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6 99-108 (348일)

침례를 받음으로 맺은 영적 언약은 쌍방에 의무를 지워 준다. 인간이 완전한 순종으로 그들의 몫을 다하게 될 때, 그들은 “주님, 당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할 권리를 갖게 된다. 그대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만일 그대가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것 같으면 모든 어려움에서 그 삼위의 능력이 그대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보증이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학교에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당신의 신실한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 3:1-3).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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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건축

어느 도회지에서나 일단 관심이 일깨워지면 그것을 뒷수습해야 한다. 단출한 교회당이 하나의 증표로, 하나님의 안식일의 기념물로, 도덕적 흑암 가운데 빛으로 서기까지 그 지역에서 철저히 일해야 한다. 이런 기념물들이 진리의 증거물로서 많은 장소에 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써 복음의 사자들이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에게 나아가 진리의 깃발을 온 세상 방방곡곡에 세우도록 준비하였다.

신자들의 무리가 생겨날 때마다 예배당이 지어져야 한다. 이 일을 성취하지 않고서는 일꾼들이 떠나지 말도록 해야 한다.

많은 곳에서 기별이 전파되고 영혼들이 그것을 영접하였는데, 그들은 제한된 형편에 처해 있어서 그 사업에 힘을 더할 유리한 고지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가 없다. 자꾸 이런 사정으로 인해 사업을 확장할 수 없다. 사람들이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될 때에, 그들은 다른 교회의 목사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이 사람들은 교회가 없고 예배드릴 장소도 없다. 당신들은 적고, 가난하고, 무식한 무리이다. 곧 목사들은 떠날 것이고 관심은 시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 당신들이 받은 새로운 생각들을 다 포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 믿음의 이유를 알고 이 현대 진리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에 의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큰 시험 거리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작은 시작으로부터 큰 관심이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만일 우리 구주의 왕국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우리가 지혜와 성화된 판단력과 세련된 지도력을 발휘할 것 같으면, 우리는 백성들에게 우리의 사업의 든든함을 보장하고자 온 힘을 다 쏟을 것이다. 진리를 받은 사람들이 양심이 명하는 대로 하나님을 경배할 장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에 단출한 예배당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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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대로 우리의 교회당들이 빚 없이 하나님께 헌당되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서면, 교인들이 일어나 건물을 짓도록 하라. 동료 목사들의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한 목사의 지도 하에 “우리는 집회 장소가 필요하다. 반드시 하나 있어야 겠다” 고 말하는 새로 개종한 사람들이 손수 이 일에 참여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백성들이 즐겁게 연합하여 힘쓰기를 요구하신다. 이 일을 이루도록 하라. 그리하면 곧 다음과 같은 감사의 소리가 나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보라.”

그러나 때로는 새로 생긴 교회가 당장에 교회당을 세울 부담을 질 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곳의 형제들이 이들을 돕도록 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짓지 않은 것보다는 돈을 빌려서라도 짓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돈이 있어서, 그것을 바칠 수 있는 대로 드린 후에, 이자나 무이자로 융자를 낼 것인데, 빚진 것을 갚기까지 그 돈을 사용하는 것은 바른 일이다. 그러나 다시 반복하는데, 가능하면 교회당은 빚 없이 봉헌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들 사이에서 긴 의자들을 돈 받고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부자라고 가난한 자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차별이 없도록 하라. “너희 모두는 형제니라.”

우리는 건물 중에서 아무 데도 허식을 하지 말 것이다. 이것이 사업을 진전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절약하는 것이 우리의 원칙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는 일시적이 아닌 방법들을 이용해서 일해야 한다. 모든 것은 지금과 영원을 위해 단단히 수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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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회들이 빚을 지고, 빚 속에 있는 해이한 상태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계속적인 빚이 하나님의 집에 얹혀 있다. 계속적으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하고 필요하지도 않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런 지혜와 방안과 열성을 주님을 위해서 나타낸다면 이런 일에 있어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빚이 해결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낼 수 있는 자들에게 헌금을 요구하시며, 가난한 교인도 적은 헌금을 할 수 있다. 극기는 모든 이들이 무엇인가를 하게 할 것이다. 노소를 막론하고, 부모이든 자녀이든 간에 모두가 그들의 행위로 믿음을 보여야 한다. 각자가 참가해야 할 필요성을 모든 교인들에게 강하게 심어 주어야 한다. 각자가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 사업이 빚 때문에 구속되도록 계획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희생을 요구하신다. 이것은 금전적인 번영뿐 아니라 영적 번영을 가져 올 것이다. 자아부정과 자아희생은 교회의 영성을 증진시키는 일에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

