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7 199-208 (405일)

자제와 성실

우리는 정신적 혹은 육체적 능력에 지나친 짐을 지워서 우리가 쉽게 흥분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말을 하게끔 할 권리가 없다. 주께서는 우리가 언제나 침착하고 인내하기를 바라신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동일한 환경 아래서 그리스도께서 행동하실 것처럼 행함으로 그분을 대표해야 한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매일 매우 중대한 결과가 좌우되는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그는 때로는 신속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엄격한 절제를 실천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마음은 육체적·정신적 능력이 올바로 취급될 때 강해진다. 만일 긴장이 지나치게 심하지 않다면 그것은 부담이 주어질 때마다 새 활력을 요구할 것이다.

마음을 다 바친 그리스도인 외에는 아무도 진실한 신사가 될 수 없다.

모든 점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따르기를 등한히 하는 것은 잘못을 행하는 자에게 분명한 실패와 손실이 된다. 주님의 길을 지키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그는 그분께 바쳐야 할 봉사를 창조주로부터 도둑질한다. 이것은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간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각 사람의 특권으로 되어 있는 그 은혜와 그 능력과 그 품성의 힘을 얻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므로 그는 유혹에 노출된다. 그는 주님을 위한 그의 사업에서 실수를 범한다. 작은 일에서 원칙에 성실하지 못하므로 그는 더 큰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해져 있는 원칙대로 행동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자기 자신을 첫째로 삼고자 하는 자들과 연관될 수 없다. 이렇게 하는 자들은 결국 모든 것은 잃게 될 것이다. 가장 희망이 없고 고침받을 수 없는 죄는 생각의 교만, 곧 자부심이다. 이것은 모든 성장의 길에 서 있다. 사람이 품성의 결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 그가 자신의 결점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부심에 젖어 있을 때, 그가 어떻게 정결해질 수 있겠는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마 9:12). 그가 그의 길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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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가 자기 과신 때문에 그 길에서 떠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본을 따른다. 그의 거짓된 발걸음이 수천명을 오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눅 13:6-9).

“이 후에.” 이 말에는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위한 교훈이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에게 일정 기간의 은혜의 시기가 주어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큰 특권을 가진 자들과, 고상하고 거룩한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에 관하여 그분께서는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특별한 기구들과 관련된 자들은 그분께서 당신의 포도원에서 실과를 찾을 것임을 기억하라. 되받는 일은 부여된 축복에 비례하여 요구될 것이다.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기관들이 세워진 모든 곳을 방문하며 봉사하였다. 이 기관들에서 생기는 불성실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불성실보다 죄가 더 크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성실과 부정과 부정직과 잘못에 대한 묵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도구들로부터 발산되도록 계획하신 빛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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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대들의 말과 태도와 사업상의 거래를 예리하고도 가혹하게 비평하기 위하여 주목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일에 일익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은 주목당하고, 인간적인 식별력의 저울에 달려지고 있다. 그대와 관계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성경의 종교에 대한 호불호 (好不好) 가 끊임없이 감명된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 보고자 주시한다. 앞선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서 극기와 자아 희생을 세상이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교역자들 가운데 매 발걸음마다 예수님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한 시간을 가질 수도 신앙적인 집회에 참석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들의 영혼을 지킬 시간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경우가 생길 때, 사단이 헛된 상상력을 야기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부지런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는 교역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끼친다. 모든 기관에는 마음을 다하여 즐겁게 봉사하고 있는 자들이 있는데, 그 누룩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성실에 관한 어떤 진정한 모본없이 기관을 방치해 둘 것인가?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들의 품성이 거칠고, 이기적이고 불순하다는 것이 드러날 때 그들은 사업에서 떠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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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들은 주께서 그들을 존귀하게 해 준 책임의 신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충동적인 동기, 변덕스런 행동은 배제되어야 한다. 거룩한 것과 통속적인 것을 구별할 수 없는 자들은 고상한 책임을 맡을 안전한 청지기가 아니다. 시험을 받게 되면, 그들은 그들의 신임을 배반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특권과 기회를 감사하지 않는 자들은 원수가 그럴듯한 유혹을 제시할 때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야망적인 계획에 의하여 쉽게 오도될 것이다. 만일 빛이 그들에게 제시된 후에도 그들이 여전히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기관으로부터 빨리 관계를 끊으면 끊을수록 사업의 특성은 더욱 순수하고 더욱 고상해질 것이다.

위기의 때에 그분의 기구들이 신성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주님의 어떤 기관에도 고용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교역자들이 진리에 대하여 흥미가 없을 것 같으면, 기관과 연결된 일이 그들을 더 낫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들에게 진리에 대한 사랑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 같으면, 충분한 시험을 거친 다음에 그들을 사업으로부터 분리시켜라. 왜냐하면 그들의 비신앙과 불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하여 악한 천사들은 견습생으로 들어온 자들을 그릇 인도하기 위하여 활동한다. 그대는 장래성이 있는 젊은이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견습생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그대가 그들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과 관계를 맺도록 할 것 같으면, 그들은 끊임없이 비신앙적인 영향을 받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반신 반의하는 자들과 세속적인 자들, 험담에 빠져 있는 자들, 자기 자신의 잘못은 무시하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강조하는 자들은 사업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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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당한 독서의 위험

부적당한 독서 때문에 젊은이들이 당하는 위험을 볼 때 나는 이 큰 악에 관하여 내가 받은 경고를 더 한층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혐오스런 인물을 취급하는 문제로 인하여 교역자들에게 초래되는 손해는 거의 인식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취급하고 있는 주제에 따라 그들의 주의가 집중되고 흥미가 유발된다. 문장들이 기억 속에 새겨져 사상들이 생각에 떠오르게 한다. 거의 무의식 중에 독자는 저자의 정신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하여 정신과 품성은 악에 대한 인상을 받는다. 믿음이 적고 자제력이 적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와 같은 저술에 의하여 시사받은 사상을 떨어버리기가 어렵다.

현대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어떤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 습관을 형성했다. 교회와 연합하면서 그들은 이 습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을 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버린 것과 유사한 독서물을 놓아주는 것은 술꾼에게 알코올 음료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그들 앞에 있는 유혹에 계속적으로 굴복함으로써 그들은 미구에 건전한 독서에 대한 취미를 잃어버린다. 그들은 성경 공부에 관심이 없다. 그들의 도덕력은 약화된다. 죄는 점점 더 덜 혐오스러워 보인다. 불성실이 증가해 가고 생애의 실제적인 의무에 대한 싫증이 커져간다. 정신이 왜곡되어 감에 따라 자극적인 성격의 독서물을 취할 준비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사단이 그 영혼을 그의 지배 아래로 완전히 끌고가는 길이 열린다.

그렇게 결정적으로 오도되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작품들도 만일 성경 연구에 대한 싫증을 준다면 여전히 피해야 한다. 이 말씀은 진정한 만나이다. 모든 사람은 정신에 양식이 되지 않는 독서물에 대한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독서로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면서 맑은 지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업에 임하고 있는 자들은 경박한 독서를 위하여 시간도 돈도 써서는 안 된다. 겨를 어떻게 밀에 섞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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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박한 오락, 이기적인 기질의 만족에 쓰여질 시간은 없다. 지금은 그대들이 신중한 사상에 점유되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세상의 구속주의 극기와 자아 희생의 생애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농담하고 시시덕거리는 가운데 쾌락을 찾고 어리석은 일에 그대들의 시간을 날려버린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실제적인 경험이 크게 요망된다. 그대들은 정신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신앙적인 경험은 그대들의 여가 시간에 읽는 책들의 성격에 의하여 대부분 결정된다.

만일 그대들이 성경의 풍부한 보화들을 소유하기 위하여 성경을 사랑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경을 살핀다면 그대들은 예수께서 그대들을 그분께로 이끌고 계심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골 2:8-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세상의 위인들로부터 나오는 것들을 붙잡고 그들의 지혜를 지금껏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의 지혜 앞에 놓고자 한다. 그런 근원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구하는 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에서 마시고자 하는 것으로 말씀 속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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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리를 묵상과 명상의 주제로 삼으라. 성경을 읽고, 그것을 그대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간주하라. 그러면 그대들은 영감과 신령한 지혜를 발견할 것이다.

연구를 위하여 많은 책들을 함께 모으는 일은, 정신을 약화시키고 이미 받아들인 것을 정신이 흡수할 수 없게 만드는 많은 양의 지식을 너무도 흔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개입시킨다. 정신은 소화 불량이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기 위하여 이 많은 저자들과 생명의 말씀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의 형제들이여, 저지 (低地) 의 시냇물들을 버리고 레바논의 깨끗한 물로 나오라. 그대들이 소화할 수 없는 많은 것들로 마음을 꽉 채워놓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걸어갈 수는 없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결심하고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명을 받도록 허용해야 할 때이다. 너무도 많은 독서에 대하여 문을 닫도록 하자. 더 많이 기도하고 생명의 말씀을 먹도록 하자. 정신과 마음속에 더 깊은 은혜의 역사가 없는 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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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피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이 빚으로 계속 쪼들리게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기관의 건물들이나 다른 시설들을 증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처럼 보일 때에 그대들의 재정을 초과해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무거운 빚을 지고 이자를 지불하지 않고서도 그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섭리로 열릴 때까지 발전을 지연시키는 것이 더욱 좋다.

출판사들은 우리의 백성들이 돈을 맡겨놓는 장소가 되어 다른 지역에 있는 그 사업의 지소 (支所) 들을 돕는 수단이 되어 왔고 또한 다른 사업들을 수행하는 일도 도와왔다. 이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분야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주께서는 그것을 모두 보고 계신다. 그러나 주께서 내게 주신 빛에 의하면, 빚 없는 상태로 서기 위하여 모든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출판 사업은 극기로 세워졌기 때문에 엄격한 절약의 원칙 위에서 경영되어야 한다. 만일 재정상 곤란이 있을 경우에는 교역자들이 임금의 감소에 동의함으로 재정의 문제가 처리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의 기관들도 도입되어야 할 것으로 주께서 내게 계시하신 원칙이었다. 돈이 부족할 때는 우리가 즐겨 우리의 필요를 제한해야 한다.

출판물들에 대하여 정당한 평가가 주어지도록 하라. 그 다음에 우리의 출판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비록 상당한 불편이 야기될지라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절약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작은 지출들을 살펴보라. 모든 누손 (漏損) 을 방지하라. 결국에 가서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작은 손실들이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잡담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낭비된 분 (分) 들은 여러 시간의 손실을 가져온다. 믿음으로 일하면서 부지런하면 언제나 성공으로 관 씌워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것들을 챙기는 것은 그들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것을 마음이 좁고 정신이 인색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은 누출이 많은 배를 침몰시켰다. 어떤 목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낭비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절약의 부족은 분명히 우리의 기관에 부채를 안겨 줄 것이다. 비록 많은 돈을 받아들일지라도, 그것은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작은 낭비로 상실될 것이다. 절약은 인색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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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소에 고용된 모든 남녀들은 충성된 파수꾼이 되어 아무것도 낭비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재물의 지출을 요구하는 가상적인 결핍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년에 400달러로 800달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잘 산다. 우리의 기관들도 바로 그와 같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자금을 가지고 그 기관들을 운영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역자들이 절약을 실천하고, 특별히 충성된 회계원이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 기관에 있는 모든 교역자들은 공정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 만일 교역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을 것 같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하는 일에 만족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액수를 받고, 요긴하고 성실한 사업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매우 적게 받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차등이 있어야 할 경우가 있다. 출판사와 관련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그 기관에 큰 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많은 다른 직임을 맡는다면 걱정이 훨씬 적고, 재정적으로 더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단순히 기계를 다루는 교역자들에게 지급되는 것보다 더 높지 않은 임금이 이런 사람들에게 지불되는 일의 불공정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일 여자가 특정한 일을 하도록 주님께 택함을 받는다면 그의 일은 그 일의 가치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보수 없이 시간과 노력을 사업에 바치도록 사람들을 허용하는 것이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처사를 시인하지 않으신다. 재정난 때문에 극기가 요구되는 때에는 그 책임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전적으로 지워져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희생으로 연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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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당신의 재산을 맡은 자들이 인색한 것 대신에 친절과 관대함을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그들은 거래에 있어서 가능한 한 동전 하나 하나를 가차 없이 거두고자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태도를 경멸의 눈으로 보신다.

교역자들은 그들이 정직한 활동에 바치는 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아야 한다. 전시간을 바치는 자는 그 시간에 따라 받아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책임을 감당하는 일에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 바친다면 그는 거기에 상응하게 급료를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비록 그가 특별한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을지라도, 과대한 봉급을 받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행해지는 일은 보수를 목적으로 하는 근거 위에 놓여져서는 안 된다. 출판사의 교역자들은 다른 분야의 교역자들보다 더 과중한 활동과 더 큰 희생과 더 무거운 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활동은 성실한 목사의 활동보다 더 크게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하여, 목사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관에 있는 교역자들이 하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을 한다. 목사들은 파견되는 곳으로 간다. 그들은 어떤 비상 사태에도 대처하기 위하여 어느 순간이라도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응소를 기다리는 민병 (民兵) 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필연적으로 가족과 떨어져 있다. 그러나 출판사의 교역자들은 일반적으로 영구적인 집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 이것이 지출에 큰 절약이 되므로 목회직과 출판사의 교역자들의 상대적인 보수에 관한 방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교회증언 7권 pp. 199-208

Cathy Constantines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