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689-698 (332일)

주님의 책망과 경고와 교정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의 교회에 주어졌다. 이 경고들은 그런 책망이 필요 없으며 부당하게 취급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독선적인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그리스도 당시에 멸시받고 거절당했다. 그들은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주신 그분의 말씀이 그들의 성향을 즐겁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았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의 시대에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 앞에 이상을 보여주셔서 그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의 독선을 책망하고 그들의 죄를 정죄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사렛의 거민들에게 그들의 참 모습을 보여 주셨을 때처럼 일어나 반역할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단의 제안들을 마음에 품는다면, 의심과 불신이 심령을 사로잡고, 그들은 모든 것을 거짓된 빛 가운데서 보게 될 것이다. 일단 그들의 마음 속에 의심의 씨앗들을 뿌려보라. 그러면 그들은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들은 불신 가운데서 스스로를 교육시키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고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진리들을 신뢰하지 않고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의심을 걸어 두는 못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붙들도록 마음을 훈련시키고 이런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자들은 언제나 의심할 기회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는 것을 의심하고 비평하며, 다른 사람들의 사업과 위치를 비평하고, 그들 스스로가 참여하지 않는 모든 분야의 사업을 비평할 것이다. 그들은 천사가 “주 예수님께 하늘 성소의 중보 사업에서 일어나 복수의 옷을 입으시고 부정한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며, 그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라고 말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오류와 실수와 결점들을 먹고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미각이 너무 왜곡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나라에 있는 그분의 식탁까지 비평하는 경향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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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기만당한 이 사람들에게, 그분에게서 온 책망과 교정의 말씀이 직접적인 이상을 통하여 주어지지 않는 한 아무런 중요성도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계시하신 적이 있었던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 영혼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사단의 미혹이기 때문에 나는 이 점을 논한다. 사단이 그의 궤변으로 그들을 사로잡고 약화시켜 왔을 때, 그리하여 책망을 받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무효로 만드는 일을 고집할 때, 그들에 대한 그의 승리는 이루어질 것이다. 의를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유다처럼 그들의 주님을 그분의 가장 큰 철천지 원수들의 손에 넘겨 준다. 그들 자신의 길을 택하고 그들 자신의 사상을 옹호하기로 작정한, 자신감에 사로잡힌 이 사람들은 나쁜데서 더 나쁜 데로 가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들은 그들 자신의 뜻을 버리기는커녕 어떤 길이라도 따라갈 것이다. 그들은 악한 길을 맹목적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만당한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기만에 빠졌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들의 참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가질 때 취하게 될 길을 묘사하셨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눅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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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과 관련하여 두드러진, 엄숙한 경험을 내게 주셨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나의 생명이 지속하는 한 내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감동받은 그대로의 경고의 음성을,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상관하지 않고, 끊임없이 높일 것이라는 것을 믿어도 좋다. 내 자신에게는 특별한 지혜가 없다. 나는 주님께서 내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하기 위하여 그분의 손에 들린 도구에 불과하다. 내가 글이나 음성을 통하여 준 교훈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빛의 표현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영이 여러 해 동안 나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나의 심중에 기록해준 원칙들을 그대들 앞에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이제 그대들이 나와 백성들 사이에 개입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탄원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비평을 통하여, 증언들에서 오는 모든 힘, 모든 효과와 능력을 제거해 버리지 말라. 그대들 자신의 사상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이 그것들을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 하늘에서 온 빛이며 무엇이 단순한 인간의 지혜의 표현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셨다고 주장하지도 말라. 만일 어떤 증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게 말하지 않거든 그것들을 거절하라.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연합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간의 궤변과 회의로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키지 말고,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사업을 무효로 만들지 말라. 그대들의 영적 식별력의 부족으로, 이 하나님의 매개체를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걸리며 잡히게” (사 28:13) 하는 거치는 돌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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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장 — 근거 없는 소문

지난 겨울에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미네아폴리스 총회 기간에 “화잇 자매가 1844년 이래로 죽은 의인들에게 집행되어 온 심판이 이제는 산사람들에게 시작된” 것을 보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약 2년 동안 떠돌아다닌 유사한 소문도 이런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실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판은 40년이 넘도록 죽은 자의 상황에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빨리 산 자의 상황을 취급하게 될는지 알지 못한다.” 그 편지는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주의성 없이 들은 자들은 그들이 듣고 생각한 대로 소문을 퍼뜨렸다. 문제는 이렇게 발단되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된 소문은 편지에서 인용한 것과 똑같은 의미의 진술을 누군가가 오해한 데서 생겼다. 이 외에 소문의 근거가 될 것은 달리 없다.

