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를 부른 후에 그들은 밖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혼잡한 거리를 지나 성문을 통과한 후 감람산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으며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이 동산을 향하여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예수께서는 가장 깊은 슬픔에 잠기신 목소리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마 26:31)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슬픔과 놀라움으로 이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버리고 돌아갔던가를 기억하였다. 그러나 그 때 열두 제자들은 자신들이 불충실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그의 형제들을 대표하여 말하면서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충성심을 선언하였다. 그 때에 구주께서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고 말씀하셨다. 다락방에서 예수께서는 열둘 중의 한 제자가 당신을 배반할 것과 베드로가 또한 당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그분의 말씀은 그들 모두를 포함한다.
이제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격렬히 항의하는 베드로의 음성이 들린다. 다락방에서 그는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미 그가 바로 그 밤에 자기의 구주를 부인할 것이라고 그에게 경고하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그 경고를 반복하신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다만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막 14:29, 30, 31) 하고 모든 제자들도 이와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자기 과신에 빠져 그들을 아시는 그분의 반복된 말씀을 부인하였다. 그들은 시험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으며 시험이 그들을 덮칠 때에 자신들의 연약함을 깨달을 것이었다.
베드로가 옥이나 죽는 데까지도 주를 따르겠다고 말했을 때 그 모든 말을 진심으로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상황의 부추김으로 생애 속에 나타난 악의 요소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가 자신의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그의 영원한 파멸을 입증할 것이다. 구주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까지라도 억눌러 버릴 이기주의와 철면피함이 베드로에게 있는 것을 보셨다. 많은 결점, 억제하지 못하는 죄, 주의성 없는 정신, 성화되지 못한 성질, 시험에 뛰어드는 부주의성 등이 그의 생애 가운데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엄숙한 경고는 마음을 살피라는 일종의 요구였다. 베드로는 자신을 불신임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베드로가 겸손히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양무리의 목자에게 당신의 양을 지키시도록 간청했을 것이다. 갈릴리 바다에서 그가 빠지려고 할 때에 그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 하고 부르짖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어 주셨다. 그와 같이 만일 그가 진심으로 나를 나 자신에게서 구원하소서라고 예수께 부르짖었다면 그는 보호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불신임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그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벌써 마음이 상해 더욱더 자신을 고집스럽게 과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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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바라보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시련에서 구원할 수 없었으나 그들을 고독하게 버려두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무덤의 속박을 깨칠 것이며 그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약해지지 않으리라고 그들에게 약속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 26:32)고 말씀하셨다. 주를 부인하기 전에 그들은 용서의 보증을 받았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 후에 그들은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그리스도에게 소중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겟세마네로 가는 도중에 감람산 기슭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예수께서 가끔 묵상하고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찾아오셨던 한적한 곳이었다. 구주께서는 세상에 대한 당신의 사명과 제자들이 유지해야 할 당신과의 영적 관계를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계셨다. 이제 그분은 예증을 통하여 교훈을 설명하신다. 달이 밝게 비치어 한 무성한 포도나무를 그리스도 앞에 보여 준다. 제자들의 주의를 이 포도나무에 집중시키면서 예수께서는 이것을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신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우아한 종려나무나 높이 자란 백향목이나 강한 참나무를 선택하는 대신에 예수께서는 덩굴이 달려 있는 포도나무를 취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 종려나무 백향목 참나무는 홀로 서 있다. 이 나무들은 아무런 지주(支柱)도 필요 없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시렁을 감고 하늘을 향하여 올라간다. 그와 같이 인성을 쓰신 그리스도는 거룩한 능력에 의지하셨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고 그리스도께서는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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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포도나무요.” 유대인들은 항상 포도나무를 가장 고상한 식물이며 힘 있고 뛰어나며 열매 잘 맺는 모든 것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심으신 포도나무로 대표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원의 희망을 그들이 이스라엘과 연결된 사실에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과 연결되었다고 해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분의 약속의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나를 통하여서만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팔레스틴 언덕에 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그분은 친히 농부가 되셨다. 많은 사람들이 이 포도나무의 아름다움에 이끌리어 이것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는 이것이 마른 땅에서 솟아난 뿌리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 나무를 꺾어서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거룩하지 못한 발로 짓밟았다. 그들의 생각은 이것을 영원히 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농부께서는 그분의 나무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이 저희가 이를 죽였다고 생각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취하여 성벽 다른 편에 다시 심으셨다. 포도나무 그루터기가 더이상 보이지 않아야 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의 난폭한 공격을 피해 감추어졌다. 그러나 포도나무의 가지들은 성벽 위에 걸렸다. 이것들은 포도나무를 대표해야 할 것이었다. 그 가지들을 통하여 접붙이는 가지는 여전히 그 포도나무에 연결될 수 있었다. 그것들로부터 열매를 얻었다. 거기에는 통행인들이 따먹을 수확이 있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가려고 하셨지만 그들과 그분과의 영적 연합은 변함이 없을 것이었다. 