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장 종의 종
예루살렘에 있는 어느 집의 다락방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같이 식탁에 앉아 계셨다. 그들은 유월절을 경축하기 위하여 모였다. 구주께서는 오직 열두 제자와만 이 절기를 지키고자 하셨다. 그분은 자기 때가 왔음을 아셨다. 그분 자신이 참 유월절 양이었으며 유월절을 먹는 그날에 희생되실 것이었다. 그분은 바야흐로 진노의 잔을 마시려고 하셨으며 곧 최후의 고통의 침례를 받으실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조용한 몇 시간이 그분에게 남아 있었으며 따라서 그분은 이 시간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보내려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무아(無我)의 봉사의 생애였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한”(마 20:28) 것이 그분의 모든 행동의 교훈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하였다.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과 정신에 그것을 영원히 인식시켜 준 한 예증으로써 당신의 교훈을 반복하셨다.
예수님과 당신의 제자들이 만나는 시간은 대체로 조용한 기쁨의 기회였으며 그들 모두 이를 매우 귀중히 여겼다. 유월절 만찬은 특별한 흥미를 자아내는 자리였으나 이번 경우에는 예수께서 괴로워하셨다. 그분의 마음은 무거웠으며 그분의 얼굴에는 침울한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들은 그분의 마음을 무겁게 억누르는 무엇을 느낄 수 있었으며 비록 그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그분의 슬픔을 동정하였다.
-643-
그들이 식탁 주위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는 슬픈 어조로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떠나사 아버지께로 갈 시간이 온 것을 아셨다. 그분은 세상에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제 그분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 계셨는데 고통이 그분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분이 배반을 당할 때 그분은 자신이 버림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분은 범죄자들이 당하는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분은 당신이 구원하려고 오신 자들의 망은(忘恩)과 잔인성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치러야 할 희생이 얼마나 큰 것임과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것은 헛된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아셨다. 자신 앞에 놓인 모든 일을 아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당할 수치와 고통을 생각하시고 자연히 압도당할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소유로 당신과 함께 있었고 또한 당신의 수치와 슬픔과 고통스러운 일이 지난 다음 세상에서 투쟁하도록 남겨질 열두 제자들을 바라보셨다. 자신이 받으셔야만 하는 고통을 생각하실 때는 언제나 제자들과 연결을 지어 생각하셨다. 그분은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을 염려하시는 마음이 맨 먼저 그분의 마음에 떠올랐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보내는 이 마지막 저녁에 그들에게 하실 말씀이 많으셨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께서 나누어 주고자 하시는 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더라면 그들은 가슴이 터지는 듯한 괴로움과 실망과 불신을 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을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얼굴을 바라보셨을 때에 경고와 위안의 말씀이 그분의 입술에 머물렀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예수께서는 기다리고 계시는 듯하였다. 제자들은 편안치 않았다. 그리스도의 슬픔으로 말미암아 환기되었던 동정과 친절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고통을 가리키는 그분의 슬픈 말씀은 거의 감명을 주지 못하였다. 각자가 던지는 시선은 질투와 논쟁을 말해 주었다.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있었다. 그리스도 앞에서 진행된 이와 같은 논쟁은 그분의 마음을 슬프고 상심되게 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권세를 주장하면서 다윗의 보좌에 좌정하실 것이라는 자랑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그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였고, 서로 서로를 평가하였으며, 저희 형제들이 더욱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첫째로 내세웠다. 그리스도의 보좌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는 다른 제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두 형제가 감히 가장 높은 지위를 요구한 것이 열 제자들을 격분시켜 서로를 멀리하게 하였다. 자신들은 잘못 판단을 받았고 그들의 충성과 재능은 옳게 평가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유다는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가장 가혹하였다.
-644-
제자들이 다락방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적개심으로 가득 찼다. 유다는 왼편으로 그리스도의 다음 자리를 헤집고 들어갔으며 요한은 바른 편으로 나아갔다. 만일 그 곳에 제일 높은 자리가 있다면 유다는 기어코 그것을 차지하려고 했을 것이며 그 자리는 그리스도 옆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반역자였다.
