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 59일

55장 볼 수 있게 임하지 않음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었다. 침례 요한이 나팔 소리처럼 온 땅을 울리는,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는 기별을 전한 지도 벌써 삼 년 이상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이 바리새인들은 왕국이 설립되었다는 아무런 증거를 보지 못하였다. 요한을 거절하고 발걸음마다 예수님을 반대한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사명이 실패했다고 암시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표로 세속적 권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바라보지 말라.

제자들을 돌아보면서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고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에는 세속적인 화려함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그대들은 영광스러운 ‘나’의 사명을 분별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그대들은, 비록 인성에 가려졌지만 사람의 생명과 빛이 되는 그분이 그대들과 같이 있는 현재의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대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기회, 즉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담화하며 길을 걸어가는 그러한 기회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라도 그들이 지닌 이기심과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신 영적 영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자들이 구주의 품성과 사명을 충분히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로 승천하시고 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후의 일이었다. 성령의 침례를 받은 후에야 그들은 자신들이 영광의 주께서 임재하신 바로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의 기억에 되살아 날 때에, 그들의 마음은 열려서 예언을 이해하고 그분께서 행하신 이적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경이로운 그분의 생애가 저희 앞에 지나갔으며 그들은 꿈에서 깬 사람들과 같았다. 그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는 말씀을 깨달았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아담의 자녀들을 구원하려고 실제로 하나님을 떠나 죄 많은 세상에 오셨다. 제자들은 이 모든 사실을 깨닫기 전보다 이제 자신들이 더욱 하찮게 생각되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과 하신 일을 되풀이해 말하는 데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어렴풋이 이해했던 그분의 교훈들이 이제 새로운 계시처럼 제자들에게 똑똑히 제시되었다. 성경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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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예언들을 탐구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고 당신이 세상에서 시작한 사업을 마치기 위해 승천하신 그분을 잘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거룩한 능력의 도움 없이는 어떤 인간도 깨달을 수 없는 지식이 그분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왕과 선지자와 의인들이 예언한 그분의 도우심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놀라움으로 그분의 품성과 사업에 대한 예언적 기록을 읽고 또 읽었다. 예언적인 성경 말씀을 그들은 얼마나 희미하게 이해했던가! 그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위대한 진리를 얼마나 느리게 이해했던가!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걸어 다니신 치욕적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은 그분의 성육신의 신비, 곧 인성과 신성을 겸비하신 그분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은 저희 견해에 붙잡혀서 인성 가운데 있는 신성을 충분히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성령의 깨우치심을 받은 후에 그들은 그분을 다시 보고 그분의 발 앞에 나아가기를 얼마나 사모했던가! 그들은 그분께 나아가, 자신들이 깨달을 수 없는 성경말씀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던가! 그들은 그의 말씀을 얼마나 주의 깊이 들을 것이었던가! 그리스도께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하셨을 때에 그분은 무엇을 의미하셨던가?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열렬히 알기를 원했던가! 제자들은 그들의 믿음이 매우 약했던 것과 그들의 사상이 목표에서 매우 멀리 벗어나서 그 실재를 깨닫지 못한 것을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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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한 사자를 보내셔서 그리스도의 초림을 선언하며 그분의 사명에 대하여 유대 나라와 온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에게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하도록 하셨다. 요한이 선언한 놀라운 인물이 삼십 년 이상 그들 가운데 계셨지만 그들은 참으로 그분을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자로 알지 못했다. 제자들은 널리 퍼진 불신이 그들의 견해에 영향을 끼치고 그들의 이해력을 어둡게 하도록 허용했던 것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신 그분께서 그 어둠 가운데서 비추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빛이 어디서 온 것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께서 책망하실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였다. 그들은 종종 그분의 말씀을 반복하면서 왜 우리가 세속적 생각과 제사장들이나 랍비들의 반대가 우리의 감각을 혼란하게 하도록 방임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모세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우신 분이 우리를 가르치고 계신 것을 깨닫지 못하였을까 하고 말하였다. 우리의 귀는 얼마나 둔했던가! 우리의 이해력은 얼마나 약했던가!

도마는 로마 군인들에게 입은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보기 전에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그분께서 천대받고 거절당하실 때에 부인하였다. 이와 같은 쓰라린 기억들이 또렷하게 그들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옳게 평가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불신을 깨달았을 때 이 모든 일이 이제는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분기시켰던가!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연합하여 그들을 대적하고 공회 앞으로 끌려가서 옥에 던져졌을 때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행 5:41)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를 기뻐하였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그분을 따르기로 선택하였다.

성령의 조명(照明) 없이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 사도 시대처럼 오늘날에도 사실이다. 진리와 하나님의 사업은 세상을 사랑하고 타협하는 그리스도교로 말미암아 옳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안일하고 세속적인 영광과 세상과 일치하는 길 가운데서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수고와 비천과 비난의 길에서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엡 6:12)하여 싸우는 전쟁 마당에서 멀리 앞선 자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계시던 시대처럼 오늘날도 그들은 이 시대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오해와 비난과 압박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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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지 않는다. 자아 희생의 정신을 지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결코 세속적인 정신과 조화될 수 없다. 이 두 원칙은 서로 반대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그러나 오늘날 종교계에는 그들이 믿는 대로 세상적이고, 현세적인 주권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을 이 세상 나라의 치리자 즉 법정과 병영(兵營), 국회, 궁정, 시장(市場)의 치리자로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그분께서 인간의 권위에 의해 집행되는 법령들을 통해서 통치하기를 기대한다.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이 세상에 육체로 계시지 않으므로 그들 자신이 그분을 대신하여 그분의 왕국의 율법을 집행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왕국의 건설이 그리스도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던 것이었다. 그분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집행하기 위해 현세적인 왕국을 자진해서 세우고 그들을 당신의 뜻의 해설자와 능력의 대행자로 삼으셨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세상 보좌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사시던 그 당시의 정부는 부패하고 강압적이었다. 도처에서 토색과 편협과 잔인한 압제 등의 악폐들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주께서는 사회 개혁을 시도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국가의 권력 남용을 공격하지도 않으셨고 국가의 원수를 정죄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권력을 장악한 자의 권위와 행정에 간섭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모본이신 그분께서는 세속적인 정치를 멀리하셨다. 그분께서 사람들의 재난에 무관심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구제책이 단순히 인간적인 그리고 외적인 조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제책이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미쳐야 하고 반드시 마음을 개심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법정이나 회의나 입법 기관의 결정, 또는 세상의 위인들의 후원을 얻어 설립되는 것이 아니요, 성령의 역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인간의 마음에 심음으로 이루어진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13). 여기에 인류를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이 사업을 성취하기 위한 인간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실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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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인구가 조밀하고 부요하고 사악하고 이교(異敎)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습으로 더럽혀진 고린도에서 봉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전 2:2). 그 후 바울은 가장 더러운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었던 어떤 자들에게 편지할 때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6:11, 1:4)라고 그는 말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 나라의 사업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인간의 법률의 인정과 지지를 극성스럽게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영적 진리 즉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 속에 바울의 경험을 이루어 낼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자들에게 맡겨지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그렇게 될 때 그들도 바울처럼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고 말하였다.

시대의 소망 pp. 50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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