤드린 앞에서

세상에 소망과 구원을 가져온 것은 수치와 고문의 도구인 십자가였다. 제자들은 재산도 무기도 없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비천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으로써 말구유와 십자가의 그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며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나아갔다. 세상의 명예나 인정은 없었지만 그들은 신앙의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입술에서 세계를 뒤흔든 거룩한 웅변이 나왔다.

가장 뿌리 깊은 편견이 있던 곳, 그리고 범죄자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장 혼돈된 견해들이 성행한 곳인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은 담대하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유대인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사업과 사명,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승천을 제시하기를 계속하였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분명하고 담대한 사도들의 증언을 놀라움으로 들었다. 부활하신 구주의 능력이 확실히 제자들 위에 임하였고, 그들의 사업에는 표적과 기사가 따랐으므로 날마다 믿는 자들의 수효가 증가하였다. 제자들이 지나가는 거리마다 백성들은 병자들을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흑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랐다. 또한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도 데려왔다. 군중들이 그들 주위에 모였고,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속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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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보다 더 칭송을 받으시는 것을 보았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선포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 그들은 만일 사도들이 부활한 구주를 전파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부활이 없다는 그들의 교리는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할 것이며, 머지않아 사두개 교파는 멸절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였다. 한편 바리새인들도 제자들의 가르침이 유대 의식들의 기초를 위태롭게 하고 희생 제사를 무효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깨닫고 분노하였다.

지금까지 이 새로운 가르침을 억누르고자 한 모든 노력이 실패했으나, 이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양편이 제자들의 사업을 중단시키기로 결심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를 죽인 죄가 그들에게 있다고 증거하기 때문이었다. 격분한 제사장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크게 실패하였다. 주께서 진리의 수탁인으로 삼으신 자들은 그들의 임무에 불충실함이 입증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행할 다른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눈이 어두워진 유대 지도자들은 이제 그들의 소중히 여기는 교리들을 저버리는 사람들에 대해 소위 의분이라는 것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었다. 그들은 저희가 스스로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거나, 아니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용했을 가능성조차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그들 중에 더러는 어부들에 지나지 않는 이 선생들이 무슨 권리로 우리가 백성들을 가르친 교리에 반대되는 사상을 제시하느냐고 말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가르치는 것을 제지하려고 결심한 그들은 이것을 제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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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그러한 처사에 겁을 내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생각나게 하셨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요 15:20, 21; 16:2, 4).

능력 있는 우주의 통치자인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투옥당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셨는데, 이는 인간들이 당신의 사업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까닭이었다. 밤에 주의 천사가 옥문들을 열고 사도들에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였다. 이 명령은 유대 통치자들의 명령과는 정반대였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그들이 관원들과 의논하여 그들의 허락을 받기까지는 그리할 수 없노라고 대답했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으니 그들은 순종하였다. “저희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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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요한이 신자들에게 와서 어떻게 그 천사가 감옥을 지키는 군사들을 헤치고 그들을 직접 인도해 내었고, 방해받던 그 사업을 다시 계속하라고 명령했는지를 말하였을 때에 형제들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한편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았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제자들에게 폭동죄를 씌우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살해하고 제사장들의 권위를 빼앗으려고 공모하였다고 고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폭도들을 자극시켜 그 문제를 다루게 하고, 예수를 취급했던 것처럼 제자들을 다루고자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지 아니한 많은 사람들이 유대 권위자들의 전제적 통치에 싫증을 내고서 무엇인가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사장들은 만일, 이 불만 세력이 사도들이 선포하는 진리를 받아들여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게 될 것 같으면 전국민의 분노가 종교적 지도자들을 향하여 일어나게 될 것이며, 그 때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살해한 보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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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죄수들을 그들 앞에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옥문들이 든든히 잠겨 있고 그 앞에 간수도 있었으나 죄수들이 행방불명이라는 보고를 듣고 크게 놀랐다.

