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광야의 외치는 소리
메시야의 강림을 오랫동안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일어났다. 연로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용하고 거룩한 생애에서 그 당시의 악하고 흑암한 시대 가운데 빛나는 별과 같은 믿음의 빛이 비쳐나왔다. 이 경건한 부부에게 한 아들이 약속되었는데 이 아들은 “주 앞에 먼저 가서 그 길을 예비”할 자였다.
“사가랴는 유대 산중”에 거주하였으나 성전에서 한 주일 동안 봉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이 봉사는 제사장들이 그 반열대로 일 년에 두 번씩 행하는 봉사였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 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였다.
그는 성전의 성소 안에 있는 금 제단 앞에 서 있었다. 향연은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그는 신의 임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주의 천사가 “향단 우편에 서” 있었다. 그 천사가 선 위치는 은총을 위하여 왔음을 나타내주었다. 그러나 사가랴는 이것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구주의 강림을 위하여 기도해 왔었다. 이제 그의 이러한 기도가 막 응답되려고 한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한 사자가 보냄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너무나 엄청나서 사가랴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두려움과 자책으로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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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이러한 기쁜 보증을 받았다.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사가랴는 아브라함이 약속하신 분께서 미쁘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노년에 어떻게 한 아들이 주어졌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로한 제사장은 잠시 인간의 연약성에 그의 생각을 돌렸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의 이 불신은, 천사가 그 귀한 기별을 전하였을 때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대답한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의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아브라함과 마리아의 아들의 출생과 같이 사가랴에게 아들의 출생은 큰 영적 진리, 곧 우리가 느리게 배우고 쉽게 잊어버리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순복하고 믿는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약속의 아들을 얻은 것은 믿음을 통하여 된 것이었다. 영적 생명을 낳게 하고 우리로 의로운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사가랴의 물음에 천사는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말하였다. 5백 년 전에 가브리엘 천사는 그리스도의 초림 시까지 미치는 예언적 기간을 다니엘에게 알려 주었다. 이 예언적 기간의 끝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사가랴는 메시야의 강림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이제 이 예언을 알려 준 바로 그 천사가 또한 이 예언의 성취를 알려 주기 위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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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고 한 천사의 말은 그가 하늘 궁정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니엘에게 기별을 가지고 왔을 때 그는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군 미가엘(그리스도)뿐이니라”(단 10:21)고 말하였다. 가브리엘에 대하여 구주께서 요한계시록에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천사는 요한에게 “나는 너와 너의 형제 선지자들과…함께 된 종이니”(계 22:9)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아들 다음 가는 영예로운 지위의 천사가 하나님의 계획을 죄된 인류에게 드러내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가랴는 천사의 말에 의심을 표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천사의 말이 성취되기까지 말을 하지 못할 것이었다. 천사는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예식을 집전할 때 일반 공중과 국민의 죄의 사유를 위하여 또한 메시야의 강림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제사장의 의무였다. 그러나 이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사가랴는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백성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나와서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기다렸고, 혹시 그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임을 당하지나 않았는지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가 성소에서 나왔을 때 그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났으며 백성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다. 사가랴는 그가 보고 들은 바를 그들에게 알려 주고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약속되었던 아들이 출생하자 곧 아버지의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였다. 이 모든 일은 요한이 그 길을 예비하게 되어 있었던 메시야의 강림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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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사가랴에게 임하자 그는 그의 아들의 사명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말로 예언하였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요한이 출생하기 전에 천사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인간에게 맡기신 사업 중 가장 위대한 사업을 하도록 사가랴의 아들을 부르셨다. 이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는 주를 그의 동역자로 모셔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천사의 지시에 유의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실 것이었다.
요한은 여호와의 사자로서 나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가져다 줄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사상에 새 방향을 제시해야 했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요구의 신성성을 인식시키고 완전한 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야 했다. 그러한 기별자는 거룩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실 성전이 되어야 했다. 그는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건전한 체력과 정신적·영적 능력을 가져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식욕과 정욕을 지배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광야의 바위나 산들처럼 주위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설 수 있도록 자기의 모든 능력들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하였다.