또 다른 알력의 원인이 생겼다. 잔치가 있을 때에는 종이 손님들의 발을 씻기는 것이 관례였으며 이때는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 항아리와 대야와 수건이 그 곳에 있어 발 씻길 준비가 다 되었으나 종이 그 곳에 없었으므로 제자들이 이 일을 해야만 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자존심이 상할 그 종의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모든 제자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것처럼 냉정한 무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잠잠히 앉아서 스스로 낮은 데 처하여 겸손하기를 거절하였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사단이 그들에게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도록 이 불쌍한 영혼들을 인도하셔야 할까? 어떻게 그분은 제자라고 공언하는 것만이 제자가 되게 하지 못하며 또한 그분의 나라에서 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 어떻게 그분은 참된 위대함은 사랑의 봉사, 즉 참된 겸손이라는 것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 어떻게 그분은 그들의 심령에 사랑의 불을 붙여서 당신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로 이해하게 하실 수 있을까?
서로 봉사하려고 움직이는 제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려고 한동안 기다리셨다. 그런 다음 거룩한 교사이신 예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는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제자들은 놀란 나머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조용히 기다렸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셨다. 이러한 동작은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였다. 쓰라린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저희 마음에 가득 찼다. 그들은 무언의 책망을 이해하였으며 다같이 새로운 빛 가운데서 자신들을 바라보았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들의 이기적인 정신이 그분의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채웠으나 그분은 그들의 갈등에 대하여 그들과 논쟁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분은 그들이 결코 잊지 못할 한 모본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쉽게 흩어지거나 꺼지지 않았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만물을 그의 손에 맡기셨고 당신은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분은 당신의 충만한 신성을 의식하셨지만 당신은 왕관과 왕복을 벗으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지상 생애에서 그분이 마지막으로 행하신 일들 중의 하나는 종처럼 몸소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종의 일을 행하신 것이었다.
-645-
유월절 전에 유다는 다시 한 번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만나서 그들의 손에 예수님을 넘겨 주기로 계약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아무런 잘못 없이 순결한 것처럼 제자들과 섞여 잔치를 준비하는 일에 흥미를 나타냈다. 제자들은 유다의 의도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다. 예수께서만 그의 비밀을 알 수 있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폭로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영혼을 갈망하셨다. 그분은 운명 지어진 도성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셨을 때와 같은 부담을 유다에게도 가지셨다. 그분의 마음은 어찌 내가 너를 버릴 수 있을까 하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 사랑의 강권하는 능력을 유다는 느꼈다. 구주의 손이 더럽혀진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으시는 순간 유다의 마음은 즉시 그의 죄를 회개하려는 충동으로 떨렸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을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회개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잠시 동안 사라졌던 옛 충동이 다시 그를 지배하였다. 유다는 이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의 행동을 보고 성이 났다.
예수께서 자신을 이처럼 비천하게 하실진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현세적 왕국의 세속적 영광에 대한 모든 희망은 소멸되었다. 유다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을 확신했다. 그가 생각했던 대로 스스로 지위를 낮추시는 그리스도를 본 후에 그는 그리스도와 의절하려는 의도를 굳게 하였으며 속았다고 스스로 고백하였다. 마귀는 그를 사로잡았고 그는 그의 주를 배반하는 데 있어서 하기로 동의했던 그 일을 완성하고자 결심하였다.
식탁에서 자리를 택하는 일에 있어서 유다는 첫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종으로서 유다를 첫째로 섬겼다. 유다가 가장 미워하였던 요한은 제일 마지막으로 봉사를 받았다. 그러나 요한은 이것을 견책으로나 멸시로 여기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행동을 지켜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베드로의 차례가 왔을 때 그는 놀라서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었다. 그리스도의 겸손이 그의 마음을 깨뜨렸다. 베드로는 이 섬기는 일을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행하고 있지 않음을 생각하고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주께서 종의 일을 행하시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온 영혼이 이 굴욕에 대하여 분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위하여 오신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큰 소리로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이다”라고 부르짖었다.