곧 깜짝 놀랄 만한 기별이 왔다.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비록 사도들이 기적적으로 옥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심문과 형벌을 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막 13:9)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내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주셨고, 또한 당신의 임재의 보증을 주셨다. 이제 그들이 전파하고 있는 복음의 주인을 위하여 고통당하는 것이 그들의 할바 일이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역사 기록에는 하나님께 충성했던 고상한 많은 모본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투옥과 고문과 죽음 그 자체를 감수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이 남긴 기록은 복음 전파 시대에 어느 사람 못지않은 영웅적인 것이다. 그들이 또다시 그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듯한 사람들 앞에 섰을 때에, 그들의 말이나 태도에는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하고 말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을 옥에서 구원하여 성전에서 가르치도록 명한 것은 하늘에서 온 천사였다. 그들은 천사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였으며,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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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영감의 성령께서 제자들 위에 임하였으며, 피고들은 고소자들이 되어 공회원들에게 그리스도를 죽인 죄에 대해 문책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선언하였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이 말에 격분한 유대인들은 법을 마음대로 집행하여 더 이상 심문도 하지 않고 로마 관리들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죄수들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미 그리스도의 피를 범한 그들인지라 이제는 그 손으로 그분의 제자들의 피를 흘리고자 갈망하였다.

그러나 공회 가운데는 제자들이 한 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식별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판이 좋은 바리새인이요, 학식이 있고 높은 지위를 가진 가말리엘이었다. 그의 명석한 지성은 제사장들이 음모하는 난폭한 시도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것을 간파하였다. 참석자들에게 연설을 하기 전에, 그는 죄수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자기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서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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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는 지극히 신중하고 침착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제사장들은 이 견해가 타당한 것임을 알았으므로 가말리엘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편견과 증오는 거의 제지할 수가 없었다. 제자들을 때린 후에 또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하면 생명에 위협을 받으리라고 경고하고 그들은 마지못하여 제자들을 석방하였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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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유산을 위탁하셨다. 그분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다. 이 평화는 세상과 타협함으로써 얻는 평화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악과 타협함으로 평화를 얻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평화는 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적인 것으로서, 투쟁과 논쟁의 자리에서 당신의 증인들과 항상 함께 있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그분은 평강의 왕이시면서, 분열의 원인이 되셨다.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고 인간 자녀들의 마음에 소망과 기쁨을 주시려고 오신 그분은 인간의 마음속에 크게 타올라 격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논쟁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요 16:33; 눅 21:12, 16)리라.

이 예언은 현저한 방식으로 성취되었다.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선동하여 고안할 수 있는 모든 모욕과 비난과 잔인한 행위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해졌다. 그리고 이 예언은 또다시 현저한 방법으로 성취될 것인데, 이는 육신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의 율법과 반목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시대처럼 오늘날 세상은 그리스도의 원칙들과 더 이상 조화를 이루지 아니한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는 부르짖음을 일으킨 그 같은 증오심과 제자들을 박해한 그 같은 증오심이 여전히 불순종의 자손들에게 작용하고 있다. 중세 암흑시대에 남녀들을 감옥으로, 유배지로 보내고, 종교 재판의 끔찍한 고문을 생각해 내며, 성 바돌로매 제일의 대학살을 계획하여 집행하고, 스미드필드의 화형주에 불을 붙였던 그 동일한 정신이 여전히 거듭나지 않은 심령 속에 악한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진리의 역사는 항상 선악간의 투쟁의 기록이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언제나 반대와 위험과 손실과 고통을 받으면서 수행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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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견딘 사람들의 힘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었다. 사단은 질책과 박해로 많은 사람들을 세상 친구로부터 분리시키긴 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는 결코 끊을 수 없었다. 무서운 시련을 당한 영혼이 진리를 위하여 질책을 참는 것보다 더 크게 구주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 때는 결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말씀하셨다. 진리로 인하여 신자가 세상 법정에 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신자 곁에 서신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시어 당신의 사랑으로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하신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게 될 때에 구주께서는 그에게 저희가 몸은 죽일 수 있으나 영혼은 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요 16:33; 사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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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시 125:1, 2; 72:14).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슥 9:1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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