두번째로, 지금 살아 있는 한 목사가 구원받은 상태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상 중에 내게 보였기 때문에 그의 최종적인 구원이 보증된 것이라는 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 말은 진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구원의 조건들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가 그 조건에 일치하느냐 않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계시자 요한은 말한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4, 5).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3,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벧후 3:17).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 3:12, 13).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8,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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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택정이 명백하게 진술된 것을 여기서 보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의 도성에서 면류관을 쓸 자와 의인과 함께 참여하지 않을 자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 22:14).

세번째 소문은, 미네아폴리스에서 “화잇 자매가 그 집회에서 한 그의 말 중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과 그릇된 정신을 나타냈다고 고백했다” 고 말한다. 이 소문 역시 전혀 근거가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빛을 그 총회에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경고와 책망의 기별, 희망과 믿음의 말을 다 같이 제시했다. 그러나 내가 그 집회에서 말한 것은 아무것도 취소하지 않았고, 잘못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았다. 나는 미네아폴리스에서와 동일한 관점에서 여전히 그 문제를 보며,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 당시에 보았고, 내게 그처럼 짐을 지워준 모든 위험들이 그 집회 이래로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내가 우리 교회들의 상태를 더욱 완전히 알게 되자 나는 미네아폴리스에서 주어진 모든 경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온 이런 소문의 영향은, 내가 백성들에게 한 모든 책망과 경고를 믿는 확신을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예증 중 하나를 나는 여기에서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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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도 사업과 관련된 한 자매는 그와 관련된 젊은이들에 대한 잘못된 영향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근심 시키고, 교역자들을 문란케 하는 교묘하고 경박하고 경솔한 정신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미네아폴리스에서의 고백이라고 불리워지는 화잇 자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소식이 미네아폴리스에서 편지를 통하여 전해지자 T 자매의 친척들은 즉시 말했다. “만일 화잇 자매가 미네아폴리스 총회의 문제들에 관하여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고백해야 했다면, 그는 나의 자매에게 전한 기별에 대해서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었으므로 그것 역시 고백해야 한다.” 그들은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한 그 범행자를 변호했다. 그러나 그 때 후로 T 자매는 그가 책망받은 잘못을 인정했다. 그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린 자들은 책망을 거절함으로써 범법자들이 담력을 갖도록 영향을 끼쳤고, 이리하여 영혼들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해 온 모든 사람들은 이 영혼들의 피가 마지막 심판의 큰 날에 그들에게서 발견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언급된 경우들은 내가 행동했거나 가르친 것에 관한 소문에 얼마나 신임을 적게 두어야 할 것인지를 보여 줄 것이다. 주님의 사업과 관련되어 활동하는 동안에 나는 내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거나 내 자신에 관하여 퍼뜨려진 소문을 반대하기 위하여 실제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나의 시간을 빼앗겨서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사업을 등한히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그분의 종들과 사업을 돌보시는 분에게 맡겨 버렸다.

그러나 나는 형제들에게 그런 소문들을 어떻게 믿을 것인지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눅 8:18) 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회개하여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서 듣고 깨닫지 않으려 할 특정한 부류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분은 다시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막 4:24) 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요 8:47).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그들 속에 있는 정신에 따라서 그분의 교훈을 듣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언제나 그러하다. 그들이 그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들의 마음 속에 거하는 정신에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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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듣는 것에다 그들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이 표현하고자 노력한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고안해 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들음으로 문제를 그들이 희구하는 대로, 그들의 목적에 가장 알맞게 이해하고, 그렇게 소문을 퍼뜨린다. 부정한 마음의 충동을 따름으로써 그들은 올바르게 이해하면 큰 선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한다.

또한, 본래 완전히 진실하고 옳은 표현도 몇 사람의 호기심 있고, 부주의하고, 트집잡는 마음들을 통하여 전달되므로 완전히 왜곡될 수 있다. 선의의 사람들도 이따금 부주의하고 심한 잘못을 범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소문을 퍼뜨릴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말이나 주장을 반복하여 거기에다 그 자신의 특성을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 듣는 사람에게 그의 편견과 생각을 그대로 새겨 준다. 그는 그것을 제 삼자에게 전해 주고, 제 삼자는 다시 조금 더 첨가해서 그것을 내보낸다. 그리하여 그들 중 어떤 사람도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깨닫기 전에,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의심과 질투와 회의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통하여 사단의 목적을 성취시켰다.