-646-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가 거절한 봉사는 더 높은 정결의 표상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악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씻으려고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발을 씻기시도록 허락하지 않으므로 베드로는 그 낮은 정결 가운데 포함된 더 높은 정결을 거절하고 있었다. 그는 참으로 그의 주님을 거절하고 있었다. 주께서 우리의 정결을 위하여 일하시도록 허락하는 것은 주님을 굴욕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유익을 위하여 준비된 것은 무엇이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가장 진정한 겸손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교만과 고집을 버렸다. 그는 그리스도와 분리된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베드로는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육체적 정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그 낮은 정결의 예증을 통하여 더 높은 정결을 말씀하고 계신다. 목욕하고 온 사람은 깨끗하지만 샌들을 신은 발은 곧 더러워지므로 다시 씻을 필요가 있었다. 그와 같이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은 죄와 불결을 씻기 위해 열려 있는 큰 샘에서 씻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소유로 인정하셨다. 그러나 유혹은 그들을 악으로 유인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아직도 그분의 정결하게 하시는 은혜가 필요하였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에서 먼지를 씻으실 때에 예수께서는 바로 씻으시는 그 일로써 그들의 마음에서 이간(離間)과 질투와 교만을 함께 씻어 버리기를 원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먼지 묻은 발을 씻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일이었다. 그 때 그들이 가졌던 정신으로 볼 때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위해 준비된 자는 하나도 없었다. 겸손과 사랑의 상태로 돌아가기 전에는 그들이 유월절 만찬에 참석하거나 혹은 그리스도께서 세우려고 하시는 기념 예식에 참여할 준비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정결해야만 하였다. 교만과 이기심이 알력과 증오심을 일으켰으나 이 모든 것을 예수께서는 그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씻어 버리셨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을 바라보며 예수께서는 “너희가 다 깨끗하”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이제 그 곳에는 마음의 연합과 서로 사랑함이 있었다. 그들은 겸손하고 온순하게 되었다. 유다 외에는 모두가 다 가장 높은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하였다. 이제 부드럽고 우아한 마음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입었으나 종종 죄악과 접촉함으로 마음의 순결이 더럽혀진다. 우리는 그분의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를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베드로는 그의 더러운 발을 그의 주요 주인이신 분의 손과 접촉시키기를 피하였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우리는 우리의 죄 많고 더러워진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져가 접촉시키고 있는가? 우리의 악한 성질과 허영과 교만이 얼마나 그분을 슬프시게 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결점과 더러움을 모두 예수께 가져가야 한다. 예수께서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씻으실 수 있다. 그분의 공로로 깨끗함을 받지 않는 한 우리는 그분과 교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649-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유다의 발을 씻기셨지만 그의 마음은 예수께 굴복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정결하게 되지 않았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께 복종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옷을 입고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분의 존엄성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시키고자 하셨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무한히 높으신 분으로서 그분은 그 예식에 은혜와 의의를 부여하셨다. 그리스도처럼 높임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몸을 굽혀 가장 낮은 의무를 감당하셨다. 육적인 마음에 머무르며 자신을 섬김으로 굳어지는 그 이기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잘못 인도되지 않도록 하고자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겸손의 모본을 세우셨다. 그분은 이 위대한 주제를 사람의 수중에 남겨 두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셔서 하나님과 동등이신 그분이 몸소 당신의 제자들에게 종으로 행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가장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서로 다투고 있는 반면에 모든 사람이 그를 향하여 무릎을 꿇으며 영광의 천사들도 섬기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그분이 허리를 굽혀 자기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분은 당신을 팔 자의 발을 씻기셨다.
당신의 생애와 교훈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안에 그 기원이 있는 무아의 봉사에 대한 완전한 모본을 보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으신다. 세계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심으로 그분은 계속하여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하나님께서는 이 봉사의 이상을 아들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본을 통하여 봉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의 선두에 서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봉사의 법칙 아래 있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섬기셨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셨다. 이리하여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셨으며 당신의 모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순종할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
-650-
예수께서는 여러 번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 이 원칙을 세우려고 노력하셨다. 야고보와 요한이 무리 가운데 뛰어나게 되기를 요구하였을 때에 그분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된”(마 20:26)다고 말씀하셨다. 내 나라에는 편애와 최상권의 원칙은 없다. 유일의 위대함은 겸손의 위대함이다. 유일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함에서 찾을 수 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 가운데서 단지 친절한 행동만을 하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었다. 여행에서 더러워진 먼지를 없애려고 손님들의 발을 씻기는 그 이상을 의미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종교적 예식을 세우고 계셨다. 우리 주님의 행동으로 이 겸손 예식은 성별된 예식이 되었다. 예수님의 겸손과 봉사의 교훈을 항상 기억하기 위하여 제자들은 이 예식을 지켜야만 하였다.