그분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된 것은 너희가 나에게서 지지를 받아야 할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가지는 산 포도나무에 접붙여지되 섬유질과 섬유질이, 잎과 잎이 연결되어 포도나무 줄기로 자란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그 가지의 생명이 된다. 그와 같이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써 연합은 이루어진다. 죄인이 그의 결점을 그리스도의 장점에, 그의 텅 빈 것을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그의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항구적인 능력에 연합시킨다. 그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인성에 감응되며 우리의 인성이 신성에 감응된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인간은 사랑받으신 분인 예수 안에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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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이루어진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연한 접촉이거나 또는 분리와 연결이 무상한 그런 결합이 아니다. 가지가 산 포도나무의 한 부분이 된다. 뿌리에서 가지로 생명과 힘과 과실의 풍성함을 전달하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포도나무에 붙지 않은 가지는 살 수 없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에게서 받은 생명은 계속적인 교통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없으면 너희는 단 하나의 죄도 이길 수 없고 조그마한 유혹이라도 물리칠 수 없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봉사 사업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생애를 의미한다. 교통의 통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樹液)을 계속적으로 빨아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께 매달려서 믿음으로 능력과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을 받아야 한다.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가장 먼 잔가지에 이르기까지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에게 영적 능력의 흐름을 전달하신다. 영혼이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한, 시들어 버리거나 부패할 위험은 없다.
포도나무의 생명은 가지에 달린 향기로운 열매 가운데 명백히 나타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에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날 것이며 한 사람도 잃어버림을 당치 않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접붙인 가지가 외형으로는 포도나무와 연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적인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라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할 것이다. 그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참된 연합 없이 그리스도와의 외형적인 연결이 있을 수도 있다. 신앙 고백이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지만 그러나 품성과 행동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 있는지 어떤지 보일 것이다. 과실을 맺지 않으면 그들은 거짓 가지들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는 것은 죽은 가지가 예증하는 것처럼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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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을 따라 다닌 선택받은 열두 제자로부터 한 제자는 시든 가지로서 곧 찍어 버림을 당할 것이었으며 나머지 제자들은 전정하는 칼의 쓰라린 시련을 통과해야만 하였다. 예수께서는 엄숙하고도 친절하게 농부의 의도를 설명하셨다. 가지를 치는 일은 고통을 유발할 것이지만 칼을 대시는 분은 아버지시다. 아버지께서는 난폭한 손으로나 무관심한 마음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땅에 늘어지는 가지들이 있다. 이것들은 덩굴이 땅의 지주에 붙지 않도록 잘라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하늘로 뻗어 나아가야 하며 그들의 지주를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과실로 가야할 생명의 수액을 빨아들이는 과도한 잎들은 잘라 버려야 한다. 의의 태양의 치료하는 광선이 활동 공간을 넓혀주기 위해 웃자란 것들은 잘려야 한다. 농부는 과실이 알차고 더욱 많이 열리도록 하기 위하여 해롭게 자란 가지는 잘라 버린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통하여 당신의 품성의 거룩함과 자비와 동정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추종자들 속에 거하신다. 이것이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표현된 그와 같은 생명의 연합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그대들은 포도나무의 생명을 받는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마 4:4) 살 것이다. 그대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분 안에서처럼 동일한 열매를 생산한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에게 부착되어 그리스도의 지원을 받으며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면 그대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의 이 마지막 회합에서 나타내신 큰 소망은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다.” 다락방에서 제자들과만 같이 계실 때에 예수님의 처음 명령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계명이 제자들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새로운 이념과 충동이 그들을 지배하여야 하였으며 새로운 원칙이 그들로 말미암아 실행되어야 하였으며 그분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그들이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아셨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의 빛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가졌다. 은혜의 온 사업은 사랑과 극기와 자아 희생적인 노력의 계속적인 봉사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머무르신 매 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억제할 수 없는 물결로 그분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의 성령의 감화를 받는 자들은 모두 그분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움직이게 한 모든 원칙이 그들 상호간의 관계에서 그들을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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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은 저희의 제자된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힘이나 사리(私利)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 결합할 때 그들은 모든 인간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일치가 존재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속에서 회복되고 있으며 생애의 새로운 원칙이 심어졌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거룩한 본성 가운데 악의 초자연적인 작용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타고난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이기심을 정복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교회에 나타난 이 사랑이야말로 사단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쉬운 길을 설계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복음은 반대와 위험과 손실과 고통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투쟁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하는 자들은 다만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 불과하다.