침례 요한의 시대에는 재물에 대한 탐욕과 사치와 과시에 대한 사랑이 널리 퍼져 있었다. 관능적인 쾌락, 잔치와 먹고 마시는 일이 육체에 질병과 쇠퇴를 일으키고 영적 지각을 흐리게 하며 죄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요한은 개혁자로 설 것이었다. 그는 절제의 생애와 검소한 의복으로 그 시대의 부절제를 책망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요한의 부모에게 지시들, 곧 하늘 보좌로부터 보냄을 받은 천사를 통하여 절제에 대한 교훈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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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과 소년 시대의 품성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다. 자제력도 이 때 습득해야 한다. 노변(爐邊)과 가정 식탁에서 그 결과가 영원에 미치는 감화가 끼쳐진다. 유년기에 형성된 습관은 어떤 천품(天稟)보다도 더 인생의 투쟁에서 사람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청소년기는 씨를 뿌리는 때이다. 청소년기는 현세와 내세에 우리가 거둘 수확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요한은 한 선지자로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게 할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하여 길을 예비함으로 주의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시킬 자들의 한 표상이었다. 세상은 방종에 빠져 있다. 오류와 우화(寓話)가 많으며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한 사단의 올무는 증가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제와 자제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식욕과 정욕은 보다 더 고상한 정신력에 복종되어야 한다. 이 자아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해 줄 정신력과 영적 통찰력을 얻는 데 필수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절제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에서라면 사가랴의 아들은 제사장직을 위하여 교육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랍비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더라면 그는 그의 사업을 행하기에 부적당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습득하도록 신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그를 보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천연계와 그 천연계의 하나님을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그를 광야로 부르셨다.
그가 자기의 집으로 정한 곳은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지역으로, 황량한 언덕들과 거친 계곡들과 암굴들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엄격한 수양을 받기 위하여 세상의 향락과 사치를 버리기로 선택하였다. 이곳의 환경은 단순함과 극기의 습관을 기르기에 유리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소란한 세상에 방해받지 않고 천연계와 계시와 섭리의 공과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부모는 사가랴에게 나타났던 천사의 말을 요한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그의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요한에게 사명을 계속 제시해 주었으며, 요한은 그 거룩한 책임을 받아들였다. 광야의 고독은 그에게 의심과 불신과 부정(不淨)이 거의 만연된 사회를 피하는 즐거운 특권이 되었다. 그는 시험에 대항하는 데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죄의 흉악성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죄와의 접촉을 항상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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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서 그는 일생을 성별하기로 스스로 서원하였다. 그는 옛날 선지자의 옷인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띠었다. 그는 광야에서 구할 수 있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산에서 나오는 맑은 물을 마시고 살았다.
그러나 요한의 생애는 하는 일 없이 금욕적인 우울 가운데서 이기적인 은둔을 하는 그런 생애가 아니었다. 그는 이따금씩 밖에 나가서 사람들 가운데 섞였으며, 그는 언제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흥미 있게 관찰하였다. 그는 이 한적한 은거처에서 사건들이 전개되는 것을 주목하였다.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통찰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특성을 연구하므로 하늘의 기별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알고자 하였다. 그의 사명의 짐이 그에게 놓여있었다. 그는 외로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평생 사업을 위하여 그의 심령을 동이는 데 힘썼다.
광야에 있었지만 그는 시험에서 면제되지 않았다. 그는 가능한 한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를 막았으나 그래도 그는 여전히 마귀의 맹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영적 식별력은 예민하였다. 그는 의지의 견고성과 과단성을 수양하였으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접근을 탐지하고 그의 세력을 대적할 수 있었다.
요한은 광야에서 학교와 성소를 발견했다. 미디안 산중의 모세와 같이 그는 하나님의 임재에 싸여 있었고 그분의 능력의 증거로 둘려 있었다. 요한은 이스라엘의 큰 지도자 모세처럼 웅대한 산중의 고요한 곳에 거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 아니었으나 그의 앞에는 요단 건너편의 모압의 산들이 있어서 산들을 세우시고 권능으로 그것들을 띠띠게 하신 하나님을 증언하여 주었다. 그의 광야의 거처가 있던 천연계의 암담하고 두려운 양상은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해 주었다. 열매를 많이 맺던 주의 포도원은 황폐해졌다. 그러나 광야의 하늘은 밝고 아름다웠다. 폭풍우를 머금고 모인 검은 구름에는 약속의 무지개가 궁형(弓形)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 위에 메시야의 통치의 약속된 영광이 비췄다. 진노의 구름을 가로질러 하나님의 언약과 자비의 무지개가 걸쳐 있었다.