이 예식은 성만찬 예식을 위하여 준비토록 그리스도께서 지시하신 것이다. 교만과 알력과 최고가 되려고 다투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서는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찬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예수께서 당신의 겸손을 기념하여 먼저 준수하도록 지정하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의식에 나올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생명과 영광의 주님의 다음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인간에게는 그의 형제들보다 자신을 더욱 높이 평가하고 자아를 위해 일하며 가장 높은 자리를 구하는 성벽(性癖)이 있어서 이것들은 종종 악한 억측들과 정신적 괴로움을 초래한다. 성만찬 예식에 앞서 행하는 의식은 이런 오해들을 제거하고 인간에게서 이기심을 쫓아내며 자고의 높은 위치에서 그의 형제를 섬기도록 이끄는 겸손한 마음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이다.
거룩한 순찰자가 이때에 하늘에서 내려와 이 의식이 심령을 살피는 의식, 죄를 뉘우치는 의식, 그리고 사죄의 복된 보증의 의식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참석하신다. 당신의 충만한 은혜를 가지고 그리스도께서는 이기적인 수로를 통하여 흘러내려온 사상의 조류를 변화시키시려고 그 곳에 계신다. 거룩한 성령께서는 저희 주님의 본을 따르는 자들의 감각을 활발하게 하신다.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구주의 겸손을 기억할 때에 사상과 사상은 연결되며 일련(一連)의 추억들, 곧 하나님의 크신 인자(仁慈)와 지상 친구들의 호의와 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축복을 잊어버리고 자비를 남용하고 친절을 등한히 여긴 일들이 마음에 떠오른다. 사랑이란 귀중한 나무를 밀어낸 쓴 뿌리들이 나타난다. 품성의 결함과 의무에 대한 태만과 하나님께 감사치 않음과 동포들을 냉정하게 대한 일들이 기억에 떠오른다. 죄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빛 가운데 드러난다. 우리의 사상은 자기도취의 사상이 아니요, 엄격한 자책과 겸손의 사상이 된다. 심령은 활기를 얻어 이간을 일으킨 모든 장벽을 헐어 버린다. 악한 생각과 악한 말은 제거된다.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받는다. 그리스도의 부드럽게 하는 은혜가 심령에 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들을 다 같이 복스러운 연합으로 이끈다.
-651-
이와 같이 준비 예식에서 교훈을 배우게 될 때에 더욱 높은 영적 생애에 대한 소망이 불붙게 된다. 이 소망에 대하여 거룩한 증인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영혼은 향상될 것이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의의 태양 광선은 마음의 밀실과 심령의 성전에 가득 찰 것이다.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을 바라본다.
이 예식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결코 단순한 예식이 될 수 없다. 이 예식의 계속적인 교훈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는 말씀이 될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하늘 보고(寶庫)의 영원한 부를 당신과 함께 상속받게 하고자 당신은 어떤 비천한 봉사라도 하실 수 있다는 증거를 주셨다. 같은 의식을 행함으로 그분의 제자들은 같은 방법으로 저희 동포들을 섬길 것을 스스로 서약한다. 이 예식이 바르게 거행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도우며 서로 축복하는 거룩한 교제에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저희 생애를 무아적 봉사 사업에 바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 봉사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일터는 그들의 주님의 일터만큼이나 넓다. 세계는 우리의 봉사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가난하고 무력하고 무지한 자들이 각처에 있다.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성만찬에 참여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봉사하기 위하여 나아갈 것이다.
모든 존재들의 섬김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사람의 종이 되려고 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람을 섬기셨으므로 모든 사람의 섬김과 영예를 받으실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하고 구속받은 영혼들을 바라보는 기쁨을 그분과 나눌 자들은 그분의 무아의 봉사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이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것이 예수께서 세우신 예식의 의미였다. 그리고 그분은 “너희가 이것을 알고,” 너희가 그분의 교훈의 목적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시대의 소망 pp. 642-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