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699-708 (333일)

사도 바울은 부르짖는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비록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 을지라도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시 97:2).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취급하시는 일과 그분께서 행동하시는 동기를 깨달음에 따라 무한한 능력과 결부된 끝없는 사랑과 자비를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유익이 될 만큼은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우리가 여전히 전능하신 분의 능력과 만물의 아버지시며 주권자이신 분의 사랑과 지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저자의 성품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자들이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신비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딤전 6:16) 거하시는 창조주께 우리의 마음을 이끈다. 그것은 인간 역사를 다 포함하고, 오직 끝없는 영원의 주기에서 성취될 그분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부와 인간의 운명에 관련된 무한히 깊고 주요한 주제들로 우리의 주의를 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 그리스도의 성육신, 중생, 부활, 그 외에 성경에 제시된 많은 주제들은 너무 심오해서 인간의 마음으로 설명하거나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오묘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특성에 속한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를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섭리에 속한 모든 오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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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 주제들을 제시하는 성경의 부분들이 사람에게 무익한 것으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신 모든 것을 그분의 말씀의 권위에 의거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왜 혹은 어떻게라는 설명 없이 사실들에 대한 꾸밈 없는 진술만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어려움은 인간의 마음의 약점과 편협에 내재해 있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고 한다. 회의론자들은 성경의 어려움이 성경을 대적하는 논증이 되는 것으로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렇기는커녕 그런 어려움이,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강한 증거이다. 만일 성경에 하나님께 대한 이야기가 없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뿐이라면, 만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을 유한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의 명백한 신임장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제시된 주제들의 웅대함과 오묘함, 바로 그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고취시켜야 한다.

성경은 단순하게, 또한 인간의 마음의 필요와 소원에 가장 적합한 진리를 나타내 주므로 비천하고 교양 없는 자들도 구원의 길을 깨달을 수 있는가 하면 가장 훌륭하게 교양을 쌓은 사람들도 놀라게 하고 매력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 단순하게 표현된 진리들이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한 너무 숭고하고 너무 원대하고 너무 무한한 주제들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것들을 선포하셨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같이 구속의 계획이 우리 앞에 제시되므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받기 위하여 회개로 하나님께 나가고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이르는 계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쉽게 깨닫게 되는 진리 아래 그분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는 오묘, 그것을 탐구하는 정신을 압도시키고 그러면서도 진지한 진리의 탐구자를 존경과 믿음으로 고무시키는 오묘가 놓여 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계시의 위엄 앞에 머리를 숙인다.

하나님의 권위에 의거하여 살아 있는 성경 말씀을 즐겨 받아들이는 자들은 가장 밝은 빛으로 축복을 받는다. 특정한 말씀들을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그들은 다만, “성경에 그렇게 제시되어 있다” 고 대답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나 하나님의 지혜의 현현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주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믿음으로 어떤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아를 발견한다. 이것을 인정하므로 유한한 마음은 무한한 것을 파악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제한된 인간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전지하신 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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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묘를 모두 깨달을 수 없다는 이유로 회의론자와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다. 그런데 성경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이 점에서 유혹을 받을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도는,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히 3:12) 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낼 수 없다는 이유로 비평하고, 의심하고, 흠잡는 데 훈련되어 온 마음들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 (히 4:11) 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교훈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하나님의 깊은 것” (고전 2:10) 을, 그것들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 한 반면에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 (신 29:29) 다. 그러나 인간의 연구력을 왜곡시키는 것이 사단의 일이다. 어떤 특수한 자존심을 성경의 연구에 혼합시키므로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만족하게 설명할 수 없게 되면 좌절감을 느끼고 안달해 한다. 그들이 영감의 말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굴욕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리를 계시해 주시기에 적합하다고 보실 때까지 인내함으로 기다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움이 없는 그들의 인간적 지혜가 그들에게 성경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기에 충분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기대를 이루지 못하므로 그들은 사실상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 일반적으로 성경의 교훈이라고 생각한 많은 이론과 교리가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영감의 전체적 대의와 반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과 혼란의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지 않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오해에 있다. 성경의 난해한 면은 하나님의 지혜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런 어려움들은, 만일 그것들이 없었더라면 멸망당하지 않았을 어느 누구의 멸망의 원인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의심할 오묘한 것들이 성경에 없었더라도 바로 동일한 그 마음들은, 그들 자신의 영적 식별력의 부족으로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족할 이유를 발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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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높은 수준의 정신력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길과 업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와 동등하게 높이고 하나님처럼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그들은 사단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어” (창 3:5) 라고 주장한 말을 반복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사단은 하나님과 동등해지고자 한 그의 야망 때문에 타락했다. 그는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무능 때문에 제외된 하나님의 회의와 목적에 참여하여 무한하신 분의 지혜를 깨닫고자 욕망했다. 이 야망적인 자존심 때문에 그는 반역을 일으켰고, 동일한 방법으로 그는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노력한다.

구속의 계획에는 오묘가 있다. 곧 하나님의 아들께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게 된 굴욕,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보여 주신 놀라운 사랑과 겸손, 이들은 하늘의 천사들에게 끊임없는 경이 (驚異) 의 주제들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 에 관하여 선지자들에게 주신 계시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것들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벧전 1:11, 12) 고 말한다. 이것들은 또한 구속받은 자들이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연구할 주제가 될 것이다. 그들이 창조와 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업적을 명상할 때 새 진리가 경이와 기쁨으로 충만해진 마음에 끊임없이 펼쳐질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넓어지고, 그들의 기쁨은 계속해서 증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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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업적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그 경지에까지 이른다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찾아낼 진리가 없고 지식 안에서 자라나지도 않고, 정신과 마음이 더 이상 계발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최고의 분이 되지 못하시고, 사람들은 지식과 달성의 한계점에 이르러 향상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 2:3). 그러므로 사람들이 영원무궁토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울지라도, 그들은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결코 고갈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 세상에서도 진리가 그분의 백성들에게 펼쳐지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그 영의 조명을 통해서만이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0, 11). 구주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그가 …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3, 14) 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추리력을 발휘하기를 원하신다. 성경 연구는 어떤 다른 연구보다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향상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에 있어서 가장 좋은 영적 훈련인 동시에 지적 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약점과 연약함에 예속되는 이성을 신격화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만일 성경이 인간의 이해력에 모호하게 되어 가장 분명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과 믿음을 가져야 하고, 배우고자 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깨닫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상태를 알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고, 마치 우리가 거룩한 경외심으로 그분의 면전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분의 말씀을 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이성은 그것을 초월한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마음과 지성은 스스로 계신 위대한 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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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이 작다는 것과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영적 지식 안에서 전진하게 될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정신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하늘의 깨우침을 받을 것이다. 외관상 어렵고 모호해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고 단순하게 해주실 것이다.

때때로 지성적 능력을 갖추고, 교육과 수양으로 연마된 사람들이 성경의 특정한 구절들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이해력이 약해 보이고 마음이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이 전자가 오묘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그 구절들에서의 의미를 파악하고 힘과 위로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이해력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 설명되었다. 그들은 빛의 근원, 곧 성경에 영감을 주신 분을 찾아가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것을 받는다. 진리의 광맥이 있지만 그것은 열렬하게 찾는 자에게 발견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밭에 감추인 보화로 비유하셨다. 그것은 땅의 표면에 놓여 있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하여 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해 내는 우리의 성공은 우리의 지적 능력에 좌우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마음의 겸손과,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는 믿음에 좌우된다.

성령의 지도가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성경을 많이 읽지만 유익이 없고 많은 경우에 분명한 손해가 되는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과 기도 없이 펼 때, 사상과 애정이 하나님께 집중되지 않거나 그분의 뜻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마음은 의심으로 흐려지고, 바로 성경 연구 자체가 회의론을 강화시킨다. 원수가 사상을 사로잡고, 옳지 않은 해석을 하도록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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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그들이 어느 정도 배웠던지에 상관없이 그들은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실수하기 쉬우므로 그들의 설명에 의존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노력하면 성령께서는 그분의 말씀의 교훈을 취하셔서 생애의 원칙을 삼게 하고, 그것들을 심령의 비에 기록해 준다. 이미 받은 빛을 따르고 있는 자들만이 더 많은 영의 조명을 받고자 바랄 수 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 알리라” (요 7:17).

모순을 찾아내기 위하여 성경을 살피는 자들은 영적 통찰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비뚤어진 시각으로, 사실은 쉽고 단순한 것들 가운데서 의심과 불신의 많은 구실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종하기 위하여 그분의 뜻을 깨닫고자 노력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바뀌어진다. 그들은 계시된 진리들의 순결과 고귀한 탁월을 명상할 때 놀라움과 경이로 충만해진다. 유유 상종이며, 유유 식별이다. 거룩함은 거룩함과 결합하고, 믿음은 믿음과 결합한다. 겸손한 마음과 진지하고, 무엇을 구하는 정신에는 성경이 빛과 지식으로 충만하다. 이 정신으로 성경을 대하는 자들은 선지자와 사도들로 더불어 교제하게 된다. 그들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동화되고, 그들은 그분과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은 회의론자들과 불신자들의 트집에 대항하기 위하여 성경에 있는 모든 어려움을 설명해 줄 의무가 그들에게 지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불완전하게 이해한 데 불과한 것을 설명하고자 시도함으로써 그들은 분명하고 쉽게 이해되는 점들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키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들이 존재한다 해서 탄식할 것이 아니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지혜로 허락된 것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점에서 영혼의 구원에 분명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원칙들을 우리의 생애로 실천하고, 교훈과 모본으로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그분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경건한 생애, 성실과 온유와 이타적 사랑의 매일의 모본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대한 산 모범이 될 것이며, 그것은 성경을 옹호하는 일에 있어서 거의 저항할 수 없는 하나의 논증이 될 것이다. 이것은 회의론과 불신으로 기우는 우세한 경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수단임이 입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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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지력, 곧 하나님의 능력과 결합된 인간의 능력의 성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모든 영혼의 능력이 빛의 근원되시는 분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당혹했던 모든 것이 그때에 밝혀질 것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해명될 것을 믿고 기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유한한 마음으로 볼 때 오직 혼란과 좌절된 목적만으로 덮였던 곳에서 우리는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2).

베드로는 형제들에게,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벧후 3:18) 고 권면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 안에서 자라나고 있을 때는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끊임없이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거룩한 진리 안에서 새 빛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각 시대의 교회의 역사에서 실증되었고, 끝까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생명이 쇠퇴해질 때는 언제나 진리의 지식 안에서 전진하는 것도 중단되는 경향이 생겼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받은 빛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수적이 되어 토론을 피하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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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논쟁과 논의가 없는 사실이,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굳게 고수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진리와 오류를 분명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다.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아무런 새로운 의문들이 생기지 않을때, 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스스로 성경을 살피게 하는 의견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때,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무엇인지 모르는 전통과 예배를 고수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현대 진리를 알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의 증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현시대를 위한 사업을 바로 깨닫지 못한다. 시련의 때가 올 때, 오늘날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역설하는 주장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만족할만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험을 받기 전에는 그들이 크게 무지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이해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논쟁이 생기기 전에는 그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지 못한다.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서 분리되어 홀로 서서 단신으로 그들의 신조를 설명하도록 강요 당하면 그들은 그들이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얼마나 분명치 않은 것이었는지 깨닫고 놀랄 것이다. 우리들 중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하나님의 지혜 대신에 인간의 지혜를 나타낸 자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일으키실 것이다. 만일 다른 수단들이 실패하면, 이설이 그들 가운데 생기고, 그것이 그들을 키질하여 겨를 곡식으로부터 분리시킬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도록 부르신다. 이 시대에 적절한 귀중한 빛이 주어졌다. 그것은 우리 앞에 박두한 위기를 알려 주는 성경의 진리이다. 이 빛은 우리로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게 하고 우리가 역설하는 주장들을 가장 철저히 살피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진리의 의미와 주장들을 철저하고 꾸준하게 탐구하기를 바라신다. 신자들은 무엇이 진리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하여 추측과 분명치 않은 견해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기초되어 있으므로 시련의 때가 다가와서 그들이 의회들 앞에서 나가 믿음에 대하여 답을 할 때, 그들은 온유와 두려움으로 그들에게 있는 소망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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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하라, 분기하라, 분기하라. 우리가 세상에 제시하는 주제들은 우리에게 산 실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의 기초적인 조항들로 생각하는 교리들을 변호함에 있어서 완전히 건전하지 않은 논법을 사용하도록 우리 스스로를 결코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의의 있는 일이다. 이런 것들은 반대자를 침묵시키는 데 효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진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반대자들을 침묵시킬 뿐만 아니라 가장 주도 면밀하고 가장 엄중하게 살펴보게 하는 건전한 논법을 제시해야 한다. 토론자로서 자기 자신을 교육시켜 온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정하게 취급하지 않을 위험이 있다. 반대자를 만날 때 우리는 단순히 신자에게 확신을 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대신에 그의 마음 속에 각성을 일으켜 주는 그런 방법으로 주제들을 제시하고자 열렬히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지적 발달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가 더 큰 빛을 받기 위하여 성경을 철저하고 꾸준하게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 순간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개인적으로 예언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는 빛의 어떤 줄기든 식별하기 위하여 열렬한 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의 희미한 첫 광선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하면 경건한 연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할 더 밝은 빛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이 받은 현재의 빛으로 만족하고 안일하게 지내면, 우리는 그분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이 그들에게 비취고 있는 증가된 그리고 또한 언제나 증가되고 있는 빛을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교회의 현재의 태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더 많은 진리와 더 큰 빛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자기 과신이 들어왔다. 우리는 사단이 전후 좌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는 잠을 자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행동하도록 깨우는 한 음성이 들려지기를 바라신다.

교회증언 5권 pp. 699-708

Cathy Constantines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