홀로 고요한 밤에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별과 같이 무수한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읽었다. 모압 산들을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여명의 빛은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없는 아침 같”(삼하 23:4)으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리고 낮이 되어 환하게 밝을 때에 그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사 40:5)게 될 그분의 나타나심의 광휘(光煇)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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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경외심을 가지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예언의 두루마리 가운데서 메시야 곧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약속된 후손의 강림에 대한 계시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분은 다윗의 보좌에서 왕위가 떠나기 전에 나타나실 실로, 곧 “평강을 주시는 자”이셨다. 이제 그 때가 이르렀다. 한 로마의 통치자가 시온산의 왕궁에 자리하였다. 주의 확실한 말씀에 따라서 이미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이사야가 메시야의 영광을 그린 황홀한 묘사를 그는 밤낮으로 연구하였다. 그분을 곧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며 공의로 다스리는 임금, “폭우를 가리우는 곳,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 되시며 이스라엘을 더 이상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않으며 다시는 그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않고 오직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고 하며 그 땅을 쀼라라 하신 것들이었다(사 11:4, 32:2, 62:4 난외주). 고적한 은거자 요한의 마음은 영광스러운 광경으로 가득 찼다.
그는 아름다우신 왕을 바라볼 때에 자신을 잊어버렸다. 그는 거룩하신 위엄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이 보낸 기별자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만왕의 왕 앞에 머리 숙여 경배하였으므로 세상의 군주들 앞에 두려움 없이 곧게 설 수 있었다.
요한은 메시야의 왕국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그 적대 국가로부터 구원받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의로우신 왕의 강림과 이스라엘이 거룩한 나라로서 건설되는 것이 그의 소망의 큰 목표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출생 시에 주어진 예언이 성취될 것을 믿었다.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그는 자기의 백성들이 속임을 당하고 자기도취에 빠져 죄 중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을 깨워서 더욱 거룩한 생애로 인도하기를 갈망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하라고 주신 그 기별은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여 무감각 상태에서 깨어 자신들의 큰 악행 때문에 두려워 떨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전에 마음의 밭을 갈아야 했다. 그들은 예수께로부터 고침받기를 구하기 전에 먼저 죄의 상처에서 오는 위험에 대하여 각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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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발림 말을 하도록 당신의 기별자를 보내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지 못한 자들을 치명적인 안전 속에 빠뜨리려고 평화의 기별을 주지 않으신다. 그는 범죄자의 양심에 무거운 짐을 두어 그 심령을 회오의 화살로 찌르신다. 섬기는 천사들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제시함으로 하나님의 필요를 더욱 느끼게 하여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외침을 촉발시킨다. 그 때에 굴욕을 준 그 손이 통회하는 자를 일으킨다. 죄를 책망하고 교만과 야심을 부끄럽게 한 그 음성이 아주 부드러운 동정의 말로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요한의 전도 사업이 시작되던 당시의 유대 나라는 혁명 직전의 흥분과 불만 상태에 있었다. 아켈라오가 왕위에서 제거되자 유대는 로마의 직접적 지배 아래 들어가 버렸다. 로마 총독들의 폭정과 강탈, 그리고 이교의 상징과 풍습을 도입시키려는 그들의 단호한 노력은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그 반란은 수천 명의 이스라엘 용사들의 피를 흘린 다음에야 진압되었다. 이러한 모든 형편은 로마에 대한 유대 국민의 증오심을 더욱 강렬하게 하고 로마 제국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는 갈망을 더욱 강화시켰다.
불화와 분쟁 속에서 광야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은 깜짝 놀라게 하고 가혹하였으나 희망이 가득 찬 음성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말은 새롭고도 이상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먼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 예언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사건이 가깝다고 선포되었다. 요한의 이상한 외양은 청중들의 마음에 옛날의 선지자들을 연상시켰다. 그의 태도와 의복은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하였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국가적인 부패를 비난하고 널리 퍼진 죄들을 견책하였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날카로우며 또한 확신시키는 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난 선지자 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다. 나라 전체가 들끓었고 많은 무리가 광야로 모여들었다.
요한은 메시야의 강림을 전파하며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죄에서 정결함을 받는 상징으로서 그는 요단강 물에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이와 같이 그는 뜻 깊은 실물 교훈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다는 것과 또한 마음과 생애의 정결함이 없이는 메시야의 왕국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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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랍비, 군인, 세리, 농부들이 이 선지자의 말을 듣기 위해 왔다. 한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 엄숙한 경고는 그들을 놀라게 했다. 많은 사람이 회개에 이르고 침례를 받았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요한이 선포한 왕국에 참여하기 위하여 침례 요한의 요구에 순복하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와서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침례받기를 청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높였고 사람들이 그들의 경건성을 높이 평가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생애의 은밀한 죄악이 드러났다. 그러나 요한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죄를 참으로 회오(悔悟)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요한의 친구가 되어 장차 오시는 왕에게 호의를 얻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인기 있는 이 청년 교사의 손에 침례를 받음으로 백성들에게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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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그들을 통렬한 질문으로 대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한 은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약속을 그릇되게 해석하였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측량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5~37). 유대인들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이 약속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시하신 조건들을 간과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허락을 주기 전에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3, 34)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이 그 마음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은총이 약속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연합한 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떠났다. 그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들이 이방 나라에 잡혀가서 종살이하게 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범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으며 과거에 여러 번 주께서 그토록 큰 은총을 나타내 보여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죄를 변명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줄로 생각했다.
이런 일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고전 10:11)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그릇 해석하고 우리 속에 있는 어떤 선행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고 자만하는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고자 원하는 것을 우리를 위하여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의 자아 만족을 증가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불신과 죄로 굳어지게 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요한은 이스라엘의 교사들에게 그들의 교만과 이기심과 잔인성은, 그들이 의롭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에게 치명적인 저주가 되는 독사의 자손임을 보여준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에 비춰 볼 때에 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던 이방인들보다 그들이 훨씬 더 악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려져 나온 반석과 파여져 나온 구덩이를 잊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을 이방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 불러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불러서 당신의 사업을 하게 할 수 있으셨다. 그들의 마음이 지금은 광야의 돌과 같이 생명이 없는 듯이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신은 그들을 각성시켜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하고 당신의 약속을 이루게 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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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요한은 말하였다. 나무의 가치는 그 나무의 이름보다도 그 나무의 열매로 결정된다. 만일 열매가 무가치하다면 그 이름이 그 나무를 멸망에서 구할 수 없다. 요한은 유대인에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입장은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믿음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무가치하였다. 그들의 생애와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이다.
청중들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요한의 말에 죄를 자각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와서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었다. 그는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는 세리들에게는 부정한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군병들에게는 강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그리스도의 나라의 신민이 된 사람은 모두 믿음과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절, 정직, 충성이 그들의 생애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그들은 의지할 데 없는 자들을 보호해 주고 미덕과 동정의 모본을 나타낼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증거할 것이다. 일상 생애에서 의와 자비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불에 던져질 쭉정이와 같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마 3:11)라고 요한은 말하였다. 선지자 이사야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당신의 백성들의 죄악을 정결하게 하시리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주께서 하신 말씀은 곧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사 4:4, 1:25)시겠다는 것이었다. 죄가 발견되는 곳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히 12:29)이 되신다. 그의 권능에 굴복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은 죄를 소멸시키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죄를 버리지 않으면 그들은 죄와 동일시된다. 그러면 죄를 멸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또한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 야곱은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한 후에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창 32:30)고 외쳤다. 야곱은 에서에 대한 그의 행동 가운데서 큰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였다. 그의 범죄는 용서를 받았고 그의 죄는 씻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임재의 나타나심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나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죄를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들은 멸망을 당하였다.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악인들은 “그 입의 기운으로” 소멸되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살후 2:8)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의인에게는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악인들을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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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요한의 시대에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시는 자로서 나타나려고 하셨다. 그분의 임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드러나게 할 것이었다. 그들이 즐겨 죄로부터 정결케 되기를 원할 때에만 그들은 그분과의 교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그분의 임재 가운데 머무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침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하였다. 많은 사람이 그의 교훈에 유의하였다. 많은 사람이 순종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했다. 허다한 무리가 이 새 교사를 여러 곳으로 따라다녔는데, 그가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는 희망을 품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은 백성들이 자기에게로 향하여 오는 것을 보았을 때에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의 믿음을 오실 그분에게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