세상의 구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계속적으로 외형상의 실패에 직면하셨다. 자비의 사자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은 당신이 향상시키고 구원하는 일에서 하고자 갈망한 일을 거의 하시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사단의 세력은 그분의 길을 방해하려고 계속적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낙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그분은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라고 선언하신다. 다음에 기록된 말씀은 그리스도께 주어진 약속이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사 49:4, 5,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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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이 말씀에 의지하셨으며, 유리한 것은 하나도 사단에게 주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굴욕의 마지막 발걸음을 옮겨 놓으셔야 했을 때, 곧 가장 깊은 슬픔이 그분의 영혼을 둘러쌌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느니라.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 14:30, 16:11, 12:31). 이제 예언적 안목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큰 투쟁에서 벌어질 광경들을 훑어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을 때에 온 하늘이 개가를 부를 것을 아셨다. 그분의 귀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과 하늘 조정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함성이 들렸다. 그분은 그 때에 사단의 제국의 멸망을 고하는 조종이 울릴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우주를 통하여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선포될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그들이 요청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음을 기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전능하신 섭리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주어졌음을 알고 확신 있게 말씀하셨다. 성령의 전능으로 무장한 진리가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을 것이며 피묻은 깃발이 당신의 추종자들 위에 의기양양하게 휘날리게 될 것을 예수께서는 아셨다. 당신이 신뢰하는 제자들의 생애가 그분의 생애와 같이 중단되지 않는 승리의 연속이 될 것인데 비록 현세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위대한 내세에서는 그렇게 인정되리라는 사실을 그분은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하거나 낙망하지 않으셨는데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그와 같은 인내성 있는 믿음을 나타내야 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하며 그분이 일하신 것처럼 일하여야 한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위대하신 주장(主將)으로 의지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용기와 힘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 분명히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는 것들이 저희 길을 막을지라도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전진해야 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슬퍼하는 대신에 극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은 어떤 일에도 실망하지 말고 범사에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비길 데 없는 사랑의 금사슬로 그들을 하나님의 보좌에 붙들어 매셨다. 모든 능력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우주에서 가장 높은 감화가 그들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다. 그들은 악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세상이나 죽음이나 지옥이라도 정복할 수 없는 능력,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을 승리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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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질서, 하늘 정부의 계획, 하늘의 거룩한 조화가 지상에 있는 당신의 교회에서 나타나게 되기를 계획하신다. 이렇게 하여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그분은 영광을 받으신다. 그들을 통하여 의의 태양은 광명한 광채를 세상에 비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구속하고 사신 사람들에게서 큰 영광의 소득을 얻기 위하여 당신의 교회에 막대한 편의를 제공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그분 자신의 충분한 역량을 나타낼 수 있도록 능력과 축복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려 주셨다. 그리스도의 의를 부여받은 교회는 그분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이라는 보화가 완전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나게 될 그분의 보고(寶庫)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당신의 영광을 보충하는 순결과 완전함을 입은 백성들을 당신의 굴욕에 대한 보상으로 바라보신다. 그리스도, 그분은 모든 영광을 발산하는 대중심이시다.
힘 있고 희망에 가득 찬 말씀으로 구주께서는 교훈을 마치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 가운데서 영혼의 괴로움을 토로하셨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시고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하도록 주어진 사업을 마치셨다. 그분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분의 사업을 계승할 자들을 모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와 같이 신적인 권위를 지닌 자의 언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선택된 교회를 아버지의 팔에 위탁하셨다. 성별된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중재하신다. 충실한 목자로서 그분은 강하고도 확실한 피난처로, 곧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로 당신의 양무리를 모으신다. 그분에게는 사단과의 마지막 투쟁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분은 이 투쟁을 맞으려고 나아가신다.
시대의 소망 pp. 673-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