사람들의 마음이 편견으로 채워져 있는 동안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와 격려의 말을 듣는다면, 그들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도록 그들에게 보내진 기별의 참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의 이해력에 모든 것을 거짓된 시각에서 제시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을 깨닫고자 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은 올바르게 들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해 주고자 하시는 귀중한 축복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 아래 있으므로 그들은 올바로 듣는다. 마음이 이기심과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시는 기별과 조화를 이룬다. 지각은 예민해지고, 감각은 세련된다. 같은 것끼리는 서로 통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요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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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 나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바이다. 화잇 자매가 행동했다던지 말하고 기록했다던지 하는 것에 대한 불분명한 소문을 믿지 말라. 만일 그대들이 주님께서 그를 통하여 계시한 것을 알고자 하면, 그의 출판물들을 읽어라. 그가 기록하지 않은 것에 관한 어떤 점에 흥미가 있으면, 그가 말한 것에 대한 소문들을 열광적으로 움켜쥐고 퍼뜨리지 말라.

83 장 — 모조된 이적

어떤 사람들은 교회증언 1권, 314, 315페이지에 있는 말씀과 대쟁투1권 184페이지에 있는 말씀과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구절들은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한 아론의 이적을 모조한 박수들의 일에 관하여 언급한다. 증언은 말한다. “술객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루신 그 모든 이적들을 이룰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이적들 중 소수의 것만을 할 수 있었다. 술객들의 지팡이도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것들을 삼켜 버렸다.” 의문의 여지가 있는 이 마지막 문장은 사실상 성경의 말씀과 동일하다.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 7:12). 대쟁투 1권에 있는 말씀은 다음과 같다. “술객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이루신 것과 유사한 몇 가지 것들을 그들의 마법을 통하여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들의 지팡이를 실제적으로 뱀이 되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큰 기만자의 도움으로 마법을 통하여 그것들을 뱀처럼 보이게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모조하였다.” 이 말은 앞에 열거한 말과 반대가 되는 대신에 단순하게 그것을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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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에는 내가 전달하고자 한 사상이 완전히 표현되어 있지 않다. 293페이지에는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한 문장이 있다. “술사들은 그들 자신의 기량만으로가 아니고 그들의 신, 곧 하나님의 솜씨를 모조하는 기만적 일을 교묘하게 수행하는 마귀의 능력을 통하여 일을 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지팡이를 산 뱀으로 변화시켰다. 사단은 술사들을 통하여 이 이적을 모조했다. 그러나 그는 산 뱀을 만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생명을 창조하거나 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가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데, 그것은 그가 모조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술사들을 통하여 역사하고 있는 그의 능력으로 그는 지팡이를 뱀의 모양을 갖게 했다.

그들이 뱀이 되게 했다는 말은 단순히 그것이 그런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바로와 그의 왕궁에서 그렇게 믿게끔 되었다. 외관상으로는 모세와 아론에 의하여 만들어진 뱀과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는 진짜인 반면에 다른 것들은 가짜였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산 뱀이 속임수로 된 것들을 삼켜 버리게 하셨다.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에 나타난 그의 완고를 정당화시키기를 원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루신 이적을 멸시하기 위한 어떤 구실을 찾고 있었다. 사단은 바로가 원하는 바를 그대로 주었다. 술객들을 통하여 그가 이룬 일로써 그는 모세와 아론이 단지 술객과 박수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가 전한 기별은 초월자에게서 온 것으로 존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애굽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바로는 심지어 모조의 뱀들을 삼켜버리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의 특별한 역사로 보지 않고, 그의 종들의 마법보다 탁월한 일종의 마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이 모조의 역사는 그의 반역을 더욱 담대하게 해 주고 그를 각성하지 못하도록 방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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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것은 뱀을 그의 매개물로 사용하여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함으로 이룬 일이었다. 시대의 끝이 이르기 전에 그는 여전히 더 큰 기사들을 행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실제적인 이적을 행할 것이다. 성경은 그가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 (계 13:14) 할 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이적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한 속임수 이상의 것이 이 성경절에는 나타나 있다. 그러나 사단이 넘어 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는 기만을 사용하고 그가 실제적으로 행할 능력이 없는 일을 모조한다. 마지막 날에 그는 사람들이 그를 세상에 두번째 오신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그런 방법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점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닐지라도 단순한 외관만으로 그렇게 되는 한, 그것은 바로처럼 진리를 거절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자들 외에는 아무도 속이지 못할 것이다.

84 장 — 성경의 오묘는 곧 그 영감의 증거임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욥 11:7,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 55:8, 9).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사 46:9, 10). 유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무한하신 분의 품성이나 업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가장 탁월한 지성에도, 가장 유력하고 높은 교육을 받은 마음에도 거룩하신 분은 언제나 신비에 싸여 있을 것이다.

교회증언 5권 pp. 689-698

Cathy Constantinescu