우리 교회가 빚을 지는 것은 하나님께 불쾌한 일이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8). 그 은과 금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면, 즉 야망이나 자랑이나 이기적 방종에 관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되면 하나님은 수치를 입으신다. 하나님에 의해 택함 받은 백성이 그분의 사업은 쇠해 가는데 자기 집을 치장하고 이기적 욕망 충족을 위해 돈을 사용한다면 그들은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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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주님을 첫째로 모시고, 그분의 집이 더이상 빚으로 인해 수치를 당치 않게 하고자 결심한다면, 하나님은 그대를 축복하실 것이다. 매 주 이 목적을 위해서 십일금 이외에 조금씩 따로 떼어 놓으라. 이 목적을 위하여 통을 준비하라. 자녀들에게 이것은 극기의 상자인데 실제 필요치 않은 데 쓸 달러나 페니를 넣는 곳이라고 설명하라. 이것은 주님의 교회를 위한 것이요 하늘을 수치로 입히는 빚을 교회당에서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이 헌금을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가정의 모든 식구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각을 아신다. 그분은 모든 행동을 보신다. 그분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신실한 목적을 세우고 한 모든 일은 축복을 받는다. 동전 두 잎, 한 잔의 냉수도 동정과 사랑으로 드려지면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데 효력을 발생하고, 나중에 보상을 가져올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문해야 할 시험과 같은 질문은 이것이다. “내 영혼 깊숙이 그리스도를 향한 최상의 사랑이 있는가? 나는 그분의 성소를 사랑하는가? 그분의 거룩한 기관을 나의 생각의 처음에 둠으로 주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실까? 하나님과 나의 구주에 대한 나의 사랑이 자아를 부인할 정도로 큰가? 쾌락과 이기적 연락에 빠지도록 유혹을 받을 때에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 빚져 있는 동안 나의 충족을 위해서 한 푼도 쓰지 않겠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 자아는 그 욕망을 첫 자리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온 마음과 모든 애정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둘째 자리로 들어오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첫째 자리,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분이 우리의 존경과 충성의 표시를 요구하셔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이 가정과 교회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속마음의 기초가 된다. 만일 마음과 영혼과 힘과 생명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지면, 모든 애정이 그분께 온전히 바쳐지면,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모든 일에 있어서 최고로 모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조화된다면 그분의 영광과 명예에 관한 생각이 모든 일에 앞서게 될 것이다. 우리의 헌물과 예물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 특별히 고임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사업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동업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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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만나시는 집은 그분의 충성된 모든 자녀들에게 귀하고 거룩한 장소가 될 것이다. 그것은 빚으로 인해 불구의 몸으로 방치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로 허락하는 것은 그대의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만일 빚 없는 집을 갖게 될 수만 있다면 그대들은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만나시고 축복하실 수 있다.

만일 교인들이 빚을 청산하고자 생각하고 지혜롭게 계획하며 진지하고 열렬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예배당에 얹혀 있는 빚들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빚이 청산되는 모든 경우마다 감사의 예배를 드리도록 하자. 이것은 그분의 집을 다시 하나님께 바치는 헌당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품성을 시험하시고자 그들의 믿음에 시련을 주신다. 위급한 때에도 그분을 위하여 서슴지 않고 희생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에 사업에서 동역자를 삼으시는 영광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극기를 실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시험을 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행적이 마음을 읽으시는 하나님 앞에 나타나듯이 사람들의 눈에 다 보이게 될 것이다.

백성들이 소돔을 떠난 롯의 처와 같이 슬프거나 아깝다는 생각에 빠져 있지 아니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불필요한 것들을 제한하고 극기를 실행한다면 이 사업은 힘있게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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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집회와 교회 학교

야영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을 해야 한다. 매일 자격을 갖춘 교사들의 지도 하에 어린이들의 집회나 성경 유치반을 개최해야 한다. 단순한 언어로 성경과 천연계에서 취한 교과를 가르쳐야 한다. 유치반 방법과 천연계로부터 나온 실물 교훈은 어린이들의 관심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침 교과 시간 후에, 청명한 날에는 교사들과 어린이들이 소풍을 나가, 산보중에 강둑에서나 초원에서나 잠깐 쉬면서 천연계에서 끌어낸 짧은 교훈을 가르칠 수도 있다. 이런 교훈 속에서 그리스도의 비유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칠 수도 있다. 진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잘 박힌 못처럼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어린이 사업의 목표는 그들을 즐겁게 하고 교육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회심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뿌린 씨에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며, 성령의 활동이 어린이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활용하면 우리는 그들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께로 이끌고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주의 어린 가족들에게 위대한 결과가 있게 하는 사업이다. 이런 집회를 통하여 가정에서 그리스도인 교육을 좋아하게 된 어린이들도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을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이 그리스도의 단순함으로 가르쳐진다면, 그들은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그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보물 창고로부터 귀중한 교훈을 꺼내 쓸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 충만히 교훈을 받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경 진리가 그들에게 분명히 제시되어야 한다. 진리에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이것은 옥토에 뿌린 씨와 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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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집회가 제대로 주관되면 우리와 같지 않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이 집회에 참석할 것이며, 이 집회에서 배운 교훈들은 가정에서 반복될 것이다. 자녀들을 통하여 부모들에게 전도가 될 것이다. 호주에서의 야영회들에서 이런 집회들이 큰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다음은 호주 야영회에서 이 방면의 일을 한 것에 대하여 그 일에 참여한 어느 분이 쓴 글이다.

“안식일에 어린이들은 각반으로 나뉘었고, 교사들이 일을 시작하였다. 시작할 때에 유년반에는 여섯, 유치반에는 열 다섯 명이 있었다. 인근의 어린이들이 집회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매일 그 수가 불어 나갔다. 매일 평균 밖에서 들어온 수가 팔십에서 백 명 사이였다. 일요일들에는 더 많은 수가 모였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정규적으로 출석하였다. 장년 집회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함, 주의 집중, 질서의 모습이 어린이들의 집회에서 나타났다. 각 반에서 전체 복습 시간에 그 일이 너무 잘 준비되어 어린이들이 직접 실행하고 듣고 하였으며, 이런 식으로 그들은 마음이 평안해졌으며, 그 사업의 어느 부분을 맡고자 하는 열성이 그들의 관심을 입증하였다.

각 교과는 전체 모임으로 시작하여, 각 반으로 나뉘었다. 마지막에 모두가 모여 짧은 복습과 노래를 하였다. 시작 시간에, 노래와 기도 후에, 표어와 미리 외운 기억절을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암송하였다. 짧고 적당한 낭독이나 암송을 자원하여 미리 준비한 어린이가 수행하였다. ‘성경 가나다’를 어린이들이 배워서 암송하였다. 각자가 원하는 구절이나 문자를 택하였다. 성구를 택하고 외우는 일은 집에서 했다. 이런 책임을 어린이들에게 지우는 것은 이튿날에도 정규적으로 출석하게 하는 부가적인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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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시간에 즉각적인 응답들은 각반에서 보인 관심이 대단하였으며, 그렇게 많은 귀중한 진리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어린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에 부모들은 아이들이 전체 교과를 암송하는 것을 듣고는 놀라고 또 기뻐하였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일에 대한 감사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으며 집회가 곧 끝나게 됨을 인해 섭섭함을 금치 못했다.

주일 학교들에서 몇 명의 교사들이 참여하여 이 일에 대해 크게 기뻐하고, 유익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부모들이 때로 어린이들과 함께 앉아 그들만큼이나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인 적도 있다. 어떤 이들은,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면서도, 그들의 자녀들을 단정히 옷 입혀 오며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부모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로 그들이 이 집회에 오며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집에 붙잡아 둘 수 없게 한다는 것을 실토하였다. 어떤 어린이들은 먼길을 왔는데, 우리는 뿌린 씨의 많은 부분이 옥토에 떨어졌다는 것을 믿을 이유가 충분하다.”

이 집회들에서 뿌려진 좋은 씨앗은 돌보지 않음으로 죽게 해서는 안 된다. 많은 부모들은 야영회에서 어린이들에게 주어진 교훈이 계속되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같은 원칙이 가르쳐지고 실행되는 학교에 넣기를 원할 것이다. 부모들과 어린이들의 관심이 일깨워지는 동안, 야영회 동안에 수행되었던 일이 계속될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하는 황금의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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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이 모여들고 교회가 조직되면, 이런 학교는 이 사업의 영구성과 안정을 증진하는 데 큰 가치가 될 것이다. 새 지역에서 일하는 자들은 그들의 지도 하에 그 교회를 위하여 필요한 설비들이 마련되기까지는 그 곳을 떠나고자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담한 예배당이 서야 될 뿐만 아니라, 교회 학교의 영구한 설립을 위한 준비를 다 갖추어 주어야 한다.

이 사항이 내 앞에 분명히 제시되었다. 나는 여러 다른 장소에 신자들의 새로운 모임이 이루어지고 예배당이 서는 것을 보았다. 새로 믿음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며,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도왔다. 교회 밑에, 지하실이 아닌, 학교를 위한 방이 따로 준비되어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대로 교육받을 곳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헌신한 교사들이 이런 곳으로 나가도록 택함을 받았다. 학생 수는 많지 않았지만, 매우 행복한 시작이었다.

사업이 진전됨에 따라 나는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다음과 같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교회증언 6권 pp. 99-108

Cathy